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은 젊을 때 아껴야 한다 |
/ 정 호 승 /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월간 《샘터》에서 1980년대는 기자로, 1990년대는 외부 필진으로 활동하며 따뜻한 글을 남겼습니다.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당선된 1973년부터 지금까지 50년 넘게 마음을 치유하는 서정적인 언어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대구에 '정호승문학관'이 있습니다. |
| 인생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사람마다 삶의 가치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겠지만 인생을 형성하는 가장 공통적인 요소는 시간이다. 인생은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은 인생의 어느 순간 '아, 인생은 이런 거구나' 하고 각자 깨닫는다. 나름대로 인생의 정의(定義)를 내리게 된다. 그런데 가장 기본적인 인생의 정의는 '인생은 시간이다'이다. 예전에는 설날에 동네 어른들한테 세배를 다녔다. 나는 내심 세뱃돈에 관심이 있었으나 어른들은 세뱃돈보다 덕담(德談)하시기를 좋아했다. 어른들이 하시는 덕담 중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은 인생의 시간에 관한 말씀이었다. "인생은 짧아. 순식간이야. 젊을 때부터 시간을 아끼고 소중히 생각해야 돼." 세뱃돈이나 맛있는 과자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어른들의 그런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해마다 듣는 잔소리쯤으로 치부해버리고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 시간이 흘러 스무살 즈음에 읽은 어느 책에서도 인생의 시간에 대한 여러 말씀이 있었다. '인생은 짧다. 어느 정도 짧은가. 작은 새 한 마리가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포르르 날아가는 시간.' '백마(白馬) 한 마리가 열려진 대문 틈 사이로 휙 지나가는 시간.' '부싯돌을 켤 때 반짝 켜졌다가 꺼지는 불꽃과 같은 시간.' 나는 이런 말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아, 인생은 짧은가보다' 하고 무심히 지나쳐버렸다. 단 한 번도 가슴에 새기거나 담아두지 않았다. 오히려 20, 30대 때는 인생의 시간이 지루하기까지 했다. 그 지루함을 견디는 일 또한 힘들었다. 견딜 수 있어야 쓰일 수 있다고 하지만 내 인내심은 늘 바닥이 나곤 했다. 젊은 날의 착각 내 인생에 처음으로 견딤이 필요했던 시기는 20대 초 군 복무할 때였다. 1970년 2월, 신병훈련을 마치고 배치받은 공병부대로 가자 일주일 뒤 제대한다는 한 병장이 나를 불러세웠다. "어이, 정 이병. 넌 언제 제대하나?" "네, 1973년 초입니다!" 나는 병장의 질문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하하, 1973년? 그때까지 언제 기다려. 잘해봐, 응?" 하면서 내 어깨를 툭 쳤다. 주위에 있던 다른 병장들이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때 견뎌야 할 세월이 얼마나 아득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육군 복무기간이 18개월이지만 그때만 해도 36개월이었다. 제대하려면 꼬박 3년을 참고 견뎌야 했다. 그래서 군모에 '세월아, 구보로!'라고 쓴 병사가 있는가 하면 '백인(白忍)'이라고 쓴 이도 있었다. 나는 모자 안쪽에 '참을 인(忍)’ 자 세 개를 썼다. 한 해가 지나면 한 자를, 또 한 해가 지나면 또 한 자를 지웠다. 그러나 글자 한자 지우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지루한 인내의 시간을 보낸 탓인지 나는 젊을 때부터 도무지 시간을 아낄 줄 몰랐다. 조금만 힘든 일이 있어도 '쇠털같이 많은 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라는 생각을 곧잘 하곤 했다. 심지어 그런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기까지 했다. 20여 년 전, 내가 도서출판 '현대문학북스'를 위탁 경영할 때의 일이다. 오후 6시가 되어도 해야 할 일이 좀 밀리면 몇몇 직원들은 퇴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쇠털 같은 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룹시다!" 하고 퇴근을 종용했다. 어떤 때는 "시간이 좀먹지 않는다니까!" 하고 덧붙여 말할 때도 있었다. 지금은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소의 몸에 난 털은 너무 많아 도저히,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인생의 시간이 그만큼 많다고 여긴 것은 젊은 날의 내가 한 잘못 중에서도 가장 큰 잘못이다. 지금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인생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짧다. 언제 어느 순간에 내가 70대 중반을 넘은 나이가 되어버렸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매번 10년이 1년처럼, 1년이 한달처럼 지나가 버렸다. 나는 일흔이 된 새해 아침에 큰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내가 일흔이 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내가 일흔의 나이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침대 모서리에 앉아 짧은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 저로 하여금 다시 예순이 되게 해주세요!" 아무리 짧은 기도가 하늘에 닿을지라도 이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았다. 뼈저리게 후회된다. 어른들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젊음을 아껴야 했다. 그러나 과거라는 시간은 결코 새로 주어질 수도 변화할 수도 없다. 젊음은 시간이 자산이다. 어쩌면 사랑보다 더 귀한 자산이다. 시간이 있어야 사랑도 할 수 있다. 시간은 젊음 때부터 아껴야 한다. 시간을 확보하고 소유하는 방법은 그 방법밖에 없다. 내가 하고 싶고, 되고 싶은 삶의 꿈과 목표는 젊을 때 기초를 닦고 준비해야 한다. '목표를 세우면 목표가 나를 이끈다.' 젊을 때는 이 말이 유효하다. 목표를 세울 때는 보다 젊을 때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젊을 때 세운 목표는 목표 그 자체가 목표를 이끌어준다. 그러나 젊음이 지나간 뒤에 세운 목표는 목표가 나를 이끌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생이라는 물리적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늙음은 시간의 소멸을 의미한다. 무엇을 준비하고 목표를 세우고 이룰 시간이 없다. 보다 젊은 날에 삶의 목표를 세우고 시간을 황금처럼 아끼는 이가 가장 슬기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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