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생, 내가 언제 아파트 삼 층에 산다는 말을 한 적이 있던가요? 그리로 이사한 게 엊그제 같은데 또 이사했습니다. 바로 코앞으로 옮긴 거니까 뭐 이사랄 것도 없지요.
요즘 이사라는 게 그렇더군요. 이삿짐센터라는 데서 대여섯 명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여자 한 명이 주방을 점령하고, 나머지 사내들이 거실과 방 하나씩을 접수하더니 그야말로 일사불란하게 시근 뚝딱 한칼에 해치우더라고요. 살림이래야 허섭스레기밖에 없으니 짜드라 묶고 싸고 할 것도 없었지요.
그 포장이사라는 게 그래요. 큰놈 작은놈 할 것 없이 모조리 상자에 집어넣거나 휘감아 싸는지라 궁상스런 살림붙이들이 드러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전에 삼 층으로 이사할 때는 좀 남세스러웠거든요.
오후 두 시가 넘어서 시작한 일을 여섯 시가 조금 넘자 손을 탁탁 털며 삯을 챙기고 떠나는 겁니다.
"힘으로 하면 이 일 못 해요. 당장 드러누워요. 요령으로 하는 거지요. 이틀만 쉬어 봐요, 다시 못해요. 죽자꾸나 쉬지 않고 해야 해요."
사는 일이 만만찮은 거라는 소리겠지요. 예전에 우리가 그랬잖아요. 이사 후에는 영락없이 초주검이 돼서 드러눕잖았습니까?
왜 이사 갔냐구요, 아파트 삼 층으로 이사 가기 전에 내가 살던 집이 단독가옥이었어요. 직장 다닐 때 마누라가 바득바득 우겨서 사놓은 집이었지요. 그간 남이 살던 것을 나이 들어 직장에서 쫓겨나자 아쉬운 대로 손을 보고 내 집이라고 찾아든 겁니다. 마당이라야 손바닥만 한데다 코앞에 삼층집이 바투 서 있어서 하루 내 햇볕 한 자락 구경할 수 없는 집이었습니다.
전등을 켜지 않으면 잡서 한 줄 읽을 재간이 없었지요. 까짓, 책이야 차치하더라도 사람 사는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수형자가 따로 없더라고요. 그 집이, 늘 갇혀 있다시피 했던 아내에게 우울증을 싹 틔우게 하지 않았을까, 나름의 짐작입니다. 햇볕이 세로토닌이라는 항우울 호르몬을 생성한다잖아요. 그 집은, 볕이 그냥 밝고 따뜻하다는 인식을 넘어, 인간에게 절대적 에너지원이라는 생명적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절감케 해 주었어요.
그즈음의 아내는 볕드는 베란다에 대여섯 개의 화분을 놓을 수 있는 아파트에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것들이 햇볕을 받아 싱싱한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는 한 줌도 안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요. 미안하더라고요.
살아오면서 남에게 구차한 소리 한 번 한 적 없었습니다. 주변머리가 담배씨만큼도 없어서였지요. 서울 사는 큰딸에게서 얼마간의 돈을 빌렸습니다. 아내가 아파트에 살도록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얻은 게 전에 살던 삼 층입니다.
음습하고 꽉 막힌 집에 비하면 그곳은 가히 천국이었습니다. 툭 터져 밖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베란다의 창도 창이려니와 오전 내 볕이 드는 것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고요. 문득 햇볕은 사람의 영혼까지도 따뜻하게 적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정이 밝아진 아내가 부지런히 화초를 사다 나를 때, 나는 소파에 번듯이 누워 얼굴에 책을 덮은 채 오수를 즐기기도 했지요.
그 집을 살 때, 그것이 동향임을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알기는 했는데 전에 살던 집에 비해 가히 천양지차였던지라 감지덕지 코를 처박은 거지요. 새집 냄새도 가시어지고 그런대로 살 만하다 했는데 동네 주변이 술렁거리더니 삼십 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겁니다.
그중 하나가 내 집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올라가더니 급기야는 툭 터졌던 시야를 가로막고는 아침나절 열 시 이전의 햇볕을 잡아먹어 버린 겁니다. 막혀버린 시야가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볕드는 시간이 노루 꼬리마냥 짧아진 일 또한 여간 기가 막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앞을 가로막은 아파트의 시공업자를 비난하고, 당국이 건축 허가를 남발하고 있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새삼스럽게, 광합성을 제대로 못 해 화초도 기를 못 펴는 동향집은 돼먹지 않았다고 툴툴댔습니다. 창을 열 면 무시로 뛰어드는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성가셨습니다. 온종일 햇볕을 받아 하얗게 눈부신 건너편 101동의 남향집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나는 다시 아내의 우울증이 음울한 기운으로 집 안 구석구석을 채우지는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아내는 또다시 이사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일이 되려고 전에 살던 헌 집이 좋은 가격에 팔렸어요. 남향에다 고층이 아니면 안 된다. 이게 이사 지침이었지요. 그래서 101동 19층으로 옮긴 겁니다.
이사 첫날밤은 낯선 데다가 설레기까지 해서 잠을 설쳤습니다. 그런데도 꼭두새벽에 눈이 떠지는 겁니다. 아내가 베란다의 롤스크린을 드르륵 올리는데 비 갠 아침의 앞산이 구름 걸린 이마를 코앞에 들이미는 거예요. 이사 전 서너 차례나 와 본 적이 있는데 어찌 느낌이 그리 다를 수 있는지요. 하루 내 거실 깊숙이 들이붓는 햇볕은 또 어떻고요, 생기가 흘러넘쳐 대뜸 화초의 색깔이 달라 보이는 겁니다. 남으로 창을 내겠다던 시인이 생각났습니다.
장모께서는 남향집을 얻으려면 삼대의 적선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의 적선은 기억되는 바가 없으니 이는 분명 나의 아버지와 조상님들 덕이라 여겼지요.
그런데 일이 우스꽝스럽게 꼬이는 것 같습니다. 허 참, 내가 이사하자마자 맞은편에 사십오 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선다지 뭡니까. 이런 낭패가 어디 있습니까? 내가 남향집을 갖게 된 것이 조상 덕이라면, 이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일은 아마도 내 적선의 부재 탓이겠지요. 땅 위에 방 한 칸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음을 잊은 과욕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선생, 집들이 같은 걸 할 형편은 아니고요, 언제 시간 나면 놀러 한번 오시지요. 소주나 한잔합시다.
윤정혁의 수필집 '남향집'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