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만년필/정현숙
먼 길을 떠나시며 내 손에 쥐어주신
아버지 일부였던 생전의 만년필은
한 번도 꺾이지 않은 직필의 붓이었다
흐릿한 등불아래 안경을 고쳐 쓰며
그 많은 거친 세월 밑줄을 그어 오신
아버지 얼룩진 먹물 지워지지 않습니다
막막한 습작의 삶, 원고지 칸 건너가듯
세상일 힘들어도 되돌아보면 먹물 한 자락
오늘도 참회하듯이 시 한 편을 올립니다
백지를 메워가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온몸의 가장 깊은 시간을 가로질러
아버지 만년필 잡고 언덕 하나 넘습니다
-좋은시조 2026년 봄호에서.
정현숙 시인이 쓴 아버지의 만년필은 먼 곳으로 가신 아버지에게 올리는 사연 깊은 편지글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다.
아버지가 쓰던 만년필은 곧 아버지의 말씀으로 축약된다. 그것은 부정 앞에서 꺾이지 않는 올곧은 직필의 붓이었고 거친세월에 밑줄을 친 문구였다.
글을 읽어 가면 애잔하고 그립다. 아버지에 대한 추억의 만년필이 오늘의 나에게 시조창작 이라고 하는 숭고한 삶의 현장이 되고 있다.
이는 아버지의 말씀이고 가르침이다. 허투루 쓸 수가 없거니와 창작의 알부민이요 고마운 만년필이다.
어쩌면 글발이 앞으로 안 나갈 때는 저음으로 들려오는 아버지의 한 말씀이 들려올지도 모른다. 삐이~~ 하고 울리는 耳鳴처럼 말이다. 모처럼 아버지에 관한 글이 올라와서 반갑기도 하다.
비록 아버지는 먼 곳으로 가셨지만 만년필 이라고 하는 문구를 통하여 부녀지간의 정을 담고 살아간다. 고인이 두고 가신 유품 하나가 이렇게 소중하고 아름답구나.
그런 끈을 잡고 이렇게 좋은 시조창작을 하면서 살아가는 정현숙 시인은 행복하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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