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이런게 삶인가 보다

작성자제임서|작성시간24.09.14|조회수257 목록 댓글 5

 

 

 

 

 

 

이제서야, 이런게 삶인가 보다

 

 

크로이(Chloe) 아빠는

캐나다에서 제일 큰 은행 TD Bank IT부서에서 Manager로 일한다

내 큰 아들이다

 

크로이(새싹이) 엄마는 중견기업의 이사겸 수석 디자이너로 일한다

너무 고맙고 사랑하는 내 며느리이다

 

그래도 사느라 바뻐 집 안 곳 곳에 CCTV를 설치해 놓고 근무 틈틈이 확인한다

25분 드라이브 거리에 있는 할무이는 언제나 5분 대기조로 긴장하고 있다

그래서 둘째는 엄두도 못 내는가 보더라

할무이는 은근히 기대하지만, 나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주변의 젊은이들을 봐 왔거든

 

크로이(Chloe) 새싹이는 너무 귀엽고 이쁘고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내 손녀이다

손녀는 여자 아이다

내 아들과 며느리는 개신교에 적을 두고있다

 

Globe & Mail 신문사 사진기자인 내 둘째 아들은 결혼 생각이 전혀없다

 

고국에는 내 동생들이 살고있다

그 고국에는

때 되면 추석이고 제삿날이고 구정이고...

어김없이 돌아온다

 

내 동생들은 때 되면 외국이든 어디든, 따로 논다

브리스벤(Brisbane, Australia)의 누나는 이제 차례와 제사를 접었다 한다

매형이 종교를 가졌기에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모두들

여권이 없다

영어를 하지 못한다

미국은 커녕 캐나다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모른다

 

내가 장남이다

때 되면 아내가 차려놓은 상으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거실에서

내가 차례며 제사를 지낸다

어찌 어찌 비행기는 타겠지

어찌 어찌 비자 게이터는 통과하겠지

 

창문을 열어놓고

그 상 위에 한글과 영어와 일어로 된 우리 집 주소를 적어 놓았다

식이 시작되기 전에 그 종이를 태운다

이렇게 산지 스무 다섯해가 넘었다

 

어무이는 일제시대에 여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했다

어무이가 제일 늦게 가셨으니 왠만하면 찾을 수 있을텐데...

 

아직 한번도 왔었다는 낌새가 없다

 

내가 장남이다

내 가족들과 나는 캐나다에 산다

나는 종교가 없다

 

상 위에 올리는 음식은 격식을 없앴다

조상 모두가 바닷가에서 자라며 늘 바다를 보며

꿈을 꾸었을테니

 

해산물은 빠트리면 안되는데...

아내가 없으면 상 차림이 안 될거다

내가 없으면 차례가 안 될거다

내가 장남이다

 

우리 크로이 새싹이는 손녀이다

손녀는 여자 아이다

 

내가 장남이고...

장손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다

 

내일 모래가 추석이다

월요일 저녁에 차례를 지낸다

퇴근후 우리집에 모두 모인다

 

오늘은 토요일 아침이고 나는 이 글을 쓴다

 

 

*

순천자흥(順天者興) 역천자망(逆天者亡)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자는 살고,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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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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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일광 | 작성시간 24.09.15 마음을 알 것 같은 훈훈한 글입니다.
    저는 4대 장손이지만 내 주변에는 나보다 어른은 2 살 위 누나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내는 개신교 권사님! 저와 동생 등 친가 식구는 모두 캐톨릭~
    어느 결엔지 우리 주변에 차례상이 사라졌습니다.
    북쩍이던 한가위가 어느 때보다 더 고요합니다.
    내일은 연로하신 누나나 만나 보고 올 생각입니다.

    도연명의 탄식을 곧 잘 인용하지요.
    "대자연의 순리에 순하지 않고 어찌 감히 과욕을 탐한다는 말인가?"
  • 답댓글 작성자제임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9.16 예. 그렇군요. 점차 차례나 제사 같은 도덕적 형식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제가 죽으면, 제사고 차례고 끝 일 것 같습니다. 프레임은 깨라고 있는 것이니까요.
    저의 누님은 호주에 계셔서 전화나 카톡으로 그나마 안녕을 서로 전합니다.
    누님하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식이 엄마 | 작성시간 24.09.18 인생여정과 추석을 맞이하고 보내며~
    가슴 울리는 현실을 봅니다.
    저도 장남의 아내, 시대의 흐름이 조상도 이웃사촌도 존재가 희미해져갑니다.
    외국생활에서 조상님을 기리고 모시는 모습이 선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 세례명이 라틴어가 많지요.
    그렇듯이 돌아가신 부모님도 하늘나라에서 각국 친구들을 만나셨을테고~ 아드님 곁에 가실것입니다.
    3국어로 적어놓으신다니 효심과 애국심에 뭉클합니다.
    축복을 빕니다. 대한민국 부산에서!
  • 답댓글 작성자제임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9.18 함께 해주신 식이 엄마 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추석 명절 잘 보내십시요~
    인터넷이나 유튜브가 잘 발달된 요즘, 자식들에게 그들이 모르는 조상들의 제사와 차례를
    지내라고 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아있는 동안만 지내자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빨리 변하고 특히 이곳에서는 차례지내는 열 손가락 안에 듭니다 ㅎㅎㅎ.
    늘 건강하시고 멋진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토론토, 캐나다에서.
  • 작성자짜하라 | 작성시간 24.09.18 남 모른 아픔이군요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날들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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