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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史

진한, 번한, 마한 역사 주장 비교

작성자samson|작성시간16.01.21|조회수91 목록 댓글 0

 

 

 

북진통일의 민족사적 정당성

 

김일성흉노로부터 마한의 왕검성(북한 평양)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조선상고사/남쪽으로 이주한 마한]"마한이 월지국(마한 자체가 고조선의 目支國임-samson-)으로 도읍을 옮긴 뒤에 그 옛 도읍 평양에는 최씨(崔氏)가 일어나서 그 부근 25국을 통속하여 한 대국이 되었으니 전사(前史)에 이른바 낙랑국(樂浪國)이 그것이다. (???-samson-)


낙랑이 이미 분리되매 마한이 지금의 임진강 이북을 잃었으나 오히려 임진강 이남 70여 국을 통솔하더니 오래지 아니 하여 북방에서 지나와 흉노의 난리를 피하여 마한으로 들어 오는 신·불 두 조선의 유민이 날로 많아지므로

 

 

마한이 지금의 낙동강 연안 오른편의 1백여 리 땅을 떼어 신조선의 유민들에게 주어 자치계(自治, 고대에 모임을 계라 하였음)를 세워서 이름을 `진한부(辰韓部)'라 하고,

 (후한서 동이열전의용과 비슷함)

辰韓 耆老自言秦之亡人 避苦役 適韓國 馬韓割東界地與之

辰韓은 그(진한의) 노인들이 스스로 말하되, 秦나라에서 亡命한 사람들로 苦役을 피하여 韓國에 오자,

馬韓(수도 직산)이 그들의 동쪽 지역을 분할하여 주었다 한다. (경북 의성지역-samson-)

 

낙동강 연안 오른편의 땅을 얼마간 떼서 불조선의 유민들에게 주어 또한 자치계를 세워서 `변한부(弁韓部)'라 일컬었다. 변한에는 신조선의 유민들도 섞여 살았으므로 변진부(弁辰部)라고도 일컬었다. 

 

 


이것이 남삼한(南三韓)이니 마한이 구태여 진·변 두 한을 세운 것은 또한 삼신(三神)에 따라 삼의 수를 채운 것이다.     (???-samson-)

 

대단군 왕검의 삼한이 중심 주권자가 되고 말·불 두 한은 좌우의 보상(輔相)이 되었는데 이제 남삼한은 말한 곧 마한이 가장 큰 나라 곧 종주국이 되고, 신한 곧 진한과 불한 곧 변한이 두 작은 나라(소속국)가 된 것은 그 이주민의 계통을 쫓아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거니와 (???-samson-)

 

 

삼한이 다 왕을 `신한'이라 일컬어서 (이를테면 마한의 왕은 말한 나라의 신한이라 하고, 진한의 왕은 신한나라의 신한이라 하고, 변한의 왕은 불한나라의 신한이라 하였음) 신한이 셋이 되니 대개 앞의 것 (신한 셋)은 삼조선 분립 이후에 세 신한의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며, (???-samson-)

 

 

진·변 두 한의 두 신한은 자립하지 못하고 대대로 마한의 신한이 겸해 가져서 이름만 있고 실제가 없었으니 이는 남삼한의 창례(創例)이다.

 

삼조선 분립 뒤의 말朝鮮

 

말조선의 처음 도읍이 평양임은 이미 앞에서 말하거였거니와 그 뒤(연대는 불명)에 국호를 말한(馬韓마한)이라 고치고, 남쪽의 월지국으로 도읍을 옮겨 불조선(번조선)왕 기준에게 망했다. 


그 천도한 원인이 무엇인지 전사(前史)에 보인 것이 없으나 대개 신·불 두 조선이 흉노와 지나의 잇따른 침략을 받아서 북방의 풍운(風雲)이 급하매 말조선왕이 난을 싫어 하여 마침내 남쪽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천도하는 동시에 모든 침략주의를 가진 역대 제왕들의 칼 끝에서 빛나던 `조선'이라는 명사는 외국인이 시기하고 미워하는 바라 하여 드디어 말조선이란 칭호를 버리고, 지난 날에 왕호(王號)로 쓰던 `말한'을 국호로 써서 이두 로 마한(馬韓)이라 쓰고, 새로 쓰는 왕호인 `신한'은 이두로 진왕(辰王)이라 써서 `마한국(馬韓國) 진왕(辰王)'이라고 일컬었다. 


똑같은 `한'이란 명사를 하나는 음을 따서 한(韓)이라 하여 국호로 쓰고, 또 하나는 뜻을 따서 왕이라 하여 왕호로 씀은 문자상 국호와 왕호의 혼동을 피한 것이다. 


국호를 마한이라 쓰는 동시에 왕조는 한씨(韓氏)가 세습하여 국민들이 한씨왕의 존재만 아는 고로 기준이 그 왕위를 빼앗고는 국민의 불평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본래의 성 기씨(箕氏)를 버리고 한씨(韓氏)로 고친 것이다.


삼국지에 “준(準) 달아나 바다로 들어 가서 한(韓)의 땅에서 살며 한왕(韓王)이라 이름하였다( 準 走入海 居韓地 號韓王)”고 하였고, 위략에는 “준의 아들과 친척으로 나라에 머물러 있는 자는 성을 한씨라 하였다(準子及親 留在國者 冒姓韓氏)”고 하였다./단재 신채호

 

 

 

원본 출처/내가그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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