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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대승불교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작성자조성래|작성시간14.04.23|조회수94 목록 댓글 1

그동안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였다. 그래서 대승불교의 왜곡된 교리로 인해 제대로된 붓다의 가르침을 접할 수 없었다.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 삼십칠조도품에 대해 알 길이 없었다. 스스로 깨달았다고 하는 도인들의 말에 가려 붓다의 법은 접할 길이 없었다. 그들은 붓다의 법을 "소승"이라는 말로 폄훼하며, 기회가 되면 어떻게 해서든 갂아내리려고 했다. 사실 소승이라는 말은 아비달마로 특징되는 부파불교를 두고 하는 말이지 붓다의 말씀인 아함경이나 니까야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중에 대승불교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그들의 사상에 맞는 짝퉁경전을 창작하여 만들어 내고 난 뒤에는 그들이 만들어낸 경전만이 최고의 경전이라며, 그 외의 종래의 모든 경전은 다 '소승경전'이라는 말로 깍아내렸다. 불자들이 붓다의 법을 밝게 알면 그들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구라를 치기도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알듯 말듯한 애매한 말로 불교를 말해왔고, 이상한 말로 순진한 불자들을 우롱하며, 빨아먹었다. 

 우리는 대승불교와 중국의 선불교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뜻에서 몇개의 백과사전을 그대로 찢어 올린다.  

 

 

 1) 종교학대사전

대승불교

 불교의 2대 유파의 하나로, 소승불교에 대립한다. 석가가 주창한 활기찬 초기불교도 200년, 300년이 지나는 중에 그 명쾌한 가르침은 아비다르마(abhidhar-ma, 법의 연구)의 발달과 함께 철학화되고, 번잡화되어서 청신한 종교로서의 생명을 잃고, 그 신앙도 고갈화되었으며, 기원 전후경부터 주로 재가신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불교부흥운동이 전개 되었다.
그 운동에는 그들의 기세에 찬동하고, 구불교에 만족치 않고 그곳을 뛰쳐나온 출가자들의 참여도 간과 할 수 없는데 그들중에는 그 운동의 이론적 지도자가 된 자도 있었을 것이며, 대승경전의 제작에 대해 중요한 시사를 준 자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들은 인도 각지에 산재하는 불탑(스투파)을 중심으로 모이고, 불타를 찬양하고 불타에 대한 열렬한 신앙을 가졌다. 그들은 불타의 전생의 호칭인 <보살>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고, 또한 이 운동에 만진하는 자를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보살>이라고 하였으며, 재래의 출가자 중심의 교단인 <승가(僧伽)>에 대해서, <보살 가나>라고도 하였는데 그들은 결국 자신의 사상을 표명하는 수단으로서 새로운 경전을 계속 만들어냈고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 『아미타경』 등이 그 경전군이다. 이들 경전중에서 그들은 자신의 새로운 불교운동을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지향하는 큰 탈 것>이라는 의미를 담아, <대승>이라고 하고, 종래의 구불교를 <한정된 출가자만의 작은 탈 것>이라는 의미로 <소승>이라고 멸시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경전의 사행시에서도 수지(受持)ㆍ독송ㆍ해설하고, 이를 필사(筆寫)사경하면 많은 공덕이 있다>는 구불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경전숭배>를 강력하게 밝히고 있다.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은 <자비>로 뒷받침된 <공(空)>—이론적으로는 모든 것은 그 자체의 고유한 실체를 가지지 않는 <무자성(無自性)>인 것이며, 따라서 실천적으로는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무집착>이어라—의 입장에 있다고 하며 불에 절대적으로 귀의하고 자기 중에 불이 될 수 있는 가능성(불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체현할 것을 그들은 지향했다. 그를 위해서는 <반야의 지혜>와 <방편의 자비>를 겸비할 것을 지향하고, 특히 타인에 대한 선행(이타행(利他行))을 제일의 안목으로 생각했다.
이와 같은 대승불교운동은 후에 용수, 무착, 세친 등에 의해 그 사상이 조직ㆍ체계화되어 5세기경부터 밀교가 성행하고, 이어서 7세기경부터 힌두교가 세력을 회복했다. 그리고 1203년 벵골 불교의 중심이었던 비크라마시라사(寺)가 이슬람의 군대에 의해 파괴 되어서 중앙 인도에서 불교는 그 모습을 감추게 되었고 태어난 고향인 인도를 쫓겨나게 된 대승불교이지만, 국경을 넘어서 티벳으로 전파되었으며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중국, 한국, 일본에 전해져 각 지역에서 화려한 꽃을 피웠다.
우리나라에는 고구려 문자왕(文咨王, 491~518) 때 용수(龍樹)의 중관론(中觀論) 등 삼론(三論)을 비롯, 천태ㆍ열반 등의 교법이 들어와 대승불교에 대한 연구 및 교화가 활발하였다. 또한 길장(吉藏, 549~623)은 삼론을 바탕으로 삼론종(三論宗)을 개종하는 등 우리나라에서의 대승불교는 마침내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되었다. <출처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대승불교

정의: 불교 유파의 하나인 대승의 교법.

대승(大乘)이란 ‘큰 수레’를 뜻하는 범어 마하야나(Mahāyāna)의 한역어로 소승(小乘), 즉 히나야나(H○nayāna)에 맞서는 말이다.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났을 때 대승교도들은 스스로를 대승이라고 부르고, 그 이전의 부파 불교교단들을 가리켜 소승이라고 낮추어 불렀는데, ‘대승’이란 말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서력 기원을 전후하여 불교교단은 장원을 중심으로 정착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일정한 지역에 스투파(Stupa, 塔)가 건립되고 수행자가 거처하는 장소에 정사(精舍:수도하는 곳)를 세우는 등 교단은 안정된 기반 위에서 각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전국적 유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경제적 기반은 신자들이나 지역의 장자들이 시주한 토지였음이 확실하다. 교단의 경제적 안정은 불교교리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이를 ‘아비달마’라고 한다.

아비달마란 말은 범어 아비다르마(abhidharma)의 음사(音寫)로서 문자 그대로 ‘법(法, dharma)에 대한(abhi)’ 연구를 뜻한다. 그것은 법의 이론적 분석과 종합으로서 여기서 수립된 교리체계는 매우 복잡하고 또한 치밀한 것이었다.

아비달마 교학의 사상적 특징은 인간의 내면세계와 객관세계를 분석하여 그들 상호간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려고 한 데 있다.

그러나 세부적인 문제에 이르면 각 부파에 따라 다시 입장이 달라진다. 삼세실유(三世實有:과거, 현재, 미래에 항상 있음)니 법체항유(法體恒有:진리의 몸은 영원함)니 하는 주장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본래 법이라는 것은 종교적 체험 속에서 자각되고 행위를 통하여 실천되어야 한다. 그 법을 외부적인 관점에서 대상화하고 논리적으로 고찰한다는 것은 청정한 ‘생명력’을 생활 속에서 기르려는 불교 본연의 실천적 성격과 어긋나는 것이다.

법의 연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연구의 진전이 곧 불교 본래의 종교성의 진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한편, 출가수행자의 재가 신자에 대한 교화도 형식적인 설교로 전락하여 비구와 재가신자의 관계는 공덕을 쌓게 하는 매체로서의 기계적인 기능만이 정착되었다.

교학의 연구는 진전되었지만 그것은 일상생활 속의 재가신자와는 동떨어진 깊숙한 승원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부 엘리트들의 사변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교단은 외형과 내면이 모두 세속화의 흐름과 타락의 기풍을 낳고 있었다.

이처럼 부파불교는 지나치게 번삽한 이론 전개를 일삼아 불교를 일부 출가자들만의 전유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출가수행자들이 중생을 향한 이타행보다는 그들의 수행 목표인 아라한과를 얻기 위한 자신의 이익 추구에만 몰두하는 폐단도 낳았다.

이러한 교단 상황에 대한 반발과 종교적 반성으로 일어난 것이 바로 대승불교 운동이다. 그와 같은 움직임은 대체로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하여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비달마 불교의 모든 모순을 극복하고 불교의 이론적인 측면과 실천적인 측면을 동시에 정비하고자 했던 움직임이 곧 대승불교운동이다.

당시 대승이 당면한 시대적 과제는 우선 대상의 실체를 인정함으로써 아집과 법집을 낳게 했던 유부(有部:아비달마 불교)의 법체항유설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자리행만을 고집하여 점차 대중의 지지를 상실해 가고 있던 아라한 중심의 불교를 더욱 대승적인 수행 목표인 보살 중심의 불교로 전환하여 불교에 생기를 불어 넣는 일이었다.

중관(中觀)과 유식설(唯識說)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대두된 대승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중관사상은 아비달마 교학의 실유(實有)사상을 타파하고 공관(空觀)에 입각한 중도의 진리를 제시했고, 유식사상은 불교의 초보적 심리설을 더욱 고차원적인 수준의 대승적 심리학으로 발전시켰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사상은 대승불교의 이론적 토대이자 그 후 중국불교의 발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대승불교의 이해를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중관사상(mādhyamika)은 불멸 후 600-700년경 남인도 사람 용수(Nāgārjuna)가 확립시킨 이론이다. 그는 제2의 석가모니 또는 팔종(八宗)의 조사라는 찬사를 받고 있을 정도로 불교사상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흔히 인간들은 존재의 고정적 실체성을 믿는 경향을 띤다. 그 결과 대상의 영원불변성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은 곧 여러 가지 번뇌망상을 낳는 원인이 된다.

용수에 따르면 이와 같은 존재의 실체성을 부정하고 대상에 대한 어떠한 마음의 집착도 초월한 경지, 그것이 바로 무상정득각의 세계라고 한다.

그 세계는 생(生)과 멸(滅), 상(常)과 단(斷), 일(一)과 이(異), 거(去)와 래(來) 등 여덟 종류의 극단을 부정한 중도의 세계이다.

용수의 중관사상은 바로 이 팔부중도관(八不中道觀)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입장은 일체제법의 무자성(無自性:영원한 자성이 없음)을 강조하는 반야공사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유식사상(vijñanavādin)은 소승불교의 교학적 약점을 보완하고, 용수의 반야공사상이 지나치게 허무주의적 경향으로 흐르게 된 데 대한 반발로 나타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상의 기초자들로서는 미륵(Maitreya,彌勒), 무착(Asa○ga,無着) 그리고 세친(Vasubandhu,世親) 등을 들 수 있다.

유식(vijñaptimātratā)이란 말은 인간을 중심으로 볼 때 정신과 물질 등 내외의 모든 존재들은 오직 심식(心識)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며 이 심식을 떠나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정신과 객관세계의 관계에서 정신을 능동자, 객관세계를 수동자로 보는 입장이다. 따라서 정신의 소유자는 만법의 주인이며 선악제법은 오직 이 정신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유식에서 말하는 식은 일반적으로 아뢰야식(ālaya-vijñāna)을 가리키지만, 8종의 식, 즉 안·이·비·설·신·의의 육식과 말나식(manas-vijñāna) 그리고 아뢰야식 모두를 가리키기도 한다.

아비달마 교학까지는 6식을 들고 있으나 유식학파에서는 6식 속에서 이들 식을 일으키는 운동 주체로서의 근원적 식을 상정하고 이를 아뢰야식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아뢰야식을 자아라고 집착하는 말나식도 상정하게 되었다.

아뢰야식이 제8식, 말나식이 제7식이 된다. 제7말나식은 제6식의 의지처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자체와 제8아뢰야식에 의지하여 활동하는 식이다.

특히 이 식은 아뢰야식을 상대로 끊임없이 사량(思量), 집착하며 아집(我執)과 법집(法執) 등 근본 번뇌를 야기시킨다.

이로 말미암아 아치(我痴)와 아견(我見) 그리고 아만(我慢) 및 아애(我愛) 등의 근본 4번뇌를 야기케 하여 제6의식 등 다른 식에게도 많은 지말전뇌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나식은 선과 악의 상대적인 작용을 끊임없이 발생시키고 많은 업력을 조성케 하여 생사윤회하는 고통의 원동력이 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제8아뢰야식은 지금까지 말한 모든 식의 근본식이 되며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이는 아뢰야식이 능장(能藏), 소장(所藏), 집장(執藏) 등 삼장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유식사상에 따르면 모든 식의 행위와 육체적 행위는 선악의 업력이 되어 이 아뢰야식에 보존된다고 한다. 이는 곧 아뢰야식의 능동적 기능을 표현한 것으로 이를 능장(能藏)이라고 불렀다.

동시에 아뢰야식은 수동적인 입장에서 그 업력을 받아 들여 보존하는 역할을 하므로 소장(所藏)이라고도 한다. 또한 아뢰야식이 집장(執藏)의 뜻도 갖는 것은 제7말나식에 의하여 집착된 망집(妄執)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뢰야식은 모든 업력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 선악업력을 다른 식에 공급하여 발동케 하므로 모든 선악의 행동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이 식의 작용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셈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도 과거세의 업력을 보존한 이 식이 먼저 태어날 것이며, 내생으로 떠날 때도 금생의 업력을 보존하고 있다가 육체로부터 맨 마지막에 떠난다. 그것이 육도윤회의 인연을 따라 다시 이 세상에 생명체로 출생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아뢰야식은 현재의 생명체가 내외의 사건과 현실을 일으키게 하는 주체가 되며 동시에 그 업력에 따른 생사윤회의 주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를 아뢰야연기라고 부른다. 중관과 유식사상 이외에도 대승불교 이론에는 ‘모든 중생들에겐 부처가 될 씨앗이 감추어져 있다.’라고 주장하는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 등이 있다.

인도에서 일어난 대승불교사상은 그 뒤 중국으로 건너가 천태와 화엄 그리고 선 및 정토사상 등으로 발전되어 갔다. 법의 뿌리는 하나이되 그 가지는 점차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갔던 것이다.

한국불교는 이처럼 중국화된 대승불교를 받아 들여 지난 1600여 년 동안 때로는 영화를 누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질곡을 겪기도 하면서 그 끈질긴 사상의 생명력을 오늘에까지 이어 오고 있다.

대승불교의 종교적 특징은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의 표상인 보살(Bodhisattva) 사상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보살정신의 핵심은 자신이 피안(깨달음의 세계)으로 건너 가기 전에 다른 모든 존재들을 먼저 피안으로 건너게 한다는 ‘이타행’에 있다.

소승의 이승(聲聞:○rāvaka과 緣覺:pratyeka-buddha)은 자기 자신만이 차안(此岸:번뇌망상이 있는 생사의 세계)을 버리고 피안에 가려고 노력하며 차안에 남은 사람들의 일을 자기의 일처럼 여기는 마음이 없다.

대승이란 자리(自利)냐 아니면 이타(利他)냐 하는 이원적(二元的) 대립의 차원을 넘어 자리와 이타가 함께 공존하는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의 ‘이타’는 자기를 희생하고 오직 남을 위해 산다는 의미의 이타주의(利他主義)와는 다르다. 거기서는 자리와 이타가 둘이 아닌 하나가 된다.

보살은 이승(二乘)처럼 차안을 버리고 피안에 가려는 것이 아니라 차안의 모든 사람을 피안으로 건너게 해준다. 즉, 차안과 피안을 왕래하는 나룻배의 주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차안과 피안을 왕래하는 바탕이 되는 입장이며, 세계 종교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승불교의 고유한 입장이다. ‘생사즉열반’이라는 말은 불이(不二)를 실천하는 보살의 선언이다.

대승불교는 붓다를 초세간적(超世間的) 존재로 보며 역사적 인물로 나타난 붓다는 그 화신(化身)으로 규정한다. 불교도들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는 소승불교에서는 아라한(阿羅漢, arhat)이라고 부르는 깨달은 성인이다.

그렇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이를 편협한 이기적 발상이라고 보고, 깨달음에 이르렀으나 다른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성불(成佛)을 뒤로 미루는 보살이 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곧 보살의 가장 큰 공덕인 자비(慈悲)가 원시불교에서 강조했던 지혜(智慧)와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보살을 통해 생기는 공덕은 중생들에게 옮겨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러한 관념이 우리 나라와 중국·일본의 정토교(淨土敎) 같은 타력적(他力的) 신앙을 낳기도 했다.

이처럼 대승불교는 어떤 특정한 인간이 특정한 교리를 설하여 성립시킨 종교라기보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몇 가지 종교 흐름을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 불교의 대중화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서원을 통해 구원을 설하는 흐름도 있고, 또한 참선의 경험으로 공과 반야의 지혜를 설하는 ≪반야경≫ 유파도 있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불타에 대한 신앙을 강조하는 가르침도 있다.

이러한 갖가지의 흐름 속에서도 대승불교라는 하나의 통일성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것은 법의 자각을 중시하는 지혜의 요소와 보살로 불리는 수행자들이 표방한 자비행의 두 요소를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는 입장이 곧 그것이다.

 

 

  3) 두산백과

대승불교[ 大乘佛敎 ]

요약
대승의 교리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종파(宗派)의 총칭.
원어명 Mahāyāna

삼론종(三論宗) ·법상종(法相宗) ·화엄종(華嚴宗) ·천태종(天台宗) ·진언종(眞言宗) ·율종(律宗) ·선종(禪宗) 등이 이에 속한다. 석가 입멸(入滅) 후 500년경(BC 100년?) 인도에서 일어난 새로운 불교운동은 그때까지 여러 파로 갈라져 자파(自派)의 주장만이 최상의 것이라고 고집하여 온 불교의 자세를 맹렬히 비판하고, 재래불교를 소승(小乘:Hinayana)이라 폄하(貶下)하는 한편, 대승이라고 칭하면서 이타적(利他的)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활발하고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대승’의 어원은 큰(maha) 수레(yana), 즉 많은 사람을 구제하여 태우는 큰 수레라는 뜻으로,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제도(濟度)를 그 목표로 하였다. 이 운동은 종래에 출가자(出家者:승려)만의 종교였던 불교를 널리 민중에게까지 개방하려는 재가자(在家者)를 포함한 진보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것으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불교 유적인 스투파(stupa:墳墓)를 관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새로운 불교운동은 그때까지 석가에게만 한정하던 보살(菩薩)이라는 개념을 넓혀 일체중생의 성불(成佛)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일체중생을 모두 보살로 보고, 자기만의 구제보다는 이타(利他)를 지향하는 보살의 역할을 그 이상(理想)으로 삼고 광범위한 종교활동을 펴 나갔다.

이 불교운동의 전거(典據)로는 대승불교의 경전이 속속 이루어진 데 있었다. 먼저 《반야경(般若經)》이 나왔다. ‘공(空)’의 사상을 강조하는 《반야경》은 종래의 고정관념을 타파함과 동시에, 일체의 집착(執着)으로부터의 해탈(解脫)을 실천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어 일체를 포함하여 ‘일승(一乘)’을 교설(敎說)하고 구원(久遠)의 본불(本佛)을 세우는 《법화경(法華經)》, 광대한 불타[毘盧遮那佛]의 세계를 교설하는 《화엄경(華嚴經)》, 재가거사(在家居士)인 유마(維摩)가 오히려 출가자(出家者)를 교설하는 《유마경(維摩經)》, 서방정토(西方淨土)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세계를 찬탄하며 일체중생의 구제를 약속하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등이 이루어져 종래의 불교를 일신하는 이 새로운 불교운동을 뒷받침하였다. 이 경전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대승이 불교의 중심세력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거니와, 2∼3세기에는 용수(龍樹)가 출현하여 이 대승불교의 사상적 기반을 확립하였다.

이어 일체중생에 불성(佛性)을 인정하는 여래장(如來藏)을 교설한 《승만경(勝鬘經)》 등의 경전이 이루어졌고, 또한 일체를 마음의 흐름에 응집(凝集)시키는 유식(唯識)사상의 대두에 이어 5∼6세기에는 불교논리학인 《인명(因明)》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한편 대승불교 초기부터 일반민중의 교화를 위해 만들어진 《다라니(陀羅尼)》를 외우고 주법(呪法)을 교설하는 밀교(密敎)가 성하여 7세기 이후 불교활동의 중심이 되었는데, 밀교는 ‘대승’보다는 ‘금강승(金剛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대승불교는 한(漢)나라 때 중국으로 건너가 몽골 ·티베트 ·한국 ·일본 등 이른바 ‘북방불교(北方佛敎)’의 주류를 이루었다. 한국에는 고구려 문자왕(文咨王:재위 491∼518) 때 용수(龍樹)의 《중관론(中觀論)》 등 삼론(三論)을 비롯한 천태(天台), 열반(涅槃) 등의 교법이 들어와 대승불교에 대한 연구 및 교화가 활발하였다. 또한 길장(吉藏)은 삼론을 바탕으로 삼론종(三論宗)을 개종(開宗)하는 등 한국에서의 대승불교는 마침내 독자적인 노력에 힘입어 발전의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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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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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서은 | 작성시간 14.04.24 원장님의 노력으로 대승불교가 다시 탈바뀜해서 진정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법이 그대로 살아날 수 있기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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