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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찾아서(Man's Serarch for Meaning)

작성자長樂山人 이종인|작성시간16.09.26|조회수392 목록 댓글 0


삶의 의미를 찾아서(Man's Serarch for Meaning)


삶의 의미를 찾아서, 빅터 프랭클


By 山海 김유선, 노루귀(분홍색, 자주색, 흰색, 청색, 보라색, 하늘색 등 다양)


삶의 의미를 찾아서(Man's Serarch for Meaning)

Viktor Fran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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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의 의미를 찾아서(Man's Serarch for Meaning)

2. 로고테라피(Logotherapy): 행복에서 의미로

3. 삶의 의미를 찾아서(Man's Search for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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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인간다움을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떠맡음’이라고 한다.
인간은 ‘①내던져져 있음’에서 자기의 존재를 떠맡을 수 있는, 아니

②떠맡아야 하는 존재이다.


이를 철학적 용어로 ③현사실성이라 하는데, 흔히 ‘사실’이라하면 일어나 버린 사건으로서
어떻게 더 이상 손을 써볼 수 없는 확정된 것을 말한다. 그러나 ‘현사실’의 의미는
그것이 이미 끝나버린 과거사가 아니라 그것을 떠맡음으로써 바꾸어 나간다는 것이다.
즉, ‘내던져져 있음’을 ‘떠맡음’으로써 그 ‘내던져져 있음’을 바꾸어 나간다는 것이고
이를 ‘현사실성’이라 칭한다. 인간의 위대함은 바로 이 ‘떠맡음’에 있다.

                                                                                         長樂山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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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의 의미를 찾아서(Man's Serarch for Meaning)

 

삶의 의미를 찾아서 (일명 '죽음의 수용소에서')

독후감, 샘물 블로그

 

Viktor Frankl(1905-1997)의 Man's Serarch for Meaning

'삶의 의미를 찾아서'가 맞는 제목이겠는데

왜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음울한 의역으로 저자가 호소하고자하는

책의 내용을 제목에서부터 왜곡시켰는지 모르겠다.

 

Viktor Frankl의 'Man's Serarch for Meaning''는 '삶의 의미를 찾아서'가 맞는 제목이겠는데 왜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음울한 의역으로 저자가 호소하고자하는 책의 내용을 제목에서부터 왜곡시켰는지 모르겠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돌려준 후라 기억나는 것과 노트해놓은 것을 보고 책을 소개하는 수밖에... 그동안 아우슈비츠에 관한 이야기는 더러 읽었지만 다른 책과는 상황설정이 달랐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곳이 힘들었는데 가까스로 살아난 끔찍스레 고통스러운 내용을 고발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어떠한 사람이 살아남고 어떠한 사람이 빨리 이슬처럼 사라져갔는지를 관찰했다.

빅터 프랭클은 우선 유태인을 가두는 포로수용소를 피할 수 있었다. 1943년 오스트리아 빈의 유명한 신경과 의사였던 그에게 미국에서 비자가 발급되었는데 그는 이를 받으러 미대사관에 가지 않았다. 그에게는 연로한 부모가 계시기에 미국으로 가는 대신 부모님과 같이 빈에 남기로 했다. 그때는 이미 유태인을 포로 수용소나 아우슈비츠로 보내던 때여서 그의 결단이 내게는 무척 놀랍기만 했다. (내 경우는 1980년 광주 사태가 한창일 때 이왕 미국으로 갈 바에는 빨리 가려고 하도 조바심을 내서 엄마로부터 핀잔까지 들었으니까)

 

그는 결국 체포되어 가족과 같이 유태인 포로 수용소로 가고 처음에는 아파하시는 아버지에게 몰핀이라도 몰래 구해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었지만 결국은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임신한 부인의 소식을 모르는 체 끔찍하게 고생을 한다. 우여곡절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으면서 (살아남기 위해 트럭을 타라고 유인해서 서로 타기 위해 아우성일 때 프랭클은 슬그머니 뒤로 양보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트럭은 죄수들을 곧장 아우슈비츠로 끌고가 몰살시켰다) 신기한 체험들을 한다.

 

그 극단상황에서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정도로 자연이 지극히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떤 죄수는 피골이 상접한 채로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하고 외치게 된다. 또한 닥친 상황이 심히 괴로운만큼 곧잘 과거의 추억으로 파해 들어가곤 한다. (이 때 과거조차 어둡기만 하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하지만 알고보면 문제는 위와 같이 긴박한 상황에서보다 할 일이 없는 권태로운 상태에서 더 많이 발생된다. 사람들은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권력, 돈, 향락, 쾌락을 쫓는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이나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삶을 긍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를 선택할 영적 자유가 있다. 왜 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도 안다.

 

인생의 의미는

1. 창조적인 일을 하거나 가치있는 행위를 할 때

2. 굉장한 것(자연, 예술 등등)을 체험하거나 굉장히 감동을 주는 사람을 만날 때

3. 피할수 없는 괴로움을 감내하는 태도에서 표출된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바꿀수 없다면 우리가 바뀌도록 요구받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책임을 묻는 대답은 존재와 삶으로서만 대답할 수 있다. 인생을 후회하고 다시 산다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지금 바로 첫번에 실패하고 두번째 고쳐서 사는 듯한 삶을 살라. 적어도 빅터 프랭클은 지금이 최후의 순간인 것처럼 살았다. 우리는 존재를 초월해서 살아야한다. 자신을 잊고 남에게 봉사하거나 사랑한다면 우리는 더 인간적이고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다.

 

부메랑이란 던진 사람에게 되돌아오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목적을 놓쳤을 경우에만 던진이에게 되돌아온다.

 

사람도 의미와 목적에 대한 시야를 잃었을 때 자기 속으로 (자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 되돌아가게 된다. 표적(과업과 의미)을 놓쳐 의미에의 의지가 좌절 당했을 때, 자신에게만 오로지 전념하게 된다.

 

이런 이들에게 의미를 찾아주는 것이 정신이 건강해지게 하는 열쇠가 된다.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까지 가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임신한 아내를 만나야겠다는 소망과 자신이 쓰다만 '의미론적인 치유법'에 대한 저서를 꼭 완성하고자 하는 바람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있던 수용소에서도 가족중에서도 그가 유일한 생존자었지만 그는 운명에 좌절하지 않고 2년후에는 카톨릭 간호사와 결혼하여 92세까지 살면서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고 환자들을 도우며 저서를 집필한다. 그가 쓴 책 중에서 '의미를 찾아서'가 가장 많이 알려진 저서라고 한다.

빅터 프랭클의 삶의 의미는 '다른 이들이 자신들의 의미를 찾게 도와주는 일'이었다.

 

그는 Logotheraphy

즉 의미를 통한 치료를 처음으로 창시한 정신과 의사였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김춘수 시인의 말대로 의미가 되어주거나 의미를 찾아 주는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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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로고테라피(Logotherapy): 행복에서 의미로

김재현

 

1. 의미치료(logotherapy)는 빅터 프랭클 박사가 아우슈비츠의 수용소 경험을 토대로 창안한 심리이론이다. 프랭클 박사는 정신과 의사로 2차 세계 대전 중 강제 수용소에 수용되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비참한 삶을 대략 3년간 살았다. 게다가 그의 부모, 형제, 부인은 강제 수용소에서 죽거나 독가스실로 보내졌다. 그는 수용소에서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고 절망한 사람들이 더 빨리 죽고 의미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생존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특히 강한 목적의식, 사명의식, 그리고 유머가 중요했다. 수용소에서 이러한 체험을 한 프랭클은 수용소를 나와 자신의 체험을 적은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출판한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이었기에 실명으로 책을 내지 않고 익명으로 내려고 했으나 주위 사람들이 저자의 이름이 있어야 책 내용이 신빙성을 얻는다고 강력하게 권해서 그는 책 표지는 익명으로 하고 내지에 자신의 이름을 실었다. 그러나 이 책은 나중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게 되고 지금도 세계 각 국에 번역되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2. 책의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인 극한의 상황에서 ‘의미’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프랭클은 ‘생존가’(survival value)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설명한다. ‘생존가’란 다른 조건들이 같다면 미래를 지향하는, 즉 미래에 충족될 의미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살아 남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절박한 상황에서 생을 유지시켜 줄 정도로 강력했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프랭클에게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아내와의 재회이고, 다른 하나는 『의료 성직자』라는 본인의 저술을 쓰는 것이었다. 아내와 다시 만나고 책을 쓰겠다는 삶의 의미를 발견한 것이 그에게는 지옥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프랭클은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은 기억도 이야기한다. 그는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하나의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는 큰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자신을 떠올렸다. 그 강의실에서 강제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강의하는 자신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프랭클은 실제로 이 때 생각했던 강의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의미를 삶의 연료로 사용했던 것이다.

 

3. 프랭클의 로고 테라피(Logotherapy)는 고통의 불가피성과 고통의 의미를 깨달음으로 고통을 극복한다. 프랭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삶에 의미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고통에도 의미가 있음이 분명하다. 고통이란 운명과 죽음과 같이 삶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인 것이다. 인간의 삶은 고통과 죽음이 없이는 완결될 수 없다. 한 인간이 그의 운명과 그에 따르는 모든 고통을 받아들일 때, 즉 그가 그의 십자가를 질 때 그는 그의 삶의 보다 깊은 의미를 더하게 되는 충분한 기회를 얻게 된다.”

 

프랭클은 고통을 죽음과 같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를 고통의 불가피성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거부한다. 하지만 먼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일단 받아들인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되면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다음과 같은 니체의 말이 두 번 반복된다.

 

왜(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4. 하지만 죽음이 있고, 그 죽음이 우리의 모든 의미를 빼앗아가지 않을까? 이에 대해 프랭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죽음이 인생의 전 생애의 의미를 무의미하게 한다는 것, 즉, 죽음은 모든 것을 무로 돌리기 때문에 모든 삶은 무가치하다고 얼마나 자주 들어 왔던가. 과연 죽음이 실제로 생명의 의미성을 파괴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고 오히려 반대이다. 즉 죽음은 삶을 의미있게 한다.”

 

죽음의 의미가 참다운 삶을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때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 죄책감도 마찬가지이다. 죄책감에 직면하기 때문에 인간의 향상은 의미가 있다.

 

5. 로고 테라피(Logotherapy)의 기본원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 의지(free will)이다. 이는 결정론과 반대된다. 프랭클은 사람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정을 내리며 살 수 있다고 본다.

둘째,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will to meaning)이다. 프로이트는 쾌락을 추구했다. 그는 마음의 핵심을 성욕의 추구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억압된 성욕이 마음의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아들러는 권력의 추구를 중시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의 문제의 핵심이 열등감이라고 보았다. 프랭클은 의미의 추구를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실존적인 공허감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세 번째는 삶의 의미(meaning of life)이다.

 

1) 자유 의지

 

의지를 행사한다는 것은 생물학적 차원이나 심리적 차원을 넘어서는 영적인 차원이다. 그것을 프랭클은 noological 차원이라고 부른다. = spiritual dimension이라고도 부른다. logos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영혼이다.

 

신경증은 여러 가지 요인에서 발생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신경증으로 어떤 경우에는 종교로 나타난다.

 

프랭클은 차원 존재론을 전개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차원적 존재론 = 더 높은 차원은 더 낮은 차원에서 보면 동일한 것이 다르게 보인다(그림1).

낮은 차원에 투영된 서로 다른 현상들은 서로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그림2)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원인과 이유의 차이점이다.

 

원인은 물리적인 것: 양파를 자를 때 눈물을 흘릴 이유는 없다. 원인이 있을 뿐

이유는 정신적인 것: 좌절에 빠지면 눈물을 흘릴 이유가 있다.

이유는 언제나 noological한 것이다. 영적인 것이다.

 

2)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

 

‘쾌락’과 ‘권력’이 아니라 의미이다!

 

* 프로이트의 쾌락주의에 대한 반대: 쾌락은 인간이 기울이는 노력의 목표라기 보다는 실제로는 의미를 충족시킴으로써 얻어지는 결과이다.

 

* 아들러의 권력주의에 대한 반대: 권력 역시 목표라기 보다는 목료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프랭클은 조지아 대학의 학생 신문 편집장인 베키 리어의 글을 인용한다.

 

“우리는 피임약을 소유하고 있어서 성적 욕구의 결과물을 신경쓸 필요가 없다. 성적 욕구를 눌러야 할 의학적 이유는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권력 또한 가지고 있다. 젊은 세대들 앞에서 벌벌 떠는 미국 정치인들이나 아니면 중국의 홍위병들을 보라. 하지만 빅터 프랭클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존재적 진공 속에 살고 있고 이 허무는 권태로 표현된다고 말한다. 권태라...뭔가 다르게 들리지 않나? 섹스나 권력보다 이쪽이 더 익숙하게 들리지 않나? 손만 뻗으면 모든 것을, 프로이트의 섹스나 아들러의 권력까지도 가질 수 있는데도 지루함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익히 보지 않았는가?”

 

프랭클은 그래서 행복과 쾌락을 찾지 말고 의미를 찾으라고 권한다. 실제로 그는 『도덕 형이상학의 정초』에 있는 한 구절을 인용한다.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면 행복은 결과로 따라온다. 쾌락을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법을 준수해야 한다.”

 

프랭클은 칸트가 의무 수행이나 법에 관해 했던 말을 더 일반화해서 의미를 추구하라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공을 목표로 하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겨냥할수록 빗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행복은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대의에 헌신할 때나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때 뜻밖의 부산물로 따라오는 것이다.

 

행복은 저절로 오고 성공도 마찬가지다.

 

성공에 매달리지 말고 저절로 따라오게 해야 한다.

- 빅터 E. 프랭클

 

그런데, 프랭클의 주장은 묘하게도 최근의 행복철학과 겹친다. 이미 플로베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던가? 이 단어가 없으면 더욱 평온하게 살련만”

 

이를 스퐁빌은 행복의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행복을 목표로 해서 살아가는데 삶은 더 불행해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진정 행복해지려면 오히려 행복을 찾지 말아야 한다.

 

“행복을 희망하며 사는 것, 행복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사는 것은 분명 불행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철학자의 말에 따르면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행복을 찾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서 몇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는 의미를 찾으려는 ‘충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유의지(free will)는 프랭클의 기본적인 관점이다.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는 자아 실현에 목표를 두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 존재의 자기 초월적 특성과 모순을 이루게 된다. [= 자아실현하려 하지말라!] 자아를 초월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아 초월의 대표적인 예는 용서이다. 나는 환대와 증여도 자아 초월의 대표적인 예라고 본다. 의미란 무엇을 뜻하는가? 의미와 가치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일까? 프랭클은 의미가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보다는 의미의 ‘유일무이함’을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삶의 보편적인 의미는 없으며 유일한 의미만 있다. 그러나 ‘공유되는 의미’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의미의 문제는 사실상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의미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의 내면이나 정신 속에서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종의 자족적인 체계와도 같다.

 

3) 삶의 의미

 

아래의 세 가지 문제 중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① 고통

② 죄

③ 죽음

그리고 삶의 의미는 책임 있게 찾아져야 한다.

 

몇 가지 프랭클이 강조하는 기법들

- 과잉의도의 문제: 어떤 일에 몰두해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경우.

- 역설의도: 환자가 두려움을 과장되게 표현하여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 유머: 자기이탈의 진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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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삶의 의미를 찾아서(Man's Search for Meaning)

 

by Viktor E. Frankl

존재를 유아기의 트라우마와 이드(id), 자아, 초자아 간의 갈등이라는 조건반사적·신경증적 복합체로 보는 기존 심리학에 대해, 인간은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자아 초월'과 '자아 이탈'이라는 고유의 능력마저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다.

 

즉 기존 심리학과 확연하게 차이가 나도록 인간과 그 능력을 주체적이고 긍정적으로 봄으로써 더 적극적으로 사람의 각종 신경증에 대처할 수 있을 뿐더러, 기존 심리학이 설명하기 어려웠던 현대인들의 정신질환, 예컨대 삶과 존재의 의미상실, 몰개성화, 비인간화 등 시대적인 질환에 대해서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의미'도 인간존재 규정한다

문화일보

 

... 프랭클은 삶의 매 순간의 경험과 만남의 과정 속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즉 인생에는 무의미한 순간, 무의미한 일들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삶의 공허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일을 하든, 우리가 그 일을 하는 의미를 분명히 알 때와 그렇지 못할 때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만약 의미가 있기만 하다면 어떤 장벽이 가로놓여 있어도 그 일을 이루려고 애쓰는 것이 사람 마음인 것이다.

 

파타코스는 그와 같은 프랭클의 logotherapy 로고세러피를 경영 현장에 도입하고자 '의미있게 산다는 것'을 썼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조직과 그 밖의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무리 힘든 인생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또한 우리가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렸으며, 우리가 선택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미를 발견해야 함을 강조한다. 특히 한 조직의 리더나 기업의 경영자라면 그와 같은 '의미의 발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가 먼저 조직에서 어떤 힘든 일이 일어나든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그 일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할 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힘도 자기 안에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현실의 문제를 건설적으로 해결하고, 변화에 적응하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고, 자신의 적대적 에너지를 창조적인 분출구를 통해 승화시키고, 특히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데서 참된 삶의 의미를 찾기 원하는 사람들 모두 이 책에서 도움을 얻기 바란다.

의미있게 산다는 것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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