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瞑 想/ 無 心 書

서부진언(書不盡言) 언부진의(言不盡意)

작성자長樂山人 이종인|작성시간13.07.02|조회수339 목록 댓글 0

 

서부진언(書不盡言) 언부진의(言不盡意)

 

그렇다면(然則) 성인(聖人)의(之) 뜻(意)

그것은(其) 살펴질 수 없는 것(不可見)인가(乎)?

 

서부진언(書不盡言) 언부진의(言不盡意)

연즉성인지의(然則聖人之意) 기불가견호(其不可見乎)

 

공자가(子) 말했다(曰): 글은(書) 말을(言) 모두 다하지 못하고(不盡) 말은(言)

뜻을(意) 모두 다하지 못한다(不盡). 그렇다면(然則) 성인(聖人)의(之) 뜻(意)

그것은(其) 살펴질 수 없는 것(不可見)인가(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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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의(聖人之意)를 주역(紬繹)하려는 자왈(子曰)이다. 서부진언(書不盡言)-언부진의(言不盡意)의 ‘진(盡)’은 ‘끝까지 남김없이 다할 실(悉)’과 같다. 글(書)로는 ‘성인(聖人)의 말씀(言)’을 다 밝힐 수 없고(不盡) 말하기(言)로는 ‘성인(聖人)의 뜻(意)’을 다 밝힐 수 없음(不盡)을 깨우쳐야 ‘글(書)’이나 ‘말(言)’만을 따라 앵무새 노릇만 해서는 안 된다는 까닭을 비로소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자왈(子曰)이 ‘서부진언(書不盡言)-언부진의(言不盡意)’로 풀이해주고(紬繹) 있다. 성인(聖人)이 64괘(卦)에 붙여둔(繫) 괘효사(卦爻辭)를 스스로 완미(玩味)하자면 ‘서부진언(書不盡言)-언부진의(言不盡意)’ 이 말씀을 늘 명심(銘心)하고서 괘효사(卦爻辭)를 제 나름대로 새겨들어 본받아야(效) 한다.

 

왜 공자가 『논어(論語)』에서 ‘열이불역(說而不繹)하고 종이불개(從而不改)한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해두었겠는가? 이는 바로 남의 글(書)이나 말(言)에만 기대고서 졸졸 따라하지 말라 함이다. 즐기기만 하면서(說而) 스스로 뜻을 찾아내지 않고(不繹) 따르기만 하면서(從而) 고치지 않는다(不改)면 성변화(成變化)-행귀신(行鬼神)으로 화신(化神)하지 못하고 만다는 것을 자왈(子曰)이 밝혀둔 것이다. ‘화신(化神)’은 스스로 지변자(知變者)로서 산다는 말이다. 변화를(變) 아는(知) 사람(者)으로서 살라 함이다. 괘효사(卦爻辭)에는 성인지의(聖人之意)가 ‘상(象)’으로 간직돼 있음을 암시(暗示)해두고 있다: 성인(聖人)의(之) 속내는(意) 살필 수 없는 것(不可見)인가(乎)? 이러한 자왈(子曰)의 반문(反問)은 ‘성인(聖人)의(之) 속내를(意) 살필 수 있음(不可見)’을 반어법(反語法)으로 강조하고 있음이다. 다만 성인지의(聖人之意)를 즐기되(說) 그 뜻(意)을 스스로 새로 풀이해(繹) 제 속내를 이루어(成) 즐겨야하고(說) 성인(聖人)의 뜻(意)을 따르되(從) 그 뜻(意)을 스스로 새로 고쳐(改) 제 속내(意)를 이루어(成) 따라야함(從)을 자왈(子曰)이 곡진(曲盡)하게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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