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시/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쉽게 씌어진 시/윤동주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또 다른 故鄕(고향)/윤동주
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宇宙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白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故鄕에 가자
🌺 별 헤는 밤/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봄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참회록/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는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코스모스/윤동주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엣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뚜리 울음에도 수줍어지고
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요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 황혼이 바다가 되어/윤동주
하루도 검푸른 물결에
흐느적 잠기고 잠기고...
저-웬 검은 고기떼가
물든 바다를 날아 횡단할꼬.
낙엽이 된 해초
해초마다 슬프기도 하오.
서창에 걸린 해말간 풍경화
옷고름 너어는 고아의 설움
이제 첫 항해하는 마음을 먹고
방바닥에 나딩구오 딩구오....
황혼이 바다가 되어
오늘도 수많은 배가
나와 함께 이 물결에 잠겼을 게요.
🌺 눈 오는 지도/윤동주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나려,
슬픈 것처럼 창(窓)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地圖) 위에 덮힌다.
방(房) 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壁)이나 천정(天井)이 하얗다.
방(房) 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이냐,
떠나기 전(前)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그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나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 년(一年)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 슬픈 인연/윤동주
단, 단 한번의 눈 마주침으로
서로를 그리워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슬픔은 시작되었습니다
서로를 그리워 하면서도 못 본체 했고,
사랑하면서도 지나쳤으니
서로의 가슴의 넓은 호수는
더욱 공허합니다
자신의 초라함을 알면서도
사랑은 멈출 줄을 몰랐고,
서로가 곁에 없음을 알면서도
눈물은 그칠줄을 몰랐습니다
이제, 서로가 한 발씩 물러나
눈물을 흘릴 줄 압니다
이들을 우린
슬픈 인연이라 합니다.
🌺 자화상/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한국의 시인(1917~1945)
1917년 12월 30일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개신교 장로이자
소학교 교사인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 해 조선어와 영문학을 배우며
시를 쓰기 시작했고 <문우> 발행에 참여하고 백석의 시를 필사하며
문학적 기반을 다졌다 이 시기에 <서시>와 <별 헤는 밤> 등 주요
작품을 남겼다
이후 일본 유학 중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으로 체포되어
1944년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5년 2월 16일, 복역 중 건강 악화로 스물일곱의 나이로 사망했다
불과 해방 6개월 전의 일이었다
이후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통해 그의 시가 전해졌다
서시에서....
윤종주는 독실한 기독교 신지였으며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신앙적 성찰과 영적 고민이 담겨있는
작품으로 그의 순수한 영성과 도덕적 실천의지를 보여준다
기독교의 최대 게명인 이웃 사랑의 실천을 연상합니다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시인의 소망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