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꽃 씨를 받으며
무애자無碍者(서재남)
수류탄을 조그맣게 축소해놓은 것 같은
까만 분꽃 씨를 받으며, 이 아침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의 어린 고아를 생각한다
절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죽기살기로
이스라엘 탱크를 쫓아가며 돌을 던지던
그 어린 소년의 적개심으로 이글거리던
눈빛을 떠올린다
지난 여름 개울 둔덕에 풀들이 무성하던 날
열 아홉살 형은 인티파타의 위대한 전사답게
폭탄을 가득 실은 트럭을 적진으로 몰고 가
철이른 분꽃이 되어 장렬히 타올랐다
그 다음날 친구들과 탄피를 주워 집으로 오다가
적들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걸 보았다
아비와 어메는 친구들의 아비와 어메들처럼
무너진 집더미에 깔려서 죽었다
그 후로도 형들은 자원하여 그들의 길을 갔다
부서진 마을에선 그래도 날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 시궁창 가에도 분꽃들은 여름내 피었을 것이다
소년의 팔뚝처럼 단단하게 열매를 굳히고 있었을 것이다
아, 어쩌면 분꽃 씨는
그 소년이 돌멩이 대신 그토록 갖고 싶어하던
수류탄을 이리도 쏙 빼닮았을까
200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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