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저의 반야심경 해설작업의 일부를 찢어 옮깁니다. 이 내용은 소승의 책 <반야심경, 무슨 말을 하고 있나>와 <반야심경 정해>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이 글을 주변 분들께 많이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축산 사문 관정(觀頂) 합장
不垢不淨(불구부정)
‘오온에 의해 더렵혀지지도 않고, 깨끗해지지도 않으며’= ‘오온에 의해 더렵혀지는 것도 없고, 깨끗해지는 것도 없으며’= ‘번뇌[垢]가 없어서 번뇌로부터 벗어나 있다’
不垢不淨(불구부정)은 (오온[是諸法]이 완전히 없어진 적멸(寂滅)상태에는)‘오온에 의해 더렵혀지는 것도 없고, 깨끗해지는 것도 없다’는 뜻이고, 이 말은 ‘더러움[垢], 즉 오온이 없어서 오온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존 번역들을 보면 이 부분은 다음과 같이 번역돼 있다.
현장 번역- 是諸法空相(시제법공상) ..... 不垢不淨(불구부정)
조계종 표준 반야심경- 모든 법은 공하여 ....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청담 스님- 이 모든 것들이 다 없어진 <참 마음 자리>는 .... 더러워지거나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며,
광덕 스님- 이 모든 법이 공한 상은 ....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오고산 스님- 이 모든 법의 공한 상이 .... 더렵도 않고, 깨끗도 않으며,
무비 스님-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것이며,
위의 번역들 가운데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청담 스님은 ‘不垢不淨(불구부정)’의 네 글자는 제대로 해석하였지만, 不垢不淨(불구부정)의 주어를 <참 마음 자리>로 보아, ‘<참 마음 자리>는 더러워지거나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은 아쉬움이 있다.
청담 스님의 번역을 제외한 나머지 번역들은 모두 垢(구)와 淨(정)을 형용사적 의미로 해석하여, 不垢不淨(불구부정)을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不生不滅(불생불멸)에서 生(생)과 滅(멸)이 동사고, 不增不減(부증불감)에서 增(증)과 減(감)이 동사이듯, 不垢不淨(불구부정)에서 垢(구)와 淨(정)도 동사로 보아, ‘더렵혀진다’, ‘깨끗해진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 독일의 유명한 문헌학자 Edward Conze의 번역을 보면 재미난 점이 발견된다. 그는 不垢不淨(불구부정)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원문을 다음의 밑줄 친 부분과 같이 번역하여, ‘더렵혀지지도 않고, 티 없이 깨끗하지도 않다’고 번역하여, 垢(구)는 동사로 해석하고 있고, 淨(정)은 형용사로 해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부분의 해석이 그만큼 어렵고, 헷갈린다는 말이다.
그는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원문을 다음과 같이 영역해 놓았다.
Here, O Sariputra, all dharmas are marked with emptiness; they are not produced or stopped, not defiled or immaculate, not deficient or complete.
조계종 표준 반야심경에는 ‘모든 법은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것은 서술어는 말할 필요도 없고, 주어의 해석도 잘못된 것이다.
산스크리트어 원문을 보면 이 부분은 ////
구마라습이 반야심경을 한문으로 처음 번역하면서 이 구절을 ‘不垢不淨(불구부정)’으로 번역했고, 그 뒤에 반야심경을 번역한 현장, 반야공리언, 법월, 의정, 지혜륜 등도 ‘不垢不淨(불구부정)’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시호(施護)는 이것을 ‘無垢染無淸淨(무구염무청정)’으로 번역했고, 법성(法成)은 ‘無垢離垢(무구리구)’로 번역했다. 여기서 ‘無垢染無淸淨(무구염무청정)’은 ‘더러움[垢, 오온]에 의해 물드는 것도 없고, 깨끗해지는 것도 없다’는 뜻이고, ‘無垢離垢(무구리구)’는 ‘더러움[垢,오온]이 없어서 더러움(오온)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법성(法成)은 ‘不垢不淨(불구부정)’이 ‘오온에 의해 더렵혀지는 것도 없고, 깨끗해지는 것도 없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보아서, 그것 대신 ‘無垢離垢(무구리구)’, 즉 ‘더러움[垢]이 없어서 더러움으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번역하여, 그 뜻을 분명하게 옮기고 있다. 이와 같이 좋은 번역은 문자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문자 속의 뜻을 옮기는 것이다.
법성 번역의 ‘無垢離垢(무구리구)’라는 표현에 不垢不淨(불구부정)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만, 다른 경을 통하여 그 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