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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징의 호류사/법륭사 금당벽화

작성자長樂山人 이종인|작성시간09.03.17|조회수340 목록 댓글 2

 

호류사/법륭사(法隆寺)  금당벽화(金堂壁畵)

 

 

금당 벽화(金堂壁畵), 경주의 석굴암, 중국의 윈강 석불과 함께  동양의 3대 미술품

 

일찍이 출가하여  스님이 된  담징은  불교의 경전 뿐  아니라  그림을  잘 그렸으며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예술에  뜻을 두고  담징이  신라에 머물고 있을 때, 이 소문을 들은  일본은  담징을  모셔 가려고  사람을 보냈다.  담징은  망설인 끝에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  예술에  대한 꿈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오긴 했으나 담징의  마음은  언제나 조국인고구려에  있었다. 그런데   중국 수나라가  고구려가 돌궐에는  사신을 보내면서  수나라에는  사신을  보내지 않은 것을  핑계로  백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입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담징은  고구려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일본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조국을 위해  부처님께  기도를 하고는  하였다.
어느 날  일본 스님이 찾아와  담징에게 부탁하였다.
" 조금 있으면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사원인  호류사가  완성됩니다.  벽화를  그려야 되는데  부디 대사님께서  

그림을 그려주십시오. "
그러나  날로 위험해지고 있는  조국에 대한 걱정으로  담징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괴로움에  쌓여있던  담징에게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를 크게 물리쳤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담징은 불경을 외우며  목탁을 두드렸다.  그리고 호류사로 돌아와  힘을 다해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그리기  시작한  며칠 뒤  마침내 그림을 완성하였다.  그림에 그려진  부처의 모습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정말로 살아 있는 부처님 같아. "   " 어쩌면 저렇게 훌륭할 수가  있을까 ? "벽화를 본 사람들은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48년  호류사에 불이 나서  벽화는  불에 타 버렸다.  그래서  지금의 금당벽화는  담징이 그렸던 원래  그림이 아니라,  

일본 화가 마에다가 담징의  금당벽화를  본떠서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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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징(曇徵 579 - 631)

 

 담징은  고구려의 승려이자  화가로서 학문과 그림 솜씨가 뛰어났다.
 일본의 초청으로  610년에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종이.먹.공예.채색 등의기술을 전하였다.  또한  일본의  호류사라는 절에  머무르면서  불법과  학문을 가르쳤다.  당시 고구려는  수나라와 전쟁을  치르고 있던 중이라  그의 마음은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고구려가  크게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자,  감사와 기쁨의  마음으로 호류사의 금당에  <사불 정토도>를 그렸다.  '금당 벽화(金堂壁畵)'로  더 잘  알려진  이 그림은 경주의 석굴암, 중국의 윈강 석불과 함께  동양의 3대 미술품으로  유명했으나, 1948 년에  불타 버리고 말았다.  일본에서는 종이와  먹의 시조로서  오늘날에도 존경을 받고 있다.

 

참고

금당(金堂): 대웅전(大雄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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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창실 | 작성시간 09.03.18 담징이 화가 였다는 것밖엔 아는 것이 없었는데 자세한 설명으로 잘 알았습니다. 불에 타 버린 호류사 벽화가 아깝군요
  • 작성자초포 황규환 | 작성시간 09.03.18 잘 감상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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