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명석 목불장
불모(佛母)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속리산 법주사다. 국보나 보물을 다수 보유한 고찰이나 꼭 한번 보고 싶었던 문화재는 원통보전의 보물 제1361호 목조 관음보살 좌상이다. 한동안 머물며 톺아봤다. 전문위원의 설명대로 문외한의 눈에도 조선 중기 이후 최고라 불릴 만큼 보관(寶冠)이 정교하고 화려한 데다 불상도 커서 단독으로 모셨는데도 전각이 꽉 찬 느낌이다.
부처를 조성하는 불모(佛母)의 삶이 궁금했다. 자료에는 전국에서 지방무형문화재 장인 몇 분이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장인마다 조성 방법과 형상은 조금씩 달랐으나 깊은 신심을 담아야 한다는 맥락은 같았고 법주사 인근에 충북지방무형문화재 제21호 하명석 목불장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인연은 느닷없이 들이닥치기도 하고 또 다른 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겨울 알게 된 국가무형문화재 김영조 낙화장의 소개로 하명석 장인을 만났다. 공방에 들어서니 연장을 내려놓고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40여 년간 불모로 살아오느라 거칠어진 손이 느껴진다. 보통 키에 야무진 체구, 반백의 긴 곱슬머리, 숯 검댕이 눈썹, 번뜩이는 강렬한 눈빛을 가진 범상치 않은 인상이다.
남해가 고향인 장인은 부산 범어사 공양주 보살이던 셋째 고모에게 맡겨졌다. 부모가 돌볼 수 없는 네 살배기 아이라는 생각만으로 가슴이 아렸다. 첫돌 무렵, 집을 떠난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가 홀로 키웠던 나보다 훨씬 더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성장 환경이 사찰이라 흙으로 불상을 빚던 스님을 따라하던 것이 영향을 끼쳤다. 중학교 때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이 그림보다는 조각이 낫겠다는 말씀에 마음을 굳혔다. 이후 지리산 칠성암에서 스승인 청원 스님을 만나며 불교 조각에 본격적으로 입문하였다.
몇십 년 둥치를 키운 통나무가 얼마나 쪼이며 깎여야 부처가 될까. 독성이 있어 해충의 피해가 없는 연한 은행나무로 조성하는 목불은 다른 소재의 부처보다 섬세하고 정교하며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 사부대중을 바라보는 양 눈은 자애롭고 온화하면서도 근엄해야 하며 미소 띤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야 하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곳이 부처의 얼굴인 성상이다. 조성된 목불은 삼베에 생칠과 풀을 섞어 붙이고 대여섯 번 옻을 입히는 건칠(乾漆) 후 금박을 하면 몇백 년을 넘어 영원을 기약하기도 한다.
나무를 다루는 도구라야 자귀에 망치, 원도 반원도 환도 평환도 굽은 원도 삼각도 평도, 창칼이 전부다. 수만 번 망치로 끌의 머리를 쳐야 하고 무한의 끌질로 섬세하게 다듬자니 손바닥은 온통 궂은살이다. 한 구의 목불을 조성하는 데 일 년이 걸린다니 쏟아부어야 하는 공력이 대체 얼마일지 가늠조차 어렵다.
불상 조성은 뛰어난 조각 기술도 필요하지만, 불교에 대한 조예가 깊어야 했기에 잠시 승복을 입었던 시절도 있었다.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한 아이가 만고풍상 겪어가며 흘려야 할 눈물조차 잊은 채 고집스럽게 평생 부처만 끌어안고 살았다. 평범한 통나무를 한 번의 망치질과 끌질에 한 자 한 자 경전을 새기는 간절함으로 임했을 것이다. 불도를 전하는 불상 조성은 극한 고행의 길이라 깨달음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길과 다름없다.
장인은 고집스럽게 한사코 쉬운 길을 마다하고 험난한 길을 스스로 택한다. 끌로 깎은 표면을 곱게 다듬을 때 사포를 쓰지 않고 조각도로 마무리한다. 이는 최대한 혼을 나무에 새기기 위함인지라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각도의 흔적이 미세하게 남아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명석 장인은 불상 조성뿐 아니라 옻칠, 금박, 개안과 채색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특히 휴대가 가능한 작은 불상인 불감(佛龕)은 독보적인데도 대를 이을 사람이 없어 안타깝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국가나 지방무형문화재 중 가장 경제적으로 풍요로운데도 말이다. 맥을 이어갈 재능 있는 젊은이의 도전을 기대한다. 전통이란 한번 맥이 끊기면 다시 잇기가 어렵지 않은가. 공방에 오면 깊은 관심을 보이며 집중하는 초등학생 외손녀를 염두에 두지만, 뒤를 이을지는 미지수라며 씁쓸하게 웃는 모습에 덩달아 가슴에 돌덩이 하나 매달렸다.
인시(寅時)에 법주사 범종이 울면 심신을 정갈하게 하고 공방으로 내려와 오전 11시까지 끌과 조각도를 잡는다. 몇 해 전에는 반드시 도전하고 싶었던 법주사 원통보전의 보물 제1361호 목조 관음보살 좌상을 완벽하게 축소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내려놓고 버려가며 수행자의 심정으로 매달린 불모의 삶이 어찌 곡절이 없을까. 40여 년간 전통의 맥을 잇느라 누리지 못한 것도 있었고 잃어버린 것도 많았다. 결코 지방무형문화재 제21호 목불장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었다. 부모 사랑도 받지 못했고 배움 역시 적었지만 자신의 일에 완벽을 추구하는 고집으로 정상에 오른 인간승리다.
극한 환경에서 생명체가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진화해야 한다. 수없이 주저앉으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외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일찌감치 불모의 삶을 천직으로 받아들이고 무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향후 계획은 한국 최고의 목불장답게 조성한 불상으로 서울에서 전시회를 갖는 것이라 한다. 확신에 찬 눈빛이 전시회를 찾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줄 것이라 믿기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불모(佛母)는 매일 산고를 겪으며 부처를 낳는 일인 것을.
- 변종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