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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과정을 통하여 관자재보살이 관세음보살로 둔갑하게 되는가? (진짜 완결판)

작성자조성래| 작성시간15.08.02| 조회수233|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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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조성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8.03 극우 대승주의자들에게 욕먹을 각오를 하고 이 글을 작성합니다. 극우들에게 욕 먹는 것은 중요하지 않지만, 후학들에게 바른 법을 일러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평가할 것입니다. 혹시 역사가 평가하지 못하더라도 진리와 진실을 추구하는 소수의 눈밝은 자들은 무슨 말인지 알고, 바른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 작성자 반야 작성시간15.08.02 새롭게 보이네요
  • 답댓글 작성자 조성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8.04 다시 읽어보면 또 달라져 있을 겁니다. 여러가지 가능성을 두고 좀 더 완벽한 글이 되도록 하기 위해 계속 생각 중에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조성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8.04 조성래 다시 읽어보면 또 달라져 있을 겁니다. 여러가지 가능성을 두고 좀 더 완벽한 글이 되도록 하기 위해 계속 수정 중에 있습니다. 이제 글의 가닥이 거의 다 잡혔는 것 같습니다.
  • 작성자 미토스 작성시간15.08.04 용어를 장악함으로써 타인의 생각을 조정하고 왜곡하려는 시도는 인류의 사상사에서 종종 발견되는 일이고, 특히 근대의 좌우대결에서 좌파인 사회주의자들이 흔히 사용했던 사상투쟁의 대표적인 한 유형이죠. 러시아 의회에서 극히 소수파에 불과했던 레닌이 다수를 의미하는 볼세비키를 자신들의 당명으로 지어서 마치 자신들이 다수의 러시아인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인양 기만을 시도했던 것도 한 예죠.
    중국 최초의 역사서인 상서의 덕 개념을, 유자들이 자신들의 덕 사상으로 해석을 해서, 상서를 유가식으로 왜곡하고, 유가의 경전으로 삼아서, 유가가 상서의 전통을 잇는 사상인 양 행세를 하는 것도 이런 것이겠죠.
  • 작성자 미토스 작성시간15.08.04 종교의 근간이 앎과 신앙의 문제에서, 기독교처럼 믿음이 긍극적인 목적인 종교와는 다르게, 불교의 신앙은 깨달음을 위한 방편으로 신앙이 요청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깨달음이 부정되고 신앙만 남는다면, 참된 석가의 가르침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 답댓글 작성자 조성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8.05 미토스님,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붓다의 불교는 깨달음을 위한 불교이고, 관세음보살의 불교는 복을 빌기 위한 불교, 신앙을 위한 불교입니다.
  • 작성자 muhayou 작성시간15.08.04 기존의 애매하고 추상적인 불교원문에 대한 번역을 보면서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을 한 적 있었는데 쉽고 명확하게 들어와 좋습니다. 생각에 초기불교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악의적인 의도라기보다는 불교를 일반 대중들에게 보다 빨리 쉽게 전파하려는 목적에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닐련지요. 그렇다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불교연구자들이 바로 잡아야 하는데 아마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깨달음의 정수인 반야심경의 제대로된 완역과 해설판이 무척 기대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조성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9.05 무하유님, 우선 좋은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순수 대승불교인 반야심경에서는 님께서 말하신 그런 좋은 의도로 말하고 있는데, 이것을 다른 언어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거나 혹은 경전이 창작될 때 붓다의 법을 왜곡, 파괴하고, 거기에 잡 것을 끼워 넣기 위해 만들어진 경전들이 있는데, 이런 경을 저는 불순 대승경전이라고 말합니다.
  • 작성자 조성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8.05 휴~~~ 자꾸 수정되니, 끝이 없네요. 이젠 그만 수정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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