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3일 한겨레 신문에 영주 분처상의 비밀이란 기사를 예전에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정수일 선생이 지은 한국 속의 세계(하) (창비2005)에서 역시 이러한 영주 분처상의 비밀이란 글을 보고 현장이 몹시 궁금하였다. 평소 답사를 자주 답사는 편이나 영주에 갈 때마다 기회가 되지 않아 이번에 찾아 나섰으나 찾아가는 길이 그다지 쉽지는 않았다. 영주시 평은면 강동 3리 왕머리 바위라는 단서로 길을 찾았으나 주변을 몇 차례나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갔다. 강동 2리라는 사실도 뒤 늦게 알게 되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4호 영주 강동리 마애보살입상(2005년 1월10일 지정)으로 지정된 문화재이나 아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마을에 이르러서야 왕머리 불상(부처바위)이라고 물으니 대략 위치를 알려 주셔서 찾았다. 의외로 높은 산이 아닌 길가 야산 언덕위에 예사롭지 않은 바위에 있었다.
마애불이 있는 이 곳은 왕유동이라 불리는데 고려 제31대 공민왕이 중국으로부터 쳐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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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관련 토마상일까?
이 암각상은 1987년 8월 발견되었는데 기독교 관련 토마상이라고 할 정도로 당시에는 흥분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바위 면에는 3점의 명문이 있는데 좌측의 한 면에 네모꼴로 네자의 도마라는 히브리어글자이고 다른 한 면은 마멸이 심하여 알아보기가 어렵고 化北全行처럼 보이나 全行 자는 확실히 보였다. 가슴 부분에 십자가 문양이 있다고 하나 마멸이 심하여 잘 보이지 않았다. 일부는 조각 기법이 전혀 잘 보이지 않는 독특한 양식이라고도 하나 대체적으로 고려시대 초기 마애불에서 나타나는 양식이 일부 엿보인다.
이 상은 기독교 관련 상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마애불로보이며 불두(머리)는 없어졌으나 불두 뒷편 바위 면에는 광배의 조각선이 남아있고 발아래 부분에는 흐르긴 하지만 삼겹으로 보이는 연화문 대좌가 조성되어 있다.
손 모양은 다소 독특해 보이나 왼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가슴위에 올려놓고 있고,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가슴 위에서 손바닥이 밖을 향하는 자세를 하고 있는데 오른손에 연꽃가지로 보이는 곳을 왼쪽 가슴위에 올려 놓은 듯 하다. 이로 보아서는 관세음 보살이나 미륵보살로 추정되나 좀 더 연구가 선행 되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알려진 상이 아니어서 인지 현장에 안내문도 없으며 이 상에 대한 내용을 일반인들이 알 수 없어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영주나들목(IC)으로 나와 5번 국도 안동방향으로 직진 평은면 교차로에서 평은리로 가지 말고 평은 금광리 방면으로 가서 평은면사무소를 찾아 다시 안동 방면으로 평은 초등학교 지나서 금광2리 평은역 유로 낚시터란 도로변 표지판을 보고 접어들어 한일시멘트를 지나 계속가면 금계 왕유 표지판이 있는 갈림길에서 왕유방면으로 가서 몇 차례 마을 주민들에게 왕머리 가는 곳을 묻거나 흰색지붕이 보이는 창고건물을 지나서 조금 돌아가면 길가에 예사롭지 않은 바위가 보인다. 찾아가는 길이 그다지 쉽지 않은 곳에 위치하므로 사전에 지리를 숙지하고 가는 곳이 좋을 듯하다.
출처: 오마이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