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의 탁란(托卵)
뒷산을 올랐다. 산이래야 해발 200미터에 미치지도 못하는 낮은 산이다. 그래도 기온이 높으니 이마에서 땀이 났다. 어디선가 뻐꾸기 우는 소리가 은은하게 나를 반기는 듯 들려왔다. 요즘 산을 가면 산새소리를 듣기가 힘들다. 눈에 자주 보이는 것은 예전엔 흉조라 잘못 알려졌던 까마귀 무리이고, 흔하지 않게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었다.
뻐꾸기는 스스로 집을 짖지 않는데, 산새들이 사라져 그들의 둥지가 사라지면 '탁란(托卵)'에 의한 새끼 양육은 어떻게 할런지가 궁금하다.
우리네 주택보급율은 주택의 재건축(리모델링), 이사, 직장, 학업 등을 고려할때 전체 가구수를 상회하여야 하고, 2024년 기준 우리나 전국 주택보급율은 102.9%이다.
그중 적절한 주택보유율(자가보유율)은 국가의 경제 성숙도와 정책 방향에 따라 다르며, 통상적으로 선진국의 안정적인 자가보유율은 60%~70% 수준으로 평가된다. 무조건 100%를 달성하기보다는 주거복지와 주택 시장의 유동성을 고려한 균형이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국 자가 보유율은 61.4%(서울 43~44%)이고, 직접 거주하는 자가 점유율은 58.4%수준이며, 생애 내집 마련 소요기간은 평균 7.9년이다.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다주택자를 없애려는 정부 정책의 당위성이나 실제 시장의 흐름은 여기서는 논할 처지가 못되고, 문제는 건축 자재대, 인건비가 많이 올라 대기업 브랜드 있는 아파트가 아니면 집을 짓는다는게 쉽지가 않다는 점이다.
우리 동네도 빈땅에 몇년전까지는 공동주택을 지으려고 만지작 거리던 사람들이 이젠 아예 생각을 접은 것 같다. 공동주택을 짓는다는 것은 분양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익성이 없을뿐더러, 다주택자라는 범죄자 취급 당하는 것도 싫어 꿈도 꾸지 않을 것이다.
실정이 그렇다보니 경제적 여유가 있어 대기업의 아파트를 구입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은 앞으로는 새집을 구입하거나, 임대해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막힐 것 같다.
그건 그렇다치고, 내가 걸으며 보았던 도심의 산비탈의 낡은 집들, 티비에서 보였던 공동화 되어가는 낡은 아파트들은 어떻게 될까?
인구가 줄어들고, 빈집이 늘어난다고 방치된 남의 빈집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택이란 소유자나 합법적인 임대차로 계약된 임차인이 아니면 전기와 수도가 인입되지 않아 실생활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새들의 버려진 둥지는 고쳐쓰면 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자신의 집을 사거나 임차를 할 경우엔 공급이 많아야 그 중에서 필요에 의한 선택이 가능하고, 가격도 내려 간다는건 경제이론을 떠나 만고의 진리일 것이다.
짐승들은 자신만 부지런하면 마음대로 집을 지을 수 있고, 보유세 인상이니 종부세,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나 과중한 세금을 내지 않아서 부담이 없겠다.
뻐꾸기란 녀석도 자식을 키우려면 자기집을 지으면 좋으련만 정부의 무상주택 공급을 기다리는지 스스로 집을 짓지 않는다. 그래서 뻐꾸기를 두고, 약삭 빠른 새, 숲의 양아치, 나무 위의 깡패라고 부른다.
예전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란 영화가 있었다. (직접보진 못했지만) 그 의미가 강렬함을 알았는데, 거기서의 뻐꾸기 둥지란 '사회의 정상적인 기준에 맞지않는 사람들을 격리하고, 통제하는 강압적인 공간으로 뻐꾸기 둥지'를 비유한 단어였다.
뻐꾸기는 알을 낳을때가 되면 둥지를 짓는 대신 주변의 다른 새 둥지들을 둘러본다. 그러다 '이집이 좀 값나가겠다' 싶은 다른 새의 둥지에다 몰래 자신의 알을 낳는다. 원래 사기꾼이 그렇듯, 치밀하게도 자신의 알과 비슷한 색깔을 고르고, 둥지 안에 원래있던 알의 수를 맞추기 위해 다른 알을 하나 없애기도 한다. 그리고 뒤돌아 보지 않고 도망을 간다. 알을 남에게 맡긴다의 의미, 그걸두고 탁란이라 말한다.
둥지 주인 새는 뻐꾸기의 알을 보고, 뭔가 이상함을 느끼나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심하여 그 알을 나무 밑으로 밀어 떨어 뜨렸다가는 자칫 자신의 새끼를 죽일 수도 있어 결국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함께 다 키운다고 하였다.
핏줄은 못속인다고, 먼저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아직 부화하지 않은 주변의 알이나 알에서 갖 나온 새끼들을 가차없이 둥지 밖으로 떨어뜨려 버린다. 결국 자기 새끼도 아닌 뻐꾸기 새끼에게 열심히 벌레잡아 먹인 새 어미는 영문도 모르고 자신의 새끼를 다 잃는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권을 잃고, 계모가 되어버린 둥지 주인 새는 혼자 남은 뻐꾸기 새끼를 자신의 새끼인줄 알고, 계속해서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준다.
그렇게 남의 집 둥지에서 살생까지 저지르며 무럭무럭 자라난 뻐꾸기는 둥지를 떠나고, 짝을 만나며, 사랑을 나누어 자신의 부모가 저질렀던 만행을 또 저지르는 삶을 이어 간다.
숲속은 자연에 동화되어 평화롭고, 질서가 있는 줄 알았더니, 그곳도 인간세상과 같이 사기, 도둑질하며 살아가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중 한무리가 모양 아름답고 경쾌한 목소리를 내는 뻐꾸기였다.
우리도 결혼하고, 아이 키우는 과정에서 대여섯번의 이사를 다닌 것 같다. 한때 정부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생애 첫주택이란 제도를 도입하여 LVT 최대 80% 적용, 대출한도 확대, 취득세 감면을 해주었다.
내집이 없으면 아이도 안가지겠다는 생각이 우리 세대하곤 차이가 나지만, 맞벌이하며 아이를 키워야하는 힘든 과정은 백번 이해가 간다.
이제 내자식이, 손주가 그런 결정을 하여도 조금도 못마땅해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회나 국가가 그들을 감싸안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선가 보았던 팬듈라인(penduline Tip, 솜새)이란 작은 새는 주머니 모양의 정교한 둥지를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아 지었다. 뱀 등의 천적을 속이기 위해 가짜문을 두고, 실제 새끼들이 있는 진짜 입구는 미세한 틈으로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닭도 알을 품고 있을때 주인이 건드리면 부리로 쫒는다. 그만큼 새끼에 대한 애착심은 강하고, 키우는 곳은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뻐꾸기가 자기 집을 짓지 않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세상의 절박감을 느끼고 산새들이 버리고간 둥지에서 직접 새끼를 키우기며,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