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瞑 想/ 無 心 書

[스크랩] 임제불법 臨濟佛法 . 임제편할 臨濟便喝

작성자長樂山人 이종인|작성시간17.01.22|조회수200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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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칙 임제불법 臨濟佛法

 

[본칙]

 

진주 임제의현선사가 황벽의 회상(會上)에 있을 때, 제일좌1)의 권유로 황벽에게 “무엇이 불법(佛法)의 분명한 대의(大意)입니까?”라고 물었는데, 황벽은 곧바로 때렸다. 이렇게 묻고 맞기를 세 차례 반복하고 나서,
임제가 황벽에게 작별을 고하자 황벽은 대우(大愚)를 찾아보도록 했다.
대우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황벽의 회상에서 왔습니다.” “황벽이 무슨 말을 하던가?” “제가 세 차례 불법의 분명한 대의를 물었다가 세 번 모두 몽둥이맛을 보았는데, 제게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모르겠습니다.” “황벽이 그렇게 노파2)처럼 그대를 사무치도록 가르쳤는데, 여기까지 와서 다시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느냐?” 임제가 이 말에 크게 깨닫고 말했다. “원래 황벽스님의 불법에는 군더더기가 없었군요.3)” 대우가 임제의 멱살을 움켜잡고 말했다. “이 오줌싸개야! 방금 전에는 허물이 있느니 없느니 해놓고 지금은 불법에 군더더기가 없다고 말하는구나. 도대체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빨리 말해라, 빨리 말해!”

임제가 대우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세 차례 쥐어박자 대우가 멱살을 풀고서 밀치며 말했다. “너의 스승은 황벽이니 내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이때 진존숙(陳尊宿)4)이 수좌로 있었다.〉

 

鎭州, 臨濟義玄禪師, 在黃蘗會, 因第一座勉令, 問黃蘗,
“如何是佛法的的大意?” 蘗便打. 如是三度, 乃辭, 蘗令見大愚. 愚問,“ 什?處來?” 師云,“ 黃蘗來.”

愚云,“ 黃蘗有何言句?” 師云,“ 某甲三問佛法的的大意, 三度喫棒, 不知有過無過.”

愚云,“ 黃蘗恁?老婆, 爲?得徹困, 更來問有過無過?” 師於言下大悟云, “元來黃蘗佛法, 無多子.”

愚?住云,“ 者尿床鬼子! 適來道有過無過, 如今却道佛法無多子. ?見?什?道理? 速道, 速道!” 師便向大愚肋下, 築三拳. 愚托開云,“ 汝師黃蘗, 非干我事.”〈時陳尊宿爲首座.〉

 

1) 第一座. 수좌(首座)와 같은 말. 승당(僧堂)에 배치된 자리에서 첫 번째 자리인 제일위(第一位)에 있기 때문에 제일좌라 한다.
2) 老婆. 간절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나 그 마음. 노파가 손자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자세하게 일러주는 것처럼, 종사가 학인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빈틈없이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3) 무다자(無多子). ‘다(多)’는 불필요하게 많은 것을 뜻한다. 불필요한 방편이나 조작이 없어 간단명료하게 진실에 부합한다는 의미이다.

4) 목주도명(睦州道明 780~877). 황벽의 제자로서 속성은 진(陳)씨. 도종(道?)·진포혜(陳蒲鞋) 등이라고도 한다. 학인들이 법을 물으러 오면 질문에 적절하게 대답하였으며, 말이 준엄하고 날카로워 아무도 감당할 수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사방에서 귀의하였으므로 진존숙이라 불렀다. 본서 639則 주석1) 참조

 

 

[설화]

 

임제의 기봉5)이 남달랐기 때문에 진존숙이 ‘불법의 분명한 대의’를 묻도록 한 것이다.

곧바로 때렸다:세 차례 20방씩 때린 것이니, 이것이 바로 분명한 대의이다.

제가 세 차례 불법의 분명한 대의를 ~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모르겠습니다:임제 스스로 허물이 있어서 맞았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원래 황벽스님의 불법에는 군더더기가 없었군요:물을 만한 불법이 없으며 말로 표현할 여지도 없다6)는 뜻이다.

대우가 임제의 멱살을 움켜잡고 말했다:임제가 또 황벽의 뜻을 착각하지 않을까 염려한 것이다.

임제가 대우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세 차례 쥐어박았다:황벽의 수단을 쓴 것이니, 이것이 ‘분명한 대의’이다.

 

臨濟機鋒, 不同常流故, 令問的的大義也.

便打者, 三度每二十棒, 是的的大義也.

某甲三問佛法的的大意云云者, 作過棒會也.

元來黃蘗佛法無多子者, 無佛法可問, 無揷?處也.

?住云云者, 又恐他錯會黃蘗意也.

築三拳者, 用得黃蘗手段, 是的的大意也.

 

5) 機鋒. 마음을 나타내 보이는 태도나 수단이 민첩하고 날카로운 점을 칼끝[鋒]에 비유한 말이다. ‘기(機)’는 수행에 의하여 얻은 마음의 기틀[心機] 또는 그것이 활용되어 진리에 합일하는 것을, ‘봉(鋒)’은 그러한 기(機)의 작용이 날카로운 모양을 뜻한다. 선기(禪機)라고도 한다.

6) 무삽자처(無揷?處). 부리를 꽂을 여지가 없다는 말로서 언어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황벽의 몽둥이질은 그 자체로 간명하게 완결된 것이기 때문에 이러니저러니 어떤 말을 붙여도 군더더기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자(?)’는 ‘취(嘴)’와 통하며 본래 새의 부리를 가리키지만, 사람이나 동물의 입 또는 입으로 표현하는 말을 가리키기도 한다.

 

 

천동정각(天童正覺)의 송

 

아홉 가지 고루 갖춘 봉황7)이요,
하루 천 리를 달리는 말8)이로다.
온전한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요,9)
신령한 기틀 움직이는 축이로다.
정면에서 달려들 때는 번개처럼 재빠르고,
어두운 구름 걷힌 그곳에 태양처럼 홀로 밝구나.
호랑이 수염 뽑는 기상 보았는가?
이것이 바로 웅장한 대장부의 모습일세.

 

天童覺頌,

 

“九包之雛, 千里之駒.

眞風度?, 靈機發樞.

劈面來時飛電急, 迷雲破處大陽孤.

?虎鬚見也無? 箇是雄雄大丈夫.”

 

7) 구포지추(九包之雛). ‘包’는 보통 ‘苞’로 쓰며 봉황의 특징을 말한다. 천동정각은『從容錄』 86則 「頌 評唱」 大48 p.283a18에서 아홉 가지 특징을 지닌 봉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서응도를 보면, 봉황에게는 아홉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순하게 따르는 것[歸命]이다. 둘째는 법도 곧 하늘의 법도에 합하는 마음이다. 셋째는 듣는 작용에 통달한 귀이다. 넷째는 굽혔다 폈다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혀이다. 다섯째는 화려하게 빛나는 색이다. 여섯째는 짧고 주황색을 띤 볏이다. 일곱째 날카로운 부리이다. 여덟째 격동하며 널리 퍼지는 울음소리이다. 아홉째는 배에 새겨진 문양이다.”

(瑞應圖云, 鳳有九包. 一曰, 歸命. 二曰, 心合度, 謂天度也. 三曰, 耳聽達. 四曰, 舌曲申. 五曰, 彩光色. 六曰, 冠短州, 當朱色也. 七曰, 銳鉤. 八曰, 音激揚. 九曰, 腹戶.)
8) 위의 책 86則 「頌 評唱」 大48 p.283a21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구방인이 진나라 목공을 위해 말을 골랐는데 과연 천 리를 달리는 말이었다.”(九方?爲秦穆公相馬, 果千里駒.)
9) 탁약(度?)은 ‘풀무’라는 뜻의 탁약(??)이 바른 말이다. 풀무에서 일어나는 바람이 물건을 주물하는 불을 피우듯이 만물을 조화롭게 하는 근원을 상징한다.『老子』 5장에 “천지 사이의 조화는 마치 풀무와 같지 않은가! 안이 텅 비었지만 끝없이 일어나고, 움직일수록 더욱 많은 바람이 나온다.”(天地之間, 其猶??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설화]

 

아홉 가지 고루 갖춘 봉황:봉황에게도 무늬가 있다는 말이다. 아홉 가지를 고루 갖추었다는 말은 1구(一句)에 3현(三玄)이 갖추어져 있고, 1현(一玄)에 3요(三要)가 갖추어져 있으니10) 곱해서 아홉이 된다.
하루 천 리를 달리는 말:초탈의 의미이다. 앞의 두 구절은 임제에 대한 찬탄이다.
온전한 바람을 ~ 움직이는 축이로다:구슬이 걸림 없이 구르는 것과 같은 조화를 나타낸다. 황벽에 대한 찬탄이다.
정면에서 달려들 때는 번개처럼 재빠르고:대우를 묘사한 말이다.
어두운 구름 걷힌 그곳에 태양처럼 홀로 밝구나:임제가 깨달은 경계를 상징한다.
호랑이 수염 뽑는 ~ 대장부의 모습일세:대우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세 차례 쥐어박은 것을 말한다.

 

天童:九包云云者, 鳳也有文彩也. 九包者, 一句中具三玄, 一玄中具三要, 三三是九也.

千里之駒者, 超脫之意. 二句, 贊臨濟也.

眞風度?云云者, 玲瓏宛轉也. 贊黃蘗也.

劈面來時云云者, 大愚也.

迷雲破處云云者, 臨濟悟處也.

?虎鬚云云者, 大愚肋下築三拳也.

 

10) 임제의 설에 따른다.

“법좌에 올라앉자 어떤 학인이 물었다.

‘제1구는 어떤 것입니까?’ ‘3요의 도장을 찍고 떼니 붉은 무늬점이 분명히 나타난다. 이에 대하여 분별하기도 전에 주·객이 갈라지리라.’

‘제2구는 어떤 것입니까?’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어찌 무착(無著)선사의 물음을 용납할 것인가? 그러나 방편이 어찌 번뇌를 끊은 근기(문수)와 상충되겠는가!’

‘제3구는 어떤 것입니까?’ ‘무대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꼭두각시를 보라. 밀거나 당기거나 모두 그 뒤에서 조작하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

임제는 다시 ‘1구의 말에는 반드시 3현문을 갖추고 1 현문에는 3요를 갖추어야 방편도 있고 작용도 있게 된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 말한 뒤 법좌에서 내려왔다.”

(『臨濟語錄』 大47 p.497a15. 上堂. 僧問,

‘如何是第一句?’ 師云, ‘三要印開朱點側, 未容擬議主賓分.

’ 問, ‘如何是第二句?’ 師云, ‘妙解豈容無著問? ?和爭負截流機!’

問, ‘如何是第三句?’ 師云, ‘看取棚頭弄傀儡. 抽牽都來裏有人.’

師又云, ‘一句語須具三玄門, 一玄門須具三要, 有權有用. 汝等諸人, 作?生會?’ 下座.)

 

 

진정극문(眞淨克文)의 송 1 11)

 

여행 짐 꾸릴 때 사소한 것은 필요 없으니,
갈림길에서 주저하면 길은 점점 멀어지리.
그 자리에서 호되게 삼돈방12)을 내리치고,
밤이 되자 예전대로 갈대꽃밭에 잠드는구나.13)

 

眞淨文頌,

“資粮更不着些些,

?路年深恐轉?.

直下痛施三頓棒,

夜來依舊宿蘆花.”

 

11) 무다자의 뜻을 읊은 게송.
12) 三頓棒. 형법상 죄인을 다스리는 매질인 일돈방(一頓棒)은 20방이다. 따라서 삼돈방은 60방이 된다.
13) 특별한 일 없이 항상 쉬던 그 자리로 돌아온 담백한 상황으로 ‘무다자(無多子)’의 소식과 상응하는 구절이다.

 

 

진정극문의 송 2

 

황벽의 불법에 잡다한 법 없다 했으니,
대장부로서 어찌 자신의 말을 어기리.

옆구리 찌른 두 주먹에 분명 소식 있었으니,
황벽에게서 전해 받은 것이 아니라네.14)

 

又頌,

“ 便言黃蘗無多法,

大丈夫兒豈自乖.

肋下兩拳明有信,
不從黃蘗付將來.”

 

14) 누구에게 전수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두 주먹에 본래 있었던 소식이라는 뜻.

 

 

법진수일(法眞守一)의 송

 

단제15)의 가풍이 본래 잡다한 구석 없는데,
세 번이나 맞고서도 가리키는 뜻 몰랐다네.16)
대우는 어느 날 가볍게 말을 늘어놓았으니,
황벽의 지시는 원래 매우 친절하였다 하네.

 

法眞一頌,

“斷際家風本沒多,

雖蒙三頓不仙陀.

大愚一日輕饒舌,

黃蘗元來是老婆.”

 

15) 斷際. 황벽의 시호.
16) 불선타(不仙陀). ‘선타와 같지 못했다’라는 뜻. 본서 411則 주석8) 참조. 『大般涅槃經』 권9 大12 p.421a29 참조.

 

 

동림상총(東林常總)의 송

 

천둥 치고 바람 불면 쉬어야 하거늘,
거대한 자라는 쉼 없이 여울에 올라타네.17)
몸 뒤집어 한 번 들이켜자 바닷물 마르고,

4백 주18)의 산하 전체가 고동치네.

 

東林總頌,

“雷震風行便合休,

巨鼇無便上灘頭.

飜身一吸滄溟竭,

鼓動山河四百州.”

 

17) 세 번에 걸쳐 벼락같이 맞으면서도 연이어 물었던 임제를 거오(巨鼇)에 비유한 것이다. 거오에 대해서는 본서 184則 주석30) 참조.

18) 四百州. 중국 전국토를 말한다. 중국은 송대(宋代)에 약 3백여 주였는데, 이후에 성수(成數)하여 중국 전체 강역을 4백주라고 불렀다.

 

 

보령인용(保寧仁勇)의 송

 

천둥번개 요란하게 치고 온 세상19) 어두우니,
어느 집인가 걱정스레 비 들치는 문을 닫네.
갑자기 거센 바람 휘몰아쳐 먹구름 흩어지니,
대낮인데 하늘 가득히 총총하게 별이 빛나네.20)

 

保寧勇頌,

“雷電喧轟海岳昏,

一家愁閉雨中門.

狂風忽起烏雲散,

白日滿天星斗分.”

 

19) 해악(海岳). 사해(四海)와 오악(五嶽)으로 전 국토 또는 세상 전체를 가리킨다.
20) 별을 보았다는 것은 깨달음의 징표이다. 부처님이 샛별[明星]을 보고 도를 깨우쳤다는 고사에서 확장된 말이다. 목암안영(木菴案永)의 게송에도 동일한 취지의 게송이 전한다.

“요란스레 천둥 치자마자 맑은 바람 일어나니, 대낮 하늘 가득 총총하게 별이 빛나네.”(『頌古聯珠通集』 권10 卍115 p.109a3. 迅雷?震淸?起, 白日一天星斗分.);

“대낮에 별을 본다는 것은 어둠 속의 나무 그림자나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의 자취와 같아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말한다.”(『從容錄』 77則 「頌 評唱」 大48 p.277a27. 白日見星, 此如暗中樹影, 水底魚?, 非肉眼能見.)

 

 

백운수단(白雲守端)의 송

 

한 방의 주먹으로 황학루를 쓰러뜨리고

한 번의 발길질로 앵무주를 뒤집는다.21)
기세가 등등한 때에 기세를 더하고
풍류가 없는 곳에 풍류 일으키노라.22)

 

白雲端頌,

“ 一拳拳倒黃鶴樓,

一剔剔23)飜鸚鵡洲.

有意氣時添意氣,

不風流處也風流.”

 

21) 황학루와 앵무주는 양자강과 한수(漢水)가 만나는 무한(武漢)의 명소이며 한시의 소재로도 많이 쓰인다. 당나라 최호(崔顥 704~754)의 「黃鶴樓」가 대표적이다.

“옛사람이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났으니, 이곳은 텅 비고 황학루만 남았구나.
황학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 흰 구름만 영원토록 허공을 떠돌겠구나.

맑게 갠 시냇가에 한양의 나무들은 뚜렷이 드러나고, 향기로운 풀은 앵무주에 무성하다.

날은 저무는데 고향은 어드메인고? 물안개가 강물에 번져 나의시름 더하네.”

(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晴川歷歷漢陽樹, 芳草??鸚鵡洲. 日暮鄕關何處是? 煙波江上使人愁.)
22) 황학루와 앵무주를 무너뜨리듯이 격(格)을 쳐부수는 일탈(逸脫)의 풍류를 비유로 삼아 임제의 주먹이 지니는 취지를 나타내고 있다
23) ‘剔剔’은 ‘??’(『白雲守端語錄』·『如淨語錄』·『頌古聯珠通集』 등)의 잘못으로 보인다. ‘??’(『五祖法演語錄』 등)으로 된 곳도 있다.

 

 

삽계일익(?溪日益)의 송

 

이마 세 번 부딪치고24) 우문25)에서 떨어지니,

두 뺨이 햇볕에 쪼여26) 불타는 듯 붉었도다.
하루아침에 문득 복사꽃 물결27) 뚫고 오르면,
무성하게 난 머리의 뿔에 바람과 구름 인다네.
바람과 구름 이는 하늘에 머물 수 없으니,
수염 올올이 휘날리며 영주28)로 되돌아가네.
용을 만나서 다시 묻고 답하였는데,
밝은 여의주29) 토해내니 부끄러움 없도다.

 

?溪益頌,

“點額三?下禹門,

雙?曝日赤如焚.

一朝忽透桃花浪,

騰騰頭角生風雲.

風雲生兮不可留,

揚鬚獵獵歸瀛洲.

老龍相見還相問,

吐出明珠更不羞.”

 

24) 점액(點額). 이마를 부딪친 것. 잉어가 용이 되기 위해 용문(龍門)으로 오르려다가 오르지 못하고 석벽에 이마를 부딪쳐 생긴 상처를 말한다. 역도원(?道元)의 지리서 『水經注』에 “드렁허리(뱀장어의 종류)가 굴에서 나와 3월이면 용문을 올라간다. 올라 건너가면 용이 되고 그러지 못하면 이마에 상처만 남기고 되돌아 간다”라고 하였다. 이후로 점액은 관료가 좌천되거나 과거생이 낙제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이백(李白)의 「贈崔侍御」에서는 “이마에 상처만 남기고 용이 되지 못하면 돌아가 평범한 물고기와 짝이 된다”라고 읊었다. 여기서는 임제가 황벽의 의중을 간파하지 못하고 세 차례 얻어맞은 것을 말한다.
25) 禹門. 용문(龍門)이다. 전설에 따르면 우임금이 용문산에 물길을 확장하여 황하가 범람하지 않고 흐르게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용문을 우문이라고도 한다.

26) 점액의 상처를 입고 바위에 떨어진 물고기가 또다시 햇볕에 노출되는 것을 말한다.
27) 도화랑(桃花浪). 음력 2월 복사꽃 필 때 봄비로 산골짜기 얼음이 녹으면 복숭아꽃이 물결처럼 무성하게 피는 현상을 말한다. 전설에 따르면 강나루에 도화의 물결이 일어날 즈음 물고기들이 용문 아래 운집하여 용문을 뚫으려고 뛰어오른다고 한다.
28) 瀛洲. 신선이 살았다는 전설상의 동해의 신산(神山).
29) 여의주는 본분의 핵심을 뜻한다. 황벽이 오로지 삼돈방만으로 지시한 본분의 핵심은 용이 여의주를 토해낸 것과 같고, 그것을 깨우쳐 임제가 대우에게 전한 주먹 세 방 또한 여의주를 토해낸 것과 같으니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취지이다.

 

 

숭승원공(崇勝院珙)의 송

 

자유롭게 되는 순간 자유 잃었고,
지혜가 도리어 어리석음이 되었네.

불법의 대의는 말하지 않고서
쑥대30)로 세 차례 예순 대를 때렸네.
황벽은 노파심에 사무치도록 애썼으니,
대우는 우리 스승과는 관계가 없도다.
요즘 몸을 편안히 하는 법을 배웠으니,
물어오면 오로지 모른다고 대답할 뿐.

 

崇勝珙頌,

“ 得便宜失便宜,

智慧飜成愚癡.

佛法大意不語,

三回六十蒿枝.

黃蘗老婆徹困,

大愚非干我師.

近來學得安身法,
問着無過?不知.”

 

30) 호지(蒿枝). 임제의 말에 근거한다. 도교에서는 이것으로 두들기면 아이의 성장을 촉진한다고 한다. 바르게 인도하는 가르침의 수단을 나타낸다. “내가 황벽화상의 회하에 있을 때 세 차례 몽둥이맛을 보았는데, 마치 쑥대로 만든 불자(拂子)와 같았다. 오늘 다시 한 방 맛을 보고 싶은데 누가 나를 위해 때려 줄 사람 없느냐?”(『景德傳燈錄』 권12 「臨濟義玄傳」 大51 p.291a6. 我於黃檗和尙處, 三度喫棒, 如蒿枝拂相似. 如今更思一頓喫, 誰爲我下得手?)

 

 

불안청원(佛眼淸遠)의 송

 

하늘에 맞닿은 푸른 화악산을 쪼개어 열고,
바다까지 소리 내어 흐르는 황하를 방출하네.31)
눈먼 나귀32) 죽은 뒤에 쑥대도 꺾어지니,33)

지금 세상에 그런 사람이 몇이나 남았는가?33)

 

佛眼遠頌,

“擘開華岳連天色,

放出黃河到海聲.

?驢死後蒿枝折,

大地如今有幾人?”

 

31) ‘하늘에 맞닿은 ~ 방출하네’라는 구절은 『宏智廣錄』 권4 大48 p.35c18에 나오는 말이다. 거령신(巨靈神)이 화악산을 쪼개고, 하신(河神)이 황하를 방출하는 것과 맞먹는 기력 곧 뛰어난 선기(禪機)를 나타낸다.
32) 할려(?驢). 눈먼 나귀. 맹려(盲驢)와 같다. 임제가 임종할 때 인가를 받고 종지를 계승한 삼성혜연(三聖慧然)을 가리킨다. 본래는 눈이 멀어 어리석은 사람을ㅜ 비유하는 말이지만 역설적인 뜻이다. “임제가 입적할 즈음에 제자리를 잡고 앉아 말했다. ‘내가 입적한 다음 나의 정법안장을 소멸시켜서는 안 된다.’ 삼성혜연이 나와서 말했다. ‘스님의 정법안장을 어찌 소멸시키겠습니까?’ ‘이후에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물으면 그에게 무슨 말을 해주겠는가?’ 삼성이 할을 하자 임제가 ‘나의 정법안장이 이 눈먼 나귀 편에서 소멸할지 누가 알겠는가?’라는 말을 마친 뒤 단정한 자세로 입적하였다.”

(『臨濟語錄』 大47 p.506c3. 師臨遷化時, 據坐云, ‘吾滅後, 不得滅却吾正法眼藏.’ 三聖出云, ‘爭敢滅却和尙正法眼藏?’ 師云, ‘已後有人問爾, 向他道什??’ 三聖便喝. 師云, ‘誰知吾正法眼藏, 向這?驢邊滅却?’ 言訖,端然示寂.)
33) 진실한 가르침의 수단이 사라졌다는 말.

 

 

개암붕의 송

 

비 내리기 전 천둥소리 사람을 몹시 놀라게 하고,
흑풍34)에 먼지 휩쓸린 게 몇 번이던가?
해오라기가 안개와 구름을 뚫고 올라간 다음,
우두커니 푸른 하늘의 둥근 태양 바라보네.

 

介庵朋頌,

“ 未雨先雷驚殺人,

黑風幾度卷埃塵?

鷺?衝斷煙雲後,

?看靑天大日輪.”

 

34) 黑風. 바람에 모래나 먼지가 섞여서 햇빛을 가린 채 맹렬히 부는 회오리바람.

 

 

밀암함걸(密庵咸傑)의 송

 

일돈방35)에 한 집안 모조리 사라졌거늘,

양돈방에 다시 자손까지 연루시켰도다.
은산과 철벽36)을 모두 뚫어버리니,
만 리 하늘에 구름 없어 우주가 분명하다.

 

密庵傑頌,

“一頓渾家盡滅門,

更加兩頓累兒孫.

銀山鐵壁俱穿透,

萬里无雲宇宙分.”

 

35) 一頓棒. 임제가 황벽에게 불법의 대의를 물었다가 세 차례 맞은 것이 삼돈방인 데, 그것을 둘로 나누어 읊었다. 주석12) 참조.

36) 은산철벽(銀山鐵壁).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산과 무쇠로 가로막힌 벽을 말한다.이 은산을 마주하고 어떤 장비도 없이 올라가야 하고, 철벽 앞에서 맨몸으로 뚫고 나아가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언어와 사고 등 모든 수단이 박탈되어 해결할 길이 전혀 없는 극한의 경계를 비유한다.

 

 

무진거사의 송

 

임제가 삼하37)를 보내는 동안에,
황벽의 선을 참구하지 않았는데,
찾아가 묻고서 예순 대를 맞자,
손발 둘 곳 몰라 까마득했다네.
노파심 간절했음을 문득 깨닫자,
바꾸어 옆구리를 쥐어박았으니,
아무도 이 뜻을 모르고,
임제 문하는 삼현을 설한다고 하네.38)

 

無盡居士頌,

“ 林際度三夏,

不?黃蘗禪,

上來六十棒,

手脚遂茫然.

忽悟婆心切,

飜行肋下拳,

無人知此意,

林下說三玄.”

 

37) 三夏. 삼 년 또는 세 번의 하안거(夏安居).
38) 보통 임제선의 핵심을 삼현·삼요 등이라 말하지만, 황벽으로부터 60방을 맞고 까마득해졌다가 그 뒤에 대우의 옆구리에 고스란히 전한 소식이야말로 임제선의 본령이라는 뜻이다.

 

 

열재거사의 송39)

 

눈 속에 핀 한 송이 매화가,
봄이 왔다고 곧바로 알리네.
술 한 잔 마심이 어떠한가?
숲 가득 매화 피길 기다려야 하리.

 

悅齋居士頌,

“一枝雪中梅,

便知春到來.

如何一盃酒?

須待滿林開.”

 

39) 세상 가득 눈이 내려도 봄의 전령은 땅 속에서 미동을 시작한다. 매화 한 송이가 그 조짐을 눈 속에서 알린다. 임제가 황벽에게 삼돈방을 맞고 어리둥절했을 때의 소식이 그것이다. 깨달음의 씨앗은 그때의 은산철벽에 이미 뿌려진 것이며, 대우를 만났을 때 맞이한 봄에 우연히 매화가 만발한 것은 아니다.

 

 

위산영우(?山靈祐)와 앙산혜적(仰山慧寂)의 문답

 

위산이 이 공안을 제기하고 앙산에게 물었다.

“임제는 대우의 힘을 입었는가, 황벽의 힘을 입었는가?”

앙산이 말했다. “호랑이의 수염을 뽑았을 뿐만 아니라 호랑이의 머리에 앉을 줄도 알았습니다.”

 

?山擧問仰山,“ 臨濟得大愚力黃蘗力?”

仰山云,“ 非但?虎鬚, 亦解坐虎頭.”

 

[설화]

 

대우의 힘은 호랑이의 머리이고, 황벽의 힘은 호랑이의 수염이다.

?仰問答:大愚力是虎頭;黃蘗力是虎鬚也.

 

 

 

향산온량(香山蘊良)의 수대40)

 

방장실에서 수대하며 어떤 학인에게 물었다. “황벽이 임제를 세 차례 때렸을 때 임제는 곧장 깨달았는데, 여기 와 있는 지주(知州), 지현(知縣)41)들은 매일 밤마다 오면서도 어째서 깨닫지 못하는가?”

학인이 아무 대꾸도 없자 대신 말했다. “이런 천한 놈42)에게 조금도 배워서는 안 된다.”

다시 말했다. “깨닫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香山良, 室中垂代, 問僧,“ 黃蘗打林際三頓棒, 林際便悟去, 而今知州知縣, 每日打到夜, 因什?不悟?”

無對, 代云, “不可?學這?兒.”

又云,“ 莫道不悟.” ?

 

[설화]

여기 와 있는 지주, 지현들은 매일 밤마다 오면서도 어째서 깨닫지 못하는가:눈앞에서 60대를 때린 것과 같다.
이런 천한 놈에게 조금도 배워서는 안 된다:임제가 어떤 점에서 깨달은 것인가를 물은 것이다.
깨닫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라:어떤 점에서 깨닫지 못한 것인가를 물은 것이다.

 

香山:而今知州知縣云云者, 現成六十棒也.

不可?學云云者, 什?處是悟處.

又云莫道不悟者, 什?是不悟.

 

40) 垂代. 일정한 공안을 일러주어[垂語] 그 관건에 대하여 묻고서 대신 대답하는[代語] 설법 형식이다.
41) 지주와 지현은 각각 주와 현을 다스리는 지방관직이다.
42) 시아(?兒). 임제를 가리킨다. 보화(普化)가 임제를 역설적으로 칭찬한 말이다.
“하양은 신부같이 남의 말만 잘 듣는 선이요, 목탑은 친절하게 말로 풀어놓는 노파선인데, 천한 임제에게 도리어 바른 눈 하나[一隻眼]가 달렸구나.”(『臨濟語錄』 大47 p.503b14. 河陽新婦子, 木?老婆禪, 臨濟小?兒, ?具一隻眼.)

 

 

오조법연(五祖法演)의 상당

 

백운수단(白雲守端)의 ‘한 방의 주먹으로 ~ 풍류 일으키노라’라는 송을 제기하고 말했다.

“대중들이여! 만약 나의 문하로 왔다면 여러 사람들에게 주먹을 빌려야 했을 것이다.”

 

白雲演, 上堂, 擧白雲端頌,‘ 一拳, 至也風流’ 師曰,

“ 大衆! 若到白雲門下, 須要衆人助拳.”

 

[설화]
대우가 그렇게 말한 것이 주먹으로 쓰러뜨리고 발로 뒤집는 것이라는 말이다.
기세가 등등한 때에 기세를 더하고:60대를 때린 것에 해당한다.
만약 나의 문하로 ~ 빌려야 했을 것이다:대우의 의중이 드러나도록 도와준 말이다.

 

白雲:大愚伊?道, 是拳倒?飜也.

有意氣時云云者, 還是六十棒也.

若到白雲門下云云者, 助大愚之意.

 

 

 

 

633칙 임제편할 臨濟便喝 1)

 

[본칙]

임제는 학인이 방장에 들어오는 것을 볼 때마다 할(喝)을 내질렀다.
臨濟, 凡見僧入門, 便喝.

 

 

[설화]

할에는 네 종류가 있다. 금강왕의 보검과 같은 할, 바닥에 웅크린 사자와 같은 할, 물고기를 유인하는 도구와 같은 할, 할로서의 작용을 하지 않는 할이 그것이다.2)

‘학인이 방장에 들어오는 것을 볼 때마다 내지른 할’ 도 이 네 종류의 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때는 금강왕의 보검과 같이 활용하고,3) 어떤 때는 바닥에 웅크린 사자와 같이 활용하며,4) 어떤 때는 물고기를 유인하는 도구와 같이 활용한다.4)5) 비록 이렇다고는 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할이 할로서의 작용을 하지 않는 할6)이다. 또한 세 가지 할 이외에 별도로 할로서의 작용을 하지 않는 하나의 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은 “사할은 모두 근기에 따라 차별되게 시설되지만, 위음왕불7) 저편에 하나의 할이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것이 할로서의 작용을 하지 않는 하나의 할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허황되고 실제와 먼 이치를 추구한 결과 본래의 뜻을 얻지 못한 것이다. 대혜종고(大慧宗?)는 “덕산은 방장에 들어오자마자 방을 휘둘렀고 임제는 방장에 들어오자마자 할을 내질렀는데, 제방의 선사들은 이를 두고 ‘정면에서 들어 보이고, 가장 빠른 길로 전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를 ‘무엇보다 진흙탕으로 달려 들어가 물까지 뒤집어쓰는 방법이다’8)라고 말한다.

설령 하나의 방과 하나의 할에서 온몸으로 본분을 짊어졌다 하더라도 장부답지 못한 사람이다”9)라고 하였다. 대혜의 이 말은 중근기를 위한 발언이며 대혜의 근본적인 뜻은 아니다.

 

喝有四種, 金剛王寶劒, 踞地師子, 探竿影草, 一喝不作一喝用也.

見僧入門便喝者, 不過此四種. 有時, 用得金剛王寶劒;有時, 用得踞地師子;有時, 用得探竿影草. 雖然如是, 一一是一喝不作一喝用也. 又非三喝外, 別有一箇喝不作一喝用也.

或有道,“ 四喝, 皆是隨機施設, 須知有直在威音那畔地一喝. 此爲一喝不作一喝用.”

這般說話, ?於虛遠, 非得意者也. 大慧云,“ 德山入門便棒, 臨濟入門便喝, 諸方喚作, 劈面提持, 直截分付. 妙喜喚作, 第一等拖泥滯10)水.

直饒向一棒一喝下, 全身荷擔已,11) 是不丈夫漢也.” 大慧此言, 爲中根發, 非大慧本意也.

 

1) 본서 672則 「德山便棒」과 짝을 이룬다.
2) 『臨濟語錄』 大47 p.504a26에 나오며, 임제사할(臨濟四喝)이라 한다.
3) 모든 의미의 집착을 절단하는 수단으로서의 할. “금강보검이란 그 예리한 칼날과 대적하기 어려움을 말한다. 만일 발을 묶고 손을 동여맨 넝쿨이 길게 늘어져 분별에 얽매인 견해를 버리지 못하는 학인을 만날 경우 바로 그 자리에서 절단하여 더 이상 달라붙을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사유분별에 젖어 들면 이 칼에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五家宗旨纂要』 권상 卍114 p.513a13.

金剛寶劍者, 言其快利難當. 若遇學人, 纏脚縛手, 葛藤延蔓, 情見不忘, 便與當頭截斷, 不容粘搭. 若稍涉思惟, 未免喪身失命也.)

4) 사자의 포효에 모든 동물들이 달아나듯이 작은 근기와 하찮은 견해를 없애는 할.

“바닥에 웅크린 사자는 동굴에 살지도 않고, 보금자리에 머물지도 않는다. 위엄 있고 웅장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을 뿐 조금도 의지하는 것이 없다. 으르렁거리며 한번 포효하면 뭇 짐승들의 머리가 갈가리 찢어진다. 밀치고 들어갈 빈틈이 없고, 달아날 여지도 없다. 조금이라도 그 앞을 침범하면 이빨과 발톱에 걸려들 것이니 마치 코끼리가 물결을 가르면서 달리면 대적할 상대가 없는 것과 같다.”(위의 책 p.513b2. 踞地獅子者, 不居窟穴, 不立?臼. 威雄?踞, 毫無依倚. 一聲哮吼, ?獸腦裂. 無???處, 無?廻避處. 稍犯當頭, 便落牙爪, 如香象奔波, 無有當者.)
5) 종사가 학인을 점검하며 살피는 수단으로 쓰는 할.

“물고기를 유인하는 수단(탐간과 영초)이란 하나의 할 중에 두 가지 작용을 갖춘 것이다. 살핀다는 것은 학
인의 견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점검하는 것으로서 마치 막대기로 물의 깊이를 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재는 막대기인 탐간이 손안에 있다’고 한다. 곧 이 하나의 할은 헤아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본뜰 만한 것도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외에 별도로 갈 수 있는 길을 기대할 수도 없다. 이미 자취를 숨기고 종적을 감추어 거짓으로 도둑 행세를 하므로 ‘영초를 항상 몸에 지니고 있다’고 한다.”
(위의 책 p.513b10. 探竿影草者, 就一喝之中, 具有二用. 探則勘驗學人見地若何, 如以竿探水之深淺. 故曰, 探竿在手. 卽此一喝, 不容窺測, 無可摹擬, 不待別行一路. 已自隱跡迷踪, 欺瞞做賊. 故曰, 影草隨身.)
6) 일정한 형식의 할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형식의 할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그 어느 것에도 머물지 않는 할. “할로서의 작용을 하지 않는 할이라는 말은 천 가지만 가지로 변화하지만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금강왕의 보검이라 해도 되고, 바닥에 웅크린 사자라 해도 되며, 물고기를 유인하는 수단이라 해도 된다. 마치 신령한 용이 출몰하며 자신의 모습을 펼치고 거두는 것이 범상한 현상과 달라서 앞에서 맞이하려 해도 그 머리를 볼 수 없고, 뒤를 따르려 해도 그 꼬리를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부처와 조사일지라도 보기 어렵고, 귀신도 엿보지 못한다. 생각은 비록 하나의 할 속에 있지만 사실은 하나의 할을 벗어난 것이다.
이 네 가지 할 중에서 가장 깊고 미묘한 뜻을 가진 것이다. ‘어떤 때’라고 한 말을 잘 살펴야 한다. 이것은 매우 활발한 뜻이 있어 한결같이 이와 같은 작용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같다’고 한 말도 잘 살펴야 한다. 비슷하여 이와 같다고 한 것에 불과하지만 진실로 이와 같은 명목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뜻 속에서 자유롭게 운신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임제가 제시한 할의 작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위의 책 p.513b18. 一喝不作一喝用者, 千變萬化, 無有端倪. 喚作金剛寶劍亦得, 喚作踞地獅子亦得, 喚作探竿影草亦得. 如神龍出沒, 舒卷異常,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尾. 佛祖難窺, 鬼神莫?. 意雖在一喝之中, 而實出一喝之外. 此四喝中之最玄最妙者. 須看有時二字, 甚是活潑, 非一向如此用也. 又看如之一字, 不過彷彿如此, 非眞有如此名目也. 向者裏轉得身來, 方見臨濟老人用處.)

7) 威音王佛. Bh?s3 ma-garjitasvara-r?ja. 과거 장엄겁(莊嚴劫) 이전 공겁 때의 ‘최초의’ 부처님. 『法華經』 권6 「常不輕菩薩品」 참조. 선종에서는 위음왕불보다 이전의 시기[威音王佛已前] 또는 여기서와 같이 위음왕불 저편[威音那邊]이라는 말로써 어떤 조짐도 나타나기 이전의 경계를 나타낸다. 본래면목(本來面目) 또는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8) 타니대수(拖泥帶水). 임제의 할은 무엇보다 자세하게 베푸는 방편이었다는 뜻이다. 위에서 가장 빠른 길[直截]로 전했다는 뜻은 방편의 매개 없이 곧바로 본질을 보여주었다는 말이므로 대칭된다.
9) 『大慧語錄』 권20 「示無相居士」 大47 p.894b11의 인용이다.

10) ‘滯’는 ‘帶’의 오식이다.
11) 『大慧語錄』에 따르면, ‘已’ 앞에 ‘得’이 탈락되었고 ‘荷擔’은 ‘擔荷’의 도치이다.

 

 

대홍보은(大洪報恩)의 송

 

방장으로 들어오자마자 내지르는 할도,
이미 애절하게 많은 말을 해버린 것인데,
제멋대로 꾸며대는 무수한 선사들이,
또다시 남김없이 끌어 모아 말하는구나.12)

〈돌!〉13)

 

大洪恩頌,

“ 入門來便喝,

已是大??,

無限杜禪和,

更復論該括.”

〈?!〉

 

[설화]
잘못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大洪意, 漏逗不少.

 

12) 이런저런 논리와 이치를 빌려와 할에 대하여 설명하는 어리석음.
13) ?. 이것은 염송의 편집자가 주의를 촉구하기 위하여 삽입한 한마디의 할과 같은 소리이다. 아래 정자본(淨慈本)의 게송 끝에 달린 ‘돌’도 같은 기능이다.

 

 

정엄수수(淨嚴守遂)의 송

 

칼 한 번 휘둘러 전쟁을 평정했으나,
무엇에 의지해 주인과 손님 가려낼까?14)
높은 산 올라 일제히 공물 바쳤으나,
누가 성스럽고 현명한 임금 알아볼까?

 

淨嚴遂頌,

“ 一?定煙塵,

憑何辨主賓?

梯山齊入貢,

誰識聖明君?”

 

[설화]
다만 엿볼 수 없을 뿐이라는 뜻이다.
淨嚴:直是窺?不得.

 

14) 할을 하는 주체의 역할과 그 할로 질책받거나 점검받는 등의 역할을 분별하기 어렵다는 말.

“하나의 할에 손님과 주인이 나누어진다는 말은 하나의 할에 저절로 손님도 있고 주인도 있다는 뜻이다.”(『人天眼目』 권2 大48 p.311b24. 一喝分賓
主者, 一喝中, 自有賓有主也.)

 

 

정자본의 송

 

훌륭하구나, 임제의 할이여!
봄날 울리는 천둥15)과 같도다.
초목이 모두 자라나 번성하니,
교룡16)조차 이를 막지 못하네.
어긋나면 깨달음에서 미혹되고,
들어맞으면 죽음에서 살아나리.
자벌레와 못에 사는 개구리가,
어찌 바다 드넓은 줄 알리오!
〈돌!〉

 

淨慈本頌,

“ 偉哉臨濟喝!

狀似春雷發.

草木盡滋榮,

蛟龍難止?.

差之悟裏迷,

的也死中活.

尺?與池蛙,

豈知滄海闊!”
〈?!〉

 

[설화]
앞의 두 게송의 뜻을 아울렀다.
淨慈:兼前二意也.

 

15) 봄의 천둥은 땅을 흔들어 겨울잠 자는 생물을 깨우고 만물을 생동시킨다고 한다. 임제의 할이 어리석음에 떨어진 자들을 흔들어 깨달음을 성취하도록 한다는 비유로 쓰였다. 장령수탁(長靈守卓)의 게송에 이와 일치하는 구절이 있다.
“어떤 때의 할은 봄의 천둥이 울리듯 내지르니, 살아 있는 뱀이 활발한 용으로 변화하도록 몰아붙일 줄 아노라.”(『禪宗雜毒海』 권1 卍114 p.118b15. 有時一喝春雷動, 解逼生蛇化活龍.)
16) 蛟龍. 깊은 물에 살며 물과 비를 관장하는 전설상의 두 동물. ‘교’는 홍수를 일으키고, ‘용’은 구름과 비를 일으킨다고 한다.

 

 

대혜종고(大慧宗?)의 송

 

문 들어서자마자 내지른 할,
포착할 실마리 전혀 없거늘,
후손들을 끌어들여,
죽반기나 희롱하게 만드네.17)

徑山?頌,

“ 入門便喝,

全無巴鼻,

引得兒孫,

弄粥飯氣.”

 

17) 죽반기(粥飯氣)는 죽과 밥을 먹고 얻은 기운을 말하는데, 이는 진실을 깨우치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임제의 할에는 분별로 포착할 단서가 전혀 없음에도 이를 오해한 후손들이 육신의 남은 기운으로 허망하게 헤아린다는 뜻이다.

 

 

죽암사규(竹庵士珪)의 송

 

한 번 내지른 할로 사선천18)에 올랐으나,
임제는 원래 선의 세계 이해하지 못했다네.
아침 햇살 창 밖에서 들어오는 줄 다들 알면서,
밤의 달빛 섬돌 앞에 쏟아지는 줄은 모르네.

竹庵珪頌,

“一喝喝上四禪天,

臨濟元來不會禪.

盡道朝陽生戶外,

不知夜月落?前.”

 

18) 四禪天. Caturdhy?nabh?mi. 사선정(四禪定)을 닦아서 그 과보로 얻는 색계천(色界天).

 

 

개암붕의 송

 

한 번의 할에 산 무너지고 바닷물 마르니,19)

속박 벗은 온전한 기틀에 본받을 법도 사라졌네.
진흙 소가 하늘 밖으로 높이 솟구쳐 벗어나더니,
아름다운 명성 온 거리에 가득 퍼지게 되었도다.

 

介庵朋頌,

“一喝山崩海水枯,

全機脫略沒?模.

泥牛?出煙?外,

直得嘉聲滿道途.”

 

19) 견고하고 타성적인 관념의 세계를 제거한 것.

 

 

무진거사의 송

 

단단히 닫혀버린 동굴 얼어붙어 열리지 않는데,
허공에서 문득 외마디 천둥소리 크게 치자,
낱낱의 교룡은 구름과 안개를 끌고 가고,
지렁이는 제각각 흙과 티끌 파먹고 있네.

 

無盡居士頌,

“蟄戶幽?凍不開,

虛空忽震一聲雷.

蛟龍一一拏雲霧,

?蚓頭頭食土?.”

 

 

 

精選公案集정선공안집  발췌

 

 

 

출처 :

한국전통사상총서?불교편 07-2
精選公案集정선공안집?譯註역주
Gongan Collections
Collected Works of Korean Buddhism, vol. 7-2

 

http://www.international.ucla.edu/

UCLA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조계종, ‘한국전통사상총서’ 영역 완간

 

한글역본 13권 이어 영역본 13권도 마무리

‘다자간 번역시스템’ 특징…국내외 학계 배포

 

 

▲전통사상총서 사진.

 

 

조계종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는 최근 한국의 대표적인 고승인 원효, 의상, 지눌, 휴정 스님 등 문집을 선별해 영역한 ‘한국전통사상총서’ 13권을 출판했다.

한글역본 13권을 펴낸지 약 1년여 만으로 권1 원효, 권2 지눌, 권3 휴정, 권4 화엄1, 권5 화엄2, 권6 제교학, 권7-1 공안집, 권7-2 공안집, 권8 선어록, 권9 시선집, 권10 문화, 권11 계율, 권12 비문집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사업은 한국불교전서에 수록된 고승 문집 등 90여종을 선별해 한글 및 영역으로 각 13권씩 총 26권을 발간함으로써 한국불교의 전통사상을 국내외 학술문화계에 소개하기 위해 추진됐다.


지난 2006년 12월부터 지난 6월까지 정부로부터 30억 원의 지원을 받아 추진된 이번 사업에는 로버트 버스웰(미국 UCLA), 찰스 뮬러(일본 동경대), 리차드 맥브라이드(미국 하와이대), 존 조르겐슨(전 호주 그리피스대), 메튜 베게하우프트(미국 미시건대), 파트리큰 울만(금강대), 안준영(캐나다 토론토대), 박진영(미국 아메리칸대), 박영의(전 충남대 교수), 김정근(전 주휴스톤 총영사) 등이 영역자로 참여했으며, 일미 스님(미국 듀크대), 박영숙(영국 런던대) 교수 등이 영역 교열자로 참여했다.


간행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영역은 번역자 1~2명에 의존하는 기존의 번역 틀에서 벗어나 한글역자와 영역자간 교차검토라는 확인과 검증과정을 병행하는 ‘다자간 번역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전통 번역자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통해 전체적인 번역용어에 대한 통일성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한국전통사상총서는 국내의 한국학 및 불교학 전문가와 연구기관 대학도서관은 물론 해외 주요대학과 한국학 관련 연구소에 배포될 계획이다.


2012.08.21 / 법보신문

 

 

...

 

 

이 자료는 UCLA 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이 파일에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습니다

이 “한국전통사상총서” 간행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국내에는 책만 있고 문서파일은 전혀 없습니다.

인종차별이 심하십니다. 부처님들~~~

 

 

 

佛果?悟禪師碧巖錄, 趙州和?語錄, ?州臨濟慧照禪師語錄 ...

이 자료들을 국내 어느 곳에서도 전문을 볼 수가 없어 중국 싸이트를 이용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지, 자료공개를 안하는 한국부처님들이 국적이 다른지 모를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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