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종이 준 것

작성자망실봉|작성시간26.06.10|조회수169 목록 댓글 5
낭종이 준 것

  지난가을, 갑자기 치과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치과 공포가 있어서 어린 시절 받았던 아말감 치료 이후 병원에 발길을 끊은 지 어언 이십여 년이었다. 치과 치료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그 정도가 유독 심했다. 그래서 더 양치에 집착하고 치아 상태에 예민하면서도 절대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잘 모르겠다. 마침 장편소설 원고를 마친 다음이라 시간 여유가 있기도 했고, 너무 오래 치과에 가지 않았으니 충치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40대 후반이니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버린 것 같은데, 나머지도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마음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찾아간 요즘 치과는 내 기억과는 꽤 달랐다. IT 스타트업 같은 인테리어에 잘생긴 원장은 일타 학원 강사처럼 보였다. 파노라마 엑스레이를 먼저 찍고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잠시 후 나타난 의사가 내 엑스레이를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충치가 있나요?"
 
  내가 묻자 의사가 답했다.
 
  "아뇨,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의사가 가리킨 곳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빈칸 같기도 하고, 동굴 같기도 한. 낭종이라고 했다.
 
  "빨리 큰 병원에 가서 제거하셔야 해요."
 
  자세한 낭종의 정체는 조직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가만히 두면 점점 커지면서 다른 치아의 뿌리와 턱뼈를 녹일 거라고 했다.
 
  "보세요, 이미 많이 녹았잖아요."
 
  뭉툭하게 짧아진 왼쪽 어금니 뿌리를 보며 의사가 말했다.
 
  심란한 마음으로 찾아간 대학병원에서는 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낭종이 크고 위치가 좋지 않아 턱뼈를 잘라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턱뼈를 절제하고 낭종을 제거한 다음, 턱뼈 사이에 철심이나 플레이트를 박아야 할 수도 있어요."
 
  의사가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나는 다시 물었고 대학병원 의사가 답했다.
 
  "신경이 손상될 수 있고, 회복도 오래 걸리죠. 먹거나 말하기도 어렵고요."
 
  학기 중이었기 때문에 수술은 방학 후로 잡았다. 그리고 새해 첫 달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았다. 입원도, 수술도, 전신마취도 모두 처음이었다. 소식을 들은 누군가는 말했다.
 
  "지금까지 운이 좋으셨네요."
 
  들을 땐 조금 섭섭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걱정했던 최악의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낭종과 치아 두 개를 제거했다. 신경도 아직 살아 있었다.
  
  반전은 마지막 날에 일어났다. 퇴원을 준비하며 확인차 마지막 엑스레이를 찍고 주치의를 만나러 갔는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죄송하지만 봉합 부위 안에 사랑니 조각이 남아 있네요."
 
  놔두면 염증이 생기고 뼈가 차오르지 않으니 지금 당장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이요?"
 
  당황했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왜 악당은 한 번에 죽지 않는지. 곧장 그 자리에서 봉합 부위를 다시 절개하고, 조각을 찾아 꺼내고, 재봉합하는 짧은 수술을 받았다. 이제까지의 모든 치과 트라우마를 합한 것보다 더 큰 경험이었다.
 
  작은 수술이었지만, 과정과 순간마다 새삼 느낀 것이 많았다. 이를테면 우리 안에는 늘 소리 없이 자라는 무엇이 있다는 것. 남아 있던 마지막 사랑니 조각처럼 한 번에 없애기 어려운 장애물도 있다는 것. 고통으로 가득하다는 점에서 병원은 세상이고 세상은 곧 병원이기도 하다는 것. 무엇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고통에는 언제나 숨겨진 의미가 있다는 것.
 
  퇴원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 창밖으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은 어딘지 낯설고 달라 보였다. 아마도 그건 내 안의 풍경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었다. 나는 시트에 몸을 묻고 마치 새로 태어난 아기처럼 몸을 웅크렸다.
 
  문지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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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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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망실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0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동트는아침 | 작성시간 26.06.10 좋은글 감사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망실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0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방문 걸음 감사합니다 ~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핑크하트 | 작성시간 26.06.10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감동방에 좋은 글 고맙습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편안한 쉼 하세요
  • 작성자김종승 | 작성시간 26.06.11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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