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 오늘의 나

작성자망실봉|작성시간26.06.14|조회수176 목록 댓글 7
 만남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너무나 귀한 만남이 있다. 가족, 스승, 귀인, 음악의 동반자, 그리고 내 소리와 음악을 사랑해 주는 소수의 팬들. 이 만남을 지나고 보니 모든 게 축복이었다. 그것은 내가 애써 찾은 만남이 아닌 감사하게도 삶에서 만나진 귀하디귀한 인연이었다. 글을 쓰다 보니, 수많은 그리운 이들이 스쳐지나간다. 그들을 만나서 나는 지금의 나로 살아가고 있다.



이응광 바리톤·이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성악으로 대학을 준비하던 고3 시절, 당시 국사 과목 담당이었던 27세의 장영은 선생님이 우리 반 부담임으로 부임하셨다. 대구에서 김천으로 오신 선생님은 젊은 감각으로 시커먼 우리들을 리드하셨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몸이 좋지 않아 양호실에 누워있었던 어느 날, 선생님은 나를 보고 "네가 전교 학생회장이니?" 물으셨다. 내가 성악 전공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 선생님과 짧은 대화를 나눴는데, 입시에 대한 절실함이 엿보였는지 선생님은 김천 시내에서 밥을 사 주겠다며 면담을 제안하셨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던 나에게 있어서 외식은 고작 떡볶이와 튀김, 김천 시내에 유일하게 있었던 롯데리아 햄버거가 전부였다. 선생님은 김천역 앞 경양식 돈가스 레스토랑으로 나를 부르셨는데, 당시 그곳은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절대 갈 수 없었던, 지금으로 말하자면 3스타 미슐랭 레스토랑이었던 것이다. 식사와 함께한 면담 시간은 19년 내 인생의 고해성사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선생님은 이응광이라는 학생에게 깊이 마음을 써 주시기 시작했다.

 
  내 꿈은 연세대 성악과라고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따로 시간을 내서 담당인 국사 과목 외에도 국·영·수 과목을 틈틈이 가르쳐 주셨다.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과외였다. 내가 애처로워 보였는지 아니면 조금만 도우면 확실히 잘 클 것 같아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열성적으로 도와주신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부단히도 열심히 공부했다. 선생님의 영향력은 비단 공부뿐만이 아니었다. 성악가는 절대로 날씬하면 안 된다며 주말마다 보신탕을 사 주셨는데, 그때 찐 살이 아직도 빠지지 않는다. 보신탕의 저주인가. 식당 이름도 잊을 수 없다. 털보식당. 나처럼 식당 주인도 얼굴에 털이 많았나 보다. 내신이 중요했던 그 시절, 어느덧 2학기 중간고사가 다가왔다. 일주일 동안 2시간만 자고 노력한 결과 나는 난생처음 전교 1등을 했고, 이후 기말고사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나에게 서울대 수시에 원서를 내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원서를 내고 1차 서류 심사에 합격해 서울대 2차 실기 시험장에 보호자로 동행까지 해 주셨다.
   
  서울예고생을 포함해 전국 7명의 학생이 한자리에 모여 치른 서울대 수시 결선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서울예고 남학생 테너 1명만이 합격이었다. 수업 시간에 불합격 소식을 들은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리고는 운동장으로 나와 미친 듯이 달렸다. 아쉬움에 눈물도 났다. 너무나 열심히 노래했는데, 너무나 절실했는데, 서울대에 가야 등록금이 적게 나올 텐데….
 
  선생님은 나를 위로해 주셨고, 곧바로 수능시험 준비 모드로 태세를 전환했다. 내신보다 수능에 약했던 내가 다행히도 평소 모의고사 점수보다 60점가량 오른 높은 수능 점수를 받게 되었다. 시험 후 선생님은 독일 리트의 대가 박흥우 선생님이 무대에 오른 서울 독일문화원의 공연장으로 나를 인도하셨다. 슈베르트의 3대 연가곡을 시리즈로 독창회를 구성했는데, 여전히 그 리사이틀은 성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역사로 회자된다. 선생님은 이탈리아 가곡보다 독일 가곡에 대한 해석과 표현이 부족했던 나를 박흥우 선생님 개인 스튜디오에 데려가 주셨다. 두 달 정도 남은 정시 실기 시험까지 레슨을 부탁하신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선생님은 두 달 치 거금의 레슨비를 박흥우 선생님에게 전달하셨고, 박흥우 선생님은 나를 이미 자기 제자로 생각하고 계셨기에 레슨비 그대로 되돌려 보내셨다고 한다.
 
  나는 서울대와 연세대 정시를 모두 치렀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은 보호자 역할을 해 주셨다. 연세대가 먼저 정시 발표를 냈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렇게 꿈꾸던 합격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기쁨도 잠시, 비싼 등록금 걱정으로 깊은 시름에 잠기셨다. 일주일이 흘러 선생님과 식사하던 중 서울대 합격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세상에 그냥 합격이 아닌 장학생으로 합격한 것이 아닌가. 당시 서울대는 실기 50, 내신 40, 수능 10의 비율이었는데, 내신 덕분에 장학생이 된 것이다.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그날 선생님과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도 할머니도, 아니 우리 시골 동네, 김천 모교 모두가 첫 서울대 입학생의 탄생에 함께 기뻐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모교 선배님들은 동창회 기금을 통해 4년간의 등록금뿐만 아니라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날 때도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장영은 선생님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나를 위해 애써 주셨는지. 다른 학생들에게는 차별이 아니겠냐고. 그 순간 선생님의 큰 눈망울이 촉촉해졌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물론 학생 모두 열심히 가르쳤지만, 다만 너에게 마음을 썼던 것은 물을 주면 마구 커가는 희한한 새싹을 바라보는 기쁨이자 보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입학하고 이듬해 선생님은 결혼하셨고, 나는 축가로 감사를 전했다. 축가를 부르는 동안 선생님은 하염없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고, 나 또한 인생의 소중한 인연, 귀하디귀한 선생님의 축복을 빌며 노래했다.

  10대의 마지막을 선생님과 함께하지 못했다면 분명 내 이야기는 달리 쓰였을 것이다. 나는 그분을 통해 베풂과 사랑을 알게 되었고, 나눔을 배웠다. 이처럼 만남은 나를 성장하게 했고,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신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1981년 김천 출생. 서울대학교 성악과 장학생으로 입학, 동대학원 석사 과정 수료, 베를린 한스아이슬러음악대학교 석사 졸업. 2008년 동양인 최초 스위스 바젤 오페라극장 전속 가수가 된 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피가로, <가면무도회>의 레나토 등 주역으로 활동. 2011년 이탈리아 알프레도 자코모티 국제 성악 콩쿠르 2위, 오스트리아 힐데 자덱 국제 성악 콩쿠르 2위. 리카르도 잔도나이 1위, 알렉산더 지라르리 1위, 에른스트 해플리거 1위 등 세계 유수 콩쿠르 석권. 2023년 리카르도 잔도나이 국제콩쿠르 심사위원 위촉 및 자신의 이름을 딴 '이응광 상' 제정. 現 이천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재직하며 아티스트와 행정가를 넘나드는 활발한 활동 중. 

  [4K] Vn. 임지영 & Pf. 레미 제니에 :: 엘가 - 사랑의 인사 :: E. Elgar - Salut d'amour, O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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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망실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고운 멘트주셔서
    감사합니다 ~
    행복한 한 주
    보내시길 소망합니다
    ~^^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목자 | 작성시간 26.06.15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망실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목자 님, 머물러주시고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나누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
    짧은 인사 속에 담긴 온기가
    참 다정하게 느껴지네요.
    오늘 하루도 평안하고
    행복 가득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행복하세요! ✨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김종승 | 작성시간 26.06.15 감사합니다
  • 작성자핑크하트 | 작성시간 26.06.15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감동방에 좋은 글 고맙습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편안한 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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