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북유럽 여행기[ 19 ] 스웨덴의 스톡홀름과 시청사
2012 .08.23 목요일 제8일차 여정 [453km 5시간 30분 소요]
박시오를 출발해서 스톡홀름 이동하여 관광 후 저녁에 초호선 유람선 탈린크를 타고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이동하는 일정
스톡홀름으로
2012 .08.23 04:00 예정된 기상시간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아내와 산책을 나선다.
어제 저녁에 둘러보았던 마을 안으로 다시 들어가 본다.
여전히 마을은 인적이 드물고 조용하다.
06:00분, 호텔 레스토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07:00분, 호텔을 출발한다.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을 향하여...
스톡홀름으로 가는 길은 다시 고속도로인 E4도로다.
도로변은 한줄기로 쭉 뻗은 나무들이 푸른 숲을 이루고 있는 삼림 지역이다.
간간히 비를 뿌리는 가운데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다.
베테른Vättern호수
08:40분, 영어식으로는 존코핑이지만 스웨덴 식 발음으로 왼쇠핑(JONKOPING)인 도시를 지나
넓은 호수가 보이는 곳에 이르러 버스가 멈춘다.
E4 고속도로 변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으로 라스타(Rasta)체인인 Brunstorps의 Wärdshus라는
레스토랑이 있는 휴게소다. 이곳에서는 베테른 호수의 멋진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박시오를 떠난지 1시간 40분만이다.
09:00분, 20분간의 휴식을 취한 뒤 버스는 다시 베테른 호수를 왼쪽으로 끼고 북쪽으로 달린다.
베테른(Vänern)호수는 스웨덴에서 가장 큰 호수인 베네른 호수의 남동쪽에 가까이 있다.
베네렌(Vanern)호수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들었던 북유럽 신화에서 게피온 여신이 덴마크의
셀란섬을 만들기 위해 떼어 내간 땅에 물이 고이면서 생겼다던 그 호수를 말한다.
넓이가 5,585㎢로 우리나라 제주도(1,847.1㎢)의 약 3배 크기다.
여기에 비해 베테른 호수는 길이가 130㎞이고 너비가 30㎞ 정도로 면적은 1,912㎢이다.
제주도와는 비슷하고 베네른 호수와는 1/3 정도의 크기지만 스웨덴에서는 2번째로 크다.
호수라고는 하지만 마치 큰 바다 처럼 보인다.
베테른 호수와 함게 달리던 버스가 방향을 북동쪽으로 약간 돌려 노르쇠핑(Norrkoping)을
향하여 달린다.
11:13분, 버스가 2시간여를 쉬지 않고 달려 왔기에 규정에 따라 다시 휴게소에 멈춘다.
이번에도 라스타(Rasta)체인으로 주유소를 겸한 휴게소다.
이곳 매점에서는 스웨덴의 사탕을 가득 진열해 놓고 관광객을 유혹한다.
그 유혹을 피하지 못한 아내와 나는 종류별로 골고루 골라 봉투에 넣어 구입하고
아이스크림도 함께 사먹는다.
11:35분, 버스가 다시 출발한다. 이제 1시간여를 더 가면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과 만나게 된다.
스웨덴
스웨덴의 정식 명칭은 스웨덴왕국(Kingdom of Sweden)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면적은 449,964㎢로 한반도의 두배에 해당하는 크기이다.
동서의 길이는 499㎞, 남북의 길이는 1,574㎞로 가늘고 긴 국토를 가지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산맥을 경계로 노르웨이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북동부로는 핀란드와 접하고 있다.
스웨덴의 국토는 대부분이 바다와 접해 있으며, 동부는 발트해와 보트니아만, 서남부는 스카레가크와
카테카트 해협, 남부는 외뢰순 해협이 위치해 있으면서 덴마크, 독일과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다.
유럽에서 네번째로 큰 국토를 지니고 있으며 삼림지대가 전국토의 50%, 경작지가 10%,
호수와 하천이 9%, 기타 31% 로서 구성되어 있으며 호수도 96,000여개에 달한다.
면적은 45만㎢로 한반도의 2.4배에 해당하며, 북유럽 노르딕국가 중 945만명(2011, 세계은행)으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다.
전체 인구의 95%가 스웨덴인이며, 이외에 우랄 알타이어계에 속하는 핀족 약 2만명이
북부 국경지대에 거주하고 있다.
특히 입양아가 4만명 정도 살고 있는데, 한국인 입양아도 12,0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스웨덴인은 게르만족의 한 갈래로 다른 인종과의 혼혈 정도가 적으며,
북부 지방의 소수 토착민인 랩족을 제외하면 북게르만어파의 일종인 스웨덴어를 사용한다.
스웨덴어(語)는 인도유럽어 중 게르만어에 속하며, 그중에서도 스칸디나비아어에 속한다.
노르웨이어 ·덴마크어와 가까운 관계에 있어, 가령 스웨덴인이 스웨덴어로 말하고
노르웨이인이 노르웨이어로 대화해도 의사가 완전히 통한다.
200년경까지는 동일한 언어였던 것이 그후 수백 년 동안 분화하여 현재의 각국어가 된 것
으로 생각되고 있다.
연중 반이 넘는 10월부터 4월 까지가 겨울철로 춥고 눈이 많이 오며,
밤이 길어 오후 2시만 되면 날이 어두워지는 극야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겨울이 길고 춥고 어둡다 보니 우울증에 많이 걸리고 술을 많이 마시게 되어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18세 이상의 자녀는 독립하여 분가하기 때문에 두 부부만이 살게 되고,
부부간에 정이 없으면 나이 먹어서도 이혼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한단다.
18세 이상 의 분가한 자녀들도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동거를 많이 하며
그래야 부모도 안심할 수 있고 간섭을 안 한다고 한다.
화폐단위는 스웨덴 크로나(Sweden Krona/SEK)이고, 1SEK는 우리돈으로 170원정도이다.
스웨덴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국기는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스칸디나비아 십자가 그려져 있다.
현재는 북유럽 국가들 간에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 중립을 지키며,
1인당 국민소득이 4만$의 부자 나라로 담세율이 평균 40%이며 고소득자의 경우 90%까지
세금을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담세율이 높은 반면 의료보험제도가 발달하여 전 국민이 병원이 무료이며,
대학까지 무료이고 어린아이들도 1명의 경우 월14만원 2명의 경우 월 30만원의 용돈이 나오는 등
자녀가 많을수록 많이 지원하는 등 사회복지제도가 발달했다고 한다.
스웨덴이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6· 25 한국전쟁 때로 부산항에 의료선을 파견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오히려 한국에서 간호사들이 많이 오는데 LG TV와 냉장고가 인기 있다고 한다.
이 나라는 자동차 산업과 기계공업이 발달했는데 특히 Volvo자동차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기계공업의 발달로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무기를 팔아 부국이 되었다고 한다.
스웨덴의 역사
스웨덴은 빙하기가 끝나가던 기원전 11000년경부터 인류가 유입되어 정착하기 시작하였는데,
스웨덴이 역사의 무대에 본격 등장한 것은 9세기경으로 바이킹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이다.
다른 북유럽 국가들처럼 해상을 통한 활발한 대외교류로 번성했던 스웨덴은 바이킹들이
활동하던 800~1000년경까지는 다른 북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가다운 모습을 갖추기
보다는 여러 왕가가 지역을 지배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었는데,
스톡홀름의 창시자 비르예르 얄(Birger Jarl, 재위 1250~1266) 왕이 법률을 정비하면서
중앙집권 형태의 왕국을 탄생시켰다.
그런 스웨덴에는 1340~50년대에 유행한 흑사병의 영향으로 국가 전체가 크게 흔들리게
되고 이후 국가 내부의 극심한 혼란까지 더해지자 결국 스웨덴 귀족들은 자신들의 국왕을
폐위시킨 후,
1397년에 덴마크 '마르그레테' 여왕의 북유럽국가연합인 '칼마르 동맹'에 자발적으로 합류
하여 노르웨이, 덴마크 등과 함께 마르그레테 여왕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칼마르 동맹은 성장하는 독일이 한자동맹을 앞세워 발트해를 장악하려던 것에 맞서고자 하는
초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는 듯 보였으나,
마르그레테 여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혼란에 빠졌고 덴마크 왕의 계속된 통치에 각국의 독립
의지까지 더해져 결국 분열의 길을 걷게된다.
특히 1523년까지 126년간 이어진 이 통합왕권에 대한 스웨덴의 반항은 계속되었으며,
1434년에 이르러 광산업자 엥엘브렉트(Engelbrekt)가 농민을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귀족과 시민도 가담한 국민운동으로 확대되었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1520년의 스톡홀름 대학살을 계기로 이듬해인 1521년에 스웨덴의 젊은 귀족인
구스타브 바사가 일어나 농민군을 거느렸으며, 한자동맹의 원조를 얻어 덴마크 왕권을 추방하였다.
그는 1523년에 의회의 추대를 받아 국왕 구스타브 1세가 되어 왕위에 올랐다.
이로 인해 칼마르 동맹은 무너지고 스웨덴은 독립하게 되었다.
이 무렵 독일에서는 종교개혁이 일어났는데, 구스타브 1세는 이를 스웨덴에 도입하고
교회개혁을 촉진하였으며, 1529년에 의회는 루터파(派) 신교를 채택하였다.
1560년에 그가 사망한 후, 그의 세 아들이 차례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어 1611년에 왕위에 오른 '구스타프 아돌프 2세'(재위 1611~1632)는 구스타프 바사왕의 손자로
'북방의 사자'로 불렸는데, 광산개발등으로 경제를 성장시킴과 동시에, 대륙진출의 꿈을 달성하기
위해 1630년에는 독일로 진격하여 세계 최초의 세계 대전이라 불리는 '30년 전쟁'에 참여하는 등
발트해를 내해로 만들고자 하는 지정학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극적인 확장에 나섰고,
획기적인 전술로 승승장구하여 오늘날의 핀란드와 노르웨이의 상당수를 장악하는 성과를 거둬
스웨덴의 황금기를 연다.
그는 브라이트펠트(Breitenfeld) 전투에서 카톨릭 연방을 패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나,1632년 뤼첸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그 후 스웨덴은 1648년 웨스트파리아 조약에 의하여 독일 북부의 광대한 영토를 얻게 되어
유럽의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칼 구스타브 10세(Karl X Gustav) 때는 덴마크를 패배시켜 현재의 남부 스웨덴 지방을
덴마크로부터 획득하였다. 이때가 스웨덴이 군사적으로 가장 용맹을 떨쳤던 시기이다.
그러나 강대국이 된 스웨덴도 1700~1721년의 북방 대 전쟁에서 덴마크, 러시아, 폴란드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젊은 칼 12세(Karl XII)는 용감히 싸워 러시아군을 대파하고 덴마크와 폴란드를 항복시켰지만,
1709년 러시아의 '표트르 1세'의 군대에게 폴타바(Poltava)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상당수 영토를
잃게 되고,
터키로 도주하여 1718년에 사망하였다.
결국 핀란드를 제외한 발트 해 남부와 서부에 있는 많은 영토, 그리고 북부 독일의 영토를 상실하여
유럽의 강대국 대열에서 급속히 탈락하였으며 스웨덴의 대국 시대는 막을 내리기 시작 했는데,
스웨덴의 국민은 칼 12세의 전제정치에 대한 불만이 그의 죽음과 함께 고조되어
국왕 프레데리크 1세는 즉위 조건으로 국민이 요구한 새 헌법을 1723년에 발포하였다.
이에 따라 왕권은 제한되고 의회는 강력한 존재가 되었으나, 입헌정치의 노선은 처음에 충분한 안정을
얻지 못하였으며, 정당간의 다툼으로 정치가 종종 무질서에 빠지고 외교정책은 혼란을 거듭하던 중,
오스트리아 계승전쟁과 7년 전쟁에 무의미하게 참전하고, 그 결과 많은 영토를 잃었다.
또 나폴레옹 전쟁 때에도 나폴레옹의 입장에서 전환하여 러시아와 싸워 핀란드를 잃었으며,
그 후에는 나폴레옹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프랑스 장군 베르나도테를 황태자로 맞아들였다.
1809년 그는 칼 요한이라 칭하여 국가의 실권을 장악하고 반 나폴레옹의 태도를 취해 활약하였으며,
1814년에 덴마크로부터 노르웨이를 얻어내고, 1818년 왕위에 올라 칼 14세라 칭하였다.
그가 현 스웨덴 왕조의 시조이다.
20세기에 이르러 스웨덴의 최대 과제는 노르웨이의 분리문제였다.
노르웨이는 국민감정이 덴마크에 가까워 스웨덴과 완전 분리하기를 강력히 요구하였으며,
1905년에는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스웨덴 국내에서는 무력저지론도 있었으나 결국은 분리를 승인하였다.
이 무렵부터 스웨덴의 민주정치는 안정되어 책임내각제가 확립되었다.
스톡홀름(Stockholm)은 스웨덴 왕국의 수도이자 스칸디나비아 반도 최대 도시이다.
멜라넨(Maelaren)호수와 발트해가 만나는 지점에 떠있는 작은 섬인 감라스탄(Gamla stan)을 발상지로
하여 1253년 당시 집권자였던 비르예르 알(Birger Jarl)왕이 이 작은 섬에 성채를 쌓고 섬 주위에
통나무(Stock)로 목책을 친 다음 섬 양쪽으로 흐르는 물길을 수문으로 막고 선박의 입․출항을 감시
통제했다고 한다.
스톡홀름이라는 명칭은 바로 통나무의 스톡(Stock)과 작은 섬이라는 홀름(Holme)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는데, 스톡홀름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된 것은 구스타브 바사(Gustav Vasa) 왕에 이르러서다.
스웨덴을 덴마크로부터 독립시키고 1523년 즉위한 바사 왕은 스톡홀름을 스웨덴의 수도로 육성하였으나
공식적인 수도로서의 지위는 크리스티나 여왕 치하인 1634년에야 이루어졌다.
지금의 스톡홀름은 발트해로 이어지는 멜라렌 호수 위에 떠 있는 14개의 섬이 57개의 다리로 이어지며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는데, 시 면적의 3분의 1이 물로 덮여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그래서 흔히 북구의 베니스라 불린다.
또한 발틱해와 멜라렌 호수로 둘러싸여 있는 스톡홀름은 옛것과 새것, 물과 숲, 중세의 좁은 길과 현대의
대로가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있어 과거와 현재의 문화가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문명의 도시
이기도 하다.
증기선을 타고 다도해 관광을 할 수 있고 또는 멜라렌 호수의 반대편으로 건너 갈 수도 있다.
스톡홀름 시내의 심장부를 흐르며 발틱해와 연결되어 있는 멜라렌 호수에는 시내 중심부에서 연어 낚시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
노르웨이 동쪽으로 밀려오는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그린랜드 남부와 같은 위도상에 있으면서도 겨울이
그다지 춥지 않고 여름엔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따사로운 곳이다.
현재 스톡홀름에는 80만명이 살고 있고 교외까지 합치면 180만 정도라고 하며,
한국 교민도 2,000명 정도 살고 있다고 한다.
스톡홀롬 도착
12:40분, 고층건물이 눈에 뜨기 시작한다. 스톡홀롬에 도착한 것이다.12:45분, 버스가 시내에 들어서자 확연히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다같은 호수와 다리다.
스톡홀롬이 물의 도시라는 증거다.
중간에서 현지 가이드인 여성을 태우고 본격적인 스톡홀름 관광에 앞서 점심식사를 위해 먼저
식당으로 찾아간다.
남강회관
12:54분, 시내를 가로질러 남강회관에 도착한다
스톡홀름에서 번화한 거리인 바이거 자알스 카탄 (birger jarls gatan) 도로변에 위치한 한식 레스토랑으로
현지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식당이라고 한다.
과연 식당 앞 데크에 설치된 야외 테이블에서 서양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워낙 일조량이 적기에 식사시간이라도 햇볕을 쬐며 먹는다는데, 현지인들이 분명하다.
유명한 만큼 맛도 뛰어나다. 값도 비싼 편이다.
모처럼 한식으로 맛있게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비 내리는 것도 잠시 버스에 오르니 비는 멈춰 있다.
13:45분, 이제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본격적인 스톡홀름 관광을 시작한다.
스톡홀름 시청사(Stadshuset)
14:07분, 현지 가이드가 제일 먼저 안내한 곳은 스톡홀름 시청사다.
스톡홀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내셔널 로만 양식의 스톡홀름 시청사는 1923년도에 유명 건축가인
라구나르 오스트베리(Ragnar Ostberg)의 설계로 800만개의 붉은 벽돌로 만들어졌다.
20세기 북유럽의 최고 걸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1923년도는 덴마크로부터 통일을 이끌어낸 구스타브 바사 왕이 해방군과 같이 스톡홀름에 입성한지
4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중후한 외벽은 고딕 양식의 창문과 어울려 아름다우면서도 웅장한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시청사 2층의 푸른 방과 황금의 방은 매년 12월 10일 노벨상 수상 축하 만찬회와 파티가 열리는
장소로 유명한 곳인데. 시청사 내부는 별도 가이드 투어만 가능하여 시간이 촉박한 우리와는오늘 인연이
닿지 않는다. 유감이다.
시청사 내부 황금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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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남동쪽 모서리에는 종탑이 우뚝 서 있다. 106m 높이의 첨탑 위에는 3개의 황금색 왕관 모형이 장식되어 있는데, 스웨덴왕실의 문장 이라고 한다.
종탑 안에는 9개의 종이 매달려 있다고 하며, 가운데 있는 가장 큰 종은 네덜란드에서 선물로 보낸 것이라고 한다.
시청의 한쪽에는 스톡홀름을 건설한 비르예르 얄(Birger Jarl)왕이 황금색으로 치장하고 누워 있다. 이 비르예르 얄은 독일의 함부르크의 도시를 건설한 도시 건설 설계사를 데려다가 스톡홀름의 도시를 만든 스톡홀름의 창시자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실제 무덤은 아니라고 한다. |
시청정원(Stadshusparken)
시청사 앞에는 멜라렌 호수를 바라보고 시청사 테라스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시청정원(Stadshusparken)이 있다. 넓은 정원에는 분수대와 여러 조각품들이 있는데,
이중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청동상이다.
바로 스웨덴의 국민 영웅인 엥엘브렉트(Engelbrekt)의 동상이다.
1434년에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통합영토를 다스렸던 덴마크왕 에리크에게 반란을 일으킨
반란군의 리더였다. 비록 반란은 실패에 그치고 엥엘브렉트는 살해 당했지만 이후 그는 국민의
영웅이 되었다.
정원 앞 호수 건너편으로는 남섬으로 불리는 쇠데르말름(Södermalm) 섬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스톡홀름 구시가지인 감라스탄의 일부인 리다르홀멘(Riddarholmen)섬이 있다.
시청정원과 멜라렌 호수건너 쇠데르말름(Södermalm)섬 전경▲
시청 정원에서 보는 리다르홀멘(Riddarholmen)섬 전경▲
리다르홀멘 섬의 뽀쪽한 첨탐 건물은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중 하나인
리다르홀름 교회(Riddarholmskyrkan)다.
멜라렌 호수 주변이 북유럽의 베니스라고 불릴만큼 멋진 풍경이다.
시청사에서 우리가 머무른 시간은 30분간이다.
아쉬움을 남기며 다시 버스에 올라 다리를 건너 감라스탄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