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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중국의 점령과 지배

작성자長樂山人 이종인|작성시간13.07.14|조회수225 목록 댓글 0

 

티베트, 중국의 점령과 지배

 

티베트 독립요구 분신

  

청나라의 멸망 이후, 중화민국의 역대정권은 독립국으로서 존재한 티베트를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였으나, 북경정권의 시대에는 군벌의 혼전, 남경국민정부 시대에는 대일전쟁으로 독립을 주장하는 티베트에 대하여 압력은 행사하였으나 본격적인 군사적 침략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게되면서 중국은 티베트와 타이완을 포함한 중국의 옛 영토를 회복하겠다고 발표한다. 1950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은 티베트를 침공하여 점령하였다. 하지만 중국은 티베트의 평화적인 해방이라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서 1951년 5월 23일 티베트와 십칠조협의를 체결하여 강제 합병하였다. 이로써 티베트는 최초로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 많은 티베트인들이 정치적인 이유 또는 탄압을 피해 인도로 망명했다.

 

중국공산당은 티베트인에 대한 고문과 학살로써 티베트를 지배하였고, 1960년대에는 중국 전역을 강타한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3,700개나 되던 사찰은 13개만 남고 모조리 파괴되었다.

 

이후 시짱자치구(西藏自治區/서장자치구)가 설립되어 티베트인의 자치를 허용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한족이 통치를 유지하였다. 티베트의 중국 귀속 이후로 망명을 떠난 티베트인들의 일부는 동화정책에 따라 티베트로 돌아와서 살고 있다. 한족의 이민을 실시하여 한족의 인구 비율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11] 최근 중국 정부는 포탈라 궁을 보수하는 공사를 시행하였고, 2005년에는 티베트로 연결되는 철도가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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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봉기

 

1959년 티베트 봉기는 1959년 3월 10일 중국공산당의 강압적인 티베트 통치에 반발한 티베트인에 의하여 일어난 반중국, 반공산주의 봉기이다. 봉기가 일어난 날인 3월 10일은 매년 티베트 망명 정부 등 티베트 독립 운동 단체들이 티베트 민족 봉기 기념일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고 있다.

 

봉기의 원인과 발생

 

1956년 티베트의 캄 지방과 암도 지방에서 티베트인에 의한 무장 반란이 시작되어 티베트 동부 지역에 인민해방군이 증파되었다. 티베트에 진주한 인민해방군은 티베트의 마을이나 사원에 대해서 공격을 강화하였다. 인민해방군 사령관은 티베트 게릴라 부대를 굴복 시키기 위해, 포탈라 궁과 달라이 라마를 폭격하겠다고 위협했다.

 

한편 3월 1일 라사 교외에 있는 인민해방군 사령부에서 달라이 라마에게 연극 관람을 제안하였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그 제안을 미뤘지만, 최종적으로는 3월 10일에 연극을 관람하기로 합의하였다.

 

3월 9일 약속 하루 전 인민해방군 장교들이 전통에는 어긋나는 것이지만 달라이 라마가 연극관람을 할때 무장 경비대를 동행시키지 않는 조건과 포탈라 궁에서 인민해방군 주둔지로 이동할 때에 어떠한 공식적인 의식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이 요구가 라사에 있는 티베트 사람들에게도 퍼져 중공 당국이 달라이 라마 14세의 납치를 꾀하고 있다고 생각한 티베트 사람에게 공포감을 조성하였다.

 

다음 날인 3월 10일에 티베트인 약 30만 명이 인민해방군 측이 달라이 라마를 포탈라 궁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궁전을 둘러쌌다. 3월 12일에는 라사에 모인 항의자들이 티베트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라사의 큰 길에는 바리게이트가 만들어지고 티베트독립군과 인민해방군은 충돌에 대비해 각각 라사 내외에 거점을 요새화하기 시작하였다.

 

3월 15일 상황이 악화되자 달라이 라마 의 피난 준비가 시작 되었는데 3월 17일에 달라이 라마의 궁전 근처에 인민해방군이 발사한 2발의 포탄이 명중해, 이것이 그의 인도 망명행과 망명정부 수립의 방아쇠를 당기게 되었다. 달라이 라마가 라사를 탈출하고 난 뒤인 3월 19일에는 라사의 주요 사원에 대한 포격을 포함한 전투가 시작했다. 티베트군은 인민해방군에 비해 숫자와 무장이 빈약해, 이 전투는 이틀만에 종료되었다.

 

봉기의 결과

 

티베트 망명정부의 추정치에 의하면 1959년 봉기때 티베트인 약 86,000명이 인민해방군에 의해 사망하였다고 주장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 주장에 반대 하고 있다.

 

라사의 주요 사원과 절은 중국군의 폭격에 의해서 심한 손상을 입었고 약탈, 파괴되었다. 그리고 라사에 남은 달라이 라마 14세의 무장경비원과 무기를 숨기고 있었던 티베트인들은 무장 해제가 되어 공개처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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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망명 정부

 

티베트 망명 정부(영어: The Government of Tibet in Exile, Tibetan Government in Exile) 또는 중앙 티베트 행정부(Central Tibetan Administration, CTA)는 1959년에 14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에서 수립한 티베트의 망명 정부이다. 공식 이름은 달라이 라마 성하의 중앙 티베트 행정부(The Central Tibetan Administration of His Holiness the Dalai Lama)이다.

 

티베트 망명 정부는 티베트에 있던 티베트 정부의 연장선으로 1959년 4월 29일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 무수리에 설립된 이후 1960년 5월에 인도 북서부 히마찰프라데시 주 다람살라의 강첸 키숑(Gangchen Kyishong, 티베트어로 "설국의 기쁨의 골짜기"라는 뜻) 지역에 근거지를 옮겼다.

 

티베트 망명 정부는 자신들이 티베트 내외에 거주하는 티베트인의 유일한 합법적 정부라고 주장하며 최근에는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일부 국가들의 의회(議會)가 티베트 망명 정부를 공식 정부로 인정하고 있다.

 

티베트 망명 정부 역할

 

티베트 망명 정부는 티베트의 자유 부흥을 목표로 하는 운동의 지도적 역할과 중국의 침략으로 발생한 약 13만 명에 이르는 티베트인 난민(難民)의 사회 복지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 티베트 망명 정부는 티베트의 장래에 대비해 현대적인 민주주의 제도를 실험적으로 계속 도입해 왔다. 그 때문에 오늘의 티베트 망명 정부는 진정한 정부로서 기능하기 위한 모든 조직을 포함하여 자유로운 민주 정부의 특성을 지닌다. 다만 티베트가 다시 중국으로부터 독립하면 티베트 망명 정부는 망명 정부로서의 권한이 소멸되며 즉시 해산된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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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스님 소신공양//

 

티벳의 자유를 요구, 2013, 2월 13일, 네팔 카트만두/

2009년 이후 안타까운 티베트인 분신 사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3년 4월 25일 현재 티베트 본토에서 총 117명(여성 18명 포함)의 티베트인이 분신을 시도했고 목숨을 잃은 사람은 100명입니다.

 

아래 현황은 티베트 망명정부(www.tibet.net), 티베트 인권&민주 센터 (www.tchrd.org) 자료를 참고.

 

티베트 승려 119명째 분신 희생/2013. 6. 11 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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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인과 스님들의 분신을 애도하며

조속한 평화를 기원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와 종교평화위원회는 최근 100명을 넘어선 티벳 분신사태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으며 분신으로 돌아가신 티벳인들과 스님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티벳 뉴스매체 파율은 지난 2월 13일 네팔 카트만두에서 티벳 스님이 티벳의 자유를 요구하며 소신공양을 했다고 전하였습니다. 특히 이 날은 티벳의 새해 명절인 ‘로싸르’를 축하하는 두 번째 날이자, 13대 달라이라마가 티벳 독립을 선언한 지 꼭 100주년이 되는 날( 2, 13)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티벳인들과 스님들의 분신은 지난 2009년부터 이어지고 있습니다. 희생자 가운데는 주부도 있고 어린 학생도 있습니다. 하루에만 6명이 잇따라 분신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있으며, 최근 분신사태는 스님을 넘어서 일반인들로까지 급속히 확대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수행자가 스스로 몸을 불사르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을 단순한 자살이 아닌 깨달음을 얻거나 세상을 구제하기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여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0년 조계종 지보사의 문수스님께서 4대강 사업 폐지와 부정부패 척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요구하며 소신공양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소신공양에는 불자로서의 비폭력에 대한 신념과 초월적 자비가 담겨있습니다. 티벳도 한 때 무장독립 투쟁을 고민하였으나 달라이라마가 국민들을 향해 무기를 내려놓을 것을 설득하였고, 티벳인들과 스님들은 목숨을 버려서라도 불자로서의 계율을 지키고자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비폭력 평화정신으로 실천하고 활동하는 그들의 숭고한 뜻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화정신에도 부합한다고 봅니다.

 

이에 연기의 세계관과 동체대비의 삶을 따르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그들의 소중한 희생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존중받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끊임없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 정부도 시진핑 주석이 집권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만큼 평화적 방법으로 티벳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집회결사의 자유 및 국제 사회의 접근 허용, 종교와 민족문화에 대한 탄압중지 등 최소한의 자유와 인도적 조치를 취해주길 바라며 더 이상 소중한 생명이 희생당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입적하신 티벳인들과 스님들의 왕생극락을 바라며 티벳의 평화가 조속히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

 

불기2557(2013)년 2월 20일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

대한불교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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