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瞑 想/ 無 心 書

[스크랩] 동국대 개교 100주년 만해스님 미공개 한시 - 십우도송( 十牛圖頌)

작성자長樂山人 이종인|작성시간17.05.07|조회수262 목록 댓글 0

 

금강선원  9월부터  일요법회교제  주제가 심우도(尋牛圖)로 정해진 이때 

만해 스님의 미공개 한시-   색다른 십우도송(十牛圖頌 ) 을 소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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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는 지난 5월 개교 100주년을 맞아 만해스님의 미공개 한시로 알려진 ‘심우시’를 공개했다.

그러나 시는 이미 〈한용운전집〉을 통해 일반에 공개된 적이 있어서 미공개 시는 아니었으나
만해스님의 한시가 담고있는 내용에 대해서 명쾌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의견들이 적지 않았다.
〈깨침의 미학〉 등을 저술한 시인이자 불교학자이며, 한시 번역의 대가로 꼽히는 이원섭 전 한국현대시인협회장에게 해석과 해설을 청탁했다. 이 회장은 두 달에 걸쳐 번역을 완료한 심우도송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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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해스님
“참선에선 좋은 생각도 망상”  -   옳은 일이면 그 길이 가시밭이라도 참고 가거라


만해(卍海,1879∼1944). 속명은 한용운이다. 3·1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던 스님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표현한 시인이기도 하다. 민족정신의 원형을 흐트리지 않고, 우리문화의 자부심을 확인하며 이를 계승시키고자 했다. 불교에 대한 만해스님의 뜨거운 애정을 1924년 3월 〈개벽〉 제45호에 실린 ‘내가 믿는 불교’를 통해 살펴본다.

“불교는 그 신앙에 있어서는 자신적이요, 사상에 있어서는 평등이요, 학설로 볼때는 물심을 포함하니 초절(招絶)한 유심론이요, 사업으로는 박애(博愛), 호제(互濟)인바, 이것은 확실히 현대와 미래의 시대를 어울러서 마땅한 최후의 무엇이 되기에 족하리라 봅니다. 나는 이것을 꼭 믿습니다”

사실 사바세계는 ‘쉬움’보다 ‘어려움’이 많은 세상이다. 대부분 고통을 회피하는게 상정인데, 만해스님은 오히려 고난에 당당히 맞설 것을 강조했다. 1932년 11월〈실생활〉 3권 11호에 게재된 ‘고난의 칼날에 서라’는 제목의 글이다.

“어떠한 일을 볼 때에 쉽고 어려운 것이나 성공하고 실패할 것은 먼저 본다느니보다, 그 일이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 볼 것이다. 아무리 성공할 일이라도 그 일이 근본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라 하면 일시 성공을 하였을 지라도 그것은 결국 파탄이 생기고 마는 법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에 돌아보아 조금도 부끄럽지 않을 옳은 일이라 하면 용감하게 그 일을 하여라. 그 길이 가시밭이라도 참고 가거라. 그 일이 칼날에 올라서는 일이라고 피하지 말아라”

만해스님은 한국불교의 전통적인 수행방법인 선에 대한 입장도 밝히고 있다. 최근 유사수행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기에 음미해볼 대목이다. 만해스님은“선(禪)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필요한 일”이라며 “선은 전인격의 범주가 되는 동시에 최고의 취미요, 지상의 예술이다”고 강조했다.

1932년 2월 1일 〈불교〉92호에 ‘선과 인생’이란 제목으로 실린 글의 일부이다. “… 선은 마음을 닦는 즉 정신수양의 대명사이다. 그러면 마음은 무슨 필요로 닦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닦느냐는 것이 순서의 문제일 것이다. … 선에 있어서도 화두를 드는 이외에는 무슨 방법이든지 방법을 쓰는 것은 금물이다.… 선을 잘 하리라는 생각이라든지 쉽게 깨달으리라는 생각이라든지 무릇 어떠한 좋은 생각이라도 일으키기만 하면 곧 망상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에 있어서는 나쁜 생각만을 망상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생각도 망상이다”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스님은 향리에서 한문을 배웠다. 1904년 설악산 백담사로 출가해 이듬해 연곡(蓮谷)스님에게 득도하고, 영제(泳濟)스님에게 계를 받았다. 1909년 표훈사 강사에 취임했고, 1919년 3·1운동에 민족대표33인으로 참여해 행동강령‘공약삼장’을 발표했다. 스님은 1944년 해방을 앞두고 심우장에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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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섭 시인 /   만해스님 십우도송 해설 


얼마 전, 불교신문으로부터 보내온 열 폭 짜리 병풍 글씨를 나는 한참이나 뜯어보았다. 폭마다 ‘심우(尋牛)’니 ‘견적(見跡)’이니 하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십우도의 하나구나 싶었고, 끝에 작은 글씨로 만해(卍海)라고 서명까지 있는 터이므로 스님에게는 내가 모르는 이런 작품까지 있었던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님의 필적 중에는 알아보기 어려운 것 몇 개가 있어서 애태우는 중에, 이 게송의 번역이 〈한용운전집〉에 나와 있다고 알려 주는 고마운 분이 있어 찾아보았더니, 글쎄 그것은 바로 내가 옮긴 글이었다. 서른 몇 해나 더 지났음을 들어 변명할 처지도 못되지만, 그런대로 얻은 것도 있었다. 그것은 내가 쓰고도 까마득 잊고 지내던 스님의 ‘심우장설(尋牛莊說)’이라는 글을 다시 읽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심우장’이란 1933년 친지의 도움으로 성북동 산마루턱에 축조한 자택에 스님 스스로 써 붙인 당호(堂號)이지만, 이 글은 그 이름에 등장하는 소(牛)를 문제 삼아, 소가 경전과 선사들에 의해 어떤 뜻으로 쓰여 오고, 다시 이것이 어떤 견성(見性)에 이르는 수행의 과정을 비유하는 그림을 곁들인 청거호승(淸居晧昇)의 목우도송(牧牛圖頌)을 거쳐 확암사원(廓庵師遠)의 십우도송(十牛圖頌)으로 전개돼 왔음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는 자신도 십우도송을 지었노라 했는데, 정확한 이름은 차확암십우도송(次廓庵十牛圖頌, 확암의 십우도송에 차운함)이다. 차(次)는 차운(次韻)이니, 타인이 운으로 쓴 글자. 이를테면 첫 수(首)에서 확암이 사용한 심(尋).심(深).음(吟)을 자기도 써서 게송을 지음을 이른다. 중국의 발음으로는 이 셋이 다 중성(中聲).종성(終聲)을 같이하는 글자들이다.

그런데 이 ‘심우당설’에는 스님의 게송에 앞서 확암의 십우도송 전편이 나와 있어서 대조가 가능해 편리하다. 다만 확암이 게송마다 앞에 붙였던 짧은 머리말 같은 글은 생략되어 유감이다. 이것도 필요할 때에는 참고해 가면서 스님의 게송을 읽어보기로 하겠다.

 

1, 2--------------------------------------
   
“이 소 본디 찾을 데가 없음은…”
 

1. 심우(尋牛 : 소를 찾아서)

 

이 소 본디 찾을 데가 없음은 아니련만,
온 산을 자욱히 뒤덮은 구름!
깎아지른 저 벼랑 어찌 오르랴?
호랑이와 용 울음에 몸이 떨린다.

차물원비무처심(此物元非無處尋)
산중단각백운심(山中但覺白雲深)
절학단애반부득(絶壑斷崖攀不得)
풍생호소부용음(風生虎嘯復龍)


이것은 처음으로 보리심을 일으켜 수행에 착수한 단계에서 겪는 정경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소는 우리가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자성(自性).불성(佛性)이어서 깨달음 자체의 비유라 하려니와, 지금은 어리석게도 그것이 자기에게는 없는 줄만 여긴 나머지 찾아 나선 꼴이 된다. 확암이 제 게송의 머리말에서 ‘지금껏 잃어버린 적이 없거니, 어찌 찾아 나선다 함인가’라고 함이 이를 이른 것이요, 다시 이에 동조하고 나선 것이 ‘이 소 본디 찾을 데가 없음은 아니련만’이라는 만해스님의 말씀이다. 이는 비유에 깔린 속내를 비유 서두에서 드러내 보인 것이 된다.

그리고 구름이 산을 뒤덮어 길을 잃고, 벼랑이 앞을 막는데다가 호랑이와 용의 위협까지 겹친다 한 것도, 마치 황벽선사 앞에 섰을 때에 무엇을 물어야 할지도 모를 만큼 궁지에 몰려 있던 임제선사를 보는 것 같기도 하여, 이제 겨우 소를 찾아 나선 초심자에게는 좀 과중한 듯 느껴지기도 한다. 소를 찾아 이리저리 다니며 고생 고생하는 것으로 처리한 확암과는 사뭇 다르다. 십우도송의 형식을 답습하면서 대번에 핵심에 다가서려는 충동이 스님에게는 있으셨던가.


보리심 일으켜 수행에 착수
본래 갖춘 自性 ‘소’에 비유
만해 개성 드러나는 첫구절


‘차물(此物)’은 소를 가리키고 ‘절학단애(絶壑斷崖)’는 험준한 골과 벼랑의 뜻이지만, 번역에서 골은 생략했으니 벼랑이 있으면 골은 으레 있게 된다고 본 것이다. 반(攀)은 부여잡고 기어오르는 것. 음()은 음(吟)과 동일한 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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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견적(見跡 : 소의 발자취)

 

여운 삵괭이니 득실대는 산,
머리 돌려 또 묻기를 ‘이것은 뭐꼬?’
풀 헤치고 문득 보니 꼭 밝은 자취!
다른 길 가 다시 찾을 것이 있으랴.

호리만산범기다(狐狸滿山凡幾多)
회두우문시심마(回頭又問是甚)
홀간피초답화적(忽看披草踏花跡)
별경하수갱멱타(別徑何須更覓他)


선의 수행이 차츰 효과를 거둬서, 어렴풋하게나마 진실이 눈에 들어온 단계다. 한 발은 문 밖에 있고 다른 한 발은 문 안에 있는 듯한 어정쩡한 상태라고나 할까. 그런 탓인지 확암이 처음부터 발자취를 발견한 것에서 게송을 끌고 간 것과는 달리, 스님은 이를 뒤로 미룬 채 게송의 전반부를 소를 찾아 애태우는 상황으로 메우고 있다.

이리하여 여우 따위가 득실대는 산이 풀어야 할 과제로 떠오른다. 여우는 의심이 많은 동물이라 하여 의혹을 호의(狐疑)라고도 하는 터이나, 삵괭이도 그렇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 두 글자를 만들어야 하겠기에 곁들여진 것으로 보아도 될 듯하다. 그리고 범기다(凡幾多)는 ‘무릇 얼마냐’는 뜻을 지닌 의문형의 말이나, 여우와 삵괭이가 산에 득실댄다는 표현이 앞에 있는 바에는 무의미해지므로 번역에서는 삭제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득실댄다는 산(山)이라는 말이 지니는 뜻이다. 가령 한산(寒山)이라는 말이 산의 이름이자 거기에 살던 도인의 이름이기도 하여, 결국에는 절대적 진실인 도(道) 자체를 뜻하게 되는 전통이 선종에는 있다. 그렇다면 불성(佛性) 자체인 우리의 청정한 마음을 여우 따위로 비유된 의혹이 가득 메우고 있음이 될 것이다.


어렴풋이 진실 찾아낸 단계
확암은 발자취 쫓는데 치중
만해는 애태우는 과정 전달


그리하여 이에 대한 수행자의 대음이 다음 구(句)일 텐데, ‘머리 돌려 또 묻기를 이것은 뭐꼬?’라니, 이 어색스럽게만 보이는 표현은 무슨 뜻을 지니는가. 시심마(是甚)는 시습마(是什)로도 표현되는 그것이어서 의문을 나타내는 말이니, 의혹이 일 때마다 그 쪽으로 ‘머리를 돌려’ 이건 또 뭔가 하고 의혹을 더욱 키워감을 이르리라.

그리하여 이 같은 암중모색 중에서 마침내 소의 발자취를 찾기에 이른 사연이 후반부에 등장하게 되는데, 여기서도 몇 개의 어휘의 검토가 그 ‘발자취’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라 여겨진다.

먼저 풀을 헤치고 보았다는 ‘풀헤치고’란 무엇인가. 그 의문 피초(披草)는 선의 어록에 많이 나오는 발초첨풍(撥草瞻風)이라 할 때의 발초(潑草)와 동일한 말이다. 그리하여 의혹이라는 이름의 풀섶을 헤치고 선 특유의 가풍(家風)에 접함이 첨풍(瞻風)이었다면, 이 게송에서는 견적(見跡, 자취를 보는 일)이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자취가 왜 ‘꽃 밟는 자취’이어야 했느냐 하면, 깨달음이니 진여니 본래면목이니 하는 이름으로도 불리우는 소였기 때문이다. 더없이 소중한 터이므로, 룸비니에서 처음으로 태어나신 부처님이 걸음을 옮기시자 땅에서 황금으로 이루어진 연꽃이 솟아나 그 발을 받쳐 드렸다 하는 따위의 대접은 받아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로써 수행의 나아갈 방향이 확립되었으나 더할 나위 없는 경사려니와, 여기서 문제삼고 싶은 것은 확암의 게송과의 관계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확암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취를 발견하는 것으로 일관해 나갔다. 바꾸어 말하면 소의 비유 속에 담긴 속뜻을 노출시키지 않은 채 비유를 통해 문학성을 살리는 것에 치중했다. 그러므로 읽어서 무리가 없어 순순히 받아들여진다.

이에 비해 스님은 처음의 심우(尋牛)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속내를 곧잘 드러내보였다. 시습마(是什)는 화두 중에서도 유명한 것이어서 의혹을 그 궁극에까지 밀고 가는 데에도 쓰이고, 선사 쪽에서는 선객의 의혹을 깡그리 격파할 때에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여기서도 의혹을 끝까지 밀어붙이되 다시 활로를 뚫는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 ‘머리 돌려’라 한 것처럼도 느껴진다. 그러나 또(又)라는 말이 있기에 의혹에 다시 끌려 다니는 쪽으로 처리했는 바, 아무래도 궁금한 점이 남는다.


어쨌거나 비유를 깨는 이질적 요소가 이리 끼어드는 것은, 시로서 볼 때에는 이질감을 준다. 그러나 게송의 가치를 문학성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거기에 담긴 불법(佛法)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는 신중히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끝으로 홀간피초답화적(忽看披草踏花跡)을 ‘풀 헤치고 문득 보니/ 꽃 밟은 자취!’로 옮긴 데 대한 내 나름의 소견인데, 직역하면 ‘문득 보니’가 앞에 와야 한다. 예전에 나도 그렇게 표현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소 쪽에서 풀을 헤치고 가며 자취를 남긴 것이 된다. 그러나 풀을 헤친 것은 어디까지 수행하는 사람인 터이나, 둘째 글자에 평성(平聲)을 쓸 필요가 있어 순서가 바뀌게 됐을 것이다.


3, 4----------------------------------
   
“소 제어할 고삐는 내 마음에”


3. 견우(見牛 : 눈으로 본 소)

 

이젠 꼭 소리를 들어야 하랴.
푸른 풀밭 딛고 선 희고 흰 모습!
한 걸음도 안 옮긴 채 그를 보노니,
저 뿔 원래 오늘에 됨은 아닐세.

지금하필갱문성(至今何必更聞聲)
특백백혜답청청(白白兮踏靑靑)
불리일보입간피(不離一步立看彼)
모각원비도차성(毛角元非到此成)

 

발자취를 발견하고 탐색한 끝에 마침내 마음의 본체인 소를 찾아낸 단계다. 그런데 ‘이젠 꼭 소리를/ 들어야 하랴’라는 첫 구(句)는 무슨 뜻인가. 이는 확암이 게송에서 ‘가지에 앉아/ 꾀꼬리 울음 울고’라고 한 그 소리에 대응하여 이를 부정한 발언이다.

선종에는 소리를 들은 것이 기연이 되어 깨달음을 성취한 예가 가끔 있어 왔다. 향엄(香嚴)이 쓰레기를 버리다가 돌멩이가 굴러가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서슬에 크게 깨달았다 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절차도 밟을 필요가 없다 함이니, 그 까닭은 ‘푸른 풀밭 딛고 선/ 희고 흰 모습!’이라는 둘째 구(句)에 의해 밝혀진다. 분명히 그렇게나 애타게 찾던 소가 이제 눈앞에 서 있는 바에야 꾀꼬리 울음소리 앞에 따위에 귀를 기울여 무엇하겠는가.

여기서도 두 분의 차별이 드러난다. 먼저 꾀꼬리의 울음소리를 노래했던 확암은 둘째 구에 오자 물가에 휘늘어진 버들을 등장시켰다. 이것만으로는 마치 박목월의 시라도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우리가 보고 듣는 온갖 일상사 하나하나에 우리들의 마음의 본체인 소는 늘 나타나 있노라고 후반부에서 내려질 결론은 여기서는 완전히 숨겨져 있다.

‘소리’를 언급한 확암의 첫 구절

만해는 처음부터 소를 내세워

매개 절차 배제하고 단도직입

이에 비해 만해스님은 처음부터 소를 전면에 내세웠다. 듣느니 보느니 하는 따위의 매개(媒介)는 온통 배제되었다. 그러고는 이 소에 대한 보충설명이 게송의 후반부에 나타나서, 그것은 한 걸음도 안 옮긴 채 발견된 소였으며, 그 소의 뿔은 본디 오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였다.

그러면 ‘한 걸음도 안 옮긴 채’란 무엇인가. 더 원문에 충실하자면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채’가 되고, 걸음의 원문인 보(步)도 옛날의 척도(尺度)인 육척(六尺) 내지는 육척사촌(六尺四寸)의 뜻으로 보아야 하겠으나, 대의(大意)에 있어서는 별반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므로 그대로 두고 생각해 보자.

무릇 어떤 목표가 설정되어 있다 함은, 그 목표와 자기 사이에 거리가 생겨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 거리를 줄여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뒤따른다. 이를 불교 쪽에서 보면 신심을 일으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모든 정진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수행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을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소의 정체가 나의 원래의 마음, 곧 나의 불성이라 할 때, 이는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절대(絶對) 바로 그것임을 뜻한다. 그렇다면 스스로 충족(充足)할대로 충족돼 있는 터에 무엇을 구한단 말인가. 무시이래(無始以來) 있어 온 마음의 그 자리에 그저 있으면 된다. 물리적 공간에서는 거기가 어디이든 간에,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하는 지금의 이 자리가 바로 연화좌(蓮華坐)인 것이다. 입간피(立看彼)의 입(立)은 ‘곧’, ‘바로’의 뜻을 지닌 글자여서, 구해지는 목표와 구하는 사람과의 상즉관계(相卽關係)를 나타내고 있다 하겠다.

그리고 이쯤 되면 ‘저 뿔 원래 오늘에/ 됨을 아닐세’라는 마지막 구는 설명을 붙일 것도 없는 일이겠다. 다만 모각(毛角)은 털과 뿔로도 이해할 수 있겠으나, 지금은 확암의 두각(頭角)이라는 표현과 같은 뜻으로 쓴 것이니, 뿔로 소의 위엄을 대표케 한 것이겠다. 모(毛)에는 짐승의 뜻이 있다.

끝으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둘째 구의 첫 글자다. 이것은 전집에서는 불(拂)로 되어 있던 글자인데, 만해스님의 친필이 나타난 뒤로는 읍(揖)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두 글자로는 의미가 통하지 않는데다가 사진에 나타난 선생의 친필은 아무리 뜯어보아도 둘 중의 어느 것과도 비슷하게는 안 보인다.

그래서 출판사 명문당(明文堂)의 자전을 꺼내 재방 변()의 획수가 비슷한 글자를 모두 뒤져서, 선생의 필체와 비교적 가까워 보이는 것은 특() 뿐임을 알았다. 그러나 이는 친다, 때린다의 뜻이므로 이 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며칠 뒤에 별반 기대도 안하면서 소우변(牛)을 뒤적였더니 특()과 아주 닮은 특()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는 특(特)과 동일한 글자여서 황소를 가리키는 것임도 밝혀졌다.

그렇다면 안성맞춤이지만 재방변과 소우변의 엄연한 차이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선생의 병풍 글씨를 살피건대, 여러 번 나오는 득(得)이라는 글자를 모두 득()으로 쓰고 있다. 또 거(渠)의 삼수변()은 모두 이수변()이 되어 있다. 그리고 특히 내 눈을 끈 것은 다음의 득우(得牛)의 게송에 나오는 요(擾)의 글자를 살피자니, 재방변의 첫 획인 ‘一’의 처음이 약간 위로 나온 듯 하게 되어 있어서 소우변(牛) 같이도 보였다. 그렇다면 특()이 특()으로 쓰일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하나의 시론(試論)에 불과함을 일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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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득우(得牛 : 드디어 붙든 소)

 

보고도 의심하다 놓치고 말았는데,
어지러운 이 야성(野性)은 없애기 어렵기도.
그러나 그 고삐는 내가 쥐고 있었거니,
원래부터 떨어져 있은 것은 아니로세.

이견갱의부득거(已見更疑不得渠)
요요모심역난제(擾擾毛心亦難除)
돈각기비이재수(頓覺其已在手)
대사원래불리거(大似元來不離居)


자기 안에 갖추어져 있는 불성을 제 눈으로 본 것이 앞의 견우(見牛)였다면, 이것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체득하는 경지다. 그런데 두 분은 처음부터 시각차를 드러낸다. 확암스님은 ‘온갖 힘 기울여서/ 붙잡은 이 소!’라 하여, 문자 그대로 득우(得牛)의 상태에서 출발했다.

이와는 달리 만해스님은 그것을 보기는 하면서도 잡지는 못했다는 말로 게송을 시작했다. 그러나 둘째 구에 와서는 소의 야성은 참으로 제어하기 어렵노라고 똑같은 한탄을 하고들 있다.

생각컨대 동일한 야성이면서도 득우(得牛)에 따르는 야성과 득우(得牛) 이전의 그것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게송의 후반부를 보자면 상당히 다른 양상이 빚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득우(得牛)에서 출발한 쪽에서는 마음의 공(空)함을 보는 깨달음과 망상이 공존(共存)한다 했으니, 소에게 야성이 남아 있는 바에는 당연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러면 득우(得牛) 이전에서 시작된 만해스님의 게송에서는 어떻게 되었는가. 득우 이전인 만큼 깨달음에 망상이 수반되는 그런 경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 대신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의혹이니 야성이니 하는 것이 큰 폭발을 일으킨다. 그러고는 거기에 새로운 경지가 열린다. 그 고삐는 본디 내가 쥐고 있었던 것이라고 하는.

得牛와 그 이전…해석 출발 달라

의혹과 야성의 폭발 노래한 만해

기존 틀 깨고서 적극 禪旨 선양

그러면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도대체 눈앞에서 날뛰는 소는 무엇이며, 이를 잡겠다는 생각은 무엇인가. 다 마음이라는 거울에 어른대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날뛰는 저 소가 내 마음이었듯 이를 제어할 고삐 또한 내 마음 말고 어디서 찾아야 하겠는가. 여기서도 드러나는 것은 십우도(十牛圖)라는 기존의 틀을 거미줄이라도 되듯 가볍게 깨버리고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날아올라, 구경(究竟)의 선지(禪旨)를 선양(宣揚)하고 있는 선생의 모습이다.

시를 만들기 위해 번역에서 제외됐던 돈각(頓覺)의 풍광(風光)이다. 이쯤에서 입을 닫고, 어구 주석이나 붙여 두자. 거(渠)는 그 피(彼)니, 소를 말한 것이다. 요요(擾擾)는 어지러운 모양이요, 모심(毛心)은 짐승의 마음이므로 불성을 오염시키고 있는 번뇌쯤으로 보면 되겠다.


5, 6----------------------------------
   
“본자리로 가는 데 채찍 필요 있나”


5. 목우(牧牛 : 소를 다스리기)


기르기 길들이기 공을 들임은
행여 옛버릇 생겨 달아나 날뛸세라.
잠시라도 굴레와 고삐 기대려 말고,
알지니 만사가 이젠 사람의 몫인 줄을!

사양순치양가신(飼養馴致兩加身)
공피야성일입진(恐彼野性逸入塵)
편시부대기여반(片時不待羈與絆)
만사어금필수인(萬事於今必須人)


 
소를 붙든 데 이어 이를 주인의 뜻을 잘 따르도록 조련시켜야 하겠는데, 선생은 이것을 기르기(飼養)와 길들이기(馴致)의 둘로 보았다.

기르기라 하면 먹이의 제공이 그 내용이 되려니와, 불교에는 이에 대한 그 나름의 반성이 있어 왔다.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사식(四食)이라는 분류니, 우리가 먹는 따위의 음식은 단식(團食)이라는 항목에 묶고 나서, 감각.사고.식별작용까지도 촉식(觸食).사식(思食).식식(識食)이라 이름 붙여 각각 먹이의 하나로 여겼음이 그것이다. 또 하나는 정념(正念)을 지녀감을 염식(念食)이라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기뻐함을 법희식(法喜食), 선정을 닦아 마음에 즐거움이 생김을 선열식(禪悅食), 서원에 의해 정진함을 원식(願食),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재(自在)함을 얻는 것을 해탈식(解脫食)이라 일컫는 오식(五食)의 설(說)이다.

이 둘을 놓고 볼 때, 사식(四食)은 먹이의 외연(外延)을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으로까지 확대한 점에서 불교 특유의 존재론(存在論)이 반영된 것처럼 느껴진다. 이에 비해 오식(五食)은 온 수행 과정을 마름의 양식으로 본 것이므로 불법(佛法)의 실천론(實踐論)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사식(四食)이건 오식(五食)이건 간에 진작부터 기르기의 범위를 벗어나 길들이기의 영역을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기르기란 처음부터 소의 야성을 제거하는 길들이기였던 것이니, 이것 아닌 불성으로의 성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굴레와 고삐로 기르고 길들여도

절대 경지의 본성 찾기 ‘역부족’

함이 없는 無功用 수행이 절실


그러나 이것은 불교의 일부 교학(敎學)에서 말하는 기르기요 길들이기다. 선에서 내세우는 것은 더욱 신랄하고 가혹하다. 만일 사식(四食).오식(五食)이라도 들먹였다간 방(棒)이 날아오고 할(喝)이 터진다. 말을 못하게 하고, 생각하지도 말며, 구하지도 말라면서 문을 닫아버림이 다반사다. 왜냐하면, 분별(分別)로선 분별(分別)을 그치게 할 수 없는 까닭이다. 비록 소를 일단 잡기는 했다고 한대도 이것으로는 벌판을 이리저리 달리면서 때로는 풀도 뜯고 때로는 뒹굴기도 하고 싶은 충동을 잠재울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굴레와 고삐로 비유된 인위적인 노력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노력은 그것이 아무리 진지한 것이라 해도, 도리어 깨달음에의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불성이니 깨달음이니 하고 부르는 것은 절대적 경지다. 절대란 온갖 상대성이 끊어짐을 뜻하는 터에, 그것을 목표로 하여 접근을 시도하는 일이 어찌 허용되겠는가. 그러므로 거기에 이르는 길이 있다면 인위적 노력이 사라진 무위(無爲)의 접근이 되어야 한다. 무엇도 함이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수행이어야 하니, 이것이 화엄경 제칠지에 보이는 무공용(無功用)의 수행이다. 그러므로 이런 경지에 이르면 소 쪽에서 자기를 따라온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된다. 끝으로 낱말에 언급하자면 가신(加身)은 몸에 베푼다는 뜻, 일(逸)은 도망치는 것, 진(塵)은 번뇌의 세계, 편시(片時)는 잠시, 수(須)는 기다리는 것, 또는 필요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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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우귀가(騎牛歸家 : 소를 타고 집으로!)


채찍이라곤 그림자도 안 거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산천에야 안개 놀이 가린들 무슨 상관이랴.
해는 지는데 길게 뻗은 길가의 풀 모두 먹어치우니,
봄바람은 안 보여도 그 향기 풍겨와 이에 씹히네.

불황편영임귀가(不黃鞭影任歸家)
계산하방격연하(溪山何妨隔烟霞)
사일흘진장정초(斜日吃盡長程艸)
춘풍미견향입아(春風未見香入牙)


소가 조련될대로 조련됨으로써 심우(心牛)와 목자(牧者)가 하나로 지양된 경지다. 선생의 게송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듯 하므로, 이를 찬찬히 추적해 보자.

선생은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게 된 것에 대해 ‘채찍이라곤 그림자도 없건만’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는데, 그 원어 불황편영(不黃鞭影)의 불황(不黃)부터가 검토돼야 한다. 이는 전집(全集)에서는 불비(不費)로 되어 있던 낱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풍에 나타난 선생의 육필(肉筆)을 살피건대 분명한 불황(不黃)일 뿐 불비(不費)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황(黃)에는 창황(倉黃).창황(蒼黃)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어떤 돌발사태가 나타남으로써 다급해 하고 당황해 하는 뜻이 있고, 실제로 선생이 석왕사에서 영호(暎湖) 유운(乳雲) 두 스님을 만났을 때에 쓴 시에도 이 창황(蒼黃)이라는 말은 등장한다. 그러므로 비(費)냐 황(黃)이냐 하는 의혹은 사라진다.

이리하여 불황편영(不黃鞭影)은 ‘채찍의 그림자를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다급해져서’의 뜻쯤이 되려니와, ‘채찍의 그림자를 보고도’란 무엇을 말함인가. 이는 외도문불(外道問佛)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돼오는 다음같은 화두와 관련이 있다.

어느 날 한 외도(外道)가 부처님을 찾아와 물었다. ‘유언(有言)을 묻잡지도 않겠사오며, 무언(無言)을 묻잡지도 않겠나이다.’ 언어의 영역에서 깨달음을 구한다 할 때는 어떻게 되는가. 언어란 분별이요, 선택이다. 무엇이든 다른 것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면에서 파악하는 것이 언어가 갖는 기능이다. 그러므로 사물의 한쪽만이 보이고 전체는 도외시되는 결과를 빚는다.

손가락 하나를 바라본다 치자. 이때에는 손가락의 한쪽만이 보인다. 이리저리 손가락을 돌려본대도 마찬가지고 치켜올려 놓고 본대도 사정은 같다. 결국 우리는 자기의 손가락 하나조차도 한 부분만을 볼 뿐, 그 전체는 보지 못한다는 말이 되고 만다. 이런 실정을 모른 채 불법을 구한다면, 어찌되겠는가. 분별이 다시 분별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어 영영 거기에서 벗어나는 날은 안 오고 말 것이다.


소와 목자가 혼연일체 된 경지

무성한 풀을 소가 먹어 치우듯

망념 끊고 깨달음 이르는 비유


그렇다고 무언(無言) 편에 설 것인가. 이것도 무리다. 의식(意識)의 끊임없는 흐름이 우리의 실존이라 할 때, 그 흐름을 정지시킨다는 것은 처음부터 될 일이 아니다. 먹었으면 소화 작용에서 생긴 찌꺼기는 배설되어야 하며, 운동에서 발생한 열은 땀이 되어 체외로 새어나와야 한다. 만약 분별.사고를 정지한다면 고독이라는 이름의 지옥에 떨어져 미이라가 되고 말 것이다.

이리하여 이 외도는 유언(有言)의 지옥에다가 무언(無言)의 지옥이 겹쳐지는 악성의 의혹에 떨어져 있었고, 그리하여 둘을 다 ‘묻잡지도 못하겠사오며’라 하여 그 처참함 전신(全身)을 내던지고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부처님의 반응은 잠시 지속된 침묵 뿐이셨다. 그런데도 외도는 부처님을 찬탄해 마지않았다.

‘세존께서는 대자대비하사와 제 미혹의 구름을 여사 저로 하여금 깨달음에 들도록 하여 주셨나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잠시의 침묵이 어떻게 이런 성과를 거두셨느냐는 의문도 생김직 하다. 이 ‘잠시의 침묵’의 원어 양구(良久)는 선사들도 가끔 사용하는 대응이기도 하지만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서 원오선사가 ‘세존양구(世尊良久)’ 밑에 ‘세존을 비방치 말지니, 그 음성이 우뢰같으시니라’고 하는 착어를 달고 있는 것으로도 짐작되듯, 부처님의 전신(全身)을 나투신 법우(法雨)였던 것이다. 결코 외도가 말한 무언(無言)과 동일시되어선 안 된다.

그리고 외도가 떠나간 뒤에 아난과 부처님 사이에 문답이 이어진다.

“저 외도는 무엇을 얻는 바 있기에 깨달음에 들었다고 한 것이옵니까”

“세간의 양마(良馬)가 채찍의 그림자를 본 것만으로 달려감과 같으니라.”

이리하여 ‘채찍의 그림자’라는 말의 출처가 밝혀졌음이 되는데, 외도가 이것을 본 것만으로 달린 말 같다 하여 부처님께서 긍정하신 것과는 달리, 선생은 채찍의 그림자가 귀가(歸家)의 계기로서 개입(介入)되는 것마저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 표명은 대각회련(大覺懷璉)도 이미 한 바 있었고, 또 둘째 구에서 안개와 놀이 끼어도 관계없다한 것 또한 설두선사의 ‘미혹의 구름 걷친다’는 표현과 관련이 있겠으나, 지금은 지면의 여유가 없으므로 길을 서두르기로 하자. 요컨대 마음이 마음의 본자리로 돌아가는 길이므로 짐짓 채찍의 그림자마저 배제해 자주성을 보인 것이겠고, 그 곳이 청정한 경지라 해도 더러움을 부정한 청정이 아니라 청탁(淸濁)이 불이(不二)인 차원의 청정임을 보이기 위해 설사 안개와 놀이 고향 산천에 낀다고 해도 돌리어 그곳을 장엄(莊嚴 : 꾸밈)이 있음이 된다고 본 것이겠다.

이같은 전반부에 이어, 후반의 게송에서도 심상치만은 않은 표현이 나타난다.

‘해는 지는데 길게 뻗은 길가의 풀 모두 먹어치우니.’

이는 도대체 무엇을 이른 것인가. 왜 이런 말이 여기에 나와야 하는 지 알 수 없어서 애를 먹었다. 그리하여 몇 시간을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한 화두에 생각이 미치면서 나는 크게 웃었다. 그것은 방거사(龐居士)와 마조대사 사이에서 벌어진 다음같은 문답이어서, 알려질대로 알려진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만법(萬法)과 짝하지 않는 것은 어떤 사람입니까.’

‘네가 한 입으로 서강(西江)의 물을 다 들여마시기를 기다렸다가 그때 가서 너에게 일러 주리라’

무엇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인가. ‘서강(西江)의 물을 다 들여마신다’는 말의 원문 흡진서강수(吸盡西江水)와 ‘길게 뻗은 길가의 풀 모두 먹어치운다’의 원문 흘진장정초(吃盡長程草)는 빼다 박은 듯이 닮았다. 하나는 사람이 지닌 무시(無始) 이래의 번뇌를 물줄기에 비유한 것이므로 다 들여 마시라 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소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처지라 길게 뻗은 길가의 풀을 다 먹어치우라 한 것뿐이니, 동일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 셋째 구(句)가 마조대사의 말씀을 자기 나름으로 번안한 것임이 드러나기는 하나, 이것이 특별히 문제될 일은 아니다. 중국의 시는 전고(典故)의 인용을 표현에 무게를 주는 일이라 하여 존중하는 전통이 있는데다가, 선종에서는 무엇이나 끌어다가 쓰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타인의 시(詩)를 자기의 게송으로 내세우는 일까지 있다. 그러므로 도리어 선인(先人)의 말씀을 끌어다가 법재(法財)로 만들어서 자재히 사용한 점에서 선생의 역량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풀을 먹어치우는 이 비유를 망념(妄念)을 대번에 끊어버리는 일이라 본다면, ‘봄바람은 안 보여도/ 그 향기 풍겨와 이에 씹히네’라는 마지막 구는 망념(妄念)을 끊음으로써 도달한 깨달음의 경지일 것이다. [불교신문 2250호/ 8월2일자]

 

7, 8----------------------------------------------
   
"色도 空도 베어버린 반야의 칼날은 거침없어라”

 

7. 망우존인(忘牛存人 : 소는 잊어도 사람은 남고)

 

빠른 걸음 자처해도 물 건너고 산을 넘고 해야 하지만,

이곳 녹수청산(綠水靑山)은 한가하기만!

도림(桃林)의 들판이야 잊기는 잊었다 해도,

꿈은 아직 초당(草堂)의 작은 창가를 휘돌곤 하네.

 

자임일제수부산(自任逸蹄水復山)

녹수청산백일한(綠水靑山白日閒)

수연이망도림야(雖然已忘桃林野)

편몽유재소창간(片夢猶在小窓間)

 

애써 찾던 소마저 망각한 경지

잊었다 말하지만 여전히 기대

소는 잊어도 사람의 집착 남아


 

그러면 소는 있었으되 사람은 남아 있다는 이 경지란 어떤 것인가.

첫 구는 원문만 읽으면 표현이 어색한 듯도 하여 뜻을 잡기 어려운 데가 있지만 〈장자(莊子)〉 소요유편(逍遙遊篇)에 보이는 열자(列子) 이야기를 읽으면 의혹이 풀린다. 장자는 바람을 타고 공중을 날아다닐 수 있었다는 이 인물에 대해 다음 같은 비평을 가했다.

“그러나 이 열자라 해도, 발로 걸어야 하는 번잡함에서는 해방되었을망정, 바람을 필요로 하고 있는 바에는 충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무엇에 약간이라도 의지함이 있다면 완전한 도(道)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게송에 적용하면 앞의 기우귀가(騎牛歸家)의 경우 집에 돌아감에 있어 소를 타는 조건이 따라 붙었던 사실이 지적되어야 한다. 그리고 ‘채찍의 그림자’의 비유도 등장한 바 있지만 이것도 만해선생이 행한 것 같은 부정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는 이상 여전히 장애물 구실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물을 건너며 산을 넘는 절차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이상이 아직도 기우귀가(騎牛歸家)의 단계라면 둘째 구인 ‘이곳 녹수청산은 한가하기만!’은 망우존인(忘牛存人)의 전경이다. 그것은 건너고 넘어야 하는 물인 것과는 달리, 그대로 눈앞에 나타난 녹수청산(綠水靑山), 진여실상(眞如實相)인 녹수청산(綠水靑山)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가하기만!’이라는 말이 보여 주듯 무공용(無功用)의 것이기도 했다. 덧붙이자면 자임(自任)은 제가 할 일이라고 자처하고 나서는 일, 일제(逸蹄)는 빠른 소의 걸음, 한(閒)은 한(閑)과 같은 글자다.

그리고 게송이 후반부에 이르러 이 경지가 안고 있는 내부 사정이 드러난다. 망우(忘牛)와 존인(存人)이라고 하는.

그리하여 망우(忘牛)에 관련되는 셋째 구에서는 도림(桃林)이라는 어휘부터 검토하고 넘어가자. 이는 지명(地名)이니 섬서성 화산(華山)의 동쪽에 있다는 것인데, 주(周)의 무왕(武王)은 은(殷)을 쳐서 멸망시키고 나자, 징발했던 말들을 화산(華山)의 남쪽에서 놓아주고 소를 도림(桃林)의 언덕에서 놓아주었고, 또 무기를 거두며 군대를 해산시켜서, 더는 무력을 쓰지 않을 것임을 나타내 보였다는 기록이 사기(史記)에 보인다. 그래서 애써 찾고 붙들고 길들이고 했던 소마저 망각한 경지임을 비유함에 있어 이를 쓴 것이니, 적절한 활용(活用)이라 하겠다.

그리고 존인(存人)이 다뤄진 마지막 구에서는 소창(小窓)이 궁금증을 일으키는 말인데, 이는 확암스님의 게송에서, 해가 높이 떴건만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지적하고 나서, “채찍.고삐만 초당 앞에/ 딩글고 있네”라고 한 그 초당(草堂)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임을 알면, 의문은 풀릴 것으로 안다. 그리고 이것이 어찌 자기에 대한 일말의 집착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보이는 말이 아닐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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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인우구망(人牛俱忘 : 사람도 잊고 소도 잊고)

 

색(色)만이 공(空) 아니라 공도 또한 공인 바엔,

막힘도 없으려니 뚫림인들 있을 줄이…

하늘 높이 배어든 칼 먼지 하나 못 묻거니,

천추에 조종(祖宗)있음 그 어찌 용납하랴.

 

비도색공공역공(非徒色空空亦空)

이무색처우무통(已無塞處又無通)

섬진불립의천검(纖塵不立依天劍)

긍허천추유조종(肯許千秋有祖宗)

 

소와 더불어 남은 사람마저 잊어

깨달음의 본체가 제 모습 드러내

祖宗조차 용납 않는 궁극에 도달


 

앞의 망우존인(忘牛存人)에서는 애써 찾아내 조련시킨 심우(心牛)에 대한 집착마저도 넘어서는 법(法)의 성숙(成熟)이 이루어졌으나, 이런 경지를 향수(享受)하는 주인공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주인공마저 발무(撥無)됨으로써 진정한 깨달음의 본체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 이 인우구망(人牛俱忘)의 위계라 할 수 있다.

만해 선생도 이 경지의 비밀을 쥐고 있는 열쇠를 공(空)이라 본 점에서 확암스님과 일치한다. 부처님의 연기설(緣起說)과 이 말의 대승적 명칭인 공(空)이 불교사상의 축(軸)임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선생은 이것을 달구고 두드려서 한 자루의 칼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색(色)을 비롯한 오온(五蘊)만이 공(空)한 것이 아니라 공(空)도 또한 공(空)하다는, 공(空)이 공(空) 자신까지 반야지(般若智)의 불길로 용해(鎔解)시킨 반야지의 칼날인 것이었다. 그것이 터럭 한 오리가 칼날에 닿기만 해도 두 동강이 나고 만다는 취모검(吹毛劍)이 되고 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령 수행에 따라붙는 막힘과 뚫림을 이 칼 앞에 가져다가 놓아보자. 법화경 화성유(化城喩)에는 험난한 길을 거쳐 보배 있는 곳을 찾아가는 여러 사람이 있었다는 설명에 이어, “때에 그 인도자 매우 슬기로워 험한 이 길의 뚫리고(通) 막힌(塞) 모양 잘 알아서…”라는 말씀이 나오는 바, 이것이 여기에 보이는 통색(通塞)의 출처라면 출처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에게나 따라붙는 뚫리고 막히는 일이 불교의 수행 쪽으로 자리를 옮긴 것뿐이다. 해야 하겠는데, 그러면서도 교종(敎宗)과 선종(禪宗) 사이에서는 그 양상이 사뭇 달라진다. 교종에서는 의혹이 일어났다 해도 교리에 관련된 의혹이다. 그러므로 교리의 학습이나 연구에 의해 풀어진다. 막힘에 생사를 걸만 한 긴박함이 없었던 만큼 뚫림 또한 결정적인 것은 못 되어서 오늘 상대적인 차원에 머물러야 한다.

이에 비해 선종은 깨달을 것을 요구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그런 가르침으로 교화하신 부처님의 마음에 주목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고는 깨달으라고, 그것도 대번에 깨닫는 돈오(頓悟)이기를 강조한다. 또 이것도 모자랐는지 사고하지도 말며, 구하지도 말라 하고, 다시 깨달음이라는 것도 있는 것이 아니라 하여, 수행의 목표물을 걷어치우고 거기에 이르는 교량마저도 철거해 버린다. 어찌해 이렇게 된 것인가. 공(空)이라는 이름의 취모검(吹毛劍)이 등장한 때문이다. 곱셈에서 어떤 수도 제로를 만나면 대번에 제로로 바뀌고 말듯, 불교 안의 온갖 방편의 시설들은 이 칼날의 번뜩임 밑에서는 일시에 스러지고 만다. 이는 요구하는 것이 하도 엄청나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반드시 범부로서 목숨을 내던지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었던 만큼, 그것으로 얻어지는 것은 구경(究竟)의 깨달음이었던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취모검의 위력은 여기에 그치는 것도 아니어서, 다시 불교 안의 성역(聖域)까지 날려버리니, “천추에 조종(祖宗) 있음/ 그 어찌 용납하랴”하는 마지막 구가 그것이다. 조종이라는 말에는 조사로부터 내려오는 선의 종지(宗旨)라는 뜻과, 선의 조사와 그것을 이은 종사(宗師)라는 의미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선의 종지를 얻어서 선양하는 이가 조사.종사인 바에는 법(法)과 인(人)을 떼어서 생각할 것은 아닌데다가, 이 모든 것을 멀리 부처님에게 그 근원이 있는 터이므로 여기에서 용납치 못하겠다는 대상에는 부처님과 그 분이 성취하신 정각(正覺)까지도 포함돼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왜 부처님과 그 분이 성취하신 불법마저 배척되었던가. 이는 배척이 아니라 존경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그분께 의지하고만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는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성장할 대로 성장한 바에는 독립해야 한다. 무엇에도 의지함이 없어 만사를 자기 나름으로 처리하는 자주성.주체성이 요구된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 제 입에서 나와야 한다. 그것이 도리어 부처님을 진정으로 바르게 모시는 태도다. 공(空)의 취모검(吹毛劍)의 위력은 여기에서 극에 달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끝으로 확암선사의 십우도가 이 경지를 원상(圓相)으로 채우고 있음을 일러둔다. 일원상(一圓相)이라고도 일컫는 둥근 원(圓)! 소도 사람도 안 보인다. 고삐로 잡아끌거나 조련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있는 것이라곤 둥글고 둥근 하나의 원(圓)! 모진 데도 뛰어나온 데도 없이 자체로서 원만(圓滿)하고 구족(具足)된 이것은, 이제는 범부성(凡夫性)과 함께 성인들의 신성(神聖)함에도 끌려 다니지 않는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도달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리라.


9, 10------------------------------------

 

“깨달음의 궁극적 완성은 끝없는 중생구제”

 

9.  반본환원(返本還源 : 본래의 자기로 돌아와서)


삼명(三明).육통(六通)을 공(功)임은 아니어도,

소경 갈고 벙어리 같음에야 어찌 미치랴.

돌아보니 아직 뿔도 안 생긴 그 집 밖에는

온갖 꽃 활짝 피어 무르익는 봄!


삼명육통원비공(三明六通元非功)

하사약맹부여롱(何似若盲復如聾)

회수모각미생외(回首毛角未生外)

춘래의구백화홍(春來依舊百花紅)

 

‘神通이라는게 소경보다 못해’

견문감각 떠난 마음자리 자체

본래 자기의 일상을 절대 긍정

 앞의 인우구망(人牛俱忘)의 게송에서 이미 완성된 깨달음의 정체를 보름달 같은 일원상(一圓相)으로 드러낸 바 있었다. 그런데도 왜 제9, 제10의 후속조치가 있어야 하느냐고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선생의 게송을 검토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해명될 문제인 것으로 한다.

 이제 이 게송을 앞의 인우구망(人牛俱忘)의 그것에 대비해 보자. 앞의 게송에서는 공(空)의 원리가 적용되었다. 그리하여 이 반야지의 취모검(吹毛劍)으로 수행에 나타나는 득(得: 뚫림)과 실(失: 막힘)을 몽땅 베어버리고 이 칼날을 성역(聖域)으로 옮겨 불조(佛祖)에까지 미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비해 이 게송에서는 성자에게 따라붙는 신통(神通)을 파괴하고 소경, 귀머거리가 그것보다는 낫다고 하면서, 본래의 자기로 돌아간 경지란 우리가 늘 목격하는 일상사가 그것이라 했다.

 물론 후자의 경우라 할지라도 공(空)의 원리가 거기에 활용(活用)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것 아니라면 어떻게 신통을 소경이나 벙어리만도 못하다는 말이 나오며, 일상사가 구경(究竟)의 경지하고 단정이 이루어지겠는가. 그러나 같은 공(空)이면서도 그 성격에 다른 면이 있다.

 인우구망(人牛俱忘)에 있어서는 공(空)이 깨달음의 성취에 기여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망상이라는 장애를 깨는 취모검 구실을 해서 깨달음에 이르는 데서 끝났다. 그리하여 불조(佛祖)같은 성역(聖域)까지도 일소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이 반본환원(返本還源)은 깨달음의 성취로부터 출발되었다. 그러므로 앞 것에는 늘 취모검으로 베어져야 하는 번뇌가 있어서 깨달음에 이르러서야 소멸된 것과는 달리, 깨달음에서 출발한 이것에는 제거돼야 할 대상이 있을 턱없기에 처음부터 깨달음의 심화(深化)와 확충(擴充)으로 방향이 잡혀간 것이라 여겨진다.

 혹자는 말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우구망(人牛俱忘)에서 이루어진 깨달음은 결여함이 있는 깨달음이었더냐고. 그렇지는 않다. 깨달음이란 반야 그것이어서, 완성.완전 바로 그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모자람도 있을 수 없다. 도리어 그러기에 성장한다. 마치 우주가 팽창을 계속하고 있듯, 완전무결한 절대이기에 성장한다. 허물투성이인 우리 범부에게도 때로 성장이 있는 터에, 어떻게 깨달음의 지혜가 성장하지 못하겠는가.

 말하면 끝이 없기에 더 언급하지는 않으려니와, 부처님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분이 정각을 이루시고 나서 어떤 과정을 거치셨던가. 정각을 이루신 뒤에 얼마 동안 법열(法悅) 속에 들어 계셨던 부처님은, 아무도 이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도 하셨으나 중생을 관찰하사 그들 모두에게 불성이 있음을 확인하시고는 교학(敎學)의 골격을 수립하여 교화에 일생을 바치시는 수순을 밟으신 바 있으셨다. 이것이 어찌 깨달음의 자기 성장이 아니겠는가.

 여기에서 게송으로 눈을 돌리면, 전반부에서는 위대한 성자들에게 나타나는 신통이라는 것도 소경이나 벙어리같이 된 것만은 못하다고 했다. 하기야 신통에는 ‘공(空)임은 아니어도’라는 해명이 첨부되어 있기는 했었으므로, 신통의 전면적인 부정임은 안 된다. 그러면 공(空)이란 무엇을 이르는가. 이는 공훈오위(功勳五位) 따위라 할 때에 사용된 그것이어서 수행을 일컫는 말이요, 또는 수행의 효과까지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신통이 수행이 하는 인위적인 노력과는 차원이 다른, 깨달음에만 직결돼 있음을 인정하고는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배격되었는가. 마음의 본자리에서 볼 때에는 아직도 무엇인가 이질적인 것이 있다는 것이다. 아지랑이인지 무엇인지는 모르나 아른거리는 것이 있는 점에서 마음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벙어리 같고 벙어리 같음’이란 말이 도리어 마음의 본자리를 나타내 광채(光彩)를 발(發)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서두르기에 삼명(三明).육통(六通)의 내용을 불교사전의 몫으로 돌리겠다. 후반의 게송에서는 모각미생외(毛角未生外)라는 말이 수상쩍다. 그러나 모각(毛角)이라면 제3의 게송에서 소의 뿔을 뜻함이 밝혀진 바 있고, 이것이 아래의 미생(未生)으로 이어져 쓰이는 것도 부모미생이전(父母未生而前) 쯤으로 알아차리면 된다. 그렇다면 위산(山) 선사가 향엄(香嚴)을 향해 ‘네 부모가 아직 태어나기 이전의 너는 어떠했는지, 어디 한 마디 해봐라’고 추궁했던 사실을 웬만한 사람이라면 머리에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바깥을 의미하는 글자가 따라붙어 모각미생외(毛角未生外)로 되어 있다. 미생전(未生前)이어야 할 것이 왜 미생외(未生外)가 되었는가. 여기는 측성(仄聲)이 와야 할 자리기에 전(前)을 피한 것인가. 설사 그렇기로니 꼭 외(外)이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 확암스님의 게송을 대조해보니, ‘암자 안에서는 못 보느니 암자 앞 물건(庵中不見庵前物)’으로 되어 있다. 그리하여 우리 대고국사의 태고암가와 아득히 이 노래의 모델 노릇을 했던 석두 선사의 초암가까지를 흘러보건대, 선사들이 문제 삼을 암자란 하나같이 그 분들이 되돌아 간 제 마음의 본자리였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거기에 어찌 보고 듣는 따위 기능이 남아 있으랴. 이리해 그것은 견문각지(見聞覺知)를 떠난 경지였고, 그러기에 지금껏 객관이라고 여겨온 그것이 바로 마음의 본자리 자체임이 된다는 것이다.

 선생의 모각미생외(毛角未生外)의 경지에는 외(外)라는 것도 있을 리 만무함으로 지금껏 마음의 본 자리에서 먼 것으로만 여긴 외부세계는 바로 마음의 본자리 자체임이 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함이 곧 본래면목의 풍경이 되며 도홍유록(桃紅柳綠), ‘복사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다’는 본지(本地)의 풍광(風光)이 되기에 이르기에 이른다. 이 ‘외(外)’라는 한 글자가 일으키는 신통은 대단하여 우리가 목격하는 일상사를 바로 이렇게 바꾸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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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입전수수(入垂手 : 저자에 들어가 베푸는 교화)

 

진흙이라 물이라 뜻대로 드나들며

울고 웃고 대중없어 자취도 남지 않아!

앞으로 넓고 넓은 고해(苦海)에 뛰어들어

타오르는 불길 속에 연꽃이 피어나게 하리라

 

입니입수임거래(入泥入水任去來)

곡소무단불영시(哭笑無端不盈)

타일망망고해리(他日茫茫苦海裏)

갱교연화화중개(更敎蓮花火中開)

 

 정적 깨달음의 세계 넘어서

중생과 함께하는 동적 경지

십우도의 마지막 장식 제격

앞의 반본환원(返本還源)은 제8의 공(空)도 공(空)하다는 깨달음의 세계를 다시 심화(深化)시켜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일상사로 만들어 놓은 경지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곤란하다. 이 정적(靜的)인 것만으로는 무엇 하나 이룰 것이 없는 것이매, 이 정(靜)에는 동(動)의 면이 갖추어져 있을 것이 요구된다. 마치 시계의 진자(振子)가 한쪽으로 흔들리는 것은 반대쪽을 향해 흔들리기 위한 힘의 비축인 것처럼, 깨달음의 정(靜)의 면은 정(靜)과의 정반대인 동(動)과 표리의 것이 되어야 한다. 이리하여 이 입전수수가 십우고송을 마무리 짓는 구실을 하게 된다.

게송의 전반부는 그 동적(動的)인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먼저 흙탕물 속을 뜻대로 드나든다 했는데,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것은 참으로 엄청난 일이다. 마음의 본원으로 돌아감으로써 이제 인간적인 것에서 벗어난 처지거니 얼마나 성스럽고 존귀한 신분인가. 그런데도 자진해 번뇌.생사의 구렁텅이로 몸을 던지니 말이다. 이렇게나 손해나는 일은 다시없을 듯하다.

그런데도 굳이 흙탕물을 뒤집어써가며 하는 일이라곤 ‘울고 웃고 대중없어…’라고 한 데서, 기막혀할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이 말의 전고를 굳이 찾자면 백장 선사와 관련이 있다. 마조대사 밑에서 수좌(首座) 노릇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스승을 따라 길을 가다가 야압자(野鴨子)의 문답으로 깨달은 것은 유명하지만, 돌아온 백장은 수좌료(首座)에서 크게 소리 내 울어댔고, 이리해 한 동료와의 문답이 벌어졌다.

“왜 우는가. 부모 생각이라도 나서 그러나.”

“아니야.”

“누구한테서 욕이라도 먹었나.”

“아니다.”

“그렇다면 왜 우는가.”

“스님에게 가서 여쭈어 보라.”

그래서 마조대사에게 가서 물었더니 “그에게 가서 물으라”는 것이었다. 이리해 수좌료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번에 목격한 것은 크게 웃어대고 있는 백장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문답이 다시 이어졌다.

“아까는 왜 울어댔으며, 지금은 왜 웃어대는가.”

“아까는 울었었고, 지금은 웃어대는 것뿐이다.”

백장에게 있어서는 불법(佛法)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은 일소(一笑)에 부칠 만도 하고 일곡(一哭)에 부칠 만도 하다고 본 것이어서, 울음과 웃음 사이에 어떤 차등이 있은 것은 아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언어 구사는 큰 선사들이 즐겨 쓰던 그것인 바, 요컨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수단이 때에 따라 자재(自在)히 변화해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인 것이겠다.

이에 비해 후반부에 오면 앞으로 고(苦)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중생들을 모두 구제해 깨달음을 얻도록 하겠다는 뜻이 표명(表明)되었으니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바로 그것이라 하겠다. 불사(佛事)의 온갖 것에 깔린 근본정신이라 할 것이어서, 게송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함에 있어 더없이 적절한 배려라 여겨진다.

끝으로 이 게송 전반에 걸쳐 문제됨직한 어휘에 대해 몇 마디 말을 하고, 넘어가겠다. 먼저 둘째 구의 불영시(不盈)가 ‘자취도 남지 않아……’로 번역된 일에 관해서다. 이를 직역하면 ‘볼에 가득 차지 못한다’는 것이어서, 울고 웃고 함이 대중없는 까닭에 웃든 울든 간에, 그것이 표정으로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덧붙이자면 확암스님은 흙을 바르고 재를 발라 ‘웃음이 얼굴에 가득 찬다’는 뜻으로 소만시(笑滿)라는 말을 썼던 것인데, 선생은 웃음이건 울음이건 대충할 수 없기 때문에 가득 찰 사이가 없다고 한 것이므로 재미있다.

그리고 ‘연화가 불길 속에서 피어난다’는 말의 원문인 ‘연화화중개(蓮花火中開)’에 대한 약간의 해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유마경〉 불도품에 ‘불 속에서 연꽃이 생긴다면 이는 희유(稀有:불가사의)한 일이라 할 것이다. 욕망 속에 있으면서 선(禪)을 닦음도 희유(稀有)함이 또한 이와 같다’는 게송이 있어 화중련(火中蓮)이라는 말이 선사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듯한데, 경에서 해명될 대로 해명된 터이므로 더 보탤 것은 없는 줄 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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