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6 ~ 22장
2013년 16주(2013.4.14-4.20)
다우리교회 이름:
16장
1. 16장은 1-2절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 10장의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이후와 연결되는 역사적 흐름의 연속입니다. “아론의 ( )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1절)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일을 하다가 죽지 않도록 몇 가지 지침을 주십니다(2절). 그것이 16장에 나타난 속죄일의 규정입니다. 제사장은 속죄소에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어기면 죽습니다. 그리고 속죄일을 만들어 일 년에 일곱 번째 달 10일(7월 10일)에 속죄일로 지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있는 부정으로 인하여 더럽혀진 성소를 깨끗케 합니다. 이 날을 ‘대속죄일’이라 부릅니다.
2. 제사장은 무엇이 부정하고 정결한지 분별하는 의무가 있습니다(레 10:10-11). 그 구체적인 방법이 11-15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어떻게 부정하게 되고, 어떻게 정결하게 되는지에 대한 것까지 가르쳐 주지만, 사실은 자기도 알지 못하는 부정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속죄일에 그 모든 부정을 해결하도록 하셨습니다.
3. 아사셀에게 주는 ( )의 규례는 무슨 의미일까요(20-22절)? 대제사장이 숫염소 머리위에 두 손을 얹어 안수합니다. 그리고 정결한 사람이 광야로 데리고 가 버립니다. 8절에서 ‘아사셀을 위하여’라는 구절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이스라엘 진 밖에 있는 귀신의 이름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그 본래의 근원으로 되돌려 보내어 돌아오지 못하도록 한다는 의미입니다.
4. 신약의 대속죄일은 언제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단번에 죽으신 날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대제사장으로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아론은 반복해서 속죄 제사를 드려야 했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드려 한 번 제사를 드리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히 9:20). 아론의 반복적 제사는 우리의 죄가 계속 반복된다는 것을 말하지만, 예수님의 단번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영원히 용서합니다(히 10:1-18).
17장
5. 17-27장까지의 내용은 전반부(1-16장)와 다른 특징을 보입니다. 제사에 관한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윤리적 사회적 문제들을 다룹니다. 11-15장까지의 부정에 대한 내용은 17장 이후의 부정의 개념과 연결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죽음은 생명과 반대되는 개념이고, 죽음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살인은 하나님의 생명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에 부정하고, 우상숭배도 생명의 하나님을 다른 신으로 대체하는 행위이기에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생명을 만드는 남자와 여자의 성 관계도 잘못 사용했을 경우 부정합니다.
6. 7절에서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 )에게 ( )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라고 합니다. ‘숫염소’는 ‘염소 귀신’으로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입니다(출 22:20).
7. 레 17:11의 “피가 ( )를 속하느니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하는 피 흘림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도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목매어 죽은 동물과 그 피를 먹는 것을 금지했습니다(행 15:29). 신약 시대에도 피는 생명과 동일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피 개념은 오히려 생명을 주는 예수님의 피를 마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성찬식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함께 마시고 먹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 6:54). 예수님의 흘린 피는 생명을 구원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18장
8.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하기 위해서는 애굽 땅의 풍속과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를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3절).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과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별된 백성답게 하나님이 주신 규례와 법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이를 ( )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5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야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미 있는 삶, 곧 풍성한 삶, 건강, 자녀, 친구와 번영의 행복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주어집니다(신 28:1-14). 신약 성경에는 말씀대로 살 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마 19:17; 롬 10:5; 갈 3:12, 요 8:51). 9. 남자는 아래와 같은 사람들과 결혼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이방세계에서는 이런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흉내내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머니(7절) 고모(12절) 백모/숙모(14절)
계모(8절) 이모(13절)
누이/의붓누이(9절) 이복누이(11절) 형수/제수(16절)
처제/처형(18절)
의붓딸(17절) 며느리(15절)
손녀/외손녀(10절) 의붓손녀(17절)
10. 18장에서 금지된 윤리적 종교적 규례는 신약 시대에서도 여전히 계속됩니다. 근친결혼(고전 5장)과 간음(롬 13:9), 우상숭배(고전 10:7; 계 2:14)와 동성애(롬 1:27; 고전 6:9)는 금지되고 있습니다. 간음의 영역은 신약 시대에 더 엄격해 집니다. 일단 결혼으로 남자가 아내와 한 몸이 되었으면 남편은 후에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아내와 결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실제의 간음뿐만 아니라 음욕을 품는 마음의 동기까지 간음으로 가르치셨습니다(마 5:27-28).
11. 살아 있는 아이를 불 속에 집어 던져 몰렉 신에게 제사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합니다(21절). 실제로 가나안 땅에서는 이런 일들이 있었음이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 증명되고 있습니다. 신전 근처에서 새까맣게 탄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19장
12. 열거되는 모든 것들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일반계명의 실천 규정(제의와 관계지지 않고 삶과 관계되는)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상당 부분은 십계명의 범위 안에 속하는 것들이 많습니다(출 20장과 신 5장).
13.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본래 두려움을 일으키는 종교적 행위의 영역에 속하지만, 본문에 나타난 거룩은 ‘삶’과 관련된 것입니다. 예배와 삶이 분리되는 이원론적 종교생활을 거부합니다. 예배는 거룩하고, 삶은 세속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레위기의 가르침과 거리가 멉니다. 삶의 모든 영역을 향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행동 하나 하나까지 간섭하시고 계십니다. 그것들 또한 종교적 행위와 동일하게 거룩과 관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4. 19장에서 반복적으로 후렴처럼 등장하는 “나는......( )니라”(2, 3, 4, 10, 12, 14, 16, 18, 25, 28, 30, 31, 32, 34, 36, 37)라는 구절은 누가 왜 이 명령을 지켜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이 명령의 중요성도 동시에 강조합니다.
15.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규례와 법도를 지켜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시대에 이 모든 것들을 지켜 행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고, 그 시대 상황에서 설정된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자 노예에 대한 규례는 현재 적용될 수 없습니다(20절). 추수하는 밭에 곡식을 남겨두는 문제도 그렇습니다(9-10절). 오히려 이웃을 돕기 위하여 다른 더 실제적인 방법이 오늘날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 정신이 그대로 지켜져야 하는 부분들은 많습니다. 이웃사랑에 대한 부분과 공의로운 삶과 사랑의 삶은 여전히 지금도 지켜져야 할 큰 부분입니다.
20장
16. 20장의 내용은 18-19장의 반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차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18-19장에는 금지 명령만 있습니다. 그러나 20장에서는 어겼을 경우에 대한 징벌, 곧 결과가 함께 예고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특별히 사형에 처해질 목록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백성들이 모인 집회에서 낭독되었을 것입니다. 이 법이 실제로 잘 이행되었을 지에 대하는 부분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21장
17. 제사장이 지켜야 할 정결에 대한 것입니다. 육체의 흠이 있는 자들은 ( ), 절뚝발이, 코가 불완전한 자, 지체가 더한 자, 발이 부러진 자, 손이 부러진 자, 곱사등, 난장이, 눈에 백막이 있는 자, 괴혈병에 걸린 자, 버짐이 있는 자, 불알이 상한 자입니다(18-20절). 이들은 제사장 사역에서 배제되었지만, 하나님과의 교제와 긍휼하신 은혜를 누릴 자격까지 박탈당한 것은 아닙니다. 흠이 있는 백성들도 하나님과의 교제는 여전히 가능했습니다. 예수님도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질병이 있는 자들을 고쳐 주시고 안아 주셨습니다.
18. 예수 그리스도는 흠이 없는 ( )이셨습니다(히 7:26). 동시에 완전한 제물이셨습니다. 제사장의 아내가 흠이 없는 정결한 여자인 것처럼,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도 흠이 없이 정결해야 합니다(레 5:27; 계 19:7-8; 21:2). 특별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제사장의 삶이 거룩해야 했던 것처럼, 만인 제사장적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신약 성도들의 삶도 거룩해야 함을 말해줍니다.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죄로부터 구원하는 일을 감당하기 위해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벧전 2:5).
19. 섬기고 봉사하는 자리에 있는 자들이 특별히 성결해야 하는 것처럼, 신약 시대에도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자들의 윤리적 성품과 행동이 거룩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서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선한 성품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딤전 3:1-7; 딛 1:5-9). 직분자들의 아내들과(딤전 3:11; 레 21:7, 13-15)과 자녀들(딤전 3:4; 딛 1:6)도 올바르게 처신하도록 교육하고 스스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22장
10. 만약 보통 사람이 제사장의 집에 있으면서 본의 아니게 성물을 먹게 되면, 그 성물에 그것의 ( )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갚아야 합니다(14절).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성물을 거룩하게 구별했습니다. 만약 부정한데도 성물을 먹으면 그는 죄를 짓는 것이며, 하나님께 벌을 받습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 )을 먹은 것처럼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 벌을 면해 주기도 했습니다(삼상 21:6). 예수님도 그러한 경우를 정당하게 여기시며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마 12:3-4, 7)라고 말씀하시며 말씀에서 음식과 제물보다 우리의 행실로 인한 정결함이 더 크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11. 제사장에게 주어진 음식은 구별된 거룩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먹을 수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위임한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이라고 모두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결한 자만 가능했습니다. 이것은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사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자랄 수 있습니다. 부정한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그들은 제대로 된 결과를 낳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그 말씀이 살과 피가 되기보다는 멸망의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