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쓸 메모리(Muscle Memory) 10 - ‘지지 않는 게임’과 ‘이기는 게임’
지은이 : 홍현웅
머슬 메모리 (Muscle Memory) -10
‘지지 않는 게임’과 ‘이기는 게임’
탁구클럽에 회원으로 가입한지 2개월 정도 될 무렵 교류전이라는 것을 한단다. 클럽 대 클럽의 친선을 도모하고 경기력을 향상하기 위한 자리라고 생각했다. 탁구장에서 매일 만나는 분들과 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처음 겪는 사람들과의 게임은 더욱 흥미롭다. 더구나 고수님들과도 한 판 쳐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 일석이조는 이럴 때 쓰는 말이지 싶다. 그리고 이번 교류전은 다음 주 있을 제 1회 브라보 안산 상록수배 전국오픈 탁구대회 개최 출전을 앞두고 있어 좋은 경험이 될 듯 하다.
이날 게임은 조별 리그전 형식으로 무리하지 않게 꾸며졌다. 내가 속한 조에는 3부와 2부 고수가 두 분이나 포진했다. 그동안 몇 번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은 좀더 나은 플레이를 펼치고 싶어서였을까. 첫 게임을 2부 고수분과 맞붙게 된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간단히 몸풀기 랠리를 주고받고 게임에 들어갔다. 4점의 핸디를 갖고 시작하지만 이건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난 잘 알게 되었다. 고수가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4점 정도는 바로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바싹 긴장한 나머지 ‘헉’첫 서비스를 범실로 상납했다. 두 번 째 서비스를 넣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2부 고수 분은 그 볼을 까다롭게 주지 않고 아주 평범하게 리시브 해 주었다. ‘앗싸’ 난 그동안 갈고 닦은 드라이브 한방을 작렬 시켰다. ‘으악’ 그러나 그 공은 멀리 다른 탁구대까지 보기 좋게 나라갔다. 공이 좋을수록 침착하라는 관장님 말씀을 들을 때는 알겠는데 게임만 하면 순간적으로 기억상실증에 시달린다. 아마 관장님이 이 모습을 봤으면 또 혼날 것이다. 관장님이 제일 싫어하는 건 서비스 실수다. 그 담이 헛 빵과 공 날리는 거다. 시작하자마자 그 두 가지를 싸잡아 했으니 오늘도 한 소리 듣겠다.
이번엔 내가 리시브 할 차례다. 그동안 고수들의 서비스를 몇 차례 받아봤는데 까다롭기가 굵은 실을 바늘에 뀌기보다 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분은 서비스를 까다롭게 넣지 않았다. 아주 평범하게 넣어주었다. 그동안 리시브가 되지 않아 자주 쓰던 말이 ‘리시브만 되면 좀 해보겠는데’였었다. ‘그래 이정도 서비스면 해볼 만 하겠다.’하고 넘겨준 공을 이분은 아주 부드럽게 루프 드라이브로 나에게 넘겨주었다. 난 백 쇼트를 델 수밖에 없었다. 평범하게 쳐 넘기는 것 같아 쇼트로 넘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공은 탁구대를 훨씬 더 벗어났다. 두 번째도 똑같았다. 그 서비스 그리고 그 공격. 내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비디오를 반복 재생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갔다. 이러한 상황은 게임이 끝날 때까지 반복되었다.
이분은 마치 나보고 연습해 보라는 듯 공을 평범한 코스로 넘겨주었다. 그동안 겪었던 분들과 다르게 좌우로 쫙쫙 찢어지는 리시브라던가 상상을 초월하는 커드회전이 없었다. 내가 어떤 서비스를 하던 내가 칠 수 있는 곳으로 적당한 빠르기의 공을 넘겨주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내 공격도 성공률이 높았다. 그러나 게임은 이길 수 없었다. 마치 스코어 조절이라도 하듯 한 게임 주고 한 게임은 뺏고 결국 풀 셋트 듀스까지 가서 아주 아까운 마음이 들도록 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분이 다른 사람과 칠 때 느낄 수 있었다. 5부와 칠 때와 3부랑 할 때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 내가 볼 때 그 3부 분은 강했다. 2점의 핸디가 존재하지만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게임은 2부가 이겼다.
나는 이날 부드러움의 강함을 보았다. 그리고 고수가 하수를 대할 때 ‘지지 않는 게임’을 한다는 것을 느꼈다. ‘지지 않는 게임’과 ‘이기는 게임’의 차이는 뭘까?
어떤 모임에서 펜싱 전 국가대표 코치를 지냈던 형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한참 탁구에 심취한 나는 형님께 생활체육 탁구시합을 나간다고 했더니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현웅아! 탁구든 펜싱이든 모든 경기는 ‘지지 않는 게임’과 ‘이기는 게임’의 전략을 구사할 줄 알아야해. 무슨 말이냐면 ‘지지 않는 게임’은 내가 상대보다 상수라고 생각했을 때 쓰는 전략이고 ‘이기는 게임’은 상대가 맞수거나 상수라고 판단했을 때 쓰는 전략이라는 거야. 즉 ‘지지 않는 게임’은 주로 상대방의 범실을 이용하고 약점을 빨리 파악해서 결정적일 때 마다 그것을 활용하라는 거야. 고수가 너무 하수를 이기려고 오버페이스 할 필요 없다는 거지. 반대로 ‘이기는 게임’은 내가 갖고 있는 장점과 강점을 최대한 발휘해야 해. 상대방의 게임 스타일에 따라 말리면 게임은 끝났다고 봐야 하거든. 이런 게임에서는 그동안 내가 가장 잘 했던 기술로 승부해야지 다른 기술로 맞장 떴다가는 어림없어. 그래서 필요한게 마인드 콘트롤이야. 담력. 배짱. 자신감. 그런 거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