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문학시모음 29호

작성자그도세상김용호|작성시간24.12.01|조회수268 목록 댓글 0

진안문학시모음 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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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에 띄운 엽서

허호석

못다 함을 참아내는 출렁임인가.
유배되어 떠내려간 그리운 섬 하나
어느 해역을 떠도는가
푸른 물결로 내 안에 출렁이다
파도로 부서지는 사람아

수평선 그 허공에 걸린 그리움은
은빛 날개로 너의 해안을 떠돈다

네가 스쳐간 빈자리에
무슨 말 부어놓고
오는 듯 오는 듯 멀어지는 파도야

남해 건너 모래밭에 쓰는 너의 낙서가
내 이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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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벚꽃

허호석

참하게 살아온 산들이
어둠을 촛불로 밝히다
피지 못한 채 산화한
4월의 영령들을 불러모아
이산 저산 꽃으로 부활하는
축제의 봉화가 올랐다
아픔 없이 피고 지는 꽃이 어디 있으랴
세상이 정의로워야 한다며, 불의에 항거했던
그날의 함성이 꽃으로 피어난다
민주의 화신(花神)은 산바람을 타고
꽃불 꽃불로 번져 산 아래까지 내려와
마을에는 벚꽃보다 더 환한 세상을
내겐 벚꽃보다 더 활짝 피는 해방을

산마다 폭죽으로 피어나는 하늘공원
아! 숨이 차도록 아름다운 꽃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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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허호석

스치우는 바람에 마음 긁히시며
풀잎처럼 하늘밭에 사셨습니다.

자갈밭에서 호밋날에 찍혀 나온 하늘 조각을
개여울 물소리에 씻으며
저녁놀언 듯 돋은 별에도
호미등처럼 굽은 허리 펴실날 없으시던 어머니

초근목피 가난도 함께 나누시며
삶의 땀방울을 들판에 흙손으로 뿌리셨음은
가슴 가슴마다 들꽃으로 피어납니다.

업고 걸리며 푸른 하늘을 이어 나르신 어머니
가지가지 이는 바람 가슴에 묻던 그 깊은 사랑
어렴풋이 이제야 헤아리니 어찌합니까

아! 이제는 건너 산 하늘 밭에
하얀 찔레꽃으로 피실 어머니
어머니,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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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모악산

전병윤

눈이 녹아 눈이 되어 청매가 웃는 날
모악산을 오르는 내 눈,
앞뒤에서 튀어나오는 함성에
주춤거리는 내 발,

모악산은 밤새워 나뭇가지 가지마다
상고대, 서리꽃 피워서
시공이 모두 부처님께 올릴 공양 쌀이다

한순간을 꽉 잡으려고
찰나를 눈 시리게 피운 서리꽃
누구도 피울 수 없는 꽃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꽃
햇살도 상고대에서 하얗게 부서진다

서리꽃 보다 아름다운 사람 꽃도 피어라
마음이 눈부신 사람도 넘쳐라
세상을 슬프도록 사랑할 사람들
봄날에 맞추어 여기 모악에 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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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과 눈물

전병윤
-도교올림픽**도교올림픽-일본 도교, 한국 종합 16위
(금 6. 은 4. 동 10.)

져서 울고 이겨서 울고
승자나 패자나 눈물이다

올림픽은 땀과 눈물이다
눈물은 웃음이다
땀은 웃음의 씨앗이다

지구촌의 땀과 눈물과 웃음이
도교올림픽 그라운드에서 터지고 있다

4위는 최악의 노메달
웃음과 눈물의 갈림길이다

운동은 기氣가 보약이다
사기士氣의 뇌관에 불을 붙이자

올림픽은 언제나 아쉬움의 씨앗을 남긴다
파리에서 만날 때까지
무한한 가능성의 기와 기를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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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전병윤

벌은 죄의 모자다
죄는 벌을 쓰고 산다

죄는 머리와 가슴이 꼬이고
벌은 세월이 꼬인다

살인자 라스콜리니코프는 일 년 동안
가슴앓이를 하다가 자수를 했다

팔년 형을 받고 시베리아 감옥살이를 한다
사랑하는 소냐는 감옥 밖에서 옥살이를 했다

나는 살인자가 자수하는 경우를 못 보았다
되레 위증을 하고, 위증 연습까지 한다고…

힘센 자는 옥살이를 끝내고 나서 재 소송을…
승소해서 보상을 받아내는… 이현령비현령

법은 힘센 자를 알아보는 눈이 있다고?
광해군 연산군까지 적폐청산하려는 사회

노조가, 전교조가 법인 나라가 있다
집단의 큰 목소리가 법인 나라가 있다

부富와 권력이 겸손한 사회가 그립다
법 앞에 승복 할 줄 아는 사회가 아쉽다.

*죄와 벌: 러시아의 도스토 에프스키의 원작
**라스콜리니코프: 살인자이며 주인공, 가난한 대학생,
의협심과 봉사정신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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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강정숙

담장 너머
홍황색의 옷을 한껏 차려입고
오실 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소화의 애절함이
묻어나는 계절

덩굴 줄기마다
님을 향해 길게 뻗어 보지만
닿을 수 없는 허공 뿐
까맣게 타 재 된 가슴

송이채

그리움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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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강정숙

붉게 돋아나는 꽃
꽃들이 번져간다

많은 진통 뒤에
꽃들도 피어날 것이야

몸 안에서 피어나는 꽃들
뻘개진 꽃들이 번성해 갈수록
고통속에서 허우적대고

꽃들이 사그라들 땐
검게 작은 씨앗
딱지로 흔적을 남긴다

수없이 반복되는 이 증세
가을 나뭇잎 바스락거리듯
건조해 버린 몸

이 작은 질병의 강도
내 손톱 밑의 곪은 상처가 더 큰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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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강정숙

검은색 알갱이들
자리 펴고 시월을 넌다

이슬 젖어
꼬투리 움츠려 있을 때
산새들도 눈비비고 있는 새벽
어스름 녘 산기슭 밭에서
홀로
들깨를 벤다

씨알 주머니
까맣게 말라 갈 때
산새들이 집을 찾는 저녁 무렵
꺼꾸로 잡고 회초리 들면
우수수 쏟아지는 씨앗들
부지런히
들깨를 턴다

마당 가득히 시월이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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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도

구연배

신축년 새해
올해는 꼭
숲 속의 소 한 마리 잡아서
마음의 외양간에 매놔야지.
잡힐 듯 잡힐 듯 매번
놓치고 만 심우心牛
함께 살 허청도 마련했으니
싱싱한 꼴 베어 살찌게 먹여 봐야지.
젊었을 때 못 본
발자국 좇아
천릿길 소 등에 올라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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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의 봄

구연배

“초록이 펄럭인다.”

이 한 문장 써놓고
더 이상,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어
봄 숲엘 갔다.

바다에 빠져
바다는 보지 못하고
익사 직전의 깊이만 만나고 오듯

숲에 빠져
숲은 보지 못하고
아찔한 초록향기만 묻혀 왔다.

사춘기 청춘처럼
뜨거워서 아픈 봄바람과
살이 터지는 상처로 흔들리는 나무들

는개처럼 녹음이 피고
야생초들 수군수군
햇빛을 튕기며 꽃말을 터트린다.

펄럭이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빛 수북이 짊어진 나뭇잎
초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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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온다

구연배

가는 곳
어딘 지를 알면 고향
그리움 안고 버스가 온다.

내릴 곳
어딘 지를 모르면 타향
설레임 싣고 버스가 온다.

갈아타고 싶어도
구르는 바퀴 위에서 뛰어내리기는
어렵고 두려워
정들지 못한 객지인데

머물 곳을 찾아 떠나야 하는
나그네의 삶
그래서 사랑했던 가난과 자유가
생의 자존심 아니던가

가야 할 길을 끌고
저기 버스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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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해부학

김강호

메스의 날 끝에서 비명이 떨어진다
시마다 색다르게 뿜어내는 찬연한 피
투명한 비평 그릇에 조심스레 받는다

어떤 시는 단단해서 메스를 튕겨 내고
어떤 시는 메스를 피해 정신 없이 달아나고
또 어떤 주눅 든 시는 지레 먼저 자폭했다

무성음의 목소리가 안개처럼 번지던
절개한 시편들의 몸통을 봉합하자
침묵은 움켜쥐었던 긴장의 끈 놓는다

문장의 지느러미 날렵하게 뒤집으며
상상의 바다로 가는 등 맑은 시를 볼 때
난 잠시 반가사유상, 엷은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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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문고리

김강호

어둠이 굴려내는 보름날의 굴렁쇠가
지상으로 굴러와 문에 턱, 박힐 때쯤
뎅그렁 종소리 내며 내간체로 울었다

원형의 기다림은 이미 붉게 녹슬었다
윤기 나던 고리 안에 갇혀 있던 소리들이
키 낮은 섬돌에 내려 별빛으로 피고 졌다

까마득한 날들이 줄지어 둥글어져
알 수 없는 형상으로 굳어 있는 커다란 굴레
어머니 거친 손길이 다시 오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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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김강호

깊은 봄 뒤란에서
삼삼오오 피는 입술

저것은 꽃이 아닌
간절한 기도였다

점점 더 붉게 달아오른
통성기도 한 무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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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김영화

하필이면
왜 당신은 나를 부르셨슴니까?

골방에 틀어박혀 홀로 울고있는
나에게 다가와 토닥토닥
속절없이 진한 아픔과 기쁨이 교차되고
시커먼 바람에 노란 색깔을 칠해준
당신,

“이봐요, 내가 여기 있잖아요?”

내가나를 버려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고마운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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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맺히다

김영화

이슬
눈물

열매

가을은
살아온 시간과 화해하는
그리스도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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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김영화

새벽에
건지산 능선을 타고 헉헉대며 오르면

어서와. 잠시 쉬었다 가.

하늘을 찌르듯
거침없이 뻗은 편백숲이 사랑으로 맞이한다

언제, 누가 숲을 만들었을까?

마치 열병하듯 줄 맞추어 서있는 왕의 근위대들이다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묵묵히 풍파를 견디었을까?
지상으로 얼기설기 튀어나온 뿌리가 안쓰럽다 못해 아름답다

저 앞에서 환자복을 입은 갸녀린 노인이
생명처럼 나무의 날숨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천천히 걷는다

있어야할 자리에서
겸허히 세상을 껴안아주는 나무!
지친 영혼들에게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달이 걸리고 해가 뜨는 나무는
오직 신만이 지을 수 있는 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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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김영화

채찍처럼 살속을 파고들어도
나 휘날리는 눈 사랑했다고
모든 아름다운 걸 사랑했다고
그 아픔을
기쁘고 착한 미소로 받아들이려고 애썼다고 했던
어느 시인의 기도처럼
나 죽어갈 때 말할 수 있게 해주소서


비가 오면 옷이 젖을까
다가가지 못하고
버림받을까봐
사랑하지 못하고
가시에 찔릴까봐
안아주지 못하고
상처받을까봐
용서하지 못하고

그렇게
어영부영 살다가
눈감지 않게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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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걷어 가는 친구

김예성

밤이 너무 짧아
못다 나눈 정 한쪽 이야기는
책상서랍 밑 칸에 편히 묻어두었지

지난날이 떠올라
꽃 그림자 그림을 그려 보여주고 싶은 마음
펼치어 일어선다, 입술을 벗고
앞 이빨 환하게 웃는다

그리움이란 꺾을 수 없는 장미
나는 여전히 우리 사연을 꽃피워 가고 있지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손엔 빗줄기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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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꽃

김예성

물이 되기로 했다
불을 사랑하기 위해서
뜨겁게 흐르기로 했다
맑게 타오르는 입술을 식혀
흰 머릿결을 감겨 주기 위해서
따뜻한 날의 출렁이는 물의 꽃
무릎 꿇는 꽃잎
변함 없이 손 비비는 꽃나비로
불꽃의 밤낮을 지켜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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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내리면

김예성

밤비 내리는 날이면 비를 맞아라
비 내리는 순서의 맨 앞줄에 몸을 맡겨
흠뻑 비가 되어라
비의 발자국에 붙어있는
흠 없는 비의 꼬리를 자르거나
그 아픔을 훔쳐먹어서는 안 된다
순간 비의 발가락을 목에 걸고
애끓는 사연 소리만 만져라
생명의 생명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목마름이 깊은 이 밤
하늘 음성을 높이 마셔라
빗방울로 채워진 밤바다로 나가
잘 다져진 바다의 땅을 걸어가
옷을 벗고 벗은 옷을 더 벗어라
맑은 날을 쓰러트렸으니
하늘소리 가벼운 밤비로
나와 같이 오래 서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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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구름

김용호

우리의 아름다운 꿈을 안고 흰 구름은 떠돈다.
누구에게 읽혀지지 않을 내 시 한 편 안고
창공을 떠도는 흰 구름은
자연의 멋진 드라마이나 보다.

내 유년의 잔영(殘影)을 안고 끝없이 떠돈다.
그것이 자연의 행위나 보다.
어디에다 정 붙이지 못하는 내 마음을 닮은
흰 구름의 정체를 누가 알랴.

창공에 통증을 남기지 않고 유유히 떠도는
흰 구름을 우리는 정처 없는 떠돌이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내 인생의 해거름에 노을빛과 함께 할
흰 구름의 말귀에 귀기울이는 나의 마음은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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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바라보면

김용호

호숫가가 좋은 것은
진달래꽃 벚꽃의
반영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돌멩이 하나
호수에 퐁당 소리나게 던지면
퍼지는 동그란 파문이
아름답게 퍼지기 때문입니다.

느릿느릿 느릿느릿 왔다가
순식간에 지나갈 행복이 머문
호숫가에서

진달래꽃처럼
붉게 볼 달아오른
호수를 바라보면
영락없이 내 사랑하는 여인을 닮아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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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아름다운 것은

김용호

그대도 나 때문에 생긴
예쁜 그리움을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 살아가지요.
나도 그대 때문에 생긴
어여쁜 그리움을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내 마음속에 정염이
산처럼 쌓여있습니다.
그대도 때로는 공허감으로 애정의
희열을 맛보고자함을 잘 압니다.
튼실한 연심을 위해
우리의 듬성듬성한 간격이
좁아지는 사이로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찬란한 붉은 장미꽃보다 더 아름답고
찬란한 별빛보다 더 서정적인 그대
그대의 고귀한 마음이
붉은 장미꽃 향기로 다가오기를……
어둔 밤 찬란한 별빛으로 다가오기를
바라는 맘 간직하며 살아갑니다.

간명한 내 생각 줄여서 말씀드립니다.
지구가 아름다운 것은
다함으로 사랑할 너무너무 아름다운
그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거듭 줄여서 말씀드립니다.
지구가 아름다운 것은
그대가 있어 행복할 거라는 예감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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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목 느티나무

박심원

해 묵은 느티나무 시골마을 지키는데
이농인離農人,
젊은 남녀 부리나케 도시로
까치집 동그마니 남아 떠난 미련 덩그러니

뿌리내린 애경사 찬바람 가로막고
사연 엮은 나이테 가지 뻗어 푸르다
한평생
미더운 버팀목 조율하는 화합이여

살다 보니 잦은 이사 사주팔자 탓하며
지팡이 아픈 인생 해거름 긴 한숨
순박한 토박이 부럽다
마음 속 큰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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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 고령

박심원

고령,
산세가 좋아 오백여 년 도읍지
서라벌 센바람에 성곽 흔적 없다
생활촌 그 숨결 따라
꿈나라 방문하다

‘전진하라’
그 함성 오래 전 사라지고

가야금 소리만이 애처로이 한 풀 듯
여전히 그늘에 가린 신비로운 왕궁이여

고분古墳
저승의 관속 호기심 부르는,
끊긴 맥 미궁으로 섬뜩한 순장殉葬 체험
찬란한 유적 박물관은
흥망성쇠 조감도

*경상북도 선사시대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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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담 마을

박심원

도깨비 골목시장 언덕배기 마을은
비좁은 길 심줄처럼 따뜻한 정 푸짐하다

대 이은 헌 집 다닥다닥,
낮은 어깨 나란히

밤이면 별을 향해 그리움 수놓고
낮이면 민들레꽃 머리 들어 빛 바라기

세월이 머무는 쉼터
동화나라 평화롭다

장승배기 벽화마을 봄바람 불어와
땀 흘린 발자취 송두리째 수렁으로,

재개발 아쉬움 달래다
빌딩 너머 고향집

*서울 동작구 상도동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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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박희종

슬픔을 머금은
깊은 물은
만남과 헤어짐을 묻지 않고

눈부시지 않는
깊은 빛은
사랑과 미움을 따지지도 않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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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고 너

박희종

그냥 편하게 살지그랴
살면서
부대끼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세상에나 쯔쯧~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럼 어쩌자는거여

이리기웃 저리기웃
주워 모은 짧은 말들로
나불거려 봐야
나만 피곤하지
그냥
귀머거리 입벙어리되어
앞만 보며 살아가 보드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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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박희종

사람이
사람 만나
어우렁
거드렁거리며 사는 것이
공부중에 큰 공부라는데

사람피해
살으라니
나, 원~참!

산 넘고 물 건너
이제나 했더니만
다시 오르고 건너야만 되는
안개 낀 큰~산과 긴~강

이게 누구 탓인가?
이 모두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아온
내 탓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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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서동안

봄비 오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비로소 열리는 눈빛 속에
사부작사부작, 목련 몸 푸는 소리
그럴 것이다, 꽃이라는 것이
한 숨 돌려놓고
에둘러 목련꽃이라는 것이
겨울이 잠시 눈 지그시 감을 때
좁은 공간을 열고 오기에
골목바람이 봄의 옷깃을 매만지듯이
오는 것이리라, 혹은
신 새벽, 몸을 낮춘 여인의 비밀 훌훌 털어낸
바람의 높낮이를 가름하며
가만 귀 내민
양지바른 담벼락이
정분난 햇살에 사랑 법을 배우듯이
아랫배 끊어질듯 아파오는 초경의 통증에

귀 막고 눈 감아도 명치끝이 아려오듯이 오기에
그럴 것이다
본디 여리고 고운 흰 꽃
얼핏얼핏 가맛바람에 일렁이는 소리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는데
고개 젖혀 우러러보고 있다가
속절없이 열반에 드는 꽃이기에
봄비에 씻기어 가는 세월이
뿌려놓은 한숨까지 까맣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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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 가는 길

서동안

햇살이 말간 날
구름이 길을 비켜간다, 괜찮다는 듯이
올곧게 자란 갈참나무에 자리 하나 내주고
그 곁을 흐르는 시냇물을 위해
길 하나쯤 바깥쪽으로 밀어 넣으며
어머니 손에 매달려간다
가다보면 까맣게 잊고 지냈던 이야기들이
속속 민낯을 드러낸다
아이구! 우리 강아지 왔냐!
외갓집이 아니면 세상천지
이처럼 좋은 이름을 얻을 수 있겠느냐며
바람이 안부를 전해온다
고갯마루에 들면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이
징검징검 세월을 건너뛰어
자가용 타고 마을에 들어서면
허공에 투명한 집 한 채 마련하시여
몇 해 전에 이사를 가신 외할머니 댁
앞서서 구부정히 걸어가시는
어머니의 한이
참꽃 핀 고개 하나만 넘으면 되는데

산자락에 꼭꼭 숨겨둔 구절양장이 된다
신작로 생기고 십 분이면 되는 길을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도 멀고멀었던가
외할머니 비켜 선 장독대 옆엔
나리꽃이 붉어도 한참이나 붉게 피었다
☆★☆★☆★☆★☆★☆★☆★☆★☆★☆★☆★☆★
허물어져 가는 집

서동안

언제부터인가 기억 밖으로 사람들이 사라졌다
세월의 뒤에서 뚝심 있게 버텨온 그 집
생의 여울목에서 그만 허물어져 내린다
그런데도 예사롭게 지나가는 골목 안 사람들
그랬을 것이다, 어디 한 두 집일까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내 기억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도회지로, 도회지로 자꾸만 뒤돌아보면서 말이다
허물어진 흙담 위에 핀 망초 꽃을 보려는 것처럼
아침 추월한 햇살은
이끼 낀 장독대 위에 정 한 수 정갈하니 올려놓고
오랫동안 비어 있어 연기조차 잊어버린 굴뚝 안엔
굴뚝새에게 터전을 내어 주고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은
달맞이 드는 각시를 위해
신방에 투명한 봉창 하나 마련해 놓았는데
사람이 사라지니 모든 게 속절없이 흘러가는구나
아직도 봄날이면 매화꽃 만발해놓고
여름이면 매미들이 귀엣말로 속삭여 주는 사연을
구부정하게 휘어진 감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그 집

마음이 머무는 것만으로도
가슴 따듯한 흔적이 남아 있으려나,
허물어지기 전에 돌아가지 못해 미안하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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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 논 갈아

성진명

나 하나 논 갈아
황무지가 옥토가 되겠냐마는
내가 밭 갈고 네가 논 갈다 보면
들판이 온통 문전옥답이 아니겠느냐

너 하나 벼 심어
창고가 차겠냐마는
네가 벼 심고 내가 보리 심으면
온 나라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
배고픈 사람이 없지 않겠느냐

내가 힘들고 네가 피곤하다고
씨앗을 버리면
이 강토에 먹거리는 없게 되고
우리의 생명권은 남의 손에 넘어가지 않겠느냐

너는 서울로 나는 부산으로
떠나고 나면 사전에 농촌이 지워지고
우리가 돌아갈 곳조차 없어지지 않겠느냐
만고불변의 진리 농자는 천하지대본이니
벗님네들이여 논 갈고 밭 갈아 보세나
☆★☆★☆★☆★☆★☆★☆★☆★☆★☆★☆★☆★
진안에 살어리랏다

성진명

산 높아 청정한 바람
골 깊어 청량한 물
인정이 넘쳐 해맑은 웃음이 가득한
아름다운 고을 진안고원에 살어리랏다

하늘 향해 불끈 솟은 마이산 정기 받아
섬진 어미 데미샘 젖으로 배 불리고
관운장의 기상으로 용담호를 호령하고
부귀산의 영화 누리며 살어리랏다

몸짱 되는 헬쓰장에서 알통 키워
개구리 헤엄치며 수영장에 땀을 씻고
마이정 국궁장에서 주몽이 되고
골프장에서 나이스 샷 팍쎄리고
테니스에 게이트볼 파크골프도 쳐보고
홍삼 먹고 건강한 몸으로 살어리랏다

전수관에서 사랑가 자락에 흥겹고
평생학습고을 요기서 취미, 조기서 소양도 배우고
작은영화관에서 기생충도 잡아보고

복지관에서 익어가는 청춘들과 어울리고
마음도 건강하게 살어리랏다

구름도 쉬어 가는 진안고원에서
정겨운 사람들과 지난 이야기 나누며
진한 사랑에 물들어 알콩달콩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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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성진명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갑자을축병인정묘무진기사경오신미임신계유갑술을해
........................................
신축년에 황소 띠로 태어나
다시 신축년 흰소의 해가 되었다

지학, 약관, 이립, 불혹, 지천명을 거쳐
이순이 되었는데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잃었는지
귓구멍이 작아서
아직도 세상 이치를 잘 모르겠다

지난 세기만 해도 환갑이면
동네방네 떠들썩하게 잔치가 벌어졌었는데
환갑 넘어 칠팔순 청춘들이 늘어나고
느닷없는 코로나 시국에
일가친척, 이웃 친지들과
밥 한 끼도 못 먹었지만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외손주
사랑하는 짝꿍이 인생은 육십부터라며
마련해준 생일상에
돈 케익도 받고, 거나하게 와인도 마시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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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쓴 편지

송미숙

곱게 물든 단풍나무 아래
수줍은 잎새 벗 삼아
그대 그리움 속에
눈물로 쓰는 편지…

아름답게 노을 진 저녁
솔 향기 돌담 사이로
추억하나 하나 기억하며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련다

풀 향기 솔바람에
붉게 물든 가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속 그리움 어루만지면
보내지 못한 편지를 보내련다

가을 가는 길목
어린 겨울이 낙엽을 보듬듯
그렇게 눈물로 마지막 편지를 보내련다

그곳 아픔 슬픔 없는 하늘로
이 편지가 전달될 때면 이곳 온 세상은
설경이 오는 아름다운 겨울이 오겠지…

사랑하는 친구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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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의 꿈

송미숙

내 나라 내 민족이 너무도 그리워
향수 어린 눈물로
내 가슴속에 한 맺힌
높푸른 소망의 꿈을 간절히 호소합니다.

나는 왜 조국을 떠나
외로운 이방인이 되었는가요?
나는 왜 고향을 떠나
그리운 실향민이 되었는가요?

내가 태어난 조국은
무궁화 삼천리 대한민국이요
내가 살던 고향 땅은
청풍명월 해맑은 충청북도 청주요
내가 살던 고향집은
아미타불 극락세계 흥덕사입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은
고려시대 우왕의 충신이며
스님 중의 스님이신 대승의 불제자 백운화상입니다

나의 본명은 직지심체요절이고
나의 출생은 일천삼백칠십칠년도 칠월 생이며
동방의 예의지국 단군의 자손입니다

세계 최고 금속활자로
형형색색 무늬 새긴 찬란한 하늘에
오색 깃발 휘날리는 세계문화 금자탑이여!

온 세상 곳곳마다 직지의 횃불 밝혀
밤낮 피어 있는 향기로운 꽃과 꽃
해와 달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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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직하고픈 시월의 사랑

송미숙

아쉬운 시월에도
나의 마음속에 있는 예쁜 향기가
사랑의 꽃샘 물이 계속 솟아나
당신을 더욱더 깊이 아름답게 사랑하리라

아쉬운 시월에도
배려하는 천사 같은 사랑으로
산처럼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무는 것처럼
나도 그런 사랑 변함없는 사랑을 하리라

아쉬운 시월에도
내 마음이 당신의 사랑으로 변함없이 향하며
오곡백과의 결실처럼 늘 풍성해지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당신의 마음도 곱게 채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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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짓는 여인

안현심

히말라야 옌징에는
소금밭을 일구는 여인이 있어요
열두 살 때부터 소금물을 길어올려
얼기설기 지은 소금밭에 부었다가
햇살과 바람이 빚어주는 결정을 거둬들이며
휘청휘청 통나무계단을 오르내리는 여인,
산맥 너머는 꿈꿔본 적도 없이
강 자락 소금밭이 삶의 전부였어요

복숭아꽃이 산자락을 물들여오는 봄
도화(桃花)소금이 만들어지면

비로소 웃지요
까만 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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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피들의 달빛 애인

안현심

숲속에서 흘러나오는 피리소리가
수련 향기처럼 잠속으로 스며들자
고피들은 감미로운 손에 이끌려 집을 빠져나왔네

연잎같이 생긴 당신의 손을
우리의 가슴에, 머리에 놓아주십시오

하늘에서 큰북이 울리고
꽃 소나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네
크리슈나가 흰 손으로 볼을 만지자
고피들은 주술에 걸린 듯 눈을 감았네
다투어 그의 목에 팔을 감고는
딸랑거리는 팔찌소리와 함께 춤추기 시작했네
정연한 발걸음, 우아한 손동작, 요염한 눈썹,
흘러내린 머리타래, 뛰어오를 것 같은 가슴,
고피들은 옷섶을 풀어헤친 채 노래 불렀네
크리슈나가 한 고피의 허리를 감싼 채
다른 고피에게 입을 맞추자
그녀의 아랫도리가 환희로 들떴네


춤이 광란에 이르렀을 때
크리슈나가 갑자기 사라졌네
고피들은 숲속을 찾아 헤매며
포도나무와 새, 꽃들에게 행방을 물었네

여기에 크리슈나의 발자국이 있다
근데, 작은 발자국이 하나 더 있네?
작은 발자국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 걸 보니
그녀를 안고 간 것이 틀림없어
여기서는 꽃을 따려고 내려놓았을 테고
꽃으로 그녀의 머리를 땋아주었을 거야

그녀는
누구일까, 누구일까?

*바가바타 푸라나??에서 사랑의 기술자로 등장하는
크리슈나 신의 일대기를 인유해왔다.
*고피 : 주를 따르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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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표범의 꼬리

안현심

꼬리방망이에 휘둘리면 안나푸르나 바위벼랑으로 날아가 납작하게 부서져버릴 테지만

휘감기고 싶다, 내동댕이쳐지고 싶다, 굵은 꼬리 동아줄을 잡고 설산을 오르내리고 싶다

송곳니보다 발톱보다도

매혹적인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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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오경숙

먼 옛날 옛적에 쪼꼬만 소녀가 발이 시려워
장화같기도 한 따뜻한 신발 하나 사러 집을 나섰어요 시내 신발 가게를 쓸고 다니다 다니다 끝내는 대인시장 들어가는 길목의 신발 가게에서 내 발에 맞는 왕자표 어린이 부츠를
스무살이 넘어 성인의 반열에 올랐는데 발은 아직도 크지를 않아 성인들이 신는 신발들은 아예 엄두도 못내는 형색이 되고 말았지요
무릅까지 오는 엷은 밤색 부츠는 참 따뜻했어요

첫사랑을 잃어버린 몇 날들은 세상 어디에 가도 오돌오돌 떨것만 같았기에 꼼짝없이 가만히 누워 지냈어요
어느 날 창 밖이 소란스러워
커튼을 젖혀보니 하얀 눈꽃송이들이
함빡 웃음을 지으며 제게 손짓 하는게 아니겠어요

자리를 훌훌 떨고 일어나 울엄마가 주신 용돈으로 산 왕자표 롱부츠를 꿰찼어요
빨간 모자와 빨간 모직 코트차림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복개상가 안에 있는 우리집 계단을 따라 나서니 양볼과 눈썹 입안으로 차가운 알갱이들이 마구마구 들어와 흩어졌던 기운들을 밀어내고 맑은 정신을 돌게 했어요

조금만 걸어가면 북동성당 건너편에 종합 버스 터미널이 자리잡고 있어요
여기에 가면 신세계로 갈 수 있어서 심심할 때, 친척 사촌들이 보고 싶을 때, 버스에 올라 그들을 만나러 갔었지요

그 날도 그렇게 무작정 버스에 올랐어요
늘 그랬던 것처럼 나마냥 앙증맞은 가방 안에서 헤르만 헷세 시집을 꺼내들며 사색하며 연신 창밖으로 흩뿌리는 하얀 눈들과 눈인사도 나누면서 말이지요

얼마나 갔을까요
마침내 선운사에 도착하였지요
경내에 들어서니 눈속에 감추어 있던 동백 꽃잎들이 함빡 웃음을 터트리며 제게 말을 걸어와요 오늘도 너의 예쁜 웃음과 미소 고운 마음 잃지 말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도록 하렴

그럴께
고마워요 동백꽃님
그렇게 약속하니 편해졌어요

대웅전 처마밑 풍경소리
석가레 기둥아래 펼쳐지는 천연의 색색들의 향연에 넋을 놓고 보다가 담벼락에 그려진 탱화를 보았어요

여인의 초상은
마치 우주 삼라만상을 깨우친 듯
알듯 모를듯한 미소 한 점 지으며
제게 말해요

가거라 행하여라
너의 발걸음 걸음마다
너의 사랑 꽃피우렴

아름다운 나의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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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오경숙

흰머리 검정칠한
머리 우에
사뿐히 내려 앉은

그대
이야기 소리에
가만가만 귀 기울여봐

하마 오시려나
이 눈꽃송이에 묻혀 오실까
사흘날 밤 가슴만 콩당콩당

이내 찾아온
그는 바로
우주를 움직이시는 분
내 주 하느님

기억나나요
여보

처음 불러보는
이 단어가 어색하오

당신을 처음 만났던
그 곳의 명칭이
타오르는 강

풍향동 교육대앞
차와 술을 팔던 그 곳에
문을 빠끔히 열고 들어섰더니

저만큼 이마가 훤한
얼굴이 길다란 남자분이
오늘 만나는 사람이었지요

첫 인상을 이야기 할라치면
혜라아빠가 마흔 넘은
큰 집 사촌형님을 모시고 왔나?

사알짝 나이가 들어 보여
워낙 말수가 없는 당신은
아마도 그 날 그 자리에서도

수다스러운 나혼자만
실컷 이야기 했을거란 말이죠!
여보 여보 여보

오늘 따라 처음 불러보는데도
이리 자연스러운건가요?
글구 자꾸만 땡기네

여보
그 날 그 전봇대가 당신인양
키가 원체 크대서 만나본건데

혜라아빠랑 밥이나 한 끼 하자며
교육대 건너편 전봇대에 서서
길다란 하나로 담배를 물며
서있던 당신 키가 182센치 미터
몸무게는 채 60키로를 넘기지 않아
전봇대가 당신인지 당신이?ㆍ

쉬는 날이면 서른 다섯
노총각 당신은 잠이나 잔댔죠!
그 한 마디가 내 영혼을 강타!

절대루 아니 아니 절대
동정은 금물일진대
도시처자인 나 농촌총각 안스러움에

다음날 무등산으로 뫼시겠다는
나의 청을 뿌리치고
당신의 주무대였다는 남원으로

이몽룡과 춘향의 절개가 솔솔 풍기는
남원 광한루길을 거닐었죠!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자세로

당신은 사람 맹키로 저어쪽
나는 남한 사람 맹키로 요어쪽
뚝 떨어진 채로 한참을 그리 하다

백오십도 안되는 키 주인 나
써클모임에 3분 스피치
자기소개 하는 시간였네요

햇볕이 쬥쬥 내리쬐는 날
백오십이 사알짝넘고
우산을 받혀야 하는 날이며

눈보라나 칠라치면
거센 태풍이라도 온다치면
백오십이 될까 말까 해요

너스레를 곧잘 떨었던 나
보건증을 만들려 보건소에서
키를 잴 일이 있었네요

잘 아는 담당자는 쪽지하나 내밀며
키와 몸무게 재오세요
키를 달아보니 이런 된장

근육량 감소로 인하야
백사십오도 안되는 겁네다
어찌 어찌 적은 쪽지를 내밀었더니

수납하던 담당자 왈
몸무게는 어떻게 줄여 줄 수 있지만
키는 전에 기록이 있어 늘려드릴 수가?

나만 간직한 비밀하나 말할께요
여보 있잖아
나의 이상형은 키 백칠십삼 였다우

광주공원 향군회관에서 금요일
여섯시면 써클 모임이 끝나면 근처 다방에서 쓰디쓴 커피 한 잔 후르룩

운명의 고 날이 코끝에 다가왔네
전대 공대 선배 세 사람이 바래다 준 후
집앞에 다다라 악수들을 청하더군요

마지막 세번째 이상형 키 173선배랑
찌르르르 전기가 통하는게 아니것냐구
그 순간 감전되어 정신을 차릴 수가…

나의 일방적인 짝사랑 그리 시작되어
돈없는 자취생 그와 보았던 꿀맛
윤석화가 주연의 연극이며

참 여러날을 그리 만나고
진척이 없어 애를 태웠더니
똑똑녀 광주교대 후배 희숙이 왈

언니가 물어보세요
나 좋아히느냐고
그래 까짓거 용기를 내어보자

시방처럼 하늘은 드높고
대지는 푸르른 참 맑은 날이야
지산유원지를 올랐지 단 둘이

물론 나의 금같은 돈으로
케이블카던가 고걸 타고
가서리 떨어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차마 해서는 안되는 말
나 어떻게 생각해 형?
한참을 고민하는 척 하더니

나는 내적인거보다 외적을 본다
우리 엄마가 냉차 장시를 한다
나가 울 집에서 젤 크다

냉차장시허는 울 엄니도 작고
아부지도 남동생도 여동생도
결혼해 2세를 위해서

그리 말 한 마디로 내가 얻은 것은
이십년을 넘게 작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실을 확인한 날이였다

그렇게
사흗날을 이불 싸매고 누웠다
나흘날 훨훨 털고 일어났더니

오날날
이리 키크고 얼굴은 그럭저럭
마음씨맹큼은 비단이 삼촌 저리가라

여보
우리 더 이상 싸우지 마십다
당신 육십 하나 나 계란 두 판알

예전에 당신의 폭력에
마이지구대에 신고한 후
소장님왈 당신들의 인생은 끝나고

이제 자식들을 위하여 살아가세요
청구한 소장을 주례사 싸인지마냥
건네던 그 날을 기억하시나요

여보
인생은 육십부터 슬로건 아래
살아봅시다

여보
?? ?? ??으로 함께해요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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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우덕희

사형
너를 영원히 제거한다.

어마무시한 국가보안법

법이라는 명분으로
수많은 목숨을 빼앗아간

이 땅에서도
국가보안법이라는 무기로
얼마나 많은 생명을 도륙했던가.

정권의 걸림돌 들을
눈엣가시로 여겨 제거하고자

일제 시대에 이어
이승만이 부활시킨 살인의 도구를

미친 망나니처럼 휘둘렀단말인가
지겹고 지겨운 초록동색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근혜는 제껴두고라도

김대중 노무현 시절을 허무하게 보내고
촛불정권 문재인조차 초록동색이라
여기고 싶지 않은데

무소불위의 미친
살륙의 몽둥이를
제거하지 못한채

믿고 믿었던 너마저
또다시 넘기고 마는가?

(2021. 11. 01 새벽 1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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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꿈

우덕희

어머니 어머니
오늘따라 당신이
더욱 애절하게 그립습니다.

그 마음을 아셨는지
간밤의 꿈에 나타나셔서
갸냘픈 무릎에
손주를 올려 놓으신 어머니

힘드실거 염려되어
내려 놓으시라해도 도리어
꼭 껴안으시며 웃으시는 어머니

어린시절 애지중지
키워주셨던 손주
장성하여 곧 애 아빠가 될
그 어린 손주에게
큰돈을 쥐어주시는 어머니.

제 앞가림 못하는 손주가
저세상에서도 눈에 밟혀
행동으로 보이신 울어머니.

불민한 자식이 당신 손주에게
못해주는 행태를
나무라기 위해서 이실까?

너무도 그리운 어머니
사무치게 보고 싶습니다.
☆★☆★☆★☆★☆★☆★☆★☆★☆★☆★☆★☆★
어머니와 꽃

우덕희

2020년
별세하시던 해의 어느 봄날
따사로운 햇살을 마주하며
마루에 앉으신 어머니

해마다 피우는
마당의 꽃에 눈길 주신 어머니

이쁜 저 꽃들은 봄이 되면
다시 피기를 반복하는데

나는 가면 언제 다시 올까
힘없이 말씀하시는 어머니

그해 가을 어느 저녁 무렵에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시고
기약없이 떠나신 후

매년 봄마다 수수한 꽃으로
다시 오시는 우리 어머니.
☆★☆★☆★☆★☆★☆★☆★☆★☆★☆★☆★☆★
치매꽃

유순예

너도 나처럼 늙어 봐라

이제 좀 살만하니까
말 하는 법도 잊어버리고
옷 입는 법도 잊어버리고
부뚜막 앞에 쪼그려 앉아 감자밥 짓던
먼 기억들마저 가물가물하다
울었거나 웃었거나
아들이 아버지로 보이고
거울 속의 내가 어머니로 보이고
어느 시점에서 멈춰버린
기억들은 꽃으로 변했으니
시들 때까지
마를 때까지
지금처럼 오락가락 살기로 했다

너도 나처럼 피어 봐라
☆★☆★☆★☆★☆★☆★☆★☆★☆★☆★☆★☆★
비 오는 날 문득
이광형

비가 오는데
비에 젖고 싶지 않았다
그 비가
날 울리고 있는 것 같아
난 비를 피하려 했다

비는 날 적시고
난 우는 것처럼 보였다
비가 날 만든 게 아니라
내가 비를 만들었음을
난 알았고
어느새 울고 있음도
☆★☆★☆★☆★☆★☆★☆★☆★☆★☆★☆★☆★
세월이 뭘 모르고 하는 소리지

이광형

도무지 걷고 싶지 않을 때
걸음이 내 발에 맞지 않을 때
난 쉬어야 했어

무던히도 걸음을 재촉했을 때

세월이 내게 말하길
넌 언제 참으로 살거냐고

난 얘기했지
세월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참으로 사는 건
참으로 없다고.

세월이 들었을까
거기서 걸음이 멈추었어
세월이 내게
천형을 내리는 것처럼.
☆★☆★☆★☆★☆★☆★☆★☆★☆★☆★☆★☆★
혼자 아닌 혼자

이광형

혼자 아닌 혼자가
부득이 외로워 할 때
저 쪽 혼자가 바라본다
넌 괜찮아 내가 있잖아

이 쪽 혼자는
주변의 시끄러움에
잘 들리지 않고
저 쪽 혼자를 모른다

혼자가 우리고
우리가 혼자인데.
☆★☆★☆★☆★☆★☆★☆★☆★☆★☆★☆★☆★
우산이고 싶다

이병율

그리움에 젖어 비가 내린다

우산 위에 떨어지는 글씨들
꿈과 사랑을 던진 초록빛으로 쓴 기억
세월의 파편들로 새겨논 유적
빠르게 늙어가는 내 모습에서도
아련한 그대로의 진안중학교 가는 길
까마득한 마음이 열리고
분주한 거리의 우산들이 소리치는
소멸의 항로를 따라 떨리는 심장 소리
우산 위의 빗소리였다는 걸

머무를 수 없어 떠나는 시간
빗소리로 새긴 세월의 기억을 만지며
☆★☆★☆★☆★☆★☆★☆★☆★☆★☆★☆★☆★
그대를 따릅니다

이병율

1592년 7월 진안 웅치골 그 여름
일만여 대군을 앞세워 밀려오는 왜적의 침략
충천한 징 소리로 골짝을 흔드는 일천여 함성
당당한 기백으로 적들을 향한 화살
백마 탄 적장은 쓰러지고
정면에서 창칼로 온몸으로 맞서
파죽지세 밀려드는 적의 예봉은 꺾어지고
조선 정복을 좌절시킨 웅치전투
그 장엄한 감투 정신으로 그 희생정신으로
장렬한 투혼으로 순절한 영웅들이시여

웅치의 공이 가장 컸고 다음이 행주 대첩이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의로움으로 새겨진 기록에 싸인 먼지를 털고
안덕원에서 두목리로 구진벌로 쫓겨
웅치를 넘어 도망치는 통쾌한 그림을 그리며
피 흘린 함성 민족의 맥으로 이어지는
당신의 염원이 스며든 역사의 주춧돌을 놓을 수 있어
호국의 정신으로 무공화꽃이 피어납니다

이름도 흔적도 기록도 무덤도
혼령마저 거두지 못한 처절했던 역사의 현장
조선의 충성스러운 넋을 조상한다(弔朝鮮國忠肝義膽)
적들마저 장렬한 사투에 감동한 호국의 전적지는
인적 없는 바람길이 된 서낭당의 돌무덤으로
치욕의 경술국치 부끄러운 친일의 그늘에 가려
돌이라는 허무로 견디어온 기나긴 세월
그 역사의 땅에서 님들의 투혼을 기록하며
부끄러움은 또 하나의 희망으로
외면했던 어제를 끌어안기 위해
뜨거운 침묵은 슬퍼할 때가 되었습니다

메아리 없는 분노는 님들의 슬픔이었고
슬픔은 절망의 분노로 버티어온 인고
시대의 역경을 넘어 연연히 이어온 침묵
침묵은 함성 기다려야 할 민중의 시대
그 슬픔의 향기는 민족의 혼이 되어
뜨거웠던 열망으로 밝혀지는 의로운 희망
그 곁에 설 수 있는 우리들
겨레의 이름으로 그대를 따릅니다
☆★☆★☆★☆★☆★☆★☆★☆★☆★☆★☆★☆★
출 소

이병율

어느날 아무렇지 않던 시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탐욕으로 망가져가던 나를 처다보며
마스크를 쓰라고
거리를 두라고
답답한 뉴스에 갇힌 옥살이

너울 바다
K방역과 백신 그 부러움
황금빛 일렁리는 가을의 울음으로
세계가 보내는 찬사가 들려온다

함께 달려가는 고속도로
활기 찬 움직임의 희망을 보는 아련한 눈
파란 그름에 흐르는 심연을 본다
☆★☆★☆★☆★☆★☆★☆★☆★☆★☆★☆★☆★
진안 수선루에서

이 비단모래

세상 시끄러운 '소리 닫고
바위 열어
신선되었네

진안
마이산 바람 길 그렁히 불어와
토닥이는 소리

가만 가만
바위 속에 스며
댓잎 소리에 귀를 닦네
별빛 스친
바람으로
몸을 닦네
☆★☆★☆★☆★☆★☆★☆★☆★☆★☆★☆★☆★
그네

이비단모래

꽃 처럼 흔들리며
뜨거운 계절 다녀온 발
돌아와 쉬게 하네

몸 무너지는 줄 모르고
어깨 한 쪽 내주며
기대보라고

날아보라고

간 쓸개 다 바쳐
허공에 만들어 낸
수항리 남자 저 푸른 하늘
☆★☆★☆★☆★☆★☆★☆★☆★☆★☆★☆★☆★
어떤 사랑

이비단모래

거대한
코끼리 떼
쓰나미처럼 바나나 농장
무너뜨린 날에도

3백여 그루
찢어져 누운 그곳에도
사랑
그 귀한 마음은 남아

단 한 그루
우뚝 서 있었다지
어린 새 둥지를 품고

코끼리가 어찌 사랑을
알았겠냐만
어미새의 애절한
울음

저 둥지만은
쓰러뜨리지 말라고
내 새끼들이 아직 날지 못한다는
어미 새 간절한
부탁

바람결에 바나나 잎 같은
코끼리 그 큰 귀에
스쳤을까

그 한 그루 우뚝
둥지 품고
서 있었다네

사랑은
동물도
어린 새끼를 지키는 것

어린 아들 수술실 들여놓고
열 시간 넘게
나오지 않는 문 앞에서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어미라는 이름
벗어던지고 싶었지만

단 하나
통 기브스한 아들의 쉬를
깡통에 받아주는 일

그 힘으로
나는
아들을 지켰네

바나나 초토화된 그 벌판에
어린 새 둥지
그렇게 섰듯

슬픈 푸른 동맥
피 이은 새끼 지키려
황량한 사막에
여덟 번 서 있던 어미

어린 새끼는 지켜달라는
어미 새 그 애절함 거대한 코끼리에게도
통한다는 거

사랑

어미 새 창자가 녹는
사랑이겠거니
☆★☆★☆★☆★☆★☆★☆★☆★☆★☆★☆★☆★
바람의 노래

이점순

굵은 비를 머금은 낮은 구름이
빨리 지나가는 건
세월을 휘감은 버드나무 휘추리가
휘휘씩씩 대는 건
바람의 낮은 휘파람 소리가 있어서이다.

피라미 거슬러 올라가는 강 언덕에
인동 꽃이 멀리서 향으로 오는 건
해 질 녘 서산을 뒤로하고 휘진 그림자로 오는 당신께
따순 가슴을 내어 주는 건
바람이 불어주는 위안이 있어서이다.

네게 없는 사랑을 다독여 주고
내게 없는 인정을 어뤄 주고
밭고랑 고랑에 풀 한 포기 남겨두고
그 풀에 꽃이 피도록
그 풀에 사랑이 피도록

그 풀에 인정이 피도록
바람은 노래를 부른다.
☆★☆★☆★☆★☆★☆★☆★☆★☆★☆★☆★☆★
비빌 언덕

이점순
소의 등짝을 긁어 줄 것은 무엇인가
꼬리로도 긴 혀로도 닿지 않는 가려운 등짝을
그래서 소는 언덕에 대고 시원하게 등을 비빈다.

지게 참으로 가득한 내 삶의 무게를 지탱하느라 고달픈
내 등은 어디에 기대어 볼 일인가

내 잘 난 멋에 취해
허리 곧추세우고 턱도 빳빳이 들고
너 아니어도 돼 난!

머리칼도 허연
주름도 자글자글
허리가 아프니 저절로 숙여지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가고
외롭다
그립다
버릇처럼 잇새로 새나가고

경자년 가을 하늘은 작년처럼 푸른데

콩밭이랑으로 기어다닌 콩벌 레도 여전히 바쁜 걸음인데
내년에 나는 이것들과 별일 없으려나.

쓰륵쓰륵 지나가는 온 몸의 통증은,
파리채 끝으로 긁어주던 등짝 가려움은,
새벽도 안 된 시간에 일어나 서성거리는 나를
지청구 줄 이 누구련가.

이런 내가 비빌 언덕은
이럴 네가 비빌 언덕은
나는 네가 되어주리
너는 내가 되어 주라.
☆★☆★☆★☆★☆★☆★☆★☆★☆★☆★☆★☆★
애정표현

이점순

아버지한테 울 엄마 애칭은 “어이”이구요
엄마한테 아버지 애칭은 “예”입니다.

학교 다녀와 가방도 벗기 전
“엄마”부터 찾던 어린 나처럼
출타했다 현관문을 여시기도 전에
“어이”부터 부르시던 울 아버지

병상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던 때
-“어이” 자넨 나 없으면 어찌 살텐가?
살가움은 부끄러워 평생을 안 쓰시더니
그날따라 당신의 “어이”가 애처로웠나
울 엄마 당신의 “예”가 안쓰러워 한 마디 던지셨다.
-걱정도 마슈, 난 갈데도 많고 오란데도 많으니

울아버지 걱정에 바란 내심의 대답은
-그러게나 말이에요. 당신 없이 나는 어찌 살까요? 그러니 힘내서 더 사시오.
툭 던진 당신의 “어이” 대답은 참 어이가 없어
병상 모서리로 돌아 누시곤

-자넨 참 좋겠네 오란데도 많고 갈데도 많아서!
서운해서 삐진 등엔 안도의 기운.

옛날 옛날 이십 년도 더 지난 그 옛날에 울아버지 울엄마의
옴살진 애정표현!
☆★☆★☆★☆★☆★☆★☆★☆★☆★☆★☆★☆★
진솔 두루마기

이정우

옥양목 한산모시 반질반질 다듬질하고
반달같이 도련꺾어 인두질로 풀칠해서
곱게 지은 진솔 두루마기
앞섶에 햇빛 안고 소매 끝에 바람 담아
옷고름 휘날리며 나들이 가실 적에
뒤따라 송로하고 등솔기 선이 고아
발길을 못 돌렸네
저승의 나들잇길에 햇볕은 받았을까?
바람은 불었을까?
선이 고운 뒤태에 배웅은 받았을까?
아버지 생전에 고우셨던!
그 모습이 가슴만 저려오네
☆★☆★☆★☆★☆★☆★☆★☆★☆★☆★☆★☆★
그는

이종천

그는 담배를 피운다고 했는데 바람꽃의 맛은 향긋하다고 하지만 이른 아침의 찐한 키스의 맛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나는 누리끼리한 골드의 변질된 고인 똥물의 냄새는 이빨사이에서 빠져 나오기도 하지만 구수한 사투리의 오래된 향수였다고 했다 팡팡 터지는 벚꽃 하며 고무신을 거꾸로 뒤집어서 달아난 계절이 허무하다고 뒤돌아 볼 때, 구수한 트로트 음향이 귓전을 맴돌아 울적하다고 했다시골길의 한적한 멜로디처럼, 째즈의 음미처럼, 흐느적거리는 어깨 춤사위처럼 우아하게 찰랑거리는 검은 물결처럼 봄날의 나른한 아지랑이처럼맛의 원천은 입맛이 아닌 달팽이관의 저린 속내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아침보다 오후의 나른한 마디마다 점점이 찍힌 싸한 그
☆★☆★☆★☆★☆★☆★☆★☆★☆★☆★☆★☆★
날개

이중천

하늘을 날아오르는 그리움
저만치 앞서가는 바람에게 데려다 달라고 살짝 웃었지

날개 파닥이며 품속에 숨겨놓은 노래를 들킬세라 가만히 불러보는 동그라미를 그려 봤거든

날개가 있는 듯 기압골에 몸을 의지하고 천천히 미동도 없이 다가가 입술을 포개기도 하며

그림을 그렸지요
날개를 그렸거든요
이미 날개는 가슴속에서 훨훨 날아가고 있어서 그림이 필요 없었어요

꿈길 따라 날아오르던 날개보다
더 좋은 가슴속 날개

그의 바램이었나 봐요.
☆★☆★☆★☆★☆★☆★☆★☆★☆★☆★☆★☆★
질투

이중천

바람이 옷깃을 여미는 꽃눈 내리는 아침이었어왜, 요때 쯤만 되면 3월보다 더 살 속을 파고들까 했는데 아가의 손가락이 꼬물거리며 더듬는 엄마의 젖무덤 속으로 따스한 양지쪽인 듯가쟁이마다 여린 손가락들이 꼬무락거리자 늙은 여자들은 질투를 한다는 걸 알았지그 질투는 살 속을 아리는 아픔보다 더 살포시 옷깃을 열어주는 심성이라 믿게 했거든눈부시게 파란 하늘 온통 꽃눈에다 눈부시게 환호하는 거리마다 멋들어지게 꾸민 젊음이시샘으로 파고든다는 거 알지 못했던 거야.
☆★☆★☆★☆★☆★☆★☆★☆★☆★☆★☆★☆★
눈에서 멀어지면

이필종

매년 칠석날이면 은하 건너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
그 설화는 향수가 되어
밤하늘 푸르게 돋아 오른다

저 은하계 어느 별에는
어머니가 살아생전 써놓은
한 통의 편지가 있으리라

가족 간이라도 왕래가 없으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그렇게 당부하셨던 말씀은 살아있다

힘든 세상 견뎌가느라
그 뜻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는
늦은 후회로 눈물이 맺힌다

이 땅에는 한번이라도 보고 죽으면
한이 없다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가
☆★☆★☆★☆★☆★☆★☆★☆★☆★☆★☆★☆★
한 잔의 차

이필종

푸른 이슬
서늘하게 담아낸
한 잔의 차

비우고 비워가니
는개 걷힌, 아득한 하늘빛,
낮달 그림자가 찬연하다

없어도 있고,
있어도 없는
세월에 주름져간
수 만 갈래 사유로 푸르다

서럽도록 슬픈
격랑의 나그네 길, 그 또한
한 점 이슬이었으리
☆★☆★☆★☆★☆★☆★☆★☆★☆★☆★☆★☆★
할미꽃

이필종

마을 뒷산 무덤가
무슨 할 일, 그리 남겨두셨는지

푸른 이슬로 육화되어
한 송이 꽃으로 오셨을까

울타리 가린 시집살이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은

한 많은 세월, 어머니,
그 어머니의 생이었으니

서릿발 하얀, 세상의
바람 속 길을 또 걷는다
☆★☆★☆★☆★☆★☆★☆★☆★☆★☆★☆★☆★
친구

이호율

친구
그대 눈에 나만 보이기를
덧없는 희망인가

너의 귓가에는
나의 목소리만이
욕심일까

큰일났네
독과점이네

나만 보였으면
좋겠네
☆★☆★☆★☆★☆★☆★☆★☆★☆★☆★☆★☆★
나는 이런 사람이고 싶다

이호율

다정한 글귀로 인사도 하고
윗트있는 문자도 주고 받고
가끔은 이모티콘도

어떤때는 음악도
또 어떤때는 아주 멋진 그림에
글귀를 넣어서
소식을 보내기도 하고

밝은 목소리로 전화도 하고
맛난 음식도 사주고
풍경좋은 곳을 찾아 드라이브도 하고
카페에서 음악을 벗삼아 차 향기에
도란도란 주변 애기를 하고플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이 나였으면 합니다

눈물을 닥아주고
토닥이며 꼬옥 안아주는
멋진 사람이고 싶습니다
☆★☆★☆★☆★☆★☆★☆★☆★☆★☆★☆★☆★
떠나자

이호율

그냥 떠나자
세밀한 계획은 접어두고
숙박지만 정하고…

기대는 조금만하고
여행의 맛은 먹는것 이니
접하지 못한
엄두내지 못한 음식 먹고
그리고 푹신한 호텔에 잠을 청해보자
소주한잔
맥주한잔에 소회를 애기하고
풍경에 멍때리자

갔다와서 또 다시
여행을 꿈꿀 수 있도록
사진이나 찍어두자

사진보며
아 ! 어제를 애기하고
내일을 소망하자
☆★☆★☆★☆★☆★☆★☆★☆★☆★☆★☆★☆★
자연을 사랑하자

전근표

자연을 훼손하는 사람
자신을 죽이고 천추의 한을 남긴다.

나는 새
헤엄치는 물고기
하나하나 모두가 존귀하다.

살생하지 말자
손으로 일궈 얻어지는
곡식 과일 푸성귀
직접 먹이 주고 기르는
날 짐승 길짐승 얼마나 많은가?

하늘과 땅은 알고 있다
인간이 태어난 이유를…
우리가 어찌 공기와 물
숲의 고마움을 모를까 보냐만은

사람아 자연을 사랑하자
우리 모두
잘 난 게 하나도 없다
자연에 안겨 살아갈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
자연을 사랑하자(2)

전근표

자연을 훼손하는 사람
자신을 죽이고 천추의 한을 남긴다.

나는 새
헤엄치는 물고기
하나하나 모두가 존귀하다.

살생하지 말자
손으로 일궈 얻어지는
곡식 과일 푸성귀
직접 먹이 주고 기르는
날 짐승 길짐승 얼마나 많은가?

하늘과 땅은 알고 있다
인간이 태어난 이유를…
우리가 어찌 공기와 물
숲의 고마움을 모를까 보냐만은

사람아 자연을 사랑하자
우리 모두

잘 난 게 하나도 없다
자연에 안겨 살아갈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
청남대淸南臺의 교훈

전근표

게 섰거라~ 이 놈!
거기 가는 길손 이 놈!!
가는 곳이 그 어디냐
생자필멸이라 했거늘

발걸음은 천근만근
두세 푼 오방색 단풍이라
앞선 자 그 누구며
따르는 자 누구더냐

바람 친구 어미 생각
달님 친구 고향 생각
사는 동안 얼마나 한심했던가?
우물물 침 뱉지 말라 않았더냐

금수강산 허리는 동강 나고
검은 구름은 하늘 잔뜩 가려
부끄러움 허드레 꽃향기로 피어나
슬픈 역사의 교훈이 살아 숨 쉬는 곳 청남대

순진한 백성 속이고 빈 수레만 요란했던
분단국 현실에 울고 웃는
현대판 사대주의 종속국가에 안주했던
실패한 교훈을 보고 그런 국가는 이제 그만해야지

하늘의 말씀 귀담아듣고
민들레 꽃씨 세계만방에 흩날릴
우리 가야 할 길은 오직 자주국방 통일 아니던가?
그 어느 누가 감히 우리 앞길 막을쏘냐

자존의 길 희망의 길
영광의 미래역사를 펼칠
영원한 영웅으로 나설 그러한
성공한 대통령이 그리워진다 청남대에서
☆★☆★☆★☆★☆★☆★☆★☆★☆★☆★☆★☆★
글씨 없는 시비詩碑

정재영

얼굴 작아 눈이 큰
입 고운 웃음

눈빛이 시가 되어
번개로 새긴 형상

잊을까 삭아질까
몰래 세운 가슴 속 돌비

아무도 볼 수 없게
속으로 나만 읽는다
☆★☆★☆★☆★☆★☆★☆★☆★☆★☆★☆★☆★
다 그리지 못한 지도

정재영

풀어진 모서리에
좀이 먹은 지도를 보고
가고 또 가면
가보지 못한 숨겨진 곳이 또 나온다

옛 지도로는
바다를 건너
새로운 땅을 찾을 수 없다

모든 사랑은
꿈으로 펼친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
끝이 없는 두루마리 종이에
믿음으로 지도를 그리면서
쉬지 않고 항해를 계속하는 일이다
☆★☆★☆★☆★☆★☆★☆★☆★☆★☆★☆★☆★
불치병

정재영

역병에는 조금
거리를 두라 하는데
이 병은 어찌 할 수 없는 일
이제 어찌 하라시나요

한 두 해가 아닌 날 앓고 있는
사랑 열병 확진자
눈 감지 못해서 숨만 쉬지만
세월의 백신으로도 완치가 안 됩니다

세포마다 배어든 바이러스
한기에 떠는 슬픈 목마름
따스한 햇볕 당신에게
가까이 가까이 다가가도 모자랍니다

다시는 거리 두라는 말
그리 말하지 말아요
손바닥 작은 구름 사이
햇살로 피어나는 미소를 바라봅니다.
☆★☆★☆★☆★☆★☆★☆★☆★☆★☆★☆★☆★
마이산 벚꽃

조준열

오시게
진안 고원 벚꽃 보러 오시게
일찍 피어 늦게까지 번창한
마이산 벚꽃

마이산은 두 귀 쫑긋
하늘의 소리 들으면
벚꽃은 인간들 환희 하늘에 올리는 것
별빛 유난히 밝을 때 피는
마이산 벚꽃은 꽃 중에 꽃

부모님 원앙부부상 타실 때
우리 팔남매 가슴 환하게
그리고 진안 벚꽃 피었으니

오시게
한달음으로 진안 벚꽃으로 오시게
모두 오셔서 올망졸망 꽃이 되시게
☆★☆★☆★☆★☆★☆★☆★☆★☆★☆★☆★☆★
어머니 일기장

조준열

송봉순 여사는 장하고 거룩한 우리 어머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학교 문턱도 못 밟으신 어머니
가난을 울 너머 자꾸 집어 던지며
장독대만 번지르 윤나게 닦으신 어머니
한 생 울음 절반이셨는데

세월이 지나
마령 주민 센터 한글반에서 한글 깨우쳐
1998년 이후 20년 간 일기를 쓰셨다
72권의 일기장엔 삶의 애환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한 인간이 어기차게 지은 역사
열정이요, 끈기요, 용기인 서사
훈훈이 일어선 장한 영혼이러라

어머니 말씀은 공자님 말씀보다 더 귀하여
우리네 팔남매 심금 울리며
밤 이슥하면 별빛에 통할 것이다
☆★☆★☆★☆★☆★☆★☆★☆★☆★☆★☆★☆★
어머니의 코로나 예방약

조준열

89세의 어머니
코로나 19 예방약 만드셨다
고추대, 소금, 물, 대추를 원료로
가마솥에 푹푹 삶아
이름하여 고추대차

우리 8남매에게 골고루
택배로 정성을 붙이셨다

고추대차가 아니라 어머니차
그 차 들면서, 미신 마시듯
매콤한 민간요법 하나
대한민국 제약이 되었다

그냥 어머니 정성
그냥 어머니 은혜
☆★☆★☆★☆★☆★☆★☆★☆★☆★☆★☆★☆★
20~30.

최규영

참, 세상 ㅈ같아서….
먼놈의 세상이 이래
내 어릴 적엔 이렇진 않았는데
내가 떼쓰면
엄마, 아빠가 다 들어줬는데

세상살기 참 더럽네
먼놈의 세상이 이럴까
내 어릴 적엔 이렇진 않았는데
내가 떼 안 써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받아줬는데
아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그랬는데

세상이라고 나가보니
그게 아니네.

군대도 가야 되고, 취직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집도 장만해야 하고

나름 우리끼리 처세도 해야 하고
엄마 품 벗어나니 만만치 않네

거기에다 꼰대들은 뭣도 모르면서
우리를 철부지라 하는 거야
우린 철부지가 절대 아닌데
돌아가는 판 알건 아는데

울 엄마, 아빠도 전에 그랬어
너는 잘못한 것이 없노라고
네가 최고라고

그래, 그럴 거야
이건 다 세상 탓일 거야
이건 다 꼰대들 탓일 거야
이건 다 정치 탓일 거야

울 엄마, 아빠도 전에 그랬어
너는 잘못한 것이 없노라고
네가 최고라고….
60~.
저항할 수 없는 폭력아래 살다보면
그 폭력에 동화되고 그 폭력을 미화하게 된다.
-스톡홀름 신드롬

내가 사업하던 시절 호황이었다.
독재니 뭐니 했지만
그게 나와 무슨 상관

내 공직자 시절 할만했다.
강압행정, 계도행정 말 많았지만
그때는 관주도였으니깐

내 기자 시절 할만했다.
세상이 온통 야바위판이었으니
황금어장 따로 없었다.

내가 동네 유지 시절 할만했다.
적당히 시류를 타면
관에서도 대접 잘 해줬지.

내가 거지생활 할 때가
차라리 그립다.
그 때는 내가 젊었거든.

언론개혁, 검찰개혁?
그딴 거 내 밥 안 먹여준다.
그보다 집값이나 잡아라.

노동자 인권
최저임금, 주 52시간?
이래가지고 사업하겠나?

그래, 차라리 개혁을 해라!
180석 줘봐도 쓸 줄 모르는
ㅂㅅ같은 놈들….

순응하며 적당히 살면 그만이지
잘난체 하는 꼬락서니들라니
이건 내가 살던 세상이 영 아닌거라.

아니, 내 한평생 내 입으로
하던 말들이 있는데
다 늙어서 나를 부정할 수는 없지.
☆★☆★☆★☆★☆★☆★☆★☆★☆★☆★☆★☆★
그대 내게 물으신다면

최옥경

그대 내게 오리 길
걸어 줄 사람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런 사람 찾아 헤매기보다
내가 먼저 십리 길이라도
함깨 걷는 이가 되고 싶어요

그대 내게 슬플 때
함께 울어 줄 사람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런 사람 찾아 헤매기보다
내가 먼저 뼈아픈 눈물
닦아 주는 이가 되고 싶어요

그대 내게 기쁠 때
함께 손뼉 쳐 줄 사람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런 사람 찾아 헤매기보다
내가 먼저 따뜻한 손 내밀어
기뻐해 주는 이가 되고 싶어요

그대 내게 진심으로
기도해 줄 사람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런 사람 찾아 헤매기보다
내가 먼저 온 마음 기울여
기도해 주는 이가 되고 싶어요
☆★☆★☆★☆★☆★☆★☆★☆★☆★☆★☆★☆★
감나무

최옥경

불평 한마디 없이
내 남루한 겉옷
쓸어 담는
그댈 위해
기쁨 되리
☆★☆★☆★☆★☆★☆★☆★☆★☆★☆★☆★☆★
뒤돌아 나오는데

하광호

자운영 푸른 물결 넘실대던 내 고향 은천
자전거 타고 동내 한바퀴
곳곳의 향수도 묻어나고 그리움 가득
흙먼지 날리던 신작로 길
벚나무 매미 되어 버찌에 홍당무
묵밭은 주인 없고 갈대만 넘실거린다.
하늘엔 별이 총총 들판엔 밤마다 개구리 합창대회
개골 개~골 개골…
모심는 날 아버지 형님 함께 나는 주~울
사자골 밭은 어머니 놀이터다
새소리 바람소리 새털구름 마음은 한숨만
은천 숲은 마을 어르신들의 보금자리
옛 집터를 둘러보니 꽃들이 만발 어서 오라 손짓 하네
집은 간데없고 기억만 떠올라 한참 우두거니 눈시울만 가득
뒤돌아 나오는데,
안방에서 아버지 어머니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
금낭화

한숙자

동짓섣달 기나긴 밤을
꼬깃꼬깃 주름 접으며
한없는 기다림일레라

생의 마디마디
그리움의 망울 매달아
간절한 염모를 내거는 지등

임은 천리 밖에 계시는가
쑥국새 울음 앞산 능선을 넘어
어둠 짙은 게곡을 건너고
봄바람 한 줄기 굽이쳐 오는데

동구 밖에 마중 나서러
가슴 활활 열고 붉으레 볼 익혀
전설의 설원을 넘던 선구자인 그대

마중 기에 청사초롱 줄줄이 매달리라
주머니 주머니 꼭 모아 쥔 사랑의 금낭화
☆★☆★☆★☆★☆★☆★☆★☆★☆★☆★☆★☆★
여름날

한숙자

아침 햇살 펴듯 마당에 멍석깔아
빨강 고추 널어놓고
이웃집 마실간 아낙네

심술궂은 먹구름 천둥 번개 앞세워
소나기 한줄기 퍼붓고 지나가니
마실간 아낙네 잰걸음 달려와
젖은고추 걷을 때

천둥에 놀라 토방 밑으로 숨었던
삽살개 어정어정 기어나와
젖은 몸 떨어내는 여름날 오후 한 때
☆★☆★☆★☆★☆★☆★☆★☆★☆★☆★☆★☆★
한벽루

한숙자

한여름 선비들 모여 시詩 한 수 읊던 누각
한내천 맑은 물에 참게 잡으며
물장구 치고 물놀이 하던 어린 시절

아낙네들 빨래하며 동네 이야기 꽃 피던 곳
여름밤 몰래 나와 여인들 목욕할 때
반딧불이 불 밝혀 함께 놀던 한벽루

지금은 옛 선인 사라지고
세월만 흐르고 흐르다 보니
냇물 고기 오모가리 탕이
낯선 손님들 반가이 맞이하네
☆★☆★☆★☆★☆★☆★☆★☆★☆★☆★☆★☆★
그리운 아버지

황현화

봄 다 가는데
앞마당 감나무 가지엔
기척이 없다.

매미 부르며
풀벌레 소리도 모두 품고
가족과 반갑게 손 흔들며
일어나야 하는데…

지난겨울 아버지 시간표처럼
생이 마감되었나?

열매는
주어진 시간에 맺어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
빗소리 되어 내린다.
☆★☆★☆★☆★☆★☆★☆★☆★☆★☆★☆★☆★
난 알아요

한숙자

몽구리 단정한 잔디밭
매미 풀벌레 소리 멋진 하모니
여유로운 물새들의 두빛나래

우리 집 내음 녹아있는
내 가족 살던 곳 두루 다녀와
마음을 만져주는 물

한숨 사그라들고
뼛속까지 좋은
연밭 둘레길 포근한 기운

아 너무 좋다.
용담호 자연 생태습지 공원
여기서 쉬어가자
☆★☆★☆★☆★☆★☆★☆★☆★☆★☆★☆★☆★
마스크

한숙자

가장무도회처럼 눈만 보이는
요즘 사람들 풍경

분칠 안 해도 가려지는 주근깨
표시 안 나게 흘리는 눈물.
손대지 않고 하는 하품
벗이 된 마스크

알록달록해지는 색상 속에서
긴장하며 숨 멈추게 하는
턱스크와 맨 얼굴
또 몇 박스 택배로 주문

그때는 몰랐던 노래
한켠에 모아 꾹꾹 눌러도
함께 흐르는 불안한 마음

아무리 긴 장마도 끝 있듯이
곧 돌아오겠지
얼굴과 얼굴 마주할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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