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Reine de Saba / Raymond Lefevre(레이몽 르페브르)

작성자정남진1|작성시간24.05.31|조회수49 목록 댓글 1





La Reine de Saba / Raymond Lefevre


Raymond Lefevre 레이몽 르페브르는 1929년 11월 20일, 프랑스 북부의 항구 도시 칼레에서 태아났다. 그의 부친이 바이올리니스트여서 레이몽 르페브르는 최초의 음악교육을 부친으로부터 받았다. 그는 5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나 처음 흥미를 느낀 악기는 플루트로, 그의 꿈은 명 플루트 연주자가 되어 무대에 서는 것이었다. 그 후 레이몽 르페브르는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그의 꿈인 플루트와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놀라운 천재성을 발휘하여 이 두 부문에서 수석으로 졸업한 뒤, 본격적인 콘서트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레이몽 르페브르가 이렇게 그 기반을 갈고 닦은 클래식 음악에서 갑자기 팝 음악으로 전향하게 된 동기는, 1950년 유베르 로스탕 오케스트라의 피아니스트로 참가하면서부터인데, 그의 팝 음악에 대한 이해와 감각은 이때 형성되었다. 그가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조직한 것은 1953년이었으나, 정작 행운을 잡은 것은 샹송 가수 달리다의 데뷔곡이었던 'Bambino'의 편곡과 지휘를 맡게 된 일로, 이 곡이 세계적으로 히트하자 달리다의 인기와 함께 레이몽 르페브르 오케스트라의 명성은 프랑스 팝 음악계에 크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레이몽 르페브르는 전도양양한 스타 가도를 달려, 달리다의 남편이자 TV 방송국의 프로듀서였던 뤼시앙 모리스에게 발탁되어 '뮤직라마'라는 TV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그의 레코드는 세계 각국을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그의 연주로 널리 알려진 미셀 로랭의 'La Reine de Saba(시바의 여왕)'는 레이몽 르페브르의 명성을 확립시킨 명연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레이몽 르페브르 오케스트라의 대표곡을 알려진 이 곡은 가까운 일본의 경우, 지난 10여 년간 무려 110회에 걸쳐서 베스트 셀러 레코드의 차트에 오르는 인기를 획득할 정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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