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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반야바라밀을 닦는 방법

작성자조성래|작성시간14.12.03|조회수121 목록 댓글 1

요즘 카페가 조용하여 저의 반야심경 작업 내용을 찢어 올립니다.

 

  깊은 반야바라밀을 닦는 방법

 

앞의 <반야심경> 원문에서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닦아갈 때’라고 했다. 그럼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어떤 방법으로 닦는가?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반야심경의 본문에 이미 나와 있다. 법성(法成)이 번역한 돈황본 반야심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이때 사리자가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아 관자재보살에게 물었다. “만약 선남자가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닦고자 하면 어떤 방법으로 닦아야 합니까?” 관자재보살이 사리자의 질문에 답했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닦고자하면 그는 마땅히 이와 같이 오온의 실체[自性]가 모두 공(空)함을 관찰해가야 한다”고.

 

이런 내용의 질문과 답은 단지 법성 번역의 반야심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반야 공리언이 번역한 반야심경에도 나오고, 지혜륜 번역의 반야심경과 시호 번역의 반야심경에도 나온다. 모두 동일한 내용의 문답으로서, “깊은 반야를 닦기 위해서는 오온(五蘊), 즉 자신의 몸과 마음의 실체가 다 공함을 관찰해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관찰(觀察)”이라는 단어에 유의해야 한다. 관찰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 즉 색, 수, 상, 행, 식을 세밀하게 관찰해 들어가, 그 특성을 알아가는 것이다.

 

 깊은 반야를 닦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는 까닭은?

 

그런데 유독(唯獨) 우리가 매일 외는 현장 번역의 반야심경에만 깊은 반야를 닦는 방법에 대한 안내가 빠져 있다. 왜 그럴까? 혹시 누가 장난을 친 것은 아닐까? 이 내용이 산스크리트 원문에 빠져있을 수도 있고, 한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이나 번역 후 유통되는 과정에서 빠졌을 수도 있다. 그것이 어찌 된 영문인지 확인해 보자.

 

일본 법융사의 산스크리트 본과 독일 콘즈(Conze)의 산스크리트 본을 확인해봤다. 이 두 산스크리트 원본에 이미 그 내용이 빠져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인도의 산스크리트 원전에서 이미 빠졌다는 말이다. 깊은 반야를 닦는 방법은 너무나 중요한 내용인데, 왜 그것이 빠져 있을까? 혹시 이 방법을 싫어하는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빼버린 것은 아닐까? 의심해볼 수 있는 것은 붓다의 선수행 방법을 싫어하는 대승불교주의자들이다. 대부분 바라문교 출신들로 구성된 대승불교주의자들은 사실 붓다 고유의 관찰법인 위빠사나로 선정을 닦는 것을 그렇게 좋게 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닦는 것은 염불과 다라니, 예경과 제사, 기도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처님의 법에 대해 “소승법”이라는 말을 써가며 아주 지능적으로 붓다의 법을 폄하, 훼손하려 했다. 붓다의 근본불교와 대승불교와의 먹이싸움, 즉 신도 쟁탈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치열했다. 예를 들어 법화경의 경우, 경전에서 바로 붓다의 방법에 대해 거친 말로 비방하며 자신들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법화경 ////품에 “/////”라고 나온다. 대승불교 주의자들은 ‘대승불교’라는 가짜불교를 만들어 내어, 법에 대해 잘 모르는 대중들을 그들 쪽으로 이끌고 가려고 했다.

이와 같이 불교역사도 알고 보면 복잡 미묘한 일이 많았다. 불교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대승불교의 가짜경전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또 전해오던 경전에서 원래 있던 내용을 빼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 대표적 예를 진제번역의 <대승기신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진제는 기신론을 번역하면서 산스크리트 원문에 있던 무아를 빼버렸다. 이러한 사실은 실차난다의 번역에는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라고 번역돼 있지만 진제는 무아는 빼버리고 무상과 고(苦)만 쓰고 있다. 그럼 진제는 왜 무아를 빼버렸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대승주의자들은 실은 아트만을 숭상하는 유아주의자(有我主義者)들이었기 때문에 ‘아트만과 같은 그런 존재는 없다’고 하는 붓다의 무아설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승경전에는 삼법인 중 무상과 고만 나오지 무아는 좀체 나오지 않는다. 물론 금강경과 같은 비교적 순수한 초기대승 경전에서는 ‘무아’라는 말을 찾아볼 수 있다.

대승에도 붓다 가르침의 근간(根幹)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사상, 즉 종교적 개념을 끼워 넣은 순수대승 경전이 있고, 붓다 법의 근간을 뒤흔들고, 불교교의에 혼란을 불러일으켜, 불교를 파괴하거나 불교를 바라문화 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불순대승 경전이 있다.

순수대승의 대표적 경전으로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들 수 있고, 불순대승의 대표적 경전으로 법화경과 대반열반경, 유마경 등을 들 수 있다. 불순대승 경전들은 붓다의 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바라문교의 사상과 방법을 그대로 옮겨놓은 새로운 대승불교사상을 내세우고 있다. 그 중 특히 유마경을 조심해야 한다. ‘유마’라는 인물은 붓다의 법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 교묘한 말장난으로 법을 파괴하는데, 그 파괴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아마 선문답의 기원은 유마의 입일 것이다. 오늘날 대승불교권의 불교는 모두 이 유마의 입에 놀아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인도에서도 그랬고, 중국에서도 그랬다. 자기 종파에 맞지 않은 경전의 내용은 빼버리거나 다른 내용으로 바꿔버리는 경우를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원래 없던 내용을 만들어 넣은 경우도 있었다. 여기서 불교역사의 왜곡과 정법의 오염문제가 발생한다. 사실 우리가 여태껏 접해오던 대승불교는 석가의 법이 아닌 것이 더 많다. 인도 육사외도의 법과 중국 도교의 법이 많이 들어와 있다. 이런 까닭에 상호 모순되는 교리가 나오고, 법이 흐려지며, 불교가 난해해져버린 것이다.

석가의 법은 결코 어렵지 않고, 간단명료하다. 원래 진리는 어렵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깨달은 분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분명한 언어로 정확하고도 명료하게 법을 설해주는 법이다. 하지만 종교 사기꾼들은 대중이 알아들을 수 없는 난해한 말로 대중을 기만하며, 재물을 뜯어내고 있다. 대중들이여! 난해한 말을 하는 자들에게 속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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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반야 | 작성시간 15.05.01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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