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사슴

작성자草隱|작성시간26.06.11|조회수31 목록 댓글 0

길잃은 사슴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갈까
길을 잃고 헤매던 사슴 한 마리...'
70년대 유행했던 가수 김세환의 노래가사이다. 가사 내용처럼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한마리 길잃은 사슴되어 오늘은 또 어디로 갈까하고 망설인다.
그런데 문득 그곳이 생각났다. 한두번 가본 곳이 아니지만, 유튜브를 통해 보았던, 대중에 많이 알려지지 어느 가수와 그들이 막걸리, 소주잔 앞에 놓고 노닐며 노래했던 그곳을 가보고 싶어졌다. 그 가수가 불렀던 트롯트 대여섯곡 메들리 중 그 첫곡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바닷물이 철석철석 파도치는 서귀포
진주 캐는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휘파람도 그리워라 뱃노래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 리에 황혼이 온다'

내가 좋아하는 남인수의 '서귀포  칠십리'라는 노래이다. 유튜브에서 기타 반주에 따라 이 노래를 부르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가수는 1998년 11월 남북의 합의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고, 2년여에 걸쳐 300차례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었다고 말하는걸 보니 당시 동해항에서 북한의 장전항으로 가는 배안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하여간 중우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는 기타반주 하나만으로 노래를 부르다 보니 흥을 돋구려 온몸과 얼굴 표정으로 진정성 있게 노래를 불러 호감이 갔다.
그들 일행이 연예활동이 아닌 순수한 일상의 모습에서 보여주는 동영상을 여러차례 보았고, 노래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또 다시 그곳을 가서 노래속에 동화되고 싶어졌다.

작은 배낭을 지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아무래도 땀을 조금 흘리게 될 것이란 각오를 하였다. 집근처 정류소에 도착하여 버스를 기다리는데, 웬 외국인 젊은이가 내 뒤에서 서성거리더니 가방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어 먹기 시작했다. 아침 대용인듯 했다.
내가 손짓을 하며 내곁에 앉아 먹으라고 하였으나 사양을 했다. 어느나라에서 왔느냐고 우리말로 물었더니, "한국말 잘몰라요"하고 말한다. 아니 한국말을 모른다며 나의 말귀는 어떻게 알아 먹을까? 가만 생각하니 예전 코메디 프로에서 외국청년이 "사장님 나빠요"하던 투의 서툰 대화가 떠올랐다. 그래! 외국인들이 기초적인 어학연수를 하겠지만, 자신들을 방어할 필요한 문구는 꼭 외우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나를 보더니 마음이 동했는지 먹던 빵과 우유를 내밀었다. 먹을만큼 먹었으니 나더러 먹으라는 것인가? 아니면...일단 나는 손으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며 웃었다.
호의는 좋다만, '누군가는 이나라 국민들의 개인별 소득이 올랐다고 하더라만, 쪼그라드는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 어렵다 치더라도 부자 망해도 3년은 버틴다 하였으니, 어찌 돈벌려 온 굴레수염 투성이인 네가 먹던걸 내가 받아 먹겠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가 알아들을만한 어설픈 대화로 다시 물었더니 파키스탄에서 왔단다. 그래 나도 그 수염보니 인도 아니면 그 동네인줄 알았다. 그는 먹고 남은 쓰레기를 건물 사이에다 끼어 넣었다. 한마디 하려다. 말이 통해야 말이지! 그리고 이나라 것들도 그런판인데 그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 참기로 했다.
그는 부산의 대학을 가는 중이라고 하였다. 대학들이 외국 학생들을 받아 들이는건 그 국가의 정책목적에 합당하거나, 대학의 글로벌 위상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지만, 단순히 모자라는 학생정원을 채우기 위해 그들에게 장학금까지 주어가며 유치하는 것은 자칫 국가 기밀을 빼돌리는 보안문제를 야기시키고, 이나라 학생들에게 상대적으로 피해를 주는 일이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버스를 타고 뒷좌석을 보니 친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른 친구와 등산을 약속하고 가는 중이란다. 시청 정류소에서 또 다른 친구가 차에 올랐다.
나는 그들에 합류하고, 셋이 함께 등산을 하기로 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만남의 장소같은 편백나무 그늘 아래 벤치엔 끼리끼리 모여 앉아 산행을 준비 중이다.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여자들의 숫자가 더 많아 보인다. 가족을 출근시키고, 가까운 지인들과 낮은 산을 오르기에 적합한 타이밍이다.
여자들은 산에 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남자들은 술, 노는 이야기, 가끔은 웃자고 여자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일부러 들은건 아니지만, 여자들 이야기는, 딸이 어떻고, 아파트 4억이...대략은 그러한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친구는 '우리도 외국처럼 아이들 적당히 크면 독립심 심어주지 왜 늙어서까지 걱정을 끌어 안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나는 이 산속까지 찾아와 쫒아도 겁내지 않는 비둘기들을 보면서 조물주가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셨는데, 막상 '먹고살고 늙어서까지 자식들 두고 고뇌하는건 인간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환점인 사찰 근처 나무그늘 아래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절간 소유의 넓은 밭이 비어있다. 나는 채소라도 심으면 신도들의 부담이 덜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무리의 어린이집(?) 아이들이 숲속으로 들어서 무엇인가를 배운다. 참 귀한 아이들이다. 저들을 키워내려면 많은 돈이 들어간다. 우리들은 아이들과 노인, 장애자들에 대한 간병문제 등에 획기적인 개선을 가져와 국민들의 삶의 부담을 덜게 하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60대쯤으로 보이는 오토바이 배달부가 손에 꾸러미를 들고 산길을 배회한다. 알고보니 어떤 여자가 숲속 잘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음식물을 시킨 것이다. 아무리 소비자가 왕이고, 돈세상이라지만, 제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행위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늘같이 자주가는 코스를 걸었더라도 동일한 곳에 족적 남기지 않았음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황토길에서 맨발 걸음 후 발을 씻고, 또 다시 산을 올랐다.
키큰 도토리 나무가지 사이로 하얀 구름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드물게 산새 소리도 들려왔다. 이 푸르름에 행복을 느끼는 순간, 문득 올들어 역대 가장 강한 엘리뇨가 형성될 것이라던 기상전문가의 말이 생각났다. 언제 불볕더위가 지치게 만들고, 긴장마와 거친 거센 태풍이 몰려올지 모를 일이다.
세상사람들 모두가 선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살아가면 좋으련만, 악한 마음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침잠하고 가는 세월에 순응하려 애써야겠다. 나는 오늘도 복잡한 세상을 피해 한마리 길잃은 사슴되어 숲속을 헤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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