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시가 가까워서야 집을 나섰다. 오늘은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는 날이다. 나는 2주일마다 도서관을 간다. 무슨 대단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무엇에 매인 의무감에서도 아니다. 다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래도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고 싶을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변은 가슴속의 깊은 이야기를 잘 쏟아내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고, 산을 오르며, 농사일도 배우면서 술까지 마다하지 않다보니 2주일에 3권씩 빌려오는 책마저도 제대로 다 소화해 내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빌려온 것이 아까워서 대충 대충 그림(?)만 보고 반납을 하고 만다.
책의 내용도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여행에 관한 책을 자주 읽는 편이고, 나머지는 그냥 그런 책들이다. 결코 지식을 얻기 위해서만도 아니다. 어느 세월에 무슨 지식을 축적하고, 그 것을 활용할 기회가 있겠는가? 하다못해 도서관에라도 한번 다녀보자 그런 오기로 그래도 끈기 있게 다녀보는 것이다.
시내거리는 매우 조용하다. 어젯밤 유등축제에 불꽃놀이가 있었고, 늦게까지 구경 나온 사람들이 골목을 지나다니는 바람에 우리 개(천방지축이)가 가뜩이나 신경을 곤두세웠었다. 불꽃놀이 축포소리에 녀석은 또 어느 구석에서 고갤 처박고 숨죽이고 있었었나 하는 마음도 들었었다.
어제 애 엄마와 우린 직장을 다녀오다 시내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오다 천수교 다리 중간에서 우연하게 불꽃놀이를 보게 되었었다. 올해는 전국체전 행사도 있고 해서 등의 숫자도 늘어나고 불꽃놀이도 규모가 다른 해 보다 컸었다.
사실 이곳 유등축제의 유래는 임진왜란 당시 성안의 병사들이 밖의 가족들에게 자신들의 안부를 전하기 위해 강물에다 사연을 적어 넣은 등을 띄워 흘러 보냈다는 것이었고, 예전에는 주로 여학교에서 학생들이 등을 만들어 강물에 직접 띄워 흘려보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강물에 있는 등은 행사주체에서 만들어 보관하며 해마다 행사 때면 강에 고정시켜 놓았고, 고수부지의 작은 등들은 시민들이나 단체의 협찬을 받아 달아두는데 등 하나에 만원씩인가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세상일이 다 그렇긴 하지만, 알고 보면 그냥 즐기자는 것이지 유등의 그 본래 의미는 퇴색되고 만 것 같아 보인다. 어째든 그 행사가 전국에서도 유명하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다 하니 축하해야 할 일이다.
공설운동장을 돌아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도서관을 올라가다 보면 학생들과 주로 40대의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학생들은 당장 자신들의 진로에 관한 공부를 하게 될 것이고, 40대는 부모세대로서 아이들을 데리고 오게 되거나, 아니면 아이들의 공부 때문에 자신들이 공부를 하여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속으로 흐뭇함을 느낀다. 나 같은 사람이야 갈 곳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할 일도 많지 않으니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같이 좋은 날씨에 야외로 나들이를 가지 않고 그래도 고리타분한 이곳으로 오고 있으니 말이다.
저마다 가방속이나 비닐봉지에 서너 권씩의 책을 넣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모습은 그런대로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특히나 올 여름처럼 무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가파른 계단을 땀 흘리며 오르내렸었다.
도서관에 소장된 책 이란 게 전문서적도 조금은 있으나, 일반적으로 흔해 빠진 책들이 많은 편이다. 시의 예산이 충분하지 못하여 신간서적을 제대로 들여 놓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집에 와서 책을 읽다 보면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가져오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충분하게 그 책을 소화하지 못하였을 경우도 있겠지만, 그만큼 장서의 분량이 적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여튼 나는 이 도서관을 오가는 시간이나, 건성으로 책을 펴들고 있는 시간이나마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보람을 가진다.
이른 아침시간에 안방에서 애 엄마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마루에 있는 나더러 지식산업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였다. 외국에서는 유명작품하나로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수출하여 얻는 수익의 열배가 넘고 있다는 텔레비전 뉴스 전달자의 말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받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표현력이 부족해서 아마도 힘들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은 지금까지 못살아서 그런지 단기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하여 파고, 짓고 하는 것에 익숙해 있어서 문화자체가 틀리는 것 같다는 이야기와 우리나라도 20대의 젊은 세대들은 적어도 사고가 기성세대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였었다.
우리 주변의 기성세대들은 무엇이든 자신에게 당장의 이익이 되는지를 살피고, 흥미위주로 보고 그리고는 그냥 지나쳐 버린다고도 말하였었다.
사실 내가 느끼는 것은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이 너무 말라 보인다는 것이다. 거리를 나가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말 한마디 잘 못하거나, 표정관리라도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여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속의 두려움이 있다.
사실은 그 두려움이 현실에서 종종 나타나고 있다는 그 것이 더 큰 문제다. 그러한 경우 소외당한 사람들 편에선 소위 ‘너희들 한번 잘해먹고 다음에 두고 보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2등이라도 할 것을 굳이 나서서 3등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그저 눈치나 보고 머리 조아리며,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신상에 좋단다.
심지어 좋아하는 동료와 술이라도 한잔 하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따로 술 마시며 역적모의도 하지 않는데 말이다. 말이야 바로해서 돈 들여가며 좋은 분위기에서 굳이 마음상할 그네들의 이야기를 끌어당겨 분위기를 망칠이유도 없는데 지레 잘못된 짐작이지 싶다.
제발 남더러 그렇게 살지 말라고 붙들고 이야기를 할 형편도 못된다.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 어차피 내가 대신 살아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자주하는 말이 나처럼 살지 말고, 나하고 친한 척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만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도 옛말일성 싶다. 정치나 경제하는 사람들 보면 대를 이어 누리지 않던가? 그러니 겁이라도 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전반적인 생활에서도 감정이 메마르긴 마찬가지다. 좋은 일을 보아도 기뻐하는 표정도 별로고, 남의 아픔을 보아도 그냥 지나치고 동정을 할 줄을 모른다. 다음에 내가 저렇게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는 도서관을 드나드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래도 앞으로의 우리나라 장래는 밝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대학입시에서 논술을 다루는 측면도 있겠지만, 어째든 학생들이 도서관을 드나들며 많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간접적이나마 남의 생각을 미리부터 공유하게 되고 나아가 자신들의 앞날을 예찰할 수 있는 식견을 넓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지식 그 자체만은 아닐 것이다.
1층 어린이실 앞에는 서너 살 가량의 귀여운 꼬마가 서성이고 있었다. 내가 그곳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애야! 여기 뭐하려 왔어?“
“공부 하려.”
“누구랑 왔는데?”
“음..우리 엄마랑 아빠하고. 아저씨는 누구야?”
“응! 아저씨도 공부하여 왔다. 그럼 공부 잘해.”
“예! 아저씨.”
순간 그러한 모습에 나도 예전에 왜 저렇게 가족들과 같이 도서관을 와보질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들이 매우 부럽게 느껴졌다.
그들이 읽어 내는 것은 지식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마음의 양식에는 정이라는 것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을 터이고, 갈수록 이 사회가 정에 메말라가고 살기가 힘들어 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찍부터 마음속에 그 무엇인가를 심어둔다면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기성세대들 보다는 훨씬 이 세상을 공유하려는 마음이 앞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제 늦은 밤에 텔레비전에서「레지던트 이블3」이란 영화를 보았었다. 인간과 비인간이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고 남의 것을 더 빼앗기 위해서 싸우는 영화였다. 인간들은 자신들 동료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숭고한 정신으로 비인간들과 대항하는 모습까지도 보였었다.
그런데 인간과 비인간이 다른 점은, 인간은 동료의 불행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며, 때론 만족을 느끼는 감정이 있고, 비인간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자연환경이 거의 다 파괴되고, 이 얼마 남지 않은 터미네이터 인간들이 인류의 멸망을 방지하기 위하여 싸우는 광경을 보니 언젠가 저런 것도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대출 실에 들어서면 어쩐지 마음이 숙연해진다.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다른 사람들이 놀라 쳐다보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해보지만, 막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것은 이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표정이 거의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도서관 입구의 안내판에 이곳은 정숙하여야 하는 곳이라고 적고 있는데, 정숙인지? 아니면 숙연? 근엄? 하여간 직업의식에 몰입하여 있는 그들을 보며 자신들이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표정을 영영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공연한 오해도 해보게 된다.
조금은 덜 정숙해도 될 성싶다. 정작 우리사회에서 정숙해야 할 곳에선 그렇지 않음을 자주 보게 된다. 그래서 우수개 소리로 질서에서는 ‘정숙’이, 사회에서는 ‘정의’가 가출했다고 말한다.
책을 고르는 것도 싶지는 않다. 재수가 좋은 날이면 3권을 고르는데 10분 내지는 20분, 그렇지 않는 날에는 거의 한 시간이 걸린다. 내 나름의 책을 고르는 기준은 첫째,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 두 번째, 읽는데 흥미가 있을 것, 세 번째, 분량이 적당 하여 다 읽어 낼 수 있을 것 등이다.
다행이 오늘은 책을 쉽게 골랐다. 즐거운 마음으로 도서관 앞 계단을 내려오는데, 아래 도로에서 승용차 한 대가 무리하게 급 커버를 돌아 올라온다. 이곳 도서관 입구는 최근 새로 지은 테니스장과 출입구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차를 보면서 나는 직감했다. ‘아하! 저건 테니스장에 가는 친구구나!’ 그리고 뒤를 이어 차가 한대 더 올라오는데 그 차는 얌전하게 올라오고 있다. ‘저건 도서관행이네! 나의 짐작은 사실로 나타났다. 테니스를 치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것도 다 취미생활인데, 그 취미생활의 선택도 성격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순간 내가 반00라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세상 살다보면 다 거기가 거기이다 보니 누구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하긴 오늘 선택한 책 중에도 풍수지리 비슷한 책도 보이기는 하였지만...
각설하고, 나는 세상에 정이 너무 메마른 것이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너도 그러면서 무슨 사돈 남의 말 하냐?’ 고 한다면 할 말도 없긴 하다. 그래도 우리사회에서 더 가진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좀 더 어여삐 여겨주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렇다고 구태여 세상을 다 포기한 것처럼 사는 나 같은 사람까지 챙겨 주기를 바라진 않는 일이지만...
그리고 앞을 바라다보는 사는 사람들도 좀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과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야 말로 정말 이 사회가 살만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표상이 아닐까?
바른 말을 하여 가진 자의 눈에 나든, 눈치 보며 마음에 없는 말까지 내둘러 대고 머릴 조아리며 비굴하게 살아가든, 결국은 어차피 마음이 편치 못하여 잠결에 베갯머리를 몇 번이나 고치며 잠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레지던트 이블3」에서 보듯 이 세상의 마지막 단계까지 가서 동료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지 말고 그래도 사는 것에 목숨을 덜 걸어도 되는 현시점에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사악한 무리엔 진정성이라도 말해보고, 마음 가는 곳엔 댓글이라도 달아봄이 훗날 자식에게라도 잘살고 못살고를 떠나 후회없이 그래도 이렇게 살았노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