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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虛 Zinhu

韓選管委聚患 대한민국 선거관리위원회가 근심과 재앙을 불러 모으다

작성자권오철|작성시간26.06.12|조회수23 목록 댓글 0

韓選管委聚患 대한민국 선거관리위원회가 근심과 재앙을 불러 모으다

20260612. 진허 권오철 拙吟 * 요즘 선관위 문제 이것은 또다른 음모의 시발, 국제적인 세작을의 개입도 의심, 그러나 그 진짜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 갈건지는 두고 볼일. 일음일양의 원리 또 돌고돌아

坎親採聘暗雲生 감(坎, 물)괘처럼 물 밑에서 친인척을 채용, 그 어두운 구름이 피어

艮內監査若不誠 간(艮, 산)괘처럼 내부의 감사는 마치 성실하지 못한 듯하고.

離獨逸任難督束 이(離, 불)괘처럼 권력을 홀로 휘두르니 기강을 바로잡기 어렵고,

震眞選疏失頻盲 진(震, 우레)괘처럼 바른 선거 관리는 소홀하여 눈 먼 실수 잦구나

兌規黨中迷正誤 태(兌, 연못)괘처럼 당파 속의 규칙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어렵고,

乾法蟲無惑枉貞 건(乾, 하늘)괘 같은 법은 좀먹어, 무엇이 바른 것인지 미혹 쉽네.

坤閉冗官成織痼 곤(坤, 땅)괘처럼 문을 닫고 관직만 늘려, 고질적인 병폐 되었구나.

巽民信忘如壞楹 손(巽, 바람)괘처럼 민심 잃어이는 집의 기둥이 무너지는 것과 같네

 

韓選管委聚患隨筆體 解說

 

 

들어가며

한국 선거관리위원회.
누구도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선거의 공정을 보장하는 독립기관으로서, 그 위상은 헌법에까지 새겨져 있다. 그러나 요즘 말들, 어디서부터인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오래된 집의 기둥에 금이 가는 소리처럼, 낮고 처절하게.

누군가 이 소리들을 한 데 모아 한 편의 시로 엮었다. 제목은韓選管委聚患. 한선관위에 근심이 모였다는 뜻이다. 시는 여덟 구절, 각각 주역의 여덟 괘()를 머리에 달았다. () · () · () · 번개() · 연못() · 하늘() · () · 바람(). 자연의 이치 속에 조직의 병폐를 담은 꽤나 야심 찬 시도다.

한자 한 자를 따라가노라면, 마치 들여다보기 불편한 거울 속에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 비친다.

 

 

첫째 구절, 물에 비친 어둠

坎親採聘暗雲生

()은 위험을 상징한다. 고요할 듯하지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친인척 채용 특혜라는 말은 이미 여러 번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한 지역 선관위에서 삼촌이 조카를, 조카가 사돈을 불러들이는 낯익은 인사가 이뤄졌다는 의혹. 물 위에 동그랗게 퍼지는 잔물결처럼 작게 시작된 이 이야기는, 어느새 어두운 구름(暗雲)’이 되어 조직 전체를 덮었다.

공정을 약속하는 기관에서, 그 공정의 첫걸음인 채용조차 의심받는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물결이 아닐까.

 

 

둘째 구절, 멈춰버린 감시의 눈

艮內監査若不誠

()은 멈춤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멈춤은 안전한 정지가 아니라, 작동하지 않는 감시 장치의 침묵이다.

내부 감사 부실. 어찌 보면 가장 관료적인 병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불성실함(不誠)’이라는 한 마디에 담긴 무게는 실로 크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조직은 결국 스스로를 부식시킨다. 마치 산속에서 바위가 풍화되어 가루가 되는 과정처럼, 느리지만 확실하게.

감사 보고서가 서류함에 쌓여만 가는 풍경. 그 풍경을 이 시는 한 글자 不誠으로 잘라낸다.

 

 

셋째 구절, 자유 속에 갇히다

離獨逸任難督束

()은 의지(依支)를 의미한다. 혼자서도 잘 타오르지만, 동시에 무엇인가에 기대어 있어야 한다는 이중성.

선관위는 독립기관이다. 정부의 간섭 없이, 국회의 눈치 없이 오직 헌법과 법률 아래서 일한다. 이는 축복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저주가 되었다. ‘감독할 수 없다(難督束)’는 말에는 책임을 묻는 사각지대가 생겼다는 냉소가 담겨 있다.

자유는 책임이라는 짝을 만나 비로소 아름답다. 그런데 여기, 짝을 잃은 자유가 방황하고 있다. 불꽃은 춤추지만, 그 열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넷째 구절, 선거의 본심을 잃다

震眞選疏失頻盲

번개()는 깜짝 놀라게 하는 힘, 변화와 혼란의 상징이다.

투표용지 관리 실수, 사전투표함 보관 부실, 개표 과정의 소동. 뉴스에 나오는 사소한실수들은 어느 순간 빈번한()’ 안일함으로 기억된다. 시는 진정한 선거(眞選)’라는 이상을 전면에 내세우며, 그 이상 앞에서 관리가 자주 눈멀었다()’고 직언한다.

작은 실수는 결코 작지 않다. 그것은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선거의 정신을 점점 흐리게 만드는 안개와 같다.

 

 

다섯째 구절, 연못 속에서 길을 잃다

兌規黨中迷正誤

연못()은 표면적으로는 평온하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특정 시기에 선관위가 편향되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그 방향이 항상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진보 쪽으로 기울었다 하고, 누군가는 보수 쪽에 섰다 한다.

올바름과 그름(正誤)’을 가리는 일 자체에 혼란()이 생겼다는 이 구절은, 결국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을 고발한다. 어느 누구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연못.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떠 있지만, 어느 것도 깊이 닿지 않는다.

 

 

여섯째 구절, 법을 좀먹는 벌레

乾法蟲無惑枉貞

하늘()은 강력하고 공정한 법칙의 원천이다. 그런데 이 법칙 속에 벌레()’가 숨어 있다.

규정 적용의 일관성 문제. 때로는 너그럽게, 때로는 엄격하게. 그 사이에는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시는 이를 법을 좀먹는 벌레(法蟲)’라 부르며, 의심 없이(無惑) 오히려 당연하게 옳은 기준을 굽게 만든다고 꼬집는다.

법이 굽는 순간, 그 아래에 서 있는 모든 것은 기울어진다.

 

 

일곱째 구절, 땅처럼 단단한 폐쇄성

坤閉冗官成織痼

()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감싸지만, 때로는 변화를 거부하는 폐쇄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순환보직, 관료주의, 잡무에 시달리는 조직(冗官). 이 모든 것이 마치 촘촘한 천()처럼 엮여서, 어느새 고질병()’이 된다. 낡은 관행은 낡은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고, 낡은 사람들은 낡은 관행 속에서 안주한다.

고치려 할수록 되레 단단해지는 병. 시는 폐쇄적 조직 문화라는 추상적인 비판을, ‘짜인 고질병(織痼)’이라는 촉감 있는 언어로 전환한다.

 

 

여덟째 구절, 무너진 기둥과 잊힌 신뢰

巽民信忘如壞楹

바람()은 스며들고, 퍼지고, 결국 사라지기도 한다.

국민의 신뢰는 쉽게 쌓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시는 붕괴라는 단어 대신잊었다()’라는 단어를 썼다. 신뢰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신뢰를 쌓으려는 노력 자체를 조직이 내려놓았다는 뜻이다.

무너진 기둥(壞楹)’의 이미지는 처절하다. 한때 정당(政堂)이나 법정(法廷)의 권위를 떠받치던 기둥이 이제는 부서져 흙더미 위에 누워 있다. 신뢰라는 단단한 건축물이 무너지고 난 자리에는, 단지 침묵과 냉소만이 바람처럼 스며든다.

 

 

나가며

여덟 구절, 여덟 괘. 이 작은 시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여전히 공정한 선거라는 말에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가?

아마도 해답은 한선관위취환이라는 제목 그대로, ‘모인 근심들을 하나씩 풀어내는 일에서 시작될 것이다. 시가 지적한 법 좀벌레를 잡고, 닫힌 조직의 창문을 열고, 신뢰의 기둥을 다시 세우는 일.

그 일은 누군가의 결단으로, 어쩌면 매우 평범한 내일의 아침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이 수필을 읽는 당신에게,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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