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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2장 ~ 학개 2장

작성자임경근|작성시간14.12.08|조회수122 목록 댓글 0

하박국 2~ 학개 2

 

201449(12.7~13) 다우리교회 이름:

    

첨부파일 하박국 2장-학개 2장.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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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박국 선지자의 고민은 하나님이 왜 악에 대해 침묵하시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의 질문에 대답하십니다. 하박국은 그 답을 게시판에 “( )새겨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만들어야 했습니다(2). 인간의 죄는 세상에 가득하지만 결국 “( )은 그의 ( )으로 말미암아 살리라”(4)라고 옥외 광고판에 새겨 넣어야 했습니다. 바로 이 구절은 바울의 로마서(1:16-17)와 갈라디아서의 중심 주제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의인은 완전한 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의인은 약하고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용서 받는다는 것을 아는 자이며 자신에 관해서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2. 2장에는 화 있을진저라는 문구가 5(6, 9, 12, 15, 19)이나 등장합니다. 불의를 행하는 모든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이 경고는 불의한 남 유다(1-11)뿐만 아니라 바빌론(12-20)에게도 향하고 있습니다. 모든 세상의 불의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심으로 “( )( )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 )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 )”(14)하게 될 것입니다. 불의가 심판을 받고 여호와의 영광, 곧 하나님의 공의가 인정받는 세상에 올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11:9; 고후 4:6). 모든 불의한 자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일하심 앞에 잠잠해야 합니다. “오직 ( )는 그 ( )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 )할 지니라, 하시니라.”(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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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장은 기도인데 시입니다. 다윗의 시도 기도로 표현됩니다(72:20). 세속 문화가 인간의 위대함을 자랑하지만, 기독교 문화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시로 나타납니다. 그 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죄를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하박국은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에 관한 소식을 듣고 놀라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 )을 이 ( ) 내에 ( )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 ) 중에라도 ( )을 잊지 마옵소서.”(2)

 

4.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과거 홍해에서 이집트 인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던 길을 표현하는 데만에서부터”(에돔 지역)바란 산에서부터”(이집트와 에돔 사이 지역)에서 나타납니다(3).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불덩이와 같이 무서우며(5), 땅이 진동하고, 영원할 것 같은 크고 작은 산이 무너질 만큼 대단할 것입니다(6). 구산과 미디안 땅은 시내광야 근처인데(7), 여호와께서 말을 타시고 구원의 병거를 몰고, 활을 당겨 쏘시는데(9), 마치 자연을 향하여 분을 내심 같지만(8), 이런 것들도 인간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5. 그렇지만 하박국은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갖습니다. “비록 ( ) 나무가 ( )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 )가 없으며 ( )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 )에 먹을 것이 없으며 ( )( )이 없으며 외양간에 ( )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 )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 )이시라. 나의 발을 ( )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 )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17-19)

 

스바냐

 

스바냐는 유다 왕 ( )의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인데 히스기야의 현손(1)이니 왕족인 셈입니다. 그렇기에 BC 637-609년 사이에 예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요 내용은 여호와의 날입니다. 곧 다가올 심판에 대한 것입니다. 요시야 왕 시대에 종교개혁이 있었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백성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예레미야, 나훔, 하박국을 읽어보라). 교만하고 불경건한 이들을 하나님께서 분명히 심판하실 것임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셔서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지자의 소망이며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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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죄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내가 ( ) 위에서 ( ) 것을 진멸하리라.”(2) 왜냐하면 남 유다는 언약의 하나님을 버리고 언약의 말씀을 어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신앙과 불의한 삶의 실상은 놀라울 정도로 심각합니다. “또 지붕에서 하늘의 뭇 ( )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경배하여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 )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5-6) 첫째는 우상숭배자들, 둘째는 혼합주의자들, 셋째는 배교자와 변절자들, 넷째는 무신론자들을 지적합니다. 이런 이들은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호와께서는 ( )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 )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12)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었다니, 놀랍습니다. 언약의 하나님이 언약 백성을 다스리지 않고 방치하신다고 믿는 이신론()적 생각입니다.

 

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 )”(7), 희생의 날’, ‘큰 날’, ‘분노의 날’, ‘환난과 고통의 날’, ‘황폐와 패망의 날’, ‘캄캄하고 어두운 날’, ‘구름과 흑암의 날’(14-15)이 임하게 될 것임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처절하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

3.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만 주시지 않습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1-2). 여호와를 찾으라”(3)고 권고하십니다. “여호와의 ( )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 )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 )( )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 )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3)

 

4. 이어 이스라엘의 죄 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들을 향한 심판의 날에 대해서도 예언합니다. 그들은 교만하여 “( ) 성이라 ( ) 없이 거주하며 마음속에 이르기를 오직 ( )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 )”(15)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3

5. 남 유다의 죄는 방백, 재판장, 선지자, 제사장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납니다. “그가 ( )을 듣지 아니하며 ( )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 )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 )가지 아니하였도다.”(2) 남 유다에게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7)고 권고하지만 더욱더 죄를 더하여(7)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고 말 것입니다(8).

 

6.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도 선포됩니다.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 )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 )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 )게 하리니.”(9) ‘그 때는 오순절에서 이루어집니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백성들(11-12)은 남은 자(13)로서 회개하여 심판으로부터 살아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시온의 딸아 ( )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14)라고 외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가 네 ( )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 ) 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15) 스바냐는 그런 구원의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 )에 계시니 그는 ( )을 베푸실 ( )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 )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 )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 )하시리라, 하리라.”(17)

 

학개

 

남 왕국 유다는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최종적으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으로 하여금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는데, 그것이 538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역사적 사건은 에스라 1-2장에 나옵니다. 열정을 가지고 성전을 재건하고 있는데 유다에 살고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로 중단되었습니다(3:3-4:5).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후 학개는 성전 재건을 설교를 통해 독촉합니다. 그 결과 다시 성전 재건을 재개하는 것(BC 520)에 관한 내용이 학개서입니다.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에스라 5장에 나옵니다.

학개는 아마도 나이가 80세는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학개는 예루살렘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2:4). 그리고 예루살렘에 닥친 가뭄의 원인이 성전 재건을 늦추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당시 예루살렘에 왕의 역할을 하던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설교한 것입니다. 선지자(학개)와 왕(스룹바벨)과 제사장(여호수아)이 모두 모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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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개는 다리오 왕 통치 261일에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이 연대는 아마도 BC 520년으로 보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 )를 가져다가 ( )을 건축하라.”(8) 예루살렘에 돌아온 유다인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 )하였다”(2)라고 주장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자신들의 삶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은 황폐한 상태로 있는데 여호와의 백성은 판벽한 집”(잘 지어진 집)에 살고 있음이 옳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 )( )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 )( )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9) 그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뭄을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유다인은 극심한 가난과 어려움에 허덕여야 했습니다(5-6, 10-11).

 

2. 이 학개의 권고는 당장 효과가 있었습니다. 학개의 설교는 총독과 제사장과 백성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내가 너희와 ( ) 하노라”(13)라는 말씀이 유다 인에게 격려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사실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14)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한 지 26일 만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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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사를 시작한 지 약 한 달 정도 지나(721) 학개가 다시 그들을 격려합니다. “스스로 ( )게 하여 ( )할지어다.”(4) 그럴 이유가 충분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4)하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하나님은 언약의 말씀으로 계속 격려하며 두려워하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비록 이 성전이 과거의 영광과 비교할 때 보잘 것 없지만(3) ( )에 여호와의 영광이 ( )하게 될 것(7)이라고 격려합니다. 아니 오히려 이 성전의 ( ) 영광이 이전 ( )보다 클 것입니다(9). 성전의 핵심 의미는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성전(47)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수는 요한계시록 22장에 2절에서 완성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순절에 오신 성령 강림으로 오늘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평화가 함께 하는 성전의 재건(회복)은 어린 양의 임재(21:22-26)를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4. 마지막으로 학개는 각 나라들을 심판하시고 멸하시지만, 다윗의 집을 회복시키시고 그 왕위를 통해 자기 백성과 온 세상에 복을 주실 계획을 발표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 )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 )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 )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23) ‘내 종은 하나님이 사명을 준 자에게 붙이는 이름입니다. ‘인장은 왕의 권위와 소유권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진실하고 참된 종이고 다윗 왕가를 통해 오실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염두에 둔 말씀입니다.

 

5. 세상 국가들의 흥망성쇠는 계속되고 언약 백성의 영적 상태도 실망스럽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신 구원의 일은 쉬지 않고 진행됩니다. 노인일 것으로 보이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복음도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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