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으려해도 잊을 수 없는 그 강가
동네사람들은 유명한 은어 낚시터인 그 곳을 호랑이의 웅크린 모습을 하고 있다 해서 범바위골이라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곳에서 용이 승천했다고 하여 용바위골이라 했으며 우리들은 그 거대한 바위의 위력 때문에 귀신바위라 했다.
범바위든, 용바위든, 귀신바위든 상관없이 동네 사람들에겐 좋은 놀이터였고 우리 자매들에겐 즐거운 추억을 만들게 했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남강 상류의 너무나 깨끗한 경호강의 물 맑음이란 혼탁한 요즈음 세상의 사람들까지 정화시킬 푸르고 푸른 물이었다. 그 물을 더 맑게 해 준 것은 강변 주위의 자갈들이었다. 제각기 모양이 다르고 색깔과 크기가 다른, 각각의 꿈과 물빛 이야기를 지닌 돌들의 모임이 아름다워 강은 더 맑았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고향 마을은 은어의 서식처이고 은어회로 유명한 마을이라 한창 낚시 철에는 낚시꾼들로 붐비기까지 했다.
은어의 빛나는 비늘을 보면 내 가슴은 은빛으로 빛났고 살아서 퍼득거리는 은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경호강과 고향마을을 점점 사랑하게 되었다.
아버지께선 여름날 퇴근 후 은어낚시를 가는 게 하루의 마지막 일과였다. 삼베 잠방이와 밀짚모자, 긴 대낚시대의 소박한 낚시 나들이를 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았고, 우리도 그 나들이의 동참자로 기꺼이 동행을 했다. 어쩌면 낚시보다 나는 경호강의 그 으스름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고향사람 모두가 경호강의 으스름 저녁을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강은 깊고 폭도 꽤 넓었다.
강 이쪽은 큰 바위가 많았고 건너편은 넓은 자갈밭이었으며 자갈밭 뒤론 들판이 확 넓게 펼쳐져 있어 낚시를 하다 고개를 들면 푸른 초원이 때묻은 마음까지도 쓸어내 주는 듯했다. 그리고 범바위골 아래위로 두 개의 나루터가 있어 강가의 풍치를 한껏 돋보이게 하는 곳이었다.
퇴근을 하신 아버지께서 우리들을 데리고 낚시를 갈 때면 어머니는 텃밭에서 갓 따신 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랑 잘 익은 참외며 가끔은 말랑말랑한 계피 떡도 싸 주시곤 했다.
베잠방이 사이로 저녁바람을 맞으며 나서는 아버지의 얼굴엔 언제나 웃음이 가득했고 앞치마를 두른 어머니가 대문께에서 우리가 강둑에 멀리 모습이 안보일 때까지 서서 우리쪽을 바라보실 때의 그 행복한 순간은 지금도 가슴을 짜릿하게 하는 기쁨이었다.
범바위골까진 조금 멀었지만 강바람에 머리를 날리며 긴 강둑을 걸어가는 재미도 재미려니와 아버지랑 우리들이 화음을 이루며 부르는 노랫소리가 강물위로 펴져 나가고 강가 미루나무 가지가 가끔씩 「쏴--아」한 소리로 함께 화음을 맞춰 줄 때의 기분도 정말 상쾌했다.
범바위골은 나에게 있어 거대한 지배자처럼 버티고 있어, 그곳을 좋아했지만 항상 어떤 두려움도 가지고 있었다. 바위 아래는 굴속처럼 넓었고 바위 위는 20명 가량은 넉넉히 앉아 놀 수 있는 평평한 곳으로서 한 여름에는 서늘해서 낚시터로선 일품이었다.
아버지가 낚시를 드리우고 무아지경에서 은어 낚시를 할 동안 우린 아버지 곁에서 어머니가 싸 주신 따뜻한 옥수수를 먹으면서 나즉나즉 노래도 부르고 얘기도 했다. 그러다 찌가 흔들리는가 싶으면 순식간에 낚싯대가 허공을 가르며 올려 지고 낚시 끝에는 반짝반짝 은어가 파드덕 거렸다. 그럴 땐 우리는 낮은 환호도 서슴없이 지르는 명쾌함도 있었다.
강 건너 마을의 집에서 등불이 하나 둘 켜지고 그러다가 온 동네가 등불이 켜져 별처럼 빛나고 있을 때 우리는 돌아갈 채비를 했다.
어머니는 낚시 바구니 속의 은어를 들여다보시고는 늘 " 많이도 잡으셨네요" 그 한마디셨다. 대 여섯 마리의 은어가 들어 있을 때도, 참 많이 잡은 날에도 꼭 같은 말씀이셨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매일 새로운 감탄으로서 아버지께 대한 지극한 찬사이기도 했다. 엄마의 솜씨인 은어 매운탕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매운탕을 끓여 늦은 저녁식사를 하면 매운 것을 못 먹는 우리는 향그런 내음새만으로 만족해했다
범바위골의 은어 낚시보다 더 깊고 고운 추억은 그 곳에서 소회와의 만남이었다. 소회는 범바위골 근처의 할머니 댁에 사는 서울 아이였다. 나보다 한 학년 아래였지만 나는 소회의 말고 그윽한 눈을 좋아했으며, 소회는 나를 친언니 이상으로 따랐다. 그녀는 내 유별나게 따뜻한 손과 우리 자매를 끔찍이 좋아해서 범바위골로 낚시를 가는 날이면 늘 우리와 같이 즐겁게 놀았고 평생 날 잊지 못할 거라고 내 귀에 속삭이곤 했다.
그러나 범바위골에 영원히 남을 아픈 추억이 생겨나고부터 우린 그곳에 발길을 끊어야 했다. 아니, 갈 수도 없었을 뿐더러 밤낚시 같은 거는 잊어버려야 했으며 고향과도 결별을 고해야 했다.
어머니, 아버지의 꿈이었고 우리 형제 모두의 우상이었으며 온 동네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영리하고 재능이 많은 언니를 범바위골 소용돌이가 무참히 앗아간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와 함께 소회와의 아름다운 만남도, 맑은 경호강가의 잿빛 으스름, 번쩍이는 은어도 잊어버려야만 하는 고통도 겪어야 했다. 언니를 앗아간 그 푸른 강물은 아직도 고향 마을 굽이쳐 돌아 흐르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잊으려고 애를 쓰셨지만 나는 지금도 그 추억을 깡그리 잊지 못하고 있다. 아니, 한번도 잊으려고 애쓴 적은 더욱 없었다.
- 배혜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