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저의 반야심경 해설작업의 일부를 올립니다.
오온의 想(상)을 뭐라고 번역해야하나?
그럼 오온의 想(상)을 뭐라고 번역해야하나? 想(상)은 ‘인식(認識)’으로 번역하면, 딱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想(상)을 <한글대장경>에서는 ‘생각’으로 번역했고, 조계종 <한글 반야심경>과 김윤수의 <잡아함경>에서는 번역하지 못 하고, 그냥 한글로 ‘상’이라고 하고 있다. 니까야 번역을 보면, 想(상)을 각묵 스님은 ‘인식(想)’으로 번역했고, 전재성 박사는 ‘지각(想)“으로 번역했다. 참고로 말하면, 지각(知覺)은 오온의 마지막 요소인 識(식)과 맞아 떨어지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금강경의 사상(四想, 四相)에 대한 잘못된 해석
한국 불자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想(상)으로는 금강경의 사상(四想)이 있다. 아상(我想), 인상(人想), 중생상(衆生想), 수자상(壽者想)이 그것이다. <금강경> 제3분(分)에 나오는 다음 문장을 어떻게 번역할지가 문제가 된다.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即非菩薩。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유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비보살)
한국을 대표하는 강백 중 한 분인 무비 스님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나'라는 상, '남'이라는 상, '중생'이라는 상, '수명'에 대한 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독자들이 봐도 이 번역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위의 내용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나’라는 인식, ‘사람’이라는 인식,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인식,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면, 그는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의 두 번역은 그 의미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다. 무비 스님의 번역은 想(상)을 번역하지 못 하고, 그냥 ‘상’으로 쓰고 있을 뿐만 아니라, 人相(인상), 衆生相(중생상), 壽者相(수자상)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 하고 있다. 교학이 부실한 한국 및 중국의 기존 불교에서는 相(상,想)의 개념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까닭에 번역문이 대단히 어렵다. 무비 스님의 번역을 보면, 특히 중생상, 수자상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한 말로 번역돼 있다.
“나[我]”라는 생각, 즉 “나”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상(我想)’이라고 한다. “사람[人]”이라는 생각, 즉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인상(人想)’이라고 한다. “중생”이라는 생각, 즉 “목숨을 가진 존재”, “생명체”라고 고집하는 것’을 ‘중생상(衆生想)’이라고 한다. 그리고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견해를 가지는 것을 ‘수자상(壽者想)’이라고 한다. 여기서 ‘생각’, ‘인식’, ‘고집’, ‘견해’ 등은 다 같은 의미로서 ‘想(상)’을 문맥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표현해본 것이다.
영어번역에서는 想(상)을 '개념', '관념', '생각', '(~라는) 인식', '환상', '착각' 등의 뜻인 ‘notion’, ‘idea’, ‘illusion’ 등으로 옮기고 있는데, 그 중 ‘notion’이 가장 적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 saṃj˜nā(삼즈냐)의 번역어인 想(상, 相)은 그릇된 인식(생각, 믿음), 착각, 망상, 상상, 환상, 미망(迷妄) 등의 뜻으로, 반야심경에 나오는 '전도몽상(顚倒夢想)'과 같은 뜻이다.
기존 한국불교에서 사상(四相)의 개념을 잘못 배운 분들 중에 혹자는 ‘이것은 너무 비약적인 해석이 아닌가’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해석이 맞는 것이다. 그 근거로 다음 글을 보자.
금강경의 사상(四想, 四相)에 대한 상세한 해설
<금강경>을 읽고 나면, 남는 것은 我相(아상), 人相(인상), 衆生相(중생상), 壽者相(수자상) 밖에 없다. 그만큼 이것이 여러 번 나오고,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금강경>의 이 네 가지 상(相, 想)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육조 혜능(慧能: 638~713)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그 뜻을 해설해 놓았지만, 그것들은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해놓은 것들이라, 정확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壽者相(수자상)에서 ‘壽者(수자)’의 의미가 뭔지 알 수가 없다. 또 인상(人相)에서 ‘人(인)’이 ‘사람’이라는 뜻인지, ‘다른 사람[他人]이라는 뜻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럼 壽者相(수자상)에 대해 육조 혜능 대사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한 번 보자. 혜능 대사는 수자상에 대해 “범부들이 대상을 보고 취사분별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고, 또 “수행인이 오래 사는 것을 좋아해서 부지런히 복을 닦으며, 온갖 집착을 놓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혜능은 ‘壽者(수자)’에 대해 ‘오랜 세월[長年]’, 즉 ‘장수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壽者(수자)는 산스크리트어 원어의 도움 없이, 한문만으로는 그 뜻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게 한역돼 있는 단어다. 壽者(수자)는 ‘살아있는 존재’, ‘영혼을 가진 존재’, ‘생명체’라는 뜻이다. 이 한 가지만 봐도 사상(四相)이 그동안 원래의 의미와 얼마나 다르게 해석돼 왔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금강경에서 想(상), 즉 사상(四相)에 대한 개념 잡기가 그만큼 어렵고 중요한데, 제대로 개념이 잡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산스크리트어 원어를 통하여 사상(四相)에 대한 개념을 한 번 잡아보자.
1) 아상(我相, 我想, ātman-samj˜nā): self-concept, egoism, a notion of a self, the illusion of “I" or ego-entity
‘아상(我相)’이란 ‘나’라는 생각, 즉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我(아)’는 산스크리트어 ‘ātman(아트만)’의 번역이고, ‘想(상)’은 ‘samj˜nā(삼즈냐)’의 번역이다. 아트만(ātman)은 힌두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개념으로, ‘호흡[氣息]’, ‘영혼’, ‘생명’, ‘자신(自身)’, ‘본질’, ‘본성’ 등의 뜻을 가진 단어로서 ‘我(아)’, ‘我者(아자)’, ‘自己(자기)’, ‘神(신)’ 등으로 한역돼 있다. 또 ‘samj˜nā(삼즈냐)’는 ‘이름’, ‘생각’, ‘인식’, ‘개념’, ‘잘못된 생각’이란 뜻으로 ‘名(명)’, ‘想(상)’, ‘相(상)’, ‘槪念(개념)’, ‘邪想(사상)’ 등으로 한역돼 있다. 즉 아상(我想)은 ‘나’라는 생각,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나’, 즉 ‘아트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데, ‘나’, 즉 ‘아트만’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 등이다.
아상(我想)은 이 몸과 마음은 오온의 가화합(假和合)으로 이루어져 있어, 풀잎 위의 이슬과도 같은 존재일 뿐인데, 고정불변의 ‘나[我]’, 즉 아트만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반야의 눈으로 보면, 몸과 마음이 있고, 그것의 작용이 있을 뿐, ‘나’라고 할 만한 존재는 오온 중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나, 아트만, self, ego’라고 하는 추상적인 개념을 하나 만들어놓고, 그것에 집착하고 고집한다. 그런 나머지 괴롭다. 여기서 ‘나’라는 개념은 관념이 만들어 낸 하나의 환상일 뿐, 실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그 환상에 속아, 꼼짝없이 그것의 노예로 살아간다.
2) 인상(人相, 人想, pudgala-samj˜nā): a notion of a person, a personality, an idea of a person, the illusion of a person
인상(人相, 人想)은 산스크리트어 ‘pudgala-samj˜nā(푸드갈라 삼즈냐)’의 번역어로, ‘사람’이라는 생각,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산스크리트어 pudgala(푸드갈라)는 ‘아름답다’는 뜻이 있고, 명사로는 ‘신체’, ‘물질’, ‘나[我]’, ‘개인’, ‘영혼’이라는 뜻이 있고, 이것은 我(아), 人(인), 衆生(중생), 有情(유정), 士夫(사부), 丈夫(장부) 등으로 한역돼 있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 것은 ‘pudgala(푸드갈라)’에 ‘我(아)’, ‘人(인)’, ‘衆生(중생)’의 뜻이 모두 다 들어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보면, 아상, 인상, 중생상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같거나 유사한 개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브라만 출신의 인도 승려인 진제(眞諦, 499-569)가 번역한 <금강경>을 보면, 사상(四相, 四想)은 ‘我想(아상), 衆生想(중생상), 壽者想(수자상), 受者想(수자상)’으로 번역돼 있어, pudgala-samj˜nā(푸드갈라삼즈냐)를 人相(인상)이 아니라 ‘衆生想(중생상)’으로 번역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인상과 중생상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3) 중생상(衆生相, 衆生想, sattva-samj˜nā): a notion of a living being, a notion of a being with a feeling, a notion of a sentient being
‘衆生相(중생상)’은 산스크리트어 sattva-samj˜nā(사트바삼즈냐)의 번역으로, ‘중생’이라는 생각, 즉 ‘생명’ 또는 ‘생명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생’은 산스크리트어 sattva(사트바)의 번역어다. sattva는 중생 외에 ‘존재하는 것’, ‘有(유)’, ‘존재(存在)’, ‘실재(實在)’, ‘실체(實體)’, ‘생명’, ‘생물’, ‘동물’, ‘유령’, ‘악마’ 등의 뜻을 가진 단어로서 ‘人(인)’, ‘彼(피)’, ‘他(타)’, ‘有情(유정)’, 衆生(중생), ‘含識(함식)’, ‘壽者(수자)’ 등으로 한역돼 있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 것은 ‘중생’의 원어 sattva(사트바)도 역시 ‘人(인)’의 뜻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봐도 인상과 중생상을 구분해서 다른 개념으로 해석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진제(眞諦)가 번역한 <금강경>을 보면, 거기엔 sattva-samj˜nā(사트바삼즈냐)를 衆生相(중생상)이 아니라 ‘壽者想(수자상)’으로 번역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4) 수자상(壽者相, 壽者想, jiva-samj˜nā): a notion of a life, a notion of a life span, the notion of a living soul, the idea of a soul, a notion of a being with an immortal soul
‘壽者相(수자상)’은 산스크리트어 ‘jiva-samj˜nā(지바 삼즈냐)’의 번역어로, ‘생명’, ‘목숨 가진 존재’, ‘영혼을 가진 존재’라고 인식하거나 고집하는 것이다. 壽者(수자)는 산스크리트어 ‘jiva(지바)’의 번역어이다. jiva(지바)는 ‘존재하는’, ‘살아있는’ 등의 뜻이 있고, 명사로는 ‘영혼’이라는 뜻이 있다. jiva(지바)는 ‘命(명)’, ‘命者(명자)’, ‘存命(존명)’, ‘活命(활명)’, ‘壽(수)’, ‘壽者(수자)’, ‘壽命(수명)’, ‘活物(활물)’, ‘生物(생물)’, ‘生命(생명)’, ‘存在(존재)’ 등으로 한역돼 있다. 이 ‘壽者(수자)’의 원어 jiva(지바)에도 ‘我(아)’나 ‘중생’에서와 마찬가지로 ‘생명’, ‘존재’, ‘영혼’, ‘생물’이라는 뜻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봐도 我(아), 人(인), 衆生(중생), 壽者(수자)는 같은 의미의 단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금강경>의 다른 한역본을 보면, 진제(眞諦)와 현장(玄奘)은 jiva-samj˜nā(지바삼즈냐)를 壽者相(수자상)이 아니라 ‘受者想(수자상)’으로 번역해 놓았고, 급다(笈多)는 ‘壽想(수상)’으로 번역해 놓았다. 여기서 受(수)는 ‘느낌’이라는 뜻으로, 受者想(수자상)은 ‘느낌을 가진 자라는 인식’이라는 뜻이다. 壽想(수상)은 ‘목숨, 생명체, 영혼이라는 인식’이란 뜻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산스크리트어 원어를 통하여 사상(四相)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혹자는 “이것도 너무 심한 비약이 아니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로 비약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잡아함 570경>의 내용이 그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위빠사나금정선원> 조성래 원장의 글입니다.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합니다. 카톡으로 주변의 귀한 분들께 많이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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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조성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10.17 조성래 해도 좋습니다. 수행을 하려면요. 전번은 위에 있죠? 정말 부처님 가르침을 알려고 하면, 스님들의 말이나 인터넷 선무당들의 말이 아니라 아함경을 열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아함경은 제가 많은 것을 번역해 이 카페에 올려 놓았습니다. 수행은 하지 않고, 무책임한 법문을 해대는 사람들은 불자가 아니라 마구니의 권속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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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홀로피는연꽃 작성시간 17.03.17 조성래 시간되는대로 읽어볼께요
저는 모르는 게 많아요
듣기론 빨리어... 등등 공부 아주 많이 하신 걸로 알아요
저는 그 단계 가려면 아직 머~얼었습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아줌마일 뿐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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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홀로피는연꽃 작성시간 17.03.23 어제 글읽기 모임에서 잠시 금강경의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를 지도해주시는 L교수님의 또 다른 이야기...이 분은 평소 제가 무척 존경해마지않는 분이십니다
금강경의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은 부처님 당시 자른 종파들이 영혼불변이라고 디었던 실체들의 이름... 이고 그렇게 영원불변이라는 상이 없다는 주제를 파악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또한 반대하시나요?
갑자기 궁금해서 여쭙니다
오늘은 바빠서 이제야 여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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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조성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10.17 홀로 피는 연꽃님, 글 읽기 모임에도 나가시고, 열공이십니다. 저에게 그 교수님 해석에 대한 견해를 묻는 것보다 그 교수님께 저의 이 글을 카톡으로 보내, 평을 받아보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다들 相(상)이 오온에서의 想(상)과 같은 것인 줄도 잘 모르고, 또 오온에서의 想(상)의 개념도 잘 몰라요. 한국 학자들의 불교 이해 수준은 말하기 곤란할 정도랍니다. 한국은 불교권 국가이지만 세계적인 불교 학자는 단 한 명도 없답니다. 평생 불교학을 가지고 밥을 먹고 살았지만, 외국 학자들에게 의미있는 논문이나 저술을 내놓았다고 평가 받는 학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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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조성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7.03.24 조성래 그 L교수님께 위의 금강경 문장을 설명하지 말고, 번역해 달라고 해보시면, 그 분의 해석이 맞는지 틀린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번역이 잘 안되거나 해 놓은 번역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으면, 그 해석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여튼 홀로 피는 연꽃님의 등장은 정말 반갑습니다. 질문도 하시고, 또 때로는 다른 견해를 개진하셔도 괜찮습니다. 말 장난이 아니라 진지하게만 하신다면. 이 글 또는 저의 해석에 대한 그 교수님의 반응을 댓글로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그 교수님께서 직접 이 글에 댓글을 달아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