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의 골짜기를 지나서
엇그제 하산주 자리, 산친구가 까닭없이 나의 말을 격하게 막아섰다. 자신과 관련 애기가 아니었다. 그 순간 나도 감정이 솟구쳤다. 나한테 왜 그래? 그의 앗차!하는 얼굴표정...그 자리에서 폭발하지 않는 나도 내공이 커졌고, 그가 원망의 골짜기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옛날에는 그해 농사가 잘못되면 나랏님의 덕 없음을 원망했다. 그래서 옥체 높으신 임금님도 가뭄엔 기우제를 지내신다고 몸소 납시셨다.
태초 환웅이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내려왔다고 전한다. 그래서 기우제는 매년 연례행사가 되었더랬다.
마음을 감옥에 가두는 단어, 원망, 분노, 저주...그중 원망(상대방에 내뱉는 것을 토종말로 '지청구'라고 함)의 의미는 무엇을 탓하거나 미워하는 의미다.
근래들어 가슴을 억누르는 원망스러운 것 중 두가지는 혹독한 기후변화와 급락하는 경제위기다.
기후변화는 인간들이 공동으로 지구온난화를 불러들인 결과이니 누굴 원망하기도 그렇다.
그러나 경제위기 원망의 대상자는 쉽게 드러난다. 전쟁을 일으키고 즐기는 전쟁광, 질병의 발생과 감염을 소홀이한 사악한 바이러스의 방관자, 돈을 물쓰 듯 대책없이 뿌려댄 권력의 지배자, 높은 대출금리로 서민들 고통에 빠져들때 성과급 잔치하는 은행, 싸움질만 하고 민생을 외면한 정치인, 돈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보이지 않는 큰손...(깊은 생각없이 열거한 것들이니 마음에 담지 마시길)
창조주는 세상을 만드시고 기뻐하셨다고 기록되었다. 그만하면 그들이 나누어 살기에 풍족할 것이라 미루어 짐작하셨을터이다.
그러나 가진자는 자신의 손을 감추고, 남더러는 버리고 내려놓기를 바라는 욕망이 남았다. 가난한 자는 자신의 게으름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애를 써도 극복 못할 가련한 원초적 가난의 삶들이 안타깝다.
김홍신 작가의 소설 '인간시장' 장총찬은 창조주를 그런 대목에서 원망했다.
"하나님께서 아이의 치료비를 보태주는 것까진 바라진 않았지만 왜 불쌍한 그의 생명을 앗아가 버리셨나이까?
그리고 악한 자들을 당장 벌하시옵소서. 천벌을 받을 인간들에게 벼락을 치지 아니하시고, 쓸데없이 나무나 쇳덩이에 치셨습니까?"
원망은 코로나 감염자의 폐부처럼 서로에게 아픈 흔적을 남긴다. 치유의 특효제는 자비와 사랑이다.
산친구는 정직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나도 가끔은 입바른 소리를 했고...그래서 여전히 친구로 남아있고, 그때마다 벌어진 틈새를 치유하려 애쓴다.
요지경 세상, 자비와 사랑이 하얀 눈송이처럼 흩내리고, 급성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전파되어 원망품은 마음들이 사라지기를 기원하며 비내리는 창밖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