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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의 글 중에서

출구가 거기 있었다

작성자석경|작성시간26.06.08|조회수18 목록 댓글 0

며칠 전 일이다. 출근을 하려고 아파트 이 층 계단을 막 내려서려는데 아래층 출입구 쪽에서 짧은 비명이 들렸다. 안타까움과 놀람이 뒤섞인 소리였다. 놀래서 멈칫 발길을 멈추었는데 눈앞에 끔찍한 광경이 보였다.

이 층 중간 계단이 끝나는 곳, 환기창에 두 마리의 회색 비둘기가 닫힌 창문을 향해 막무가내로 돌진하고 있었다. 아마 출입문을 통해 날아든 후 갑자기 달라진 주변 상황에 놀라 되돌아 나간다는 것이 아뿔싸! 이 층 계단으로 방향을 잘못 잡은 모양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한 후인 듯 기진맥진해 있었다. 필사적으로 퍼덕인 날갯짓으로 많은 깃털이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부리도 상한 듯 보이는 비둘기들은 닫힌 창의 유리를 저돌적으로 들이받고는 바닥에 곤두박질치기를 계속했다. 혼비백산이라더니 비둘기의 입장이 바로 그러했다. 나는 얼른 가방을 내려놓고 재빨리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래도 바보 같은 비둘기들은 닫힌 창 쪽의 유리를 들이받고 떨어지곤 했다. 답답해진 내가 바닥에 떨어질 때를 노려 잡아보려 했으나 그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침입자에 놀라 더욱 우왕좌왕 퍼덕이며 날고 부딪치고 떨어지기를 되풀이했다. 그러다가 용하게도 한 마리가 열린 창을 통해 빠져나갔다. 끝내 지친 채 바닥에 떨어져 버둥거리던 한 마리는 내가 잡아서 창밖으로 날려 보냈다.

비둘기는 멀리 아파트 건물 뒤편, 교회 첨탑이 보이는 쪽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한동안 비둘기들이 날아간 그쪽, 투명한 햇살이 빛나는 아침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다시 가방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일 층에서 위쪽을 쳐다보고 있던 젊은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비명의 주인이었다. 고운 얼굴에 눈물이 얼룩져 있었다. 여인은 재빨리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나도 마주 웃어 주었다. 내가 지하 주차장의 계단을 내려가며 흘깃 출입구 쪽을 보았을 때 여인은 아직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직장에 도착해 일을 하면서도 내내 아침의 일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비둘기가 미로에 갇혔음을 알았을 때, 아무리 탈출을 시도해도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았을 때, 그때 비둘기가 가졌을 절망과 고통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내 삶의 여정에도 그 비슷한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거의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떨고 있을 때, 따뜻하고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지켜보아 준 시선도 분명 함께 있었다.

한순간, 비둘기에게 닥쳤던 막다른 상황을 생각하다가도 곤경에 처한 비둘기를 보며 안타까워 눈물짓고 그들이 곤경에서 벗어났을 때 환하게 웃음 짓던 여인을 떠올리면 내 기분도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출구가 거기 있었다.


윤정혁의 수필집 '남향집'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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