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 여은 정연화
겨울방학이면
도시로 유학(?) 갔던
중학생이던 우리가
남학생 여학생 구분 없이
저녁밥을 먹은 후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알게 모르게 무서워
아버지는 안 계시고
어머니만 계시는
영선이 집을 아지트로
겨울방학 내내 모여서 놀았다
컴퓨터도 없고
TV도 귀했던 시절
놀이라고 해봐야
이불밑에 다리 쭉 펴고
늦은 밤까지 마르지 않는
이야기꽃을 피운 게 전부였다
때로는 뜨개질을 했고
때로는 민화투를 했고
삶은 꿀고구마를
살얼음 어린 동치미와 함께 먹으며
무슨 웃음이 그렇게도 났는지
그렇게 놀다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길을 환하게 비추던 하얀 달빛
그 달밤의 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시절이 그립다
영선이 시집가고
창수 장가가고
인혜 시집가고
수일이 정호 장가가고
나도 결혼하고
누구는 이민 가고
누구는 명이 짧아
일찍 세상과 하직하고
같은 하늘 아래에 살지만
만나는 게 쉽지가 않네
겨울이 오면
하얗게 부서지는 달빛을 보면
아름답고 아련한
순수했던 그때 그 시절이
불현듯 그리움 물든
겨울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미지창에서 다운받은 사진입니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