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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약은 입에쓰다

우리들의 해거름녘

작성자草隱|작성시간26.06.10|조회수38 목록 댓글 0

우리들의 해거름녘

해거름녁, 바깥 바람이나 쏘일까하여 1층으로 내려갔다. 경계벽 주변의 작은 화분들의 상태를 둘러보고, 고개를 돌리다 가계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초량 금수저와 눈이 마주쳤다. 다가서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시원한거 입가심이나 하입시더'하며 가계문을 열며 나를 초대했다. 음식이 준비된걸 보니 예정된 수순이 있는 것 같았고, 명색이 식당인데 나는 아무런 결재준비도 없이 들어서는게 부담이 되었다.
식탁엔 요즘 얼굴보기 어렵다는 문어장군이 가운데 떡하니 자리를 잡았고, 수저와 할당된 소주 한병씩이 셋팅되어 있었다.

초장엔 귀를 막으면서도 속절없이 지껄이게 되는 저질 정치 이야기, 둘은(여주인 까지 있으니 셋이네) 그런건 살맛이 안난다면서도 불행해질 우리들의 앞날을 그려보며 세상 흐름을 한탄하였다.

술이 한두배 들어가자 초량 애기가 나왔다. 참 여기서 배(杯)란 단어에 시비를 좀 걸고 넘어가야겠다. 그나마 잘안보는 티비 켜면 제일 많이 보게 되는 것이 광고 따려 우려먹는 전원일기와 자연인 프로다. 그런데 인간들은 고기 덩어리를 손에 들고선 서로 부딧치며 '건배'라고 소리친다. 건배라니? 그게 술잔이니? 소위 대중이 보는 방송에서(굳이 00하단 소리를 뺀다만) 도대체 아이들이 보면 그걸 무슨 의미로 알아 듣겠나? 그럼 지금 내가 금수저랑 한잔들때는 아무 소리 안하고 있다가 문어대가리 잘라진걸 젓가락 집어들며 건배라고 하면 맞는거냐?
배란 글자가 들어가는 단어를 열거하면, 선(船:탈 것), 복(腹:복부), 리 (梨:과일), 절(拜), 잔(杯), 곱(倍:곱하기), 등(背:배신)이 있다.
알다시피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에서 존스가 찾는 성배나 예수께서 행하신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된 잔을 성배(聖杯)라고 하였다. 그때 쓰이는 그 잔, 그 단어가 배인 것이다.

뻔히 아는 세설을 늘어놓다 글의 분량이 늘었다. 금수저는 어린시절 분에 넘치게 생활했던 당시 재벌 10위권 사돈이며 투자를 했던 아버지와 형들에 대한 무용담 아닌 실패와 회한의 이야기를 펼쳐 놓았고, 여주인장은 (약간은 떨떠럼한 표정) 시가 식구들의 행태와 그곳에서 장사를 하였던 추억을 꺼집어 내었다.
나도 옛추억이 떠올랐다. 내가 첫취업이 되어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을즈음 어느날 누군가가 찾아와 저녁 향우회에서 나를 환영하는 저녁모임이 있으니 참석하라고 했다.
나는 외진 섬에 홀로 떨어져 있는줄 알았었는데, 주변에 고향 사람들이 있고, 처음보는 나를 환영해 준다니 눈물이 날 것만 같이 기뻤다. 모임에는 고향 친구들의 형님 두분도 계셨고, 모두가 따뜻하게 나를 맞아 주었다.
그런데 모임에 나온 메뉴가 바다새우인 '오도리(대하)'였다. 어린시절엔 바다가 접하지 않은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걸 먹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살아 퍼뜩대는 그것의 껍질을 손으로 벗겨 뜯어먹는데, 어째 원초적 강육약식의 서바이벌 게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환영회라면서 왜 불판위에서 지글거리는 불고기를 사주지 않고, 볼때기에 초장 묻히며 야만스럽게 먹어야 하는 이런걸 선택했는가 하는 의아심마져 들었다. 그런데 뒤에 알고보니 그게 최고의 먹거리라고 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초량의 추억은 대만출신 화교 식당주인을 알아 제대로된 배갈 주법을 배웠고, 심심하면 전화해서 놀려오라해서 일본 방석집 이야기 하던 금붕어집 석사장님과 몇몇 지인들도 사귀게 되었다.
초량은 부산역이 있고, 여객선이 들락거리는 항만과 중국화교들이 밀집해 있는 차이나타운, 그리고 6.25와 임시수도의 흔적도 남아있다. 언젠가 산복도로를 걷다가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고신의료원 창립자 '장기려 박사님' 기념관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곳도 초량이다.
초량하면 또 나훈아와 이경규 이야기를 빠뜨리지 못한다. 이경규는 나이 차이가 있으니 이야기에 끼지 못했다. 금수저네는 나훈아의 집과 가까운 곳에 살아 할 이야기가 많았고, 나도 언젠가 나훈아의 외삼촌과 술좌석에서 만난적이 있었다.

이야기 중에 동네 백수 삼총사 중 불참한, 그나마 장인의 기술로 한번씩 세상에 쓰임받는 빌라 친구의 말이 나왔다. 주인 내외의 말인즉, 그를 오라하면 이 식당에서는 술안주로 육고기를 준비하지 않아 싫다고 말한단다. 그에 비하면 금수저네는 고기를 별로로 여기니 그걸 못마땅해 하는 것이었다. 난들 흠결이 없을까 생각하니 맞장구를 칠 분위기가 아니었다.
요즘은 어른 아이 할것없이 물고, 뜯고, 즐기고, 마시는걸 좋아하니 달리 말하기도 그렇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가 고기가 주식처럼 되었더라? 지원금 나오는 날이면 유달리 우리동네 고깃집엔 차들이 많았다. 먹고 디룩디룩찐 살뺀다고 더 고생하는 젊은네들, 노인네 질긴 고기 뜯다가 약하게 심어진 인플란트 이빨 뽑힐라 걱정스럽다.(ㅎㅎ)

우리들의 해거름녘, 세상은 말그대로 각자도생이다. 좀더 범위를 넓히자면 끼리끼리다. 그래서 힘있는 세력들은 정치권과 결탁하여 단체 결성과 규제를 강화하여 자신들의 영역을 더 확고하게 만든다.
세대간 대립도 그렇다. 자신 세대만 세력을 강화하면 자식들의 장래는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일까? 전성기의 사자처럼 힘을 과시하며 살다가 힘빠지면 가족으로 부터도 외면받는 생을 각오한 것일까?
자식들 하자는대로 하지뭐. 정부가 주는대로...무엇인가에 순응하며 살자는 것도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처럼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신이 따로 길을 개척할 능력이 사라졌기에 대세의 흐름에 따라 가자는 말일게다.
그렇게 생각을 가다듬는 그들의 마음은 편할리가 없다. 평생을 자식위해, 국가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의무를 다한 결과가 이럴까 생각하면 남몰래 돌아서 눈물을 흘리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우리들의 대화속엔 100세 건강도 없고, 희망과 행복이란 단어가 숨어들고 말았다.
그저 단축되어도 좋으니 고통스런 순간이 배제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안그런척, 행복한척 억지 미소를 지으려 애써본들 그게 진솔하지 않음을 자신이 더 잘안다.

나이들고 교통수단 없으니 광역지자체 구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세상 이야기는 싫지만, 그래도 정보를 습득하지 못하면 아프리카 토인인 네그릴로(Negrillo) 피그미족과 무엇이 다른까?
혈세들여 금붙이로 지은듯 거금의 공사비를 들였다던 도서관이 1여년만에 재개관 한다니 눈요기나 좀 하고 성숙(숙성?)한척 보이려 애써봐야겠다.

그나마 우리집 근처엔 버스터미널, 백화점, 이마트가 있어 여름철 공짜 에어컨 바람 쐬기엔 안성마춤이다. 개다가 도서관까지...그런데 나는 에어컨 바람을 피하여 여름이면 땀을 흘리고 다니고 있으니 기계문명속 인공환경에 호환성이 적은 등외동물이다. 

노년에 생각과 눈물이 많아지는 것은 나이가 들면 감정중추인 편도체의 영향력이 커지는 반면, 감정을 통제하는 전전두엽의 억제력은 점차 약해지기 때문이란다. 또한, 은퇴, 사별, 신체적 기능 저하 등 다양한 상실을 겪으며 마음이 약해진 탓도 있단다. 뭔소린지 어려운 말이다. 생각을 적게하면 행복지수가 높아 진다지만, 분화해버린 다세포 동물이니 아메바처럼 살 수야 있겠나?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가장 크게 후회하는 것은 '도전하지 않은 것'과 '진심을 표현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무식을 드러내며 씨잘데 없는 속내의 글을 막써대는지 모르겠다.

 

* 더위집니다. 건강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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