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쓸 메모리(Muscle Memory) 7 - 개구리가 우물을 처음 벗어나던 날
지은이 : 홍현웅
머슬 메모리 (Muscle Memory) -7
개구리가 우물을 처음 벗어나던 날
탁구 재미에 한참 빠져들었다. 늪에 빠져 본적은 없지만 아마 그 못지않나 싶다. 한 달이 좀 지났을까 관장님이 다른 탁구장에 놀러가자고 하셨다. 전에 코치로 잠시 계셨다는 그 구장은 고수가 즐비하다는 소문을 익히 들은 바 있었다. 난 알겠다고 이야기하고 바로 관장님을 따라 나섰다. 몇 번의 래슨을 받으면서 체력도 조금씩 회복되는 것 같았다. 움직임도 처음과는 사뭇 다르다. 발이 따라다니니 드라이브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래 오늘은 뭔가 좀 다르겠지.'
차를 타고 가는 이동하는 동안 관장님이 이야기 하셨다.
"고수하고 치더라도 주눅들지 말고 니 플래이를 해봐.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이긴다고 이기는게 아니니까. 알았지."
"알겠습니다. 관장님"
"하수가 고수하고 치면 제일 문제가 뭐냐면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는 거야. 한방에 날리지 않으면 진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정작 그 한방도 제대로 치지 못하지. 몸이 회초리가 되어야 하는데. 치면 칠수록 자꾸 야구 방망이처럼 딱딱해 진다는 거야. 몸에 힘이 들어가면 발이 바닥에서 잘 떨어지지 않아. 그게 다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가서 그러는 거야. 그 힘 이 빠질려면 많은 연습도 필요하지만 급하게 하지 말고 어께도 좀 털어주고 한 점 한 점 진행 될 때 마다 계속 마음속으로 힘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주입시켜야 해. 그리고 내가 똑같은 서비스를 넣는다고 하더라도 상대에 따라 다 다르게 들어온다는 걸 잊으면 않된다. 회전이 많이 걸려올 때도 있고, 무회전으로 넘어올 수도 있으니까 공을 잘 봐야해."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았는데 벌써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하에 위치한 탁구장엘 들어섰는데 우리 구장의 2배는 족히 되어 보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탁구 치는 사람들이 꽉 차 있을 것을 상상했었는데. 너무 늦은 탓인지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현웅아 인사해라. 장관장님이시다. 나와 고등학교 때 같이 운동한 오랜 친구다."
"안녕하세요. 관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홍현웅이라고 합니다."
"어. 반가워요"
"이제 친지 얼마 안되는데 탁구를 좋아해서 오늘 데리고 왔어."
"신관장과 난 절친한 친구니까. 언제든지 놀러와요. 편하게 생각하구."
"네. 고맙습니다."
처음은 어디나 낯설다. 라켓하나 달랑 들고 들어선 구장에서 그냥 뻘쭘히 앉아있기 뭐해 두리번거리는데 한쪽 벽면에 장관장님에 대한 이력이 붙어 있었다. 소싯적 참 잘나가시던 분 같았다. 우승도 많이 하셨고, 청소년국가대표까지 지내신 이력을 볼 수 있었다. 우리 관장님은 그런 거 없던데. ㅎㅎ
"야. 철우야. 이리 와 봐."
관장님이 키가 건장한 한분을 불렀다. 그 분은 숨을 헐떡이며 관장님께 인사했다.
"어. 신관장님.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그러게. 하루 종일 래슨하느라 시간이 좀 그래 운동은 잘 되냐."
"죽겠어요. 관장님. 다리에 어께까지 다쳐가지고 병원에서는 운동하지 말라는데 그럴 수가 있어야죠. 쉬어야지 하면서도 퇴근하면 탁구장에 와있어요. 병예요. 병."
진짜 탁구 좋아하는 친군가 보다. 나이도 비슷할 것 같았다. 힘 끝내주게 생겼다.
"철우야. 우리 구장에서 치는데 한게임 해봐. 5부니까 맞잡고 치면 될 꺼야."
"네. 그러죠. 처음 뵙겠습니다. 한게임 치시죠."
"아. 예. 처음 뵙겠습니다."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인사를 나누고 라켓을 들고 구장으로 들어갔다. 아까 살짝 봤는데 이분은 대부분 공을 푸쉬로 미는 스타일이었다. 펜홀더 전형으로 몸이 중앙에 위치한 보기드문 스타일이다. 역시 연습구를 치면서도 쇼트만 계속 대준다. 드라이브를 몇 번 넘겼는데 쉽게 잘 넘어왔다. 연습을 멈추고 바로 게임에 들어갔다.
그리 어렵게 보지 않았던 서브였는데 백서비스가 횡 회전 위주로 계속 넘어왔는데. 나는 그 서비스를 제대로 리시브 하지 못했다. 처음 게임할 때 처럼 공이 아예 탁구대 밖으로 튀어나가지는 않았지만 넘어갔다하며 푸쉬의 지짐을 당했다. 이분은 왠만한 공은 다 푸쉬로 지졌다. 아니 무슨 푸쉬가 스매싱을 맞는 것 같았다. 내가 서비스를 넣어도 마찬가지였다. 커트서비스를 넣었는데 그것도 푸쉬로 밀려 왔다. 어떻게든 저 푸쉬에 당하지 않으려고 발보둥을 쳐 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드라이브 한번 재대로 걸어보지 못하고 3:0으로 게임은 끝났다. 게임에 지고 관장님을 봤는데 뭔가 아시는 듯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잘 쳤습니다. 와. 푸쉬가 예술이네요."
"처음이라 그럴꺼예요. 잘 쳤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나누고 관장님 앞으로 걸어갔다. 아직도 왜 졌는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서비스도 강한게 아니고 강력한 드라이브도 없는데 왜.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내 서비스는 어쩌면 그렇게 상대방이 잘 넘기는 걸까? 그것도 그냥 넘어 오는게 아니라. 아주 지짐을 당하는 걸까?
"게임 해보니까 어때."
"모르겠어요. 관장님.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원....."
"그래. 이번엔 3부하고 함 쳐봐."
그렇게 첫 게임에서 작살난 나는 3부와 또 게임을 하게 되었다. 관장님은 아마 아까보다 게임이 더 편할 꺼라고 하셨다. 난 이상했다. 5부 한테도 그렇게 작살났는데, 훨씬 고수인 3부하고 하는게 더 편할 꺼라니. 이게 뭔 말씀이시랴.......
이분은 왼손 펜홀드 셨다. 흔히 '왼빼'라고 했다. 그런데 이분도 서비스를 이상하게 넣었다. 왼손 라켓을 올려 새워 공의 옆을 돌려 깎는 서비스가 들어왔다. 이런 서비스를 한 번도 못 받아 본 나는 첫 세트를 그냥 상납했다. 관장님이 왜 더 편할 꺼라고 하신 걸까. 짧은 순간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까 철우씨 서비스와 비슷한 것이었다. 다만 철우씨의 회전량이 더 많았고 이분은 회전량은 좀 작았지만 드라이브 걸기에 좋게 내가 리시브를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공이 튀어나가는 것을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자신감이 사라진 리시브였던 것이다. 그래 이정도 회전량이면 상대편 회사이드로 쭉 밀어도 되겠다.
두 번째 세트에서는 첫 세트와 달리 리시브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빠르게 오는 서비스가 아니었기 때문에 좀 편하긴 했다. 아까 생각한 데로 기다렸다 푸쉬로 상대방 화 사이드로 밀어보았다. 재수 좋게도 그 공은 나가지 않고 쭉 뻗어 갔다. 상대가 3부 고수였지만 그 공을 드라이브로 연결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내 서비스에서는 서비스 후 수비자세가 아닌 공격자세로 준비했다. 어쨌든 넘어오는 공을 드라이브로 공격하고 싶었다. 상대는 '그래 한번 걸어봐'하는 식으로 공을 넘겨줬다. '덤비지 말고 반박자만 참고 치자' 순간적이었지만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운이 좋았던지 두 번째 세트는 생각대로 됐다. 상대방이 방심해서인지 내가 날린 드라이브를 그가 잘 막지 못했다.
그러나 결과는 4점의 핸디를 주고 한 게임이었지만 결국 졌다. 상대는 내가 잘하는 곳으로 공을 주지 않기 시작했다. 내가 범실을 자주 하는 코스로 리시브를 해줬고 난 연신 퍼댔다. 역시 화 쪽으로 커트 회전이 많이 먹어 넘어오는 공 처리가 미숙했다. 또한 내가 횡 회전 서비스를 넣었을 때 커트가 되어 몸 쪽으로 넘어오는 공을 대각선으로 드라이브 했을 때 회전량에 계속 밀렸다. 결국 상대방의 공격에 의한 실점보다 내 범실로 자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