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사의 기쁨과 슬픔 |
| 신욱의 서재 |
바느질 작업실 한편에 천장까지 쌓인 책을 보고 손님이 묻는다. "이 책은 다 사장님 거예요? 이 많은 걸 전부 읽었어요?" 이제부터 조금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신욱의 서재'라고 이름 붙인 이 공간에는 바늘소녀 공작소의 시작을 이끈 한 친구의 책이 모여 있다. 꿈이 있지만 어떻게 이뤄야 할지 몰라 막막하던 20대 초반, 어느 저녁에 약속이 있다며 외출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모임에서 밥을 먹고 근처 카페에 왔는데 커피 한잔하러 오지 않겠냐는 물음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자리에 신욱이 있었다. 대학 교수인 그는 나에게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돈을 모아 가게를 차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되물었다. 만약 돈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잘 해낼 수 있겠냐고. 나는 잠시 생각한 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럼 내가 무이자 할부로 돈을 빌려줄 테니 시작해 볼래?" 신욱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좋은 어른이다. 넉넉지 않은 집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병으로 척추가 소나무처럼 휘고도 누구보다 단단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꿈이 있는 누군가를 위해 쓰려고 모아 둔 돈이 있으니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는 말을 남겼다. 지금 돌아보면 모든 일이 짜인 듯 순식간에 일어났다. 나는 고민 끝에 가게를 열기로 결심했고, 때마침 지인에게 전주 한옥 마을에 있는 집을 소개 받았다. 장대비가 내리던 밤, 갑작스럽게 찾아간 그곳은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그려 온 가게와 똑 닮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신욱의 도움을 받아 바느질 작업실을 열었다. 이전에도 틈날 때마다 손으로 사부작사부작 만든 것을 팔아왔지만 가게를 운영하는 일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뜻 모를 무례함에 상처받거나 마음 같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가게를 통해 맺은 좋은 인연이 바느질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어려움이 있을 때도 따뜻한 힘을 주며 앞으로 나아가도록 했다. 그렇게 15년이 흐른 지금, 바늘소녀 공작소는 여전히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 "슬기야, 이렇게 깊고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라면 나이와 상관 없이 친구가 될 수 있어." 고등학생인 내게 신욱이 건넨 말이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은 그 말이 가게를 운영하며 만나는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됐다. 나이와 성별, 직업 등 사회가 규정하는 틀에 갇히지 않고 한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랜 벗을 기억하는 신욱의 서재를 곁에 두고, 오늘도 마음을 담아 한 땀 한 땀 세상에 하나뿐인 당신을 위한 특별한 소품을 만든다. 이곳은 나의 공간이 아닌 모두의 공간, 이제는 흔적만으로 세상에 남은 신욱의 마음을 이어받아 존재 자체로 충분히 빛나는 이들을 위한 둥지가 되고 싶다. 윤슬기 | 바늘소녀 공작소 대표 사람을 마주하는 일 장사를 오래 하다 보면 도가 틀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여전히 서툴다. 뭐랄까, 장사에는 익숙해졌지만 사람은 늘 새롭다. 매일 다른 얼굴과 다른 말투, 다른 분위기. 그 앞에서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요즘은 비대면 주문이 익숙해서인지 손님들의 말이 점점 짧아지는 것을 느낀다. 무뚝뚝함을 넘어 '응답 최소화'라는 표현이 더 알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시대에 '요' 하나의 존재감은 생각보다 크다. "어떤 메뉴로 드릴까요?"라는 물음에 두 가지 대답이 돌아온다. "바닐라." 혹은 "바닐라요." 같은 뜻을 담고 있지만 온도는 전혀 다르다. '요'는 마치 미세하게 남은 배려의 조각 같다. 그 작은 말 하나에 마음이 스르르 녹을 때도 있고, 이 일이 참 좋다는 감정이 불쑥 피어오를 때도 있다. 너무 짧은 말에 마음이 툭 끊어지는 순간도 있다. 별다른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닐 텐데도 생각보다 오래 남아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그러고 나면 잠깐 동안 사람이 더 어려워진다. 그래도 결국 사람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한다. 가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 동네 중고등학생 손님이 자주 들르기 시작했다. 책가방을 메고 수줍게 웃는 얼굴로 어떤 맛이 있는지 묻는 것도 쑥스러워하던 아이들이었다. 그중 몇몇은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됐고 누군가는 사회인이 됐다. 군대에 가고 학교를 졸업하고 멀리 이사 갔다가 다시 돌아와 가게 문을 연다. "사장님, 저 취업했어요!"라며 인생의 큰 변화를 전하기도 한다. 그 순간을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찌르르해진다. 이 작은 가게가 누군가의 인생에 한 조각쯤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고맙다. 손님과 주고받는 말에는 계절이 묻어 있다. "오늘 날씨 진짜 덥죠." "습해서 그런지 차가운 게 당기네요." 그런 인사가 오가는 날이면, 기온이 아니라 체온을 주고받은 느낌이 든다. 짧은 대화에도 서로의 시간을 나눴다는 것을 나중에야 문득 깨닫는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왜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을까. 계절을 오가며 사람을 만나는 일이 내게 어떤 의미일까. 분명 더 편한 일도 있을 텐데.' 그 질문의 끝에는 언제나 같은 답이 있다. 이 일을 좋아하니까. 그리고 내가 만든 아이스크림이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위로가 된다는 것을 믿으니까. 가게 문을 닫기 전, 진열장 위를 천천히 닦는다. 그곳에는 오늘 하루 동안 주고 받은 말과 눈빛 그리고 온도가 눅진하게 남아 있다. 손님이 없는 매장도 결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런 고요함도 장사의 일부다. 나는 결국 이 모든 것이 '교환 거래'라고 생각한다. 돈과 물건뿐 아니라 마음과 마음의 교환. 그 마음이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손님에게 남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괜찮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녹기 전에'라는 이름처럼 그 짧은 순간을 잘 붙잡고 싶다. 작지만 따뜻한 거래의 순간을 아주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박정수 | 녹기 전에 대표 |
Joy - Touch By Touch 💥💃🎆 shuffle dance m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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