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저의 반야심경 해설작업의 일부를 올립니다.
이와 같이 유식학(唯識學)의 팔식론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한 학파의 학설에 불과하다. 그것도 이론이 분분하여 논파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 중요한 것은 아뢰야식, 여래장, 진여, 자성 등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식학파의 학자들이 인도 전통인 힌두교의 아트만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낸 허구(虛構)라는 사실이다.
유식불교, 아뢰야식은 인도 굽타왕조시대의 산물이고, 불교의 힌두교화이다.
그럼 유식학과 같은 이런 힌두교적인 교리를 가진 불교가 왜 나오게 되었는가? 그것은 당시 인도의 시대상황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무착(無着,300-390년?), 세친(世親, 316-396년) 등에 의해 유식불교가 시작된 4C초반은 인도의 굽타왕조시대(320-520년)가 시작된 시기이다. 이 때부터 인도는 과거 인도의 전통이었던 바라문교로 되돌아가는 대(大) 전환기에 접어든다.
서북인도에서 서인도, 그리고 갠지스강 중류 지방에 이르는 지역은 수세기 동안 그리스세력, 스키타이인, 중앙아시아 출신의 쿠샤나왕조 등 이민족이 지배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인도 마가다 지방 출신의 굽타왕가에 의해 마우리야왕조(B.C 322년~B.C 185년) 이래 처음으로 인도인의 지배에 의한 대 제국이 수립되었다.
이것은 ‘인도 전통세력과 힌두문화의 부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굽타왕조시대에는 인도 고전어인 산스크리트어와 브라만이 주도하는 사회, 관행, 종교의례 등이 다시 중시되었다. 굽타시대에는 이른 바 브라만교로 일컬어지는 고대의 인도 종교가 토속신앙과 결합하여, 현대의 힌두교와 유사한 형태로 바뀌었다. 그리고 굽타왕조시대에는 ‘6파철학’으로 불리는 힌두교의 여섯 정통파의 철학체계가 수립되었고, 불교와 자이나교의 진출로 인해 한 때 후퇴하였던 베다의 종교적·사회적 권위가 다시 강화되었다. 따라서 쉬바, 비슈누 등의 신들이 점차 위대한 신으로 숭배되었다. 굽타기의 이러한 시대 분위기에 발맞추어 대승불교는 재빨리 힌두교로부터 여러 신(神)을 도입했다.
대승불교에서 천안(千眼)을 가진 인드라신과 천수(千手)를 가진 쉬바, 비슈누신을 합해 천수천안(千手千眼)관세음보살을 만들어냈다. 인드라(Indra)신은 불교의 제석천(帝釋天)으로 등장했고, 힌두교에 있던 방위신이 불교로 들어와 사방에서 불법(佛法)을 수호해주는 사천왕(四天王)이 되었다. 힌두교 쉬바신의 다른 이름인 ‘닐라칸타(Nīlakaṇṭha)’, 즉 ‘푸른 목을 가진 존재’는 불교의 <신묘장구대다라니> 속에 나오는 청경(靑頸)관음으로 등장한다. 또 ‘춘디(Cundī)’라고 하는 힌두교의 한 여신은 준제(准提)보살로 등장한다. 불교사찰 부엌에 걸려있는 탱화에 검은색으로 분노의 얼굴을 하고서 해골왕관을 쓰고 있거나 해골목걸이를 두르고 있는 ‘마하깔라’라는 신이 있다. 마하깔라는 힌두교의 시바신이 파괴와 죽음의 신격으로 나타날 때의 이름이다.
굽타기에 대승불교는 힌두교로부터 들여온 신들에게 소원을 빌기 위한 제사를 지내거나 예배를 올리는 의식을 도입하여, 점점 힌두교화 되어갔다. 이와 같이 굽타왕조기에 들어 대승불교는 힌두교의 많은 신들을 불교 안으로 수용하고, 아트만, 업(業), 보시, 제사, 기도, 공덕, 요가, 주문(呪文), 주술의례 등을 중시하는 힌두교의 교리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힌두교 쪽에서는 부처님을 비슈누의 한 화신으로 간주하게 되었고, 심지어 불교를 힌두교의 한 종파로 여기기까지 하였다. 이것은 베다를 떠받드는 인도 전통사회가 불교를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편입시킴으로써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하였으며, 카스트제도를 반대했던 불교가 스스로 힌두교의 문화를 받아들여, 힌두교에 완전히 흡수되게끔 하였다.
불교에 가까웠던 2~3명의 왕을 제외한 나머지 굽타왕조의 왕들은 거의 다 열렬한 힌두교도였다. 하지만 불교나 그 밖의 다른 종교를 배척하지는 않았다. 굽타왕조시대에 들어와 왕실의 보호 아래 힌두교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불교는 점차 쇠퇴기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굽타왕조시대의 조류(潮流)를 타고 나타난 것이 불교의 힌두교화이다. 그 중 가장 악의적으로 나타난 것이 석가불교의 파괴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유가행유식학파(瑜伽行唯識學派)에서 아트만과 동일한 개념의 아뢰야식을 불교에 만들어 넣어, 석가의 법을 파괴하고, 교묘한 술수로 불교를 힌두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인도 전통인 베다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는 브라만 가문 출신의 불교승려 논사인 무착과 세친이 부처님의 법이 베다의 말씀과 상충하는 것임을 알고, 고심한 끝에 만들어낸 것이 유식학의 팔식론이고, 아뢰야식 이론이다. 이 두 논사는 아트만을 아뢰야식으로 이름을 바꾸어 불교에 집어넣음으로써 불교를 힌두교로 만들 수 있었다.
** 이 글은 다음카페 <위빠사나금정선원> 조성래 원장의 글입니다. 더 많은 글을 보려면 카페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