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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중 알아차림 명상 교사 연수 자료

작성자조성래|작성시간15.04.09|조회수149 목록 댓글 3

장안중학교에서 알아차림 명상에 대해 교사 연수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그 자료를 올립니다.

 

 

정서불안을 치유하고 집중력을 길러주고

지혜를 계발하는 알아차림 명상

止觀兼修(지관겸수) 定慧雙修(정혜쌍수)

                                                                                

                                                                                     조 성 래 (위빠사나금정선원 원장)

 

1. 空寂靈知(공적영지): 생각이 없어서 고요하면서도 또렷이 깨어있는 상태. 반대말은 散亂昏沈(산란혼침). 산란은 온갖 생각으로 인해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산만한 상태이고, 혼침은 마음이 술에 취한 것처럼 깨어있지 못하고 멍하거나 흐릿함, 또는 졸림, 졸음, 수면 등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우리는 평소에 산란 아니면 혼침 상태에 머물러 있는데, 이것을 공적영지의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 수행.

 

*惺寂等持(성적등지): 고요함과 깨어있음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 惺惺寂寂(성성적적)

 

2. 定慧雙修(정혜쌍수):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감.

禪定(선정)은 ‘禪(선)’과 ‘定(정)’이 결합된 단어다. 또 한자 ‘禪(선)’은 ‘볼 시示 watch’와 홑 단 ‘單 one’이 결합된 글자로서, ‘줄곧 하나의 대상을 지켜본다’는 의미다. ‘定(정)’은 ‘固定(고정)’의 의미로, ‘마음이 다른 데로 달아나지 않고 줄곧 하나의 대상에 고정돼 있음’을 의미한다. 즉 선정이란 하나의 대상을 지켜봄으로써 그 대상에 줄곧 마음이 고정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智慧(지혜):

 

3. 止觀兼修(지관겸수): 멈춤[止]과 관찰[觀]을 함께 닦아감.

 

1) 멈춤[止], 사마타(śamatha), 선정(禪定), 고요함, 생각의 쉼, 번뇌에서 벗어나 있음, 止息, 편안함, 집중(集中), 안정(安定).

(산) śamatha는 止(지), 寂止(적지), 寂滅(적멸), 消滅(소멸), 等靜(등정), 定心(정심), 禪定, 攝寂靜(섭적정) 등으로 한역돼 있다.

멈춤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치유, 신통이 생겨남.

 

*힌두교의 요가수트라에 “심(心)작용의 지멸(止滅)이 요가”라고 말한다.

 

(산) yoga는 의료, 치료, 수단, 방법, 주술(呪術), 마술(魔術), 합일(合一), 결합(結合), 혼합(混合), 연결(連結), 관계(關係), ....의 취득(取得), 소득(所得), 이득(利得), 노력, 열중, 정신집중, 심통일(心統一), 명상(瞑想), 정려(靜慮) 등의 의미로, 繫(계), 合, 相合(상합), 聚(취), 成就(성취), 通(통), 平等(평등), 行(행), 修(수), 習(습), 修行(수행), 修習(수습), 思惟(사유), 繫念思惟(계념사유), 觀(관), 方便(방편) 등으로 한역돼 있다.

 

2) 관찰[觀], 위빠사나(vipassanā),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멸현상을 지혜의 눈으로 보아 밝게 아는 것.

위빠사나의 관찰수행을 많이 하면 지혜가 밝아짐.

(산) vipaśyana는 중성 명사로서 ‘바른 지식’이라는 뜻으로, 見(견), 勝觀(승관), 等觀(등관) 등으로 한역되어 있고, 毘婆舍那(비파사나)로 음사된다. (산) vipaśyanā는 여성 명사로서 觀, 慧, 妙觀, 正見 등으로 한역돼 있다.  

멈춤→ 관찰→ 알아차림 해감→ 지혜계발→ 꿰뚫어봄→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깨달음→ 열반을 이룸→ 육도윤회에서 벗어남[해탈].

 

*알기 쉬운 말로 定慧雙修(정혜쌍수)와 止觀兼修(지관겸수)의 뜻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定慧雙修(정혜쌍수)와 止觀兼修(지관겸수)는 같은 말로서, 定慧雙修(정혜쌍수)는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가야 한다’는 말이고, 止觀兼修(지관겸수)는 ‘멈춤[止]과 관찰[觀], 즉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말이다.

定慧雙修(정혜쌍수)에서 정[定]은 산만하게 돌아다니는 마음을 한 대상에 고정(固定)시켜 정신통일을 이루는 선정(禪定)의 의미이고, 혜[慧]는 그렇게 정신통일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즉 신수심법(身受心法), 오온 등을 관찰[觀]하여 그 특성을 알아가는 지혜(智慧)의 의미다.

止觀兼修(지관겸수)에서 止(지)는 ‘맘대로 돌아다니는 마음을 멈춘다’는 의미이고, 觀(관)은 ‘신수심법(身受心法), 즉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한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멈춤[止]은 선정을 의미하고, 관찰[觀]은 지혜를 의미한다. 마음을 멈춰야만 선정에 들 수 있고, 선정에 들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관찰해 들어가, 그 특성을 알아가야만 지혜가 나오기 때문이다.

   

삼학(三學): 삼독(三毒), 즉 탐진치(貪瞋痴)를 없애기 위해 닦아야하는 세 가지 공부; 계(戒), 정(定), 혜(慧)

 

(1) 계[戒, (산) sila]

 

계의 본래 의미는 그릇됨을 막고 악업(惡業)을 그치게 하는 것.(防非止惡)

수행자가 악업, 즉 공부에 해로운 행위를 하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하는 행동규범을 정해 놓은 것. 나쁜 습관을 끊고 좋은 습관을 익혀, 선업(善業)이 쌓이게 하는 것이 목적.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마음이 거칠고, 부도덕하게 되며, 마음이 들뜨고, 산만하여 선정(禪定)에 들지 못하고, 지혜가 밝아지지 않는다.

戒(계)의 반대 개념은 貪(탐), 欲(욕) 등이다. 내 안에 어떤 욕구가 있는데, 그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불만이 생기고, 불만이 생기면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지 못하고 들끓게 된다. 들끓는 마음, 즉 탐심(貪心)과 진심(瞋心)이 있는 마음으로는 선정에 들 수 없다.

 

1) 오계(五戒) : 수행자가 지켜야하는 다섯 가지 기본 계율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거나 괴롭히지 않겠습니다[不殺生].

주지 않는 물건을 취하거나 빼앗지 않겠습니다[不偸盜].

삿된 음행을 하거나 음란물을 보지 않겠습니다[不邪淫].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不妄語].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약물을 복용하거나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不飮酒].

 

대승보살의 십선계(十善戒)

(열 가지 악업을 참회함, 十惡懺悔)

살생한 죄를 참회합니다.[殺生]

훔치고 빼앗은 죄를 참회합니다.[偸盜]

간음한 죄를 참회합니다.[邪淫]

거짓말 한 죄를 참회합니다.[妄語]

교묘한 말로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한 죄를 참회합니다.[綺語]

이간질 한 죄를 참회합니다.[兩舌]

욕하고 험담한 죄를 참회합니다.[惡口]

욕구를 일으켜 애착한 죄를 참회합니다.[貪愛]

화내고 미워한 죄를 참회합니다.[瞋恚]

어리석었던 죄를 참회합니다.[痴暗]

 

(2) 정[定, (산) Samādhi, 삼매, fixed]

 

정(定)은 ‘선정(禪定)’, ‘사마타’ 또는 ‘삼매’라는 뜻.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 ‘부동심(不動心)’ 또는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고도 한다. 마음이 하나의 대상을 취하고 있는 것, 마음이 산란하지 않는 것, 집중, 정신통일, 고요함, 평온, 정서적 안정(安定), 마음이 편안히 머물러 있는 것, 생각을 쉼, 감각기관을 통제함, 번뇌를 항복받음 등의 특징이 있다. 定의 반대개념은 들뜸[掉擧], 산란(散亂), 散動(산동), 散漫(산만), 정서불안, 번뇌망상, 화냄[瞋] 등이다.

 

대승보살장정법경(大乘菩薩藏正法經) 33권 선정바라밀품에 선정의 특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 사리자여, 선정바라밀다는 어떤 것을 특징으로 하는가? 이른바 움직이지 않아 단단히 고정된 마음[決定心]을 특징으로 하고, 하나의 대상을 취하고 있는 마음[一境心], 산란하지 않는 마음[不散亂心], 편안히 머무는 마음[安住心], 사마타의 마음[奢摩他心],........감각기관을 한 결 같이 지켜 통제함[根等持],........번뇌를 항복받음[.降伏煩惱怨賊] 등을 특징으로 한다. 사리자여, 이와 같은 고요한 법을 ......선정바라밀다의 특징으로 한다.”

 

(867c22 復次舍利子。禪定波羅蜜多以何爲先。所謂決定心爲先。一境心爲先。不散亂心爲先。安住心爲先。奢摩他心爲先。.......根等持爲先。..........降伏煩惱怨賊爲先。.....舍利子。如是寂靜之法。........於禪定波羅蜜多爲先)

 

잡아함경 803경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온다.

 

“촌락에 들어가 걸식할 때 그 몸에 주의(注意)를 집중하여 잘 지켜보고, 모든 감각기관의 문[根門]을 지켜, 마음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잘 묶어 매어 머문다. (入村乞食。善護其身。守諸根門。善繫心住)”

 

또 부처님의 유언법문인 유교경(遺敎經)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1) 감각기관[오근]을 통제하라.

 

너희 비구들이여, 이미 계에 머물 수 있거든 마땅히 오근(五根)을 통제하여 방일(放逸)하여 오욕(五欲)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소치는 사람이 막대기를 들고 지켜보아, 소가 함부로 날뛰어 남의 곡식밭에 뛰어들지 못 하게 하는 것과 같다.

 

2) 마음을 항복받아라.

 

이 ‘오근’은 마음이 그 주인이다. 이런 까닭에 너희들은 자신의 마음을 잘 통제해야 한다. 마음은 독사나 맹수, 원수나 도적보다 더 무서워해야 할 존재이니, 큰 불이 번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꿀이 담긴 그릇을 손에 든 채 가볍고 성급하게 움직여, 단지 꿀만 보고, 깊은 구덩이는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또한 마치 광분한 코끼리를 제어할 갈고리가 없는 것처럼, 원숭이가 나무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마구 뛰어오르고 분주히 내달리는 것을 가히 막기 어렵도다. 빨리 그 마음을 제지하고 꺾어, 제멋대로 설치고 다니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런 마음을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사람은 좋은 것을 잃게 되지만, 마음을 통제하여 줄곧 한 대상에 머물게 되면 이루지[辦]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런 까닭에 비구들은 부지런히 정진하여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

 

(....是故汝等當好制心。.....當急挫之無令放逸。縱此心者喪人善事。制之一處無事不辦。是故比丘。當勤精進伏其心)

 

위의 유교경에서 붓다는 선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禪定(선정), 늘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들여 선정에 머물라.

 

“여러 비구들이여, 만약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들이면 선정(禪定)에 머물게 된다. 마음이 선정에 머물기 때문에 몸과 마음에서 일어났다 사라지는[生滅] 존재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수행자는 늘 꾸준히 노력하여 온갖 선정을 닦아 모아야 한다. 만약 선정을 얻게 되면 마음이 어지럽지 않느니라. 이것은 마치 물을 소중히 여기는 집에서 못둑에 틈이 생겨 물이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못둑을 잘 관리하는 것과 같다. 닦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지혜’라는 물을 모으기 위해 선정을 잘 닦아 익혀, [마음이 밖으로] 새 나가지[漏失] 못하도록 하는 것을 ‘선정’이라고 한다.” 不漏失=禪定, 早漏, 遲漏, 無漏

 

(...若攝心者心則在定。心在定故能知世間生滅法相。是故汝等。常當精勤修集諸定。若得定者心則不亂。......爲智慧水故善修禪定令不漏失。是名爲定)

 

 

(3) 혜[慧, (산) Jāña, jñā 若那, prajñā 般若, (빨) paññā)

 

혜(慧)는 ‘지혜’ 또는 ‘반야’라는 뜻. 그럼 여기서 말하는 ‘지혜(智慧)’란 어떤 것인가?

지혜란 위빠사나의 관찰수행을 통하여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그것들의 작용에 대해 밝게 아는 것, 즉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내관(內觀)의 눈을 말한다. 지혜의 반대개념은 無明(무명), 無知(무지), 어리석음[痴], 자신에 대해 깜깜하게 어두운 것, 痴暗(치암), 昏沈(혼침) 등인데, 이에 대해 경전에서 말하는 것을 한 번 보자.

 

<잡아함경 251. 구치라경 ③>

......

마하구치라 존자가 사리불 존자에게 물었다.

"‘무명’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어떤 것을 ‘무명(無明)’이라고 합니까?"

사리불 존자가 말했다.

"무명이란 무지(無知)한 것을 일컫는 말이니, 무지함이 곧 무명입니다.

어떤 것을 ‘무지하다’고 하는가? 눈은 무상(無常)한 것인데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무지하다’고 말합니다. 눈은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法]일뿐인데, 그렇게 알지 못하는 것을 ‘무지하다’고 합니다. 귀, 코, 혀, 피부, 의식도 또한 무상한 것인데,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무지하다고 합니다. 마하구치라 존자여, 이와 같이 여섯 곳의 접촉하여 들어오는 곳[六觸入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밝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깨어있지 못하며, 끊어지지 않고 알아차림이 지속되지 못하는 것, 어리석음, 어두움, 밝지 못함, 깜깜함 등을 ‘무명’이라고 합니다.

.............

눈, 귀, 코, 혀, 피부, 의식 등 여섯 곳의 접촉해 들어오는 곳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보고, 밝고, 깨닫고, 깨어있고, 환하고, 끊어지지 않고 알아차림이 지속되는 것 등을 ‘밝다’고 말합니다.

 

지혜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말하여 중국 고전에는 다음과 같이 智(지)와 慧(혜)로 나누어 설명하는 곳도 있다.

 

jñā(즈냐,若那)를 번역하여 ‘智(지)’, prajñā(프라즈냐,般若,반야)를 번역하여 ‘慧(혜)’라고 한다. ......중국 동진(東晉)의 승려 혜원(AD334~ 416)이 지은 불교 용어 사전인 대승의장(大乘義章)에는 “관찰하여 통달한 것을 ‘慧(혜)’라고 일컫는다”고 정의하고 있고, 또 같은 책 제9장에서는 “照見(조견), 즉 밝게 관찰하는 것을 ‘智(지)’라고 하고, 解了(해료), 즉 관찰한 결과 그 대상의 특성을 완전히 이해한 것을 ‘慧(혜)’라고 하는데, 통(通)하면 뜻이 같다”고 했다. ......

 

智(지)와 慧(혜)에 대해 어원분석을 통하여 좀 더 정확하게 알아보자.

 

智(지)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jñā는 살펴보다[檢], 알다, ~을 관찰하여 알다[察知], 모르던 것을 알게 되다[覺], 깨닫다[悟, 證], 경험하다, 확인하다, 시인(是認)하다, ~라고 알다, 어떻게 할 것인지 알다 등의 뜻이 있고, 이것은 知(지), 能知(능지), 解(해), 證(증), 能識(능식), 明達(명달), 了達(료달), 能明了(능명료), 了(료), 了知(료지), 能了知(능료지), 明知(명지) 등으로 한역돼 있다.

또 慧(혜)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prajñā는 위와 같은 의미의 jñā에 ‘최상의[極上]’ 또는 ‘뛰어나다[勝]’는 의미의 접두사 pra가 붙어 ‘완전한 이해’, ‘요해(了解)’, ‘최상의 지식’, ‘극도로 밝은 앎’ 등의 뜻이 되고, 이것은 慧(혜), 明(명), 慧明(혜명), 妙慧(묘혜), 勝慧(승혜), 覺慧(각혜), 智(지), 智慧(지혜), 極智(극지) 등으로 한역돼 있다.

 

즉 智(지)는 우리가 알아차림 수행을 할 때, 몸의 움직임이나 감각 등 어렵지 않게 알아차려지는 대상들을 관찰하여, 밝게[日] 아는[知] 것이고, 慧(혜)는 그렇게 알아차림을 많이 닦은 결과, 알아차리는 감각이 극도로 예리해져, 매 순간에 일어났다 사라지는 미세한 변화들, 즉 무상(無常)이나 무아(無我)까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대단히 빠르고 밝은[彗] 혜성(彗星)과도 같은 알아차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智(지)가 극도로 밝아지면 慧(혜)가 나온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慧(혜)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 원어 prajñā를 ‘極智(극지)’, 즉 ‘최고의 智(지)’, ‘극도로 밝은 앎’으로 한역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해심밀경>의 3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들은 모두 불자로서, 마음이 잘 해탈하였고, 지혜가 잘 해탈하였으며, 계행이 매우 청정하였고, 법의 즐거움을 나아가 구하였으며, 많이 듣고, 들은 것을 기억해, 그 들은 것이 쌓이고 모였으며, 생각해야 할 것을 잘 생각하고, 말해야 할 것을 잘 말하고, 해야 할 것을 잘 하는 자들이었다. 민첩한 지혜[捷慧], 재빠른 지혜[速慧], 예리한 지혜[利慧], 벗어나는 지혜[出慧], 잘 선택하는 지혜[勝決擇慧], 큰 지혜[大慧], 넓은 지혜[廣慧], 최고의 지혜[無等慧] 등 지혜의 보배를 성취하였으며, 3명(三明)을 구족하였고, 제일의 현법락주(現法樂住)를 얻었으며, 크고 청정한 복밭[福田]이었다. 위의(威儀)와 고요함이 모두 원만했고, 큰 인욕과 부드러운 화목을 성취하여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었으며, 이미 여래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잘 받들어 행하는 자들이었다.

 

위의 경문(經文)의 밑줄 친 부분에 慧(혜)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慧(혜)는 매우 빠르고, 예리해서 찰라 순간 내 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현상들까지 다 알아차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 잘 선택하여,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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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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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반야 | 작성시간 15.04.10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조성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4.12 네, 계속적인 반응표현 고맙습니다. 위의 길지 않은 글에 불교의 핵심이 다 들어있습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서 외울 수 있을 때까지 해보십시요. 그리고 이것을 몸으로 익혀 내가 그렇게 되도록 해보면 너무나 큰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불교가 이렇게 명료한 것인데, 택도 아닌 사람들이 승복을 걸치고 말도 아닌 소리로 찌꺼려대니, 어려울 수 밖에 없죠.
  • 작성자조성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4.13 장안중학교 전 선생님들이 아주 좋은 자세로 연수에 임해주셔서 대단히 좋았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약 45분 간의 시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모두 만족한 표정이었습니다. 반가부좌 자세로 줄곧 바닥에 앉아 듣는다고 힘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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