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생명의 언어, 선한 영향력/은쟁반에 금사과 같은 말(정요찬목사)-잠 25:11

작성자작은 청지기|작성시간26.06.22|조회수24 목록 댓글 0

1. 서론: 한마디의 말이 그리는 그림

 

 솔로몬은 인간의 말을 묘사하기 위해 당대 가장 화려하고 값진 예술품을 끌어왔습니다. 정교하게 세공된 은쟁반 위에 놓인 황금빛 사과, 상상만 해도 눈이 부신 이 장면을, 지혜의 왕은 '경우에 합당한 말'에 비유했습니다.

 

 왜 하필 '말'을 보석에 빗대었을까요? 그것은 말이야말로 한 인간의 인격과 영성, 그리고 그가 속한 공동체의 품격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비판의 칼을 내려놓는 것이 소극적 의미의 거룩이라면, 오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비워진 우리의 입술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오늘 본문은 그 답을 '은쟁반의 금사과 같은 말'로 제시합니다.

 

2. '금사과' 

  - 말에는 생명을 빚는 창조적 능력이 있습니다

 

 본문이 '말'을 보석에 비유한 첫 번째 이유는, 말 자체가 가진 본질적 가치와 능력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금사과'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황금으로 정교하게 세공된 예술품, 혹은 황금빛이 도는 가장 잘 익은 열매를 의미합니다.

 

 솔로몬은 왜 말을 이토록 귀한 것에 비유했을까요? 그것은 말이 생명을 빚어내는 창조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빛이 있으라" 말씀하심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의 말에도 작은 창조의 권세가 부여되었습니다. 잠언 18:21은 선포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부모가 자녀에게 "너 같은 놈은 커서 뭐가 되겠냐"라고 던지는 말은 자녀의 영혼에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웁니다. 

 

 그러나 "너는 하나님의 걸작품이야. 너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실 거야"라는 한 마디는 절망의 자리에 있는 한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금사과가 됩니다.

 

3. '은쟁반'

 - 지혜는 말에 합당한 그릇을 입힙니다

 

 그런데 본문은 '금사과'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금사과를 받치고 있는 '아로새긴 은쟁반'이 있습니다. 

 

 아무리 귀한 금사과라도 흙바닥에 굴러다니면 그 가치를 잃습니다. 금사과의 진가는 그것을 담는 '은쟁반', 즉 '경우에 합당함'이 갖춰질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히브리어로 '다바르 다부르 알 오프나우', 직역하면 '그 바퀴 위에 놓인 말'입니다. 잘 맞물린 바퀴가 수레를 부드럽게 굴러가게 하듯, 상황과 때, 상대의 마음에 꼭 들어맞는 말을 의미합니다.

 

 내용이 옳다고 다 옳은 말이 아닙니다. 잠언 27:14은 경고합니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새벽에 자고 있는 이웃을 깨워 "축복합니다!"라고 외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소음이요, 폭력입니다.

 

 장례식장에서 슬픔에 잠긴 유가족에게 던지는 어설픈 신학적 해석, 실직한 가장에게 "기도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정죄,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형제에게 "믿음만 있으면 다 낫는다"는 단정, 이 모든 말은 내용이 일부 옳을지라도, '은쟁반' 없는 금사과처럼 오히려 사람을 상하게 합니다.

 

 단칸방에 사는 부부가 서로의 고단함을 탓하기 전에, 상대의 침묵 속에 담긴 눈물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금사과를 은쟁반에 담아내는 지혜입니다.

 

4.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혜

 - 입술의 공방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금사과와 은쟁반을 빚어낼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고백합시다.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8).

 

 인간이 맹수는 길들였어도 자신의 혀는 길들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곧바로 해법을 제시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내 감정에 충실한 말은 대개 파괴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필터링 된 말은 치유의 광선이 됩니다. 

 

 다윗은 이 비밀을 알았기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

 

 우리의 입술은 그저 살덩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의 문이며, 매일같이 금사과를 빚어내야 할 거룩한 공방입니다. 

 

 그런데 그 공방의 주인이 '나'일 때, 거기서는 거친 말, 상처 주는 말, 정죄의 말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나 그 공방의 주인을 성령께 내어드릴 때, 비로소 거기서 은쟁반에 금사과 같은 말씀이 빚어지기 시작합니다.

 

 잠언 21:19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

 

 가정이 천국이 되느냐, 광야가 되느냐는 거창한 환경이 아니라 식탁에서 오가는 말 한 마디의 온도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오늘 가족에게 던진 말은 광야의 모래바람이었습니까, 시원한 생수였습니까?

 

 내 힘으로 입술이 제어가 안 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주여, 내 입술의 파수꾼이 되어 주옵소서. 내 혀를 주관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매일 무릎 꿇는 자의 입술에서, 하나님은 친히 금사과를 빚으십니다.

 

5. 결론: 당신의 입술은 어떤 공방입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우리의 입술은 어떤 공방입니까?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공장입니까? 

 상처를 양산하는 무기 공장입니까? 

 아니면 매일 은쟁반 위에 금사과를 빚어내어, 듣는 이의 영혼을 살리고 공동체를 천국으로 만드는 거룩한 공방입니까?

 

 우리의 입이 열릴 때마다 죽어가는 영혼이 살아나고, 차가운 가정에 온기가 돌며, 분열된 공동체가 하나 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부터 우리의 모든 말 한 마디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아로새긴 은쟁반에 담긴 금사과'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6. 실천 및 적용

1) 하루 한 개의 '금사과' 빚기

 매일 한 사람을 정해, 그에게 꼭 필요한 구체적인 축복과 격려의 말을 의도적으로 건넵시다. (예: "당신이 있어서 우리 집이 정말 든든해요.", "오늘 네가 한 그 선택, 정말 멋있었어.")

 

2) '은쟁반' 점검 훈련

 누군가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하기 전, 속으로 세 가지를 물어봅시다. 

 

①지금이 적절한 때인가? 

②이 말이 상대를 살리는가? 

③나는 충분히 들었는가? 

 이 세 가지를 통과한 말만 입 밖으로 내봅시다.

 

3) 언어의 온도 기록하기

 일주일 동안 내가 가장 자주 쓰는 단어들을 메모해봅시다. 부정적 단어가 더 많다면, 그것을 축복과 감사의 언어로 바꾸는 훈련을 시작합시다.

 

4) 매일 아침 '입술의 파수꾼' 기도

 하루를 시작하기 전, 시편 141편 3절을 붙들고 기도합시다. 

"여호와여, 오늘도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소서."

 

7. 기도제목

1) 금사과 같은 입술을 주소서.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되게 하시고,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생명의 언어를 사용하게 하옵소서.

 

2) 은쟁반 같은 지혜를 허락하소서.

 내 감정과 판단을 앞세우기보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상대의 상황을 헤아려 때에 맞는 합당한 말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3) 우리 가정을 언어의 천국으로 만드소서.

 다툼과 원망의 언어가 사라지고, 서로를 존중하며 세워주는 지혜로운 말들이 넘쳐나, 광야 같은 세상 속에서 우리 가정이 진정한 쉼터가 되게 하옵소서.

 

4) 공동체를 살리는 입술을 주소서.

 우리 교회와 일터, 모든 만남의 자리에서 우리의 입술이 분열이 아닌 연합을, 정죄가 아닌 회복을 만들어내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