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대성골 그곳을 (또) 가고 싶다.

작성자草隱|작성시간20.09.01|조회수79 목록 댓글 0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를 지나 신흥마을에서 산길로 접어들면 서산대사길이 나온다. 가파른 산길은 계곡물을 못잊어 동무하여 굽이 친다.
이마에 땀이 흐를 때면 아래의 계곡을 바라보면 여름에도 차가운 계곡물에 가슴 속까지 시원함을 느낀다. 소나무, 참나무 향기를 맡으며 오르는 산행 길엔 수줍게 핀 산나리꽃의 향기가 더욱 진하게 묻어난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4시간여를 오르면 숲속에 우뚝한 어여쁜 마을이 나타난다. 이름하여 의신마을이다. 이 마을을 거쳐 대성골을 지나 삼신봉을 올랐고, 영신봉과 촛대봉도 올랐다. 한마디로 지리산 남부능선의 입구인 셈이다.
오르며 지나치고 내려오며 쉬는 곳이다. 그런 이 마을을 지날때마다 가슴 아픔을 느낀다. 야속하게도 젊은 나이에 훌쩍 생을 접어버린 후배의 고향이어서다. 그가 나에게 깍듯하였기에 나는 마음의 빚을 졌었다.
그때 우리는 이 마을을 두고, 고로쇠물과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했다. 고향이 금산이라던 이현상은 이 마을을 지나 덕평봉 아래 빗점골에서 슬픈 최후를 맞았다고 하였다.
나는 공산주의는 지극히 싫어하면서도 혁명가 체 게바라와 이현상은 마음에 두는 편이다. 그들의 원초적 속마음이 좋다는 의미이다.
대성골 입구 민박집은 지날때마다 쉬었다. 하산길은 도토리묵에 동동주로 허기진 배를 채울 수있는 쉼터이다. 웅덩이에서 신나게 물장구치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시는 동동주 맛에 세상은 별천지가 되어 버린다.
한때 막가파 산꾼들과 대성골 계곡산행을 한적이 있었다. 비온 뒤라 계곡물은 드세고, 길이란 오직 산란 끝낸 열목어처럼 거센 물길을 치고 오르는 것이었다.
죽은 나무를 걸쳐 몸을 의지하고, 미끄런 바위를 안고 돌았다. 무릎은 바위에 부딧치고, 여럿 독사와도 마주쳤다. 그렇게 힘들여 정상에 오른 시각은 다른때 하산시각 같은 오후 5시였다.
골짜기를 오르면 화전민 흔적이 나타나고, 이현상이 자살을 하였다는 장소는 언젠가 한번 지나쳤으나 기억에서 흐릿하다.
세개골 입구 철다리에서 영신봉으로 곧장 올라가는 길은 너무 험난해서 일년에 오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언젠가 그 영신봉 절벽아래에 험난한 곳에 기도하는 듯한 남녀가 머무르는 움막 두개가 있는 것을 보았다.
삼신봉을 지난 발걸음은 음양수 코스로 이어진다. 길은 낯설지만 그렇게 험난한 곳은 아니다. 지난 어느 산행 길은 거림에서 삼신봉을 올랐다 하산길엔 의신으로 향하는 코스를 잡았었다.
그렇게 음양수에 이르면 거림으로 하산을 하거나, 세석대피소를 거쳐 노고단으로 향하는 영신봉, 천왕봉 방향의 촛대봉으로 이어진다. 드디어 지리산 종주길에 접어드는 것이다.
여름 산행은 계곡물이 흘러야 제격이다. 이 의신마을을 거쳐가는 곳은 맑고 차가운 계곡물이 있어서 좋다.
지금은 고로쇠물 나는 이른 봄철이 아니어도, 이현상이 생각나고, 먼저 가버린 애뜻한 후배의 모습이 떠올라 그 대성골을 언젠가 또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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