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과 지혜
집중은 움켜잡음을 특징으로 하고, 지혜는 밝게 비춰봄을 특징으로 함
밀린다왕이 나가세나 존자에게 물었다. “존자이시여, 주의집중(注意集中)은 무엇을 특징으로 하며, 지혜는 무엇을 특징으로 합니까?” “주의집중은 움켜잡음을 특징으로 하고, 지혜는 끊어버림을 특징으로 합니다.” “수행자는 주의집중에 의해 자신의 마음을 움켜잡고, 지혜에 의해 자신의 번뇌를 끊습니다.”
“또 지혜는 밝게 비춰봄[光照]을 특징으로 합니다.” “어찌하여 지혜의 특징이 ‘밝게 비춰봄’입니까?” “대왕이시여, 지혜가 생겨날 때 지혜는 무명(無明)의 어둠을 깨고, 밝게 아는[明知] 광채를 발하여 지식의 등불을 밝히고, 성스러운 진리[聖諦]를 드러냅니다.” “이리하여 수행자는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의 바른 지혜로써 모든 존재를 비춰보는 데 온 정력을 쏟습니다.” 왕이 말했다. “존자이시여, 비유를 들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대왕이시여, 어떤 사람이 어두운 방에 등불을 들고 들어오면 어둠을 깨고, 광채를 발하여, 밝은 빛을 비춰, 방안에 있는 온갖 사물을 밝게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행자는 밝은 지혜로 모든 존재를 바로 비춰 봅니다.”
위의 글은 밀린다팡하, 나선비구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불교의 지혜의 개념을 좀 더 정확하게 정의하면, 지혜란 붓다의 깨달음의 내용인 삼법인, 사성제, 12연기의 법을 듣고, 붓다가 했던 방식대로 관찰해 들어가, 자신의 눈으로 직접 그 법을 보는 것이다. 앞에서 ‘반야(般若)’는 빨리어 ‘Paññā’를 중국식으로 발음한 것이라고 했다. ‘Paññā반야’라는 단어를 분석해보면 ‘Pa’는 ‘완전하게’, ‘명료하게’, ‘분명하게’, ‘잘’이라는 의미이고, ‘ñā’는 ‘안다’는 의미다. 따라서 반야(‘Paññā)는 관찰을 통해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아 “분명하게 아는 것”이다. 선정상태에서 관찰해 들어가 밝게 아는 것이 지혜이기 때문에 지혜를 ‘관찰’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국불교에는 定慧雙修(정혜쌍수)와 止觀兼修(지관겸수)가 완전히 다른 뜻으로 해석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조금 귀찮지만 직접 인터넷 사전에 定慧雙修(정혜쌍수)와 止觀兼修(지관겸수)를 검색해보는 것이 좋다.
알기 쉬운 말로 그것의 정확한 뜻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定慧雙修(정혜쌍수)와 止觀兼修(지관겸수)는 같은 말로서, 定慧雙修(정혜쌍수)는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가야 한다는 말이고, 止觀兼修(지관겸수)는 멈춤[止]과 관찰[觀], 즉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말이다.
定慧雙修(정혜쌍수)에서 정[定]은 산만하게 돌아다니는 마음을 한 대상에 고정(固定)시켜 정신통일을 이루는 선정(禪定)의 의미이고, 혜[慧]는 그렇게 정신통일이 이뤄진 상태에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즉 신수심법(身受心法), 오온 등을 관찰[觀]하여 그 특성을 알아가는 지혜(智慧)의 의미다.
止觀兼修(지관겸수)에서 止(지)는 ‘맘대로 돌아다니는 생각을 멈춘다’는 의미이고, 觀(관)은 ‘신수심법(身受心法), 즉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관찰한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멈춤[止]은 선정을 의미하고, 관찰[觀]은 지혜를 의미한다. 생각을 멈춰야만 선정상태에 들 수 있고, 선정상태에 들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관찰해 들어가 그 특성을 알아가야만 지혜가 나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