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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묻혔다 문득 생각나는...

작성자草隱|작성시간26.06.08|조회수31 목록 댓글 0

가슴에 묻혔다 문득 생각나는...

비가 내리려는지 창밖이 흐릿하다. 이럴때면 노인네 뼈마디 쑤시듯, 나는 또 다른 생각의 골짜기로 빠져든다.
내 인생엔 역마살이 끼었을까? 이 나이에도 문득문득 가보지 않은 길을 지치도록 걷고 싶고, 가슴속에서 지워져가던 가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선지 젊은 시절부터 등산클럽을 많이 따라 다녔고, 직장을 다닐때는 직접 산악회의 여러 책무를 연달아 맡아했다. 그뿐만 아니라, 가끔씩 홀로 배낭을 메고 평소 마음에 품었던 낯선 지역과 산을 트래킹 해야했다.
이제 나이가 드니 교통수단이 단절된다. 그래서 최대한 대중교통을 활용하는 것이다. 도시간 시외버스 배차시간을 확인하고, 특정 지점에서의 교통접점을 검색하여 휴대폰에 기록해 둔다.
내가 사는 한정된 공간은 너무 좁다는 생각에 인근 부산의 자연공간을 최대한 활용한다. 자주가는 곳이 구포시장 주변이고, 낙동강변이 나의 여름철 트래킹 코스 중의 한곳이다.
구포에서 만덕을 거쳐 오르는 금정산도 내가 자주 찾는 곳이다. 어제도 그곳을 혼자 오르다 문득 오래전 그 친구가 생각났다. 이쯤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저 건너 골목길 안쪽 어디엔가 살았었는데...

그와는 인접한 마을, 함께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의 집안은 면내에서는 이름있는 가문이었다. 그런데 대략 그런 가문에도 숨겨진 사연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현명하고, 건강한 사고를 가졌기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식과 덕망을 갖추었었다.
내가 그 친구와 각별히 친한 것은 아니었으나 몇몇 분야에서 뜻이 맞았다. 가끔 별난 생각을 하고, 무엇인가에 집착 한다는 공통점이었다. 당시에는 농촌에도 전력이 조금씩 보급되던 때라 무거운 전신주를 옮갈때면 지금처럼 크레인이나 추레라가 흔하지 않아 트럭으로 신작로가에 내려진 것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옮겨야 했다.
상여를 메어본 사람은 느낌을 알겠지만, 물건의 무게를 사람 숫자대로 1/n 하면 되겠거니 하는 단순 생각과는 달리 쏠림현상이 있어 자칫 위험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소리를 내어 호흡을 맞추어야 한다. 그 소리내고, 함께 행동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둘이는 긴빗자루를 메고, 교탁앞에서 그걸 흉내내다가 담임 선생님께 들켜 머리통 한대씩 사랑의 매를 맞고 모두가 웃었다.
그리고 그 친구랑은 전국의 시군, 읍소재지 외우기를 했다. 도시는 그렇다치고, 어느 군에는 읍이 있고 없고, 당시 석탄광산이 많았던 산중인 삼척군은 인구가 늘어 삼척, 장성, 도계읍이란 세개의 읍이 생겨났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 찾으면 다 나오는데 그걸 뭣하려 하느냐 할 것 같다.
그는 진학을 위해 서울로 떠났고, 나는 부산에 남아 후일 소주잔 기우릴때면 그와 함께했던 추억이 가끔 떠올랐다.

내가 직장을 들어가 보니 그 친구의 형님께서 우리 직장에 계셨다. 당연히 동생의 친구라고 나를 많이 아껴주셨고, 나는 든든한 울타리가 생긴듯 기뻤다.
30초반 그 형님으로부터 친구가 부산에 와서 산다는 말을 들었다. 전화번호를 알아 그를 만난 곳이 만덕동 비탈진 도로가 어느 선술집이었다. 그는 동생도 서울로 갔는데 자신만 부산으로 내려왔다고 말했다. 금의환향이 못되니 사람들과의 접촉이 많지 않아 보였고, 과거사에 대한 이야기들은 가슴에 묻었다.
그는 가까운 곳의 무역회사를 다니며, 퇴근 후엔 이 도로를 건너 집근처 가계에서 음료수컵 크기 소주한컵을 마시고 귀가하는게 일상의 메뉴라 하였다. 순간 뭔가에 오염(?)된 환경에 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꾸었던 현실에 다가서지 못함의 좌절감...나도 한때는 그런 생각을 가졌기에 더이상 묻지도 않았다. 그게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소식이 뜸해졌고, 석달 후 형님으로부터 그가 먼길 떠났다는 말씀을 들었다. 원인을 알려 하지도 않았다. 불길한 상상들이 머릿속을 어지렵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 형님은 직장을 다른 지역으로 발령 받으셨고, 나는 그동안 형님께 제대로 감사의 인사도 드리지 못함이 죄송스러웠다. 지금쯤 살아계실까? 그렇듯 후회를 안고산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지니고 산다. 단순하게 살아간다고 단세포 생물도 아니니, 그럴려면 생각을 억제시키려는 노력을 함께해야 가능할 것 같다.
나이가 많으면 생각이 많아진다고 하더라만, 나는 그게 지난 살아온 세월들을 펼치고 회상하는 것이지, 현실 삶을 더 윤택하게 하자고, 젊은 두뇌들과 경쟁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예전 직장을 다닐때 주변 사람들이 나더러 나중에 자신의 자서전을 써달라고 진담반 농담반으로 말했었다.
나는 그때 "우리처럼 소줏잔 기우리는 필부들이 뭐 대단하게 남길 삶의 흔적이 있겠나? 그냥 평소 삶에서 모든 것 드러내고 살아라"고 말했다.
어쩌면 신의 의도도 특정인이 커다란 족적을 남김보다 정의롭고, 슬기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짙은 구름속 하늘로 치솟는 비행기의 굉음이 숨가쁘다. 나는 어느때인가부터 고속도로를 달리는 폼나는 승용차보다 화물트럭이 더 소중해 보였다. 생산자의 대열에선 밭에서 땀흘리는 농부의 모습 또한 그랬다. 우선은 힘들어도...그게 남겨져야할 흔적이고, 가치있는 자서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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