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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의 진실-미국방부의 비밀보고서

작성자cbso|작성시간10.06.24|조회수154 목록 댓글 4

 

스티븐스 美 대사·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의 수상한 발걸음:

 백령도 해상 독도함 찾아 한미 구조장병 격려

  

 

 

 

 

UDT의 눈물-해군특수전여단의 고(故) 한주호 준위는 천안함이 아니라 미 잠수함을 수색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길래 워싱턴에서 청문회 참석 중이던 주한미군 사령관이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오고,

무려 주한미국 대사와 함께 한 준위 영결식에 참석했을까..봉투에 익숙하지 않는 미국인이 봉투 까지 ?

 

UDT 교관인  한주호 준위를 무리하게 잠수시켜.. 왜 급히 무엇인가를 찿아갔을까 ?

천안함 사건에 공개하지 않는 수거물들 ...

 

 서울 세종로 주한미국대사관의 성조기 조기 게양은 미군 사망자를 위한 것이다.

미국 대사관이 외국인의 죽음에 조기를 게양한 일이 없었다...

 

 

 *** 미국의 똘마니 역할이나 하면서 무슨 자주국방이냐? 

미국의 바지가랑이 붙들고 제발 똘마니로 삼아달라고 하소연 하는

보수꼴통들이 보기에도 안타깝지 않은가 ? 

과거에는 친일, 이제와서는 친미냐 ..

일제시대 형사 끄나풀 노릇하듯 영원한 똘마니 인간들이 정권을 잡고 있으니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먹을 것만 던져주면 꼬리치는 강아지들의 속성이다!  

천안함 사건도 미국의 군사훈련에 앞장서서 똥개 역할하다가 터진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제 나라의 주권인 국방도 미국에 의지하려 전작권도 스스로 반환하고 있지 않는가?  

한일합병에 이완용이 했던 짓거리를 지금도 하고 있네 ..역사의 기생충들이..  *** (cbso)

 

 

(1)  미국 국방부가 작성한 천안함 비밀보고서 (통일뉴스 )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0713

 

 한국군 잠수함(최무선함)이 7함대의 반잠수함전 연안작전연습을 위해 이동표적물 노릇이나 해주고, 한국군 초계함(천안함)이 7함대의 반잠수함전 연안작전연습을 위해 대북해상경계나 서주는 식으로 동원되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그 훈련은 7함대가 기획준비하고, 지휘통제하는 미국군을 위한 대잠수함전 연안작전연습이다

 

천안함 함체 밑에 수중음파탐지기(SONAR)가 설치되었는데, 천안함은 왜 미군 잠수함, 콜럼비아호가 접근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까?

첫째, 긴장 속에 진행되던 대잠수함 훈련이 밤 9시에 끝났으니, 그 때부터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은 휴식에 들어갔을 것이다. 천안함 사고 당시 자기들이 운동실에 있었다거나 빨래를 하고 있었다거나 외부와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었다는 생존 승조원들의 진술은, 그들이 휴식시간에 방심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콜럼비아호 승조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3월 26일 밤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긴장을 풀고 방심하던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백령도 앞바다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충돌사고가 일어났을 개연성을 크게 높여준다.

 

둘째, 사고해역은 수심이 50m 정도다. 그런 바다에서 콜럼비아호는 당연히 해수면 가까이 올라가서 잠항한다. 잠수함이 해수면 가까이 올라가서 잠항하면 수상함과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셋째, 천안함 함체 밑에 수중음파탐지기(SONAR)가 설치되었는데, 천안함은 왜 콜럼비아호가 접근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까? 진주항 해군조선소 공보실(Pearl Harbor Naval Shipyard Public Affairs)이 2009년 10월 27일에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잠수함 하와이호가 2009년 9월 12일부터 26일까지 함체표면을 보강하는 공사를 받았다고 한다. 잠수함 함체에 특수한 함체 처리 타일(special hull treatment tile)을 덧씌운 것인데, 적함의 수중음파탐지기에서 발사된 음파를 흡수하는 스텔스 기능을 강화한 것이다. 하와이호만이 아니라 콜럼비아호도 스텔스 기능 보강공사를 받았을 것이다. 콜럼비아호가 천안함에 접근할 때, 천안함 수중음파탐지기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까닭은 콜럼비아호 함체가 스텔스 기능 타일로 덮여있었기 때문이다.

 

 

(2)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의 허와 실 ( 서프라이즈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_2&uid=3535

 

대잠수함 훈련은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에서 맴도는 식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다.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에서 시작된 훈련은, 백령도 쪽으로 북상하는 이동표적물, 다시 말해서 인민군 잠수함으로 가정한 최무선함을 추적, 격파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남측 언론에 보도된 유사한 사례를 보면, 2004년 10월 10일부터 미국군 주도로 실시한 대잠수함 훈련도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까지 북상하면서 실시되었다. 대잠수함 훈련의 범위가 북방한계선 바로 남쪽 해상까지 북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천안함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 콜럼비아호가 최무선함을 추적하면서 백령도 쪽으로 북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미국 해군 보도국은 백령도 “인근에서” 대잠수함 훈련을 실시하는 중이었다고 보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콜럼비아호는 백령도 앞바다 쪽으로 잠항, 북상하고 있었고, 같은 시각 천안함은 백령도 앞바다에서 대북경계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충돌하였을 개연성을 높여준다

 

주한미국군사 령부 대변인은 <합동통신> 기자에게 “미한 대잠수함 훈련은 3월 25일 밤 10시에 시작되어 이튿날 밤 9시에 끝났다(The U.S.-South Korean anti-sub exercise began at 10 p.m. March 25 and ended at 9 p.m. the next day)”고 전했다. 대잠수함 훈련을 밤 10시에 시작하였다는 말은 심야훈련 위주로 진행하였다는 뜻이다. 또한 그는 <합동통신> 기자에게 “그 훈련은 천안함에서 일어난 폭발 때문에 종결되었다(The exercise was terminated because of the blast aboard the Cheonan)”고 전했다. 이와 관련하여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2010년 6월 7일 대언론 설명회에서 “사고 다음날인 27일에는 해양 차단작전, 잠수함 차단 격멸훈련 등을 실시하는 등 28일까지 훈련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천안함 사고로 중단됐다”고 말했다. 대잠수함 훈련을 3월 25일 밤 10시부터 3월 28일까지 진행하는 일정을 잡아놓은 것은 한미연합군이 사흘 동안 밤낮으로 계속되는 강도 높은 북침작전연습을 벌이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문병옥 합동조사단 대변인은 “당시 키 리졸브 전체 훈련은 3월 28일까지였지만 26일 훈련은 사고 발생 전인 오후 9시에 이미 종료됐으며 이후 28일까지 예정돼 있던 다른 훈련은 사고가 발생해 중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9시 15분을 9시 45분으로 고쳐놓았을까?

 

천안함 사고발생 시각에 대한 합동조사단의 발표를 믿지 못하게 만든 새로운 정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정보는, 해군작전사령부가 천안함 사고 직후 합동참모본부에 상신한 보고서에 천안함 사고가 밤 9시 15분에 일어났다고 기록해놓은 것이다. 이 사실은 2010년 6월 10일 감사원이 발표한 ‘천안함 침몰사건 대응실태’에서 드러났다.

 

그런데 밤 9시 15분에 천안함이 사고를 당했다는 해군작전사령부의 보고를 받은 합동참모본부는 15분이라는 글자에 볼펜으로 ㄴ자를 그려넣어 9시 45분으로 고쳐놓았다. 이 사실은 국회 천안함 침몰사건 진상조사특위 위원인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2010년 6월 11일 천안함 특위 전체회의에서 폭로한 것이다.

 

합참본부는 해군작전사령부가 보고한 사고발생 시각을 왜 30분이나 늦추려고 가필하였을까? 군법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보고서 조작행위는, 처벌 위험을 감수할 만한 중대한 이유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이 설명될 수 있다.

 

만일 콜럼비아호가 천안함과 충돌했다면, 충돌사고에 대한 보고를 가장 먼저 받은 쪽은 주한미국군사령부였을 것이다.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한국군은 보고체계가 너무 엉망이어서 늑장보고, 왜곡보고로 허둥대고 있었으며, 긴급명령을 내려야 하는 시각에 한국군 합참의장은 저녁회식에서 술을 마시고 만취상태에 있었다. 실제로 합참본부 지휘통제실에 늑장보고가 전해진 시각은 밤 9시 45분이다. 합참본부는 사고발생 시각을 늑장보고를 받은 시각으로 고쳐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군 합참본부는 해군작전사령부로부터 늑장보고를 받기 전에 주한미국군사령부로부터 먼저 통보를 받았다고 보아야 이치에 맞는다. 한국군 합참본부보다 먼저 천안함 사고에 관한 보고를 받은 주한미국군사령부는 한국군 합참본부에 사고발생 사실을 통보해주고 사태수습을 위한 긴급조치를 전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충돌하였다면, 한국군 합참본부는 사고발생 시각을 뒤로 늦추려고 가필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사고발생 시각을 뒤로 늦춰야, 해군과 해경이 사고현장으로 출동하는 시각을 뒤로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해군과 해경이 사고현장에 되도록 늦게 나타나야, 천안함과 충돌한 콜럼비아호가 상황을 서둘러 수습하고 사고현장을 빠져나갈 시간적 여유를 얻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해군 고속정 다섯 척이 사고현장에 나타난 시각은 밤 10시 32분이었고, 해경 501함이 사고현장에 나타난 시각은 밤 10시 38분이었다. 사고가 일어난 때로부터 무려 1시간 10분이 지난 뒤에 사고현장에 나타난, 매우 이례적인 늑장대응이었다. 합동참보본부가 사고발생 시각을 조작한 것과 해군과 해경이 사고현장에 늦게 나타난 것은, 천안함과 충돌한 콜럼비아호가 상황을 서둘러 수습하고 사고현장을 빠져나갈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을까?

 

특이한 현상에 대한 의문은 어떻게 풀리는가?

 

만일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충돌하였다면, 천안함만 절단되어 침몰한 것이 아니라 콜럼비아호도 전망탑이나 상단부 등에 큰 손상을 입었을 것이고, 잠수함에 타고 있던 승조원이 부상당했거나 사망하였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미국은 해저에 가라앉은 잠수함 파편들을 수거하고, 잠수함 승조원 시신을 인양했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이 그러한 행동을 취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정보는 아래와 같다.

 

첫째, 미국은 사고현장 일대를 차단하여 충돌사고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유지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사고현장을 차단하려면 사고발생 위치를 은폐하고, 언론의 취재활동을 다른 곳으로 유인해야 한다. 바다밑에 가라앉은 함미를 급히 다른 곳으로 옮겨놓을 수 없는 조건에서, 그렇게 하려면 물 위에 떠있는 함수를 다른 곳에 끌어다 놓으면 된다. 함수가 사고현장에서 7.35km나 떨어진 먼 곳으로 이동한 뒤에 침몰한 이상한 현상에 대한 의문은, 함수가 조류를 타고 멀리 이동하였다는 군 당국의 황당한 설명으로는 풀리지 않으며, 함수를 다른 곳에 끌어다 놓았다고 보아야 풀린다. 실제로 언론의 취재활동은 3월 27일부터 사흘 동안 함수가 침몰한 엉뚱한 곳에서 벌어졌고, 그 사이에 미국은 함미가 침몰한 사고현장에서 콜럼비아호 파편을 수거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미국은 7함대 전력을 사고현장에 집중 투입하여 잠수함 파편을 수거했어야 한다.

 

① 7함대사령관 홍보실이 2010년 4월 19일에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사고현장 지휘관으로 임명된 7함대 상륙군사령관 해군 소장 리처드 랜돌트(Richard Landolt)는 사고현장에 투입한 상륙함 하퍼스 페리호(USS Harpers Ferry)에 승선하여 사건수습을 총지휘하였다. 해군 소장 피트 구마타오타오(Pete Gumataotao)가 주한미해군사령관으로 있는데도, 상륙군사령관을 현장 지휘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사고현장 지휘권이 7함대 상륙군사령관으로부터 주한미해군사령관으로 넘어간 때는 2010년 4월 17일이다. 만일 미국이 한국군의 천안함 인양작업을 도와주었다면, 주한미해군사령관이 있는데도 상륙군사령관을 별도로 현장 지휘관에 임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콜럼비아호가 충돌사고를 냈기 때문에 그런 특별대책을 취하였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셋째, 미국은 사고현장에서 콜럼비아호 승조원 시신을 인양하고, 애도행동을 취했어야 한다.

 

사고현장에서 구조작업을 하던 한준호 준위가 3월 30일에 순직하였고, 그의 영결식은 4월 3일에 해군장으로 거행되었다. 그런데 7함대사령부 홍보실이 2010년 4월 3일 서해 발로 보도한 사진기사는, 고 한준호 준위 영결식이 거행되던 날 사고현장의 특이한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영결식 당일 오전 10시부터 1분 동안 사고현장에서 모든 미국 전함들이 애도 경적을 일제히 울렸다고 하면서, 현장 지휘관 리처드 랜돌트, 하퍼스 페리호 함장 에드 톰슨(Ed Thompson), 제11상륙대대 함장 마크 웨버(Mark Weber)가 애도 경적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갑판에 나가 바다쪽을 향해 도열하여 거수경례를 하는 현장사진을 게재하였다. 보도기사에는 그런 애도행동이 고 한준호 준위를 위한 것이었다고 씌여있지만, 미국군이 사망하지 않았는데 외국군 사망에 그처럼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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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  사고진상을 담은 비밀보고서는 따로 있다

2010년 3월 26일 서해에서 한미연합함대가 실시한 대잠수함전 훈련을 ‘독수리(Foal Eagle) 훈련’이라 부른다. 그러나 미국 해군에서 쓰이는 정확한 개념으로 표현하면, 그 훈련은 ‘함선 대잠수함전 준비 및 평가 측정(Ship Anti-Submarine Warfare Readiness and Eval‎uation Measurement, SHAREM)’이라는 대잠수함전 연안작전연습이다. 훈련 목적은 해양정보 수집 능력과 수중전(undersea warfare)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7함대는 이 훈련을 해마다 두 차례씩 실시한다.

그렇다면 서해에서 ‘독수리 훈련’이 진행되는 시간에 한국군 지휘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놀랍게도, 이상의 합참의장은 지휘통제실을 지키면서 훈련상황을 보고 받지 않았고, 충청남도 대전에서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계룡산 기슭에 있는 계룡대에서 열린 한국군 내부 토론회에 참석하였다. <한겨레> 2010년 6월 11일부 보도에 따르면, 그는 토론회 뒤에 이어진 회식에서 술을 마시고 만취상태로 대전에서 고속철도(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갔고, 밤 10시 42분께 국방부 지휘통제실에 도착해 10분 남짓 긴급회의에 참석한 뒤 지휘통제실에서 나가 잠에 골아떨어졌다고 한다.

한미연합함대를 동원한 군사훈련 중에 한국군 합참의장이 지휘통제실을 벗어나 계룡대 토론회에 참석한 것은, 그 군사훈련이 전적으로 미국군의 지휘통제에 따라 진행되었음을 말해준다. ‘독수리 훈련’을 지휘통제하지 못하는 한국군 합참의장은 미국군 현장 지휘관으로부터 ‘독수리 훈련’ 상황에 관한 보고를 받지 못한다. 미국군 현장 지휘관이 한국군 합참의장에게 ‘독수리 훈련’ 상황을 보고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독수리 훈련’의 보고체계는, 미국 해군 지휘함에 승선한 미국군 사령관→일본 요코스카 미국 해군기지 지휘통제실에 있는 7함대사령관→하와이 히컴기지 지휘통제실에 있는 태평양함대사령관→워싱턴 국방부 지휘통제실에 있는 미국군 합참의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독수리 훈련’을 한미합동군사훈련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마치 미국군이 한국군과 대등하게, 합동으로 실시하는 군사훈련인 것처럼 세상에 잘못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합동군사훈련이 아니라 7함대의 대북침공작전 연습에 한국군이 ‘곁다리’로 동원된다. 한국군 잠수함(최무선함)이 7함대의 반잠수함전 연안작전연습을 위해 이동표적물 노릇이나 해주고, 한국군 초계함(천안함)이 7함대의 반잠수함전 연안작전연습을 위해 대북해상경계나 서주는 식으로 동원되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그 훈련은 7함대가 기획준비하고, 지휘통제하는 미국군을 위한 대잠수함전 연안작전연습이다.

중요한 것은, 7함대가 지휘통제하는 대잠수함전 연안작전연습 현장에서 대형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미국 국방부가 그 사고에 대처하는 것은 응당한 일이다. 위에서 논한 대로, 그들의 대처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하여 조사하는 일이다.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에 따르면,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에 백령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사고는 미국 잠수함이 천안함을 들이받은 충돌사고였으므로, 미국 국방부가 사고원인을 조사하였다면 천안함만 조사한 것이 아니라 천안함과 충돌한 미국 잠수함도 당연히 조사하였을 것이다. 더욱이 미국 잠수함에 대한 조사는 미국 조사단만이 극비로 진행하였을 것이며, 조사결과를 비밀보고서에 담았을 것이다. 미국 잠수함 충돌사고를 조사한 비밀보고서는, 클린턴 국무장관이 말실수로 언급한 비밀보고서와 다른 것이다. 천안함 사고원인을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꿰어맞춘 400쪽짜리 비밀보고서를 허위보고서라 한다면, 미국 잠수함 충돌사고 진상을 객관적으로 조사한 비밀보고서는 진실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조사단이 집필한 진실보고서는 당연히 로벗 게이츠 국방장관과 마이클 멀린(Michael Mullen) 합참의장이 직접 받아보았을 텐데, 그 두 사람은 진실보고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하였을까? 미국군 수뇌부가 자기들에게 불리한 작전 중 대형사고를 수시로 은폐해온 뿌리 깊은 관행을 생각하면, 그 두 사람이 진실보고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하지 않고 은폐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외부와 차단된 채로 군사기밀을 유지하는 특수집단에서는 내부동향을 얼마든지 은폐할 수 있다.

미국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미국 잠수함 충돌사고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보고하지 않고, 천안함 사고원인을 인민군 어뢰공격이라고 규정한 미국 조사단의 허위보고서만 제출하였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허위보고서만 받아보고 진실보고서에 대해서는 그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오바마 대통령은 천안함이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침몰하였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국무장관의 말실수로 드러난 비밀

2010년 5월 26일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 국무장관이 서울 도렴동에 자리잡은 외교통상부 청사 3층에 있는 국제회의장에 들어섰다. 중국 베이징에서 미중 경제전략대화를 마치자마자, 전용기편으로 당일 오전 11시 40분에 서울공항에 내린 그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이명박 대통령을 차례로 만난 뒤 오후 3시 45분에 서울을 떠났다. 불과 네 시간밖에 되지 않은 체류일정을 마감하면서, 그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런데 공동기자회견에서 클린턴 국무장관이 꺼내놓은 발언이 눈길을 끌었다. “천안함 조사결과에 대해 중국이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기자의 말을 듣고, 클린턴 국무장관은 “보고서는 400페이지 분량으로 굉장히 철저하고 전문적인 보고서였다.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의견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측에 그 보고서를 검토하라고 촉구했고, 추가적인 정보와 브리핑이 필요하다면 제공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이따금 말실수를 하여 구설수에 올랐던 클린턴 국무장관은, 그 날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을 얼떨결에 공개하는 말실수를 하였다. 천안함 사고에 관한 400쪽짜리 보고서가 있다는 비밀사항이 그의 발언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그가 얼떨결에 말해버린 비밀보고서는 무엇일까? <동아일보> 2010년 6월 12일부 보도에 따르면, <동아일보> 기자가 국방부와 외교통상부에 각각 문의하였는데, 그들은 400쪽짜리 보고서를 만든 적이 없다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김태영 국방장관도 6월 11일 국회 천안함 특위에서 400쪽짜리 보고서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400쪽짜리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면, 그 보고서는 누가 작성하였을까? 두말할 필요 없이, 미국이 작성한 것이다. 워싱턴에서 천안함 사고의 수습과 대응을 주도한 쪽은 국무부가 아니라 국방부이므로, 400쪽짜리 비밀보고서는 미국 국방부가 작성한 것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이 베이징 방문 중에 중국 정부 고위관리들에게 그 보고서를 검토해보라고 권하였다고 공동기자회견에서 말한 것을 보면, 그 자신이 이미 그 보고서를 받아보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 국방장관은 그 보고서를 클린턴 국무장관에게만 보낸 것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에게 먼저 보냈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고위관리들도 회람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중국 정부 고위관리들을 만난 클린턴 국무장관이 400쪽짜리 보고서를 검토해보라고 그들에게 권했노라고 공동기자회견에서 밝힌 것 역시 그의 말실수였다. 그는 자기가 그 보고서를 받아보았으므로, 중국 정부 고위관리들도 그 보고서를 받아볼 것으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미국 국방부가 작성하고 미국 국방장관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한 비밀보고서를 다른 나라 고위관리들에게 검토해보라고 권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미국 국방부가 작성한 비밀보고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안에서만 회람된다.

그렇다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회람된 비밀보고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클린턴 국무장관이 얼떨결에 말실수를 하였으나, 중국 정부 고위관리들에게 그 보고서를 검토해보라고 권한 것을 보면, 그 보고서는 천안함이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침몰하였다는 내용으로 작성된 것이 분명하다. 만일 그런 내용이 아니라면,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 정부 고위관리들에게 검토해보라고 권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클린턴 국무장관은 그 보고서를 “전문적인 보고서”라고 평하였다. 전문가들이 집필한 보고서인 것이다. 전함 침몰사고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는 문외한은 그처럼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쓸 수 없으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문외한이 쓴 문서를 회람할 만큼 한가한 곳도 아니다.

천안함 사고 조사활동을 주도한 미국 조사단만이 400쪽짜리 비밀보고서를 쓸 수 있다. 만일 미국 조사단이 조사활동을 주도하지 않고 단순히 남측 합동조사단의 조사활동을 지원이나 해주었다면, 그들은 그처럼 방대한 분량의 비밀보고서를 쓸 수도 없고, 써야할 요구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남측 합동조사단은 그처럼 방대한 보고서를 쓰지 못하였는데, 미국 조사단이 그처럼 방대한 비밀보고서를 쓴 것은, 미국 조사단의 조사활동이 남측 합동조사단의 조사활동을 압도하였음을 말해준다. 남측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보고서는 미국 조사단의 비밀보고서를 줄여놓은 축약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언론매체들은 남측 합동조사단이 조사활동을 주도하고, 미국 조사단은 이명박 정부의 요청을 받고 조사활동에 단순 참여하여 지원한 것처럼 오보하였다.

<연합뉴스> 2010년 4월 8일부 보도에 따르면,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주한미국군사령관은 2010년 4월 7일 워싱턴에서 로벗 게이츠 국방장관, 개리 럭헤드(Gary Roughead) 해군참모총장을 만나 미국 조사단을 남측에 파견하는 문제를 “최종 협의”하였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협의하였다는 표현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승안한 조사단 파견안에 제기된 몇 가지 실무적인 문제를 마지막으로 점검하였다는 뜻이다.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직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게이츠 국방장관이 제출한 미국 조사단 파견안을 일찌감치 승인한 바 있다. 그런 까닭에, 2010년 4월 5일 한국군 고위급 지휘관과 주한미국군 고위급 지휘관 14명이 한국군 국방부 청사 7층에 있는 합참본부 회의실에서 진행한 “천안함 사고대책 한미 군수뇌부 협조회의”에서 월터 샤프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이미 워싱턴에 이 사항을 건의하여 승인을 받았고, 미국의 최고 전문가팀을 파견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가 미국에게 조사단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하기 전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먼저 조사단 파견을 결정하였으나, 외부의 눈을 의식해서 이명박 정부의 요청을 받고 파견하는 식으로 모양새를 갖추었던 것뿐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승인을 받은 게이츠 국방장관은 미국 조사단을 급히 편성하여 남측에 파견하였고, 미국 조사단은 2010년 4월 16일 경기도 평택에 있는 한국군 2함대사령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조사단을 지휘한 해군 소장의 정체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이 말해주는 것처럼,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백령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사고가 미국 잠수함이 천안함을 들이받은 충돌사고였다면, 미국 국방부가 진정으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 대상은 미국 잠수함과 충돌한 천안함이 아니라 천안함과 충돌한 미국 잠수함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시각으로 보면, 천안함은 다른 나라 초계함이고 천안함을 들이받은 잠수함은 자국 잠수함이다. 따라서 미국 국방부는 다른 나라 초계함의 충돌사고를 조사하는 것보다 자국 잠수함 충돌사고를 조사하는 것을 훨씬 더 중시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게이츠 국방장관이 천안함과 충돌한 미국 잠수함에 대한 비밀보고서를 만들라는 명령을 미국 조사단에게 내렸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미국 조사단이 집필하고, 게이츠 국방장관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한 천안함 충돌사고에 대한 400쪽짜리 비밀보고서가 있지만, 미국 조사단이 그 보고서 이외에 미국 잠수함 충돌사고에 대한 별도의 비밀보고서도 집필하였을 것으로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 국방부는 당연히 자국 잠수함의 충돌사고를 조사할 잠수함 전문가를 미국 조사단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미국 조사단 성원 15명 가운데 잠수함 전문가는 몇 명이었을까? 미국 조사단 성원의 경력이 언론에 공개되지 않아서, 그들 가운데 잠수함 전문가가 누구인지 알기 어렵지만, 게이츠 국방장관이 조사단 단장에 임명한 토머스 에클스(Thomas J. Eccles) 해군 소장의 특이한 경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뉴욕 타임스> 2010년 5월 10일부 보도에 따르면, 그는 “잠수함 탈함(脫艦) 및 구조(救助)의 전문가(expert in submarine escape and rescue)”라는 것이다. 그의 자세한 군 경력은 미국 해군 공식 웹싸이트에 나와있다. 그는 미국 매사츄세츠 공대(MIT), 미국 해군전쟁대학, 미국 방어체계관리대학 등에서 해군공학을 전공하였고, 잠수함 분야, 심해잠수 분야, 해난구조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고, 잠수함 연구와 건조 및 잠수함 탈함과 구조를 포괄하는 첨단수중체계(Advanced Undersea Systems) 담당관(program manager)으로 임명되어 씨울프급(Seawolf-class) 핵추진 잠수함 지미 카터호(USS Jimmy Carter) 건조사업을 직접 지휘하였으며, 무인자동잠수함 컷트롯(unmanned autonomous submarine Cutthroat)을 설계하고 건조하는 사업도 직접 지휘하였다. 현재 그는 해군 수중전 및 수중기술 사령부 부사령관이며, 해군수중전투센터(Naval Undersea Warfare Center) 지휘관이다.

그런데 만일 미국 국방부가 수상함 사고를 조사하려고 하였다면, 수상함 전문가와 해난사고 전문가에게 조사활동을 지휘하는 임무를 맡겼어야 정상이다. 그렇지 않고, 미국군 잠수함에 정통한 해군 소장을 조사단 단장으로 임명한 것은, 천안함이 미국 잠수함과의 충돌로 침몰하였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다른 한 편, <연합뉴스> 2010년 5월 17일부 보도는, “군의 한 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하면서, “한국과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전문가들이 합류한 합조단의 정보, 작전분석팀은 천안함을 향해 어뢰를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잠수함(정) 침투경로와 이동정황, 천안함 침몰 전후 북한군 통신감청 내용 등을 집중 분석 중”이라고 하였다. 또한 <조선일보> 2010년 5월 21일부 보도에 따르면, 합동조사단 관계자는 “미군의 경우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정보, 첩보를 다 전달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이 두 가지 보도기사를 보면, 조사단이 천안함 사고원인을 인민군 어뢰공격이라고 규정한 뒤에, 그 규정을 뒷받침하는 인민군 잠수함에 관한 군사정보를 분석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인민군 잠수함에 관한 군사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쪽은 미국이므로, 미국 국방부가 천안함 사고원인을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꿰어맞추려면 인민군 잠수함에 관한 군사정보를 다루는 정보분석 요원을 당연히 조사단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미국 조사단 성원들 가운데 인민군 잠수함에 관한 군사정보를 다루는 정보분석 요원은 누구였을까?

미국 조사단에 망라된 정보분석 요원들이 누구였는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쌔뮤얼 콕스(Samuel J. Cox) 해군 소장이 미국 조사단에 들어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그는 해군 정보분석 전문가다. 2010년 4월 29일 해군 소장으로 승진한 그의 경력을 보면, 미국 해군 통신전사령부(Naval Network Warfare Command)의 함대정보 담당국장(director of Fleet Intelligence) 및 기획정책국장(director of Plans and Policy)을 지냈고, 현재는 워싱턴에 있는 국가해양정보센터 국장(director of National Maritime Intelligence Center)이다.

미국 조사단 편성계획은 왜 바뀌었을까?

미국 국방부는 미국 조사단을 당초 8명으로 구성하겠다고 하였다가 얼마 뒤에 15명으로 늘렸다. <연합뉴스> 2010년 4월 8일부 보도는 미국 국방부가 “장성급을 단장으로 해군안전센터 2명, 함정구조분야 5명 등 8명의 해난사고 정밀조사팀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보도하였는데, <조선일보> 2010년 5월 21일자 보도는 미국 조사단이 과학수사, 폭발유형 분석, 선체구조 관리, 정보분석 등 4개 분과로 나뉘어 조사활동을 벌였다고 하였다. 미국 조사단의 시각으로 보면, 과학수사는 범죄사실을 조사하는 것이고, 폭발유형 분석은 어뢰폭발을 조사하는 것이고, 정보분석은 인민군 잠수함에 대한 군사정보를 조사하는 것이다. 미국 조사단 편성계획이 바뀐 것은, 미국 국방부가 해난사고 조사단을 파견하려던 당초 계획을 바꿔 과학수사요원, 폭발유형 분석요원, 정보분석요원으로 보강, 확대된 어뢰폭발 조사단을 파견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 국방부가 조사단을 편성하고 있었던 2010년 3월 말에 그들은 이미 천안함이 충돌사고가 아니라 어뢰공격으로 침몰하였다고 단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4월 7일 남측 합동조사단이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4월 15일 천안함 함미를 인양하기 전에, 그리고 미국 조사단을 남측에 파견하기 전에 미국 국방부는 천안함 사고원인을 어뢰공격으로 일찌감치 단정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 국방부는 천안함 사고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한 것이 아니라, 천안함 사고원인을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미리 단정해놓고, 조사활동을 어뢰폭발 각본에 꿰어맞추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 조사단은 사고원인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조사한 것이 아니라, 미국 국방부가 미리 짜놓은 각본에 억지로 꿰어맞춘 것이다.

미국 조사단은 경기도 평택 부근에 있는 미국군 기지 캠프 험프리즈(Camp Humphreys)에 머물렀다. 미국 조사단이 그 곳에 활동거점을 차린 까닭은, 남측 합동조사단이 활동거점을 차린 한국군 2함대사령부와 가까운 곳에 머물면서 사고현장에서 수거된 잔해와 파편을 손쉽게 조사할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오산에 있는 미국 공군기지와 가까운 곳에 머물면서 미국 잠수함 파편을 비롯한 결정적인 물증이 발견하는 즉시 미국으로 공수하기 편하였기 때문이며, 또한 그 미국군 기지에 대형 헬기장이 있어 천안함 사고현장을 군용헬기로 쉽게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백령도 앞바다 사고현장에서는 많은 파편들이 계속 수거되었다. 이명박 정부 핵심 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0년 5월 18일부 보도기사는, “국방부가 사고해역을 집중 수색한 결과, 어뢰로 보이는 상당수의 파편이 발견된 것으로 알고 있다. 마지막 날까지 파편이 계속 발견되고 있어 증거능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고현장에서 수거한 파편은 일단 캠프 험프리즈로 공수되어 미국 조사단의 1차 검사과정을 거쳐야 하였다. 수거한 파편들 가운데서 어느 것이 천안함 파편이고 어느 것이 미국 잠수함 파편인지 가려내는 것은 미국 조사단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조사단은 미국 잠수함 파편과 천안함 파편을 가려낸 뒤에, 천안함 파편만 골라내 한국군에게 넘겨주었다. 또한 미국 조사단은 미국 잠수함 파편들 가운데 정밀 분석이 요구되는 것은 미국으로 보냈다. <연합뉴스> 2010년 5월 10일부 보도에 따르면, “일부 증거물은 정밀 분석을 위해 미국으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미국 조사단 성원의 위장발언

미국 조사단에 망라된 전문가들은 천안함 절단면을 정밀 조사하기 전에도 그 절단흔적이 비접촉 어뢰 폭발로 생긴 흔적이 아니라 잠수함이 들이받아 생긴 흔적임을 금방 알았을 것이다. 눈썰미 있는 비전문가가 봐도 천안함 절단면에 남아있는 흔적이 비접촉 어뢰 폭발로 생긴 흔적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데, 하물며 각종 군함의 선체구조와 폭발사고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험 많은 전문가가 어찌 그처럼 명백한 흔적을 금방 알아보지 못하였겠는가.

그런데 2010년 6월 15일 <통일뉴스>와 대담한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의 발언은 사정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신상철 대표가 미국 조사단 성원을 만나 천안함 사고에 관해 나눈 대화를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문답 식으로 다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신 대표 - “배가 가라앉으면 무게 때문에 앞 쪽이 먼저 내려가는데, 뒤쪽이 먼저 내려간 것도 아닌데 그렇게 찌그러지나?”
조사단 성원 - “앞이 쿵 박고 뒤가 쿵 떨어져서 부딪쳤다.”
신 대표 - “그렇다 치더라도 밑에는 모래 아니면 뻘인데, 그 정도로 손상이 나겠나?”
조사단 성원 - “아무튼 그 정도 났다.”
신 대표 - “그럼 어떻게 프로펠러 5개가 다 오그라들었나?”
조사단 성원 - “엔진이 돌았다.”
신 대표 - “배가 부서져서 엔진이 작살나서 올 스톱(완전 정지라는 뜻-옮긴이)됐는데 프로펠라가 왜 돌아갔나?”
조사단 성원 - “물 속에서 이렇게 돌아갔다.”

명백하게도, 위에 나온 미국 조사단 성원의 답변은 전문지식이 없는 문외한의 답변이다. 오죽 했으면, 신상철 대표가 “미국 대표단(조사단이라는 뜻-옮긴이)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런 초딩(초등학생이라는 뜻-옮긴이) 같은 소리를 하나” 하고 웃고 말았었다고 <통일뉴스> 기자에게 말했겠는가.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미국 조사단 성원이 그렇게 답변한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각종 군함에 관한 전문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를 늘어놓은 이상한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천안함 사고원인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가 사고원인으로 볼 수 없는 엉뚱한 답변을 늘어놓았다면, 그것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 사고원인을 신상철 대표에게 말해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무지로 위장하였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위의 대화에서 드러난 미국 조사단 성원의 위장발언은, 그들이 사고원인을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단정해놓고, 사고에서 발생한 모든 현상을 자기들이 단정한 사고원인에 억지로 꿰어맞추었음을 말해준다.

의견이 서로 어긋난 미국 조사단과 스웨덴 전문가들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조사는,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미국 조사단이 홀로 진행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스웨덴이 전문가 4명, 오스트레일리아가 전문가 3명, 영국이 전문가 2명을 각각 파견하였고 캐나다에서도 뒤늦게 전문가 3명을 파견하였다. 물론 미국 조사단 15명이 조사활동을 전적으로 주도하였고, 다른 외국 전문가 12명은 미국 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식의 조언역할이나 하였다.

그렇다면, 사고원인을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꿰어맞춘 미국 조사단의 결론에 대해 다른 외국 전문가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비전문가가 봐도 비접촉 어뢰폭발이 아닌데, 미국 조사단이 비접촉 어뢰폭발을 사고원인이라고 꿰어맞춰 놓았으니, 제 정신이 있는 외국 전문가라면 당연히 그런 식으로 꿰어맞춘 결론에 반대의견을 표명하였을 것이다.

외부와 차단된 미국군 기지 안에서 머문 미국 조사단과 다른 외국 전문가들이 사고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서로 어긋났는지를 외부에서 알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언론매체들이 외국 전문가들 가운데 현역 군인에게는 직접 연락할 수 없어도, 혹시 민간인 전문가에게 직접 연락한다 해도, 그들은 조사활동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국 전문가들이 조사활동에 참가하기 전에 체결한 합의각서(MOA)가 있는데, 조사과정에서 알게 된 기밀을 외부에 밝히지 않는다는 조항이 그 합의각서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 조항이 들어있는 합의각서가 체결되었다는 사실은 <연합뉴스> 2010년 4월 24일부 보도에서 밝혀졌다.

그런데 다행하게도, 미국 조사단과 다른 외국 전문가들이 사고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서로 어긋났었다는 사실이 미국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2010년 5월 19일 <워싱턴 포스트>는 “남코리아의 조사를 지원해준 나라들 가운데 스웨덴이 조사결과를 따르는 것을 가장 꺼렸으나, 증거가 축적되자 그들도 북코리아를 비난하는 데 동의하였다. 스웨덴 대사관 대변인은 이에 대한 논평을 거부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같은 날, 미국 텔레비전방송 CBS은 “조사를 지원한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는 모두 조사결과를 뒷받침해줄 준비가 되었다”고 하면서, “조사요원을 파견한 스웨덴만이 북코리아를 비난하기를 꺼리는 동반자(Only Sweden, which also sent investigators, is a reluctant partner in blaming the North Koreans)”라고 보도하였다.

합동조사단 박정이 공동단장은 2010년 5월 20일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할 때 어느 기자가 “외국 조사단 일부 요원은 최종 결과에 합의하지 않는다는 보도도 있는데 만장일치인가?”고 묻자, “오늘 발표된 모든 사실은 이번에 참석한 외국 조사단 모두가 완전하게 일치를 봤고 견해가 일치했다. 조사단이 구성되고 단계별로 조사활동을 진행하면서 모든 분과에서 외국 조사단이 동참해 공감대를 형성했고 마지막 결론에도 모두 공감하는 절차를 밟았다”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박정이 공동단장의 답변은 미국 언론의 보도내용과 큰 차이를 보인다.

친미동맹국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가 파견한 전문가들은 미국 조사단이 사고원인을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꿰어맞춘 조사결과를 인정하였으나, 중립국인 스웨덴에서 파견한 전문가들은 그 조사결과를 인정하기 꺼려하였다. 스웨덴 전문가들이 미국 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인정하기 꺼려했다는 언론보도는, 미국 조사단이 천안함 사고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워싱턴 포스트> 2010년 5월 19일부 보도기사는 스웨덴 전문가들이 미국 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인정하기 꺼려하다가, 증거가 축적되자 그 조사결과를 인정하였다고 하였다. 그 보도기사에 나온 증거 축적이란 말은 어뢰추진기 잔해가 나온 것을 뜻한다. 천안함 절단면에 어뢰폭발 흔적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스웨덴 전문가들에게 어뢰추진기 잔해의 갑작스러운 출현은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사고원인이 조작되었음을 직감할 때 일어나는 심리적 충격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스웨덴 전문가들이 미국 조사단의 조사결과에 결국 동의하였다고 썼지만, 막판에 과학적인 조사를 포기하는 심정에서 묵인한 것은 아니었을까?

 


 

(2)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의 허와 실

      한호석 (재미 통일학연구소 소장)

 

인 터넷에 확산된 천안함-잠수함 충돌설

 

합동조사단이 결정적인 증거물이라고 하면서 꺼내놓은 어뢰추진기 잔해가 가짜임을 말해주는 반대증거들이 속속 나오는 바람에, 지금 어뢰추진기 잔해 가짜설은 가설이 아니라 차츰 진실로 굳어지는 중이다. 어뢰추진기 잔해 가짜설과 밀접히 연관된 가설이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이다. 누리꾼들과 인터넷 논객들 사이에 널리 퍼진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은, 백령도 앞바다에서 작전 중이던 미국 잠수함이 천안함과 충돌하는 바람에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가설이다.

 

이 글에서 그 가설을 다루는 까닭은, 천안함이 어떤 다른 물체와 충돌하여 침수되는 과정에서 함체의 무게균형이 깨지고 그 결과 절단되었다는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정황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천안함 함교 유리창이 깨지지 않고 멀쩡한 상태로 인양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2010년 6월 8일 국방부가 누리꾼 55명을 초청하여 천안함 함체를 보여준 현장에서 촬영한 절단면 사진에는 놀랍게도 기다란 전구가 두 개 달린 형광등이 깨지지 않고 절단면 윗부분에 걸려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1,200t급 함체를 두 동강 낼 정도로 엄청난 폭발충격이 가해졌다면 당연히 깨졌어야 하는 유리창과 형광등이 원상태로 남아있는 것은, 천안함이 어뢰폭발 충격으로 절단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더욱이 합동참모본부가 천안함 사고를 상부에 보고하면서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조작하였다는 사실이 최근 감사원 감사결과로 드러나는 바람에, 합동조사단이 발표한 조사결과는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다. 천안함 사건은 사상 최대의 의혹사건으로 된 것이다.

 

미 국 잠수함 충돌사고는 드문 일이 아니다

 

천안함이 위로 솟구쳐오르며 파손될 만큼 엄청난 충격을 준 커다란 물체는 무엇이었을까? 천안함이 암초에 부딪쳐 그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지만, 암초충돌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안함 절단면에 남겨진 충격흔적은 함체 아래쪽에서 윗쪽으로 충격이 가해졌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만일 암초에 부딪쳤다면, 함체가 위로 솟구치지 않으며 충격흔적도 상향각으로 남지 않는다. 또한 천안함과 수상함(surface ship)이 충돌하였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지만, 수상함과 충돌한 것도 아니다. 해병대 초병들이나 천안함 견시병들이 사고현장에서 수상함을 보았다고 진술하지 않은 것을 보면 수상함과 충돌한 것은 아니며, 충격흔적이 천안함 함체 밑부분에 상향각으로 남겨진 것을 봐도 천안함과 수상함이 충돌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천안함을 침몰시킨 충격은 잠수함이 천안함 함체 아래쪽에 충돌하면서 발생하였다는 것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1,200t급 초계함을 들이받아 두 동강으로 절단시킬 큰 충격을 일으킨 잠수함이라면 천안함보다 함체가 몇 배나 더 큰 잠수함이었을 것이다. 원래 잠수함 함체는 엄청난 해저수압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 제작되었기 때문에 수상함에 비해 훨씬 더 견고하고 강하다. 그래서 잠수함과 수상함이 충돌하는 경우, 수상함이 함체 손상을 훨씬 더 많이 입게 된다.

 

천안함보다 몇 배나 더 큰 잠수함을 백령도 앞바다에 출동시킬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현재 미국이 보유한 잠수함 70척은 원자로를 장착한 대형 핵추진 잠수함들이다. 미국 해군에는 중형이나 소형 잠수함이 없다. 미국 잠수함은 6,900t급에서 19,000t급에 이르기까지 4종으로 분류되는데, 배수량 크기에 따라 열거하면, 로스앤젤레스급(Los Angeles-class)은 승조원 129명이 타는 6,900t 규모의 잠수함이고, 버지니아급(Virginia-class)은 승조원 134명이 타는 7,800t 규모의 잠수함이고, 시울프급(Seawolf-class)은 승조원 140명이 타는 9,100t 규모의 잠수함이고, 오하이오급(Ohio-class)은 승조원 155명이 타는 19,000t 규모의 초대형 잠수함이다. 미국의 주력 잠수함인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이 6,900t 규모인데 비해, 천안함은 1,200t 규모밖에 되지 않으니, 만일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이 천안함과 충돌하면, 침몰하는 쪽은 천안함이다.

 

미국의 대형 잠수함이 수심이 낮은 서해에서 잠항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미국 잠수함은 서해에서 잠항할 뿐 아니라 서해안에 바짝 접근하기도 한다. 미국 군사전문지 <글로벌 밀리터리(Global Military)> 2009년 10월 18일부 보도에 따르면, 2009년 7월 서해에 출동한 미국 잠수함이 서해위성발사기지가 있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앞바다에서 “북코리아의 턱밑까지 가까이(close to North Korea under the nose)” 접근하여 정보를 수집하였다고 한다. 이 사실은 수심이 약 50m가 되는 천안함 사고현장에서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이 잠항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첨단설비를 갖춘 미국 잠수함이 충돌사고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미국 잠수함 충돌사고는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이를테면, 2005년 1월 9일 괌(Guam)에서 남쪽으로 560km 떨어진 해역을 잠항하던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샌프란시스코호(USS San Francisco)가 해저암초를 들이받는 바람에 잠수함 앞부분이 깨져 승조원 한 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다쳤다. 2009년 3월 19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반잠수상태로 항해하던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하트포드호(USS Hartford)가 미국의 24,900t급 초대형 상륙수송함 뉴 올리언즈호(USS New Orleans)와 충돌하였다. 그 사고로 하트포드호는 함체 상단부가 크게 깨지고, 좌현 앞부분에 달려 있는 잠수함 날개가 부러졌으며, 뉴 올리언즈호는 함체 밑부분에 4.9×5.5m 크기의 파공이 생겼고, 안정기 두 대가 손상을 입었고, 연료저장고가 깨지는 바람에 디젤유 95,000리터가 바다에 쏟아졌다.

 

미국 잠수함은 우리 나라 동해, 서해, 남해에서 돌아가며 충돌사고를 냈다. 1998년 2월 부산 영도에서 9.6km 떨어진 해상에서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라 홀라호(USS La Jolla)가 어선 영창호와 충돌하였다. 2002년 10월 2일 밤에도 미국군이 주도하는 한미합동훈련에 동원된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헬레나호(USS Helena)가 어선 두 척과 충돌하였다. 2004년 10월 12일에는 미국군 주도로 동해에서 대잠수함 훈련을 실시하던 중에 그 훈련에 동원된 한국 해군 특수선박이 잠수함과 충돌한 것으로 보이는 사고로 침몰하였으나, 군 당국은 진상을 밝히지 않고 묻어버렸다. 이런 과거경험을 살펴보면, 천안함이 미국 잠수함과 충돌하여 침몰되었다는 가설이 뜬소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미 국 해군 보도국이 인터넷에 실어놓은 이색적인 사진

 

미국 해군 보도국(Navy News Service)이 인터넷에 공개한 사진 한 장이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에 불을 지폈다. 그 사진은 태평양사령부 휘하 7함대 소속 버지니아급 잠수함 하와이호(USS Hawaii, SSN 776)가 하와이에 있는 진주항 해군조선소(Pearl Harbor Naval Shipyard)에서 건선거(乾船渠) 수리(dry-dock repair)를 받는 현장을 찍은 것이다. 해군 보도국이 2010년 4월 8일에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하와이호는 2010년 3월 30일부터 진주항 해군조선소와 중급유지시설(Intermediate Maintenance Facility)에서 건선거 수리를 받았다고 한다. 건선거 수리는 5월 5일에 끝났다.

 

그런데 건선거 수리를 받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사진에 찍힌 하와이호는 함체 상단부 네 군데를 커다란 흰 천으로 가려놓고 수리를 받았다. 누리꾼들은 그 사진이 함체충돌로 손상된 부분을 흰 천으로 가려놓고 수리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언뜻 보면 그렇게 해석할 만하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정보를 파악하면, 하와이호가 천안함과 충돌하였을 가능성은 없다.

 

첫째, 2010년 4월 16일 <하와히 해군 소식(Hawaii Navy News)>은 하와이호가 예정된 일정에 따라 정기적으로 건선거 수리를 받았다고 보도하였다. 하와이호 건선거 수리가 충돌사고로 생긴 함체손상부분을 수리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둘째, 만일 하와이호가 천안함과 충돌하였다면, 잠수함 함체 상단부에 솟아있는 전망탑(sail)이 천안함 함체 밑부분을 들이받았을 것이고, 따라서 깨진 전망탑을 수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에 보이는 하와이호 전망탑은 멀쩡하다. 사진을 합성하여 조작한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셋째, 천안함 사고가 발생한 시각은 3월 26일 밤 9시 22분이었는데, 하와이호가 사건 발생 직후 현장을 빠져나가 3월 30일까지 불과 닷새만에 하와이에 도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와이호가 낼 수 있는 최고 항속은 시속 46km이므로, 닷새 동안 24시간 전속력 항해를 계속해도 5,520km밖에 가지 못한다. 인천에서 하와이 호놀룰루까지 직선거리는 7,345km이므로, 백령도 앞바다에서 진주항 해군조선소까지 항해거리는 약 7,500km다. 7,500km를 닷새만에 주파할 능력이 하와이호에게는 없다. 더욱이 충돌사고로 전망탑이 부셔졌다면, 그런 상태에서는 최고 항속으로 항해하는 것도 힘들 것이므로, 전망탑이 부셔진 하와이호가 닷새만에 7,500km를 초고속으로 항해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넷째, 만일 하와이호가 천안함과 충돌한 사고로 긴급수리를 받아야 하였다면, 백령도 앞바다 사고현장에서 괌의 에이프라항(Apra Harbor)에 있는 괌 조선소(Guam Shipyard)로 달려가지, 하와이 진주항까지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격 렬비열도 부근 해상에 나타난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주한미국군사 령부 대변인 제인 크릭튼(Jane Crichton) 대령이 전자우편(email)을 통해 전해준 정보를 인용한 <합동통신(Associated Press)> 2010년 6월 5일부 보도에 따르면, 천안함 사고 당시 서해에서는 미국군이 주도하는 한미연합군 대북침공연습인 ‘독수리(Foal Eagle) 훈련’의 일환으로 대잠수함 훈련이 벌어졌다고 한다. 크릭튼 대령은 <합동통신> 기자에게 대잠수함 훈련에 “미국 구축함 두 척과 다른 함선들(two U.S. destroyers and other ships)”이 투입되었다고 했다. 그가 언급한 미국 구축함 두 척은 7함대 소속 9,200t급 미사일구축함 래슨호(USS Lassen)와 8,300t급 미사일구축함 커티스 윌버호(USS Curtis Wilbur)다. 미국 미사일구축함은 길이가 1km나 되는 예인식 수중음파탐지기(TASS, Towed Array Sonar System)를 함미에 달고 항해하는데, 바닷속이 잔잔하고 해수온도가 고를 경우 160km 밖에서 기동하는 잠수함도 찾아낼 수 있다.

 

미국 해군 전력이 서해에 출동하면, 인민군이 경계태세에 들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군도 긴장한다. 특히 서해에서 ‘독수리 훈련’이 실시되면, 중국군 북해함대가 긴장하고, 중국군 정찰위성이 서해 정찰을 강화한다. 이번에 ‘독수리 훈련’을 정찰위성을 통해 집중 감시한 중국은 천안함 사고에 대한 독자적인 정보를 파악하였다. 중국이 합동조사단 조사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정찰위성을 통해 직접 파악한 정보와 합동조사단 조사결과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한미국군사령부 대변인은 대잠수함 훈련에 미국 잠수함이 투입되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2010년 6월 7일 대언론 설명회에서 “훈련 당시 해군과 공군의 항공전력과 한미 해군의 수상함, 해상초계기(P3-C) 등이 참여했다. 잠수함은 우리 측에서 1척이 동원됐고 미국 잠수함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잠수함이 대잠수함 훈련에 투입되지 않았다고 단언하였다.

 

대잠수함 훈련에 미국 잠수함이 투입되지 않았을까? 대잠수함 훈련은, 인민군 잠수함으로 가정하고 이동표적물로 삼은 한국군 잠수함을 수상함, 잠수함, 초계기가 공중, 수상, 수중에서 추적, 격파하는 입체적인 훈련이다. 미국 해군 보도국이 2010년 3월 23일에 보도한 자료를 보면, 인민군 잠수함으로 가정하고 이동표적물 역할을 한 잠수함은 최무선함이다. 7함대 소속 미사일구축함이나 핵추진 잠수함이 이동표적물을 격파하는 훈련에서 가짜 폭뢰나 가짜 어뢰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인터넷에 떠돈 미국군 어뢰오폭설은 근거 없는 가설이다.

 

한반도에서 대북침공작전 연습을 기획하고 주도하는 쪽은 미국군이므로, 대잠수함 훈련도 당연히 미국군이 기획하고 주도한다. 그런데 대잠수함 훈련을 기획하고 주도한 미국군이 자국 잠수함을 한 척도 동원하지 않고 대잠수함 훈련을 실시하였다는 원태재 대변인의 발언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미국 해군 보도국이 2010년 3월 23일 경상남도 진해 발로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7함대 소속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콜럼비아호(USS Columbia, SSN 771)가 2010년 3월 18일부터 22일까지 진해에 머문 뒤에 1,285t급 디젤 잠수함 최무선함과 함께 서해에서 실시되는 한미합동훈련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잠수함이 현장에 없었다는 원태재 대변인의 말은 거짓이다.

 

대잠수함 훈련에 동원된 콜럼비아호는 어떤 잠수함일까? 신속공격 잠수함(fast attack submarine)으로 알려진 그 잠수함은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다방면적인(versatile) 전함들 중에 하나”라고 격찬하는 것인데, 그도 그럴 것이 토마호크(Tomahawk) 순항미사일 공격, 대잠수함 및 대수상함 추적, 정찰과 정보수집, 특수전 병력 침투 등 다양한 연안작전(littoral operation)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콜럼비아호는 서해 연안에서 작전을 수행하기에 적합하게 설계된 잠수함이다.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날, 콜럼비아호가 대잠수함 훈련에 투입된 것은 명백하지만, 그 것만으로는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을 사실로 입증하기 어렵다. 대잠수함 훈련에 투입되었으나 천안함과 충돌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콜럼비아호가 천안함과 충돌하였음을 입증할 만한 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이 가설이 아니라 사실로 된다. 이 민감한 논제는 아래와 같은 설명을 요구한다.

 

최무선함 추적하며 백령도로 북상한 콜럼비아호

 

주한미국군사 령부 대변인이 <합동통신> 기자에게 전한 바에 따르면, 대잠수함 훈련이 벌어진 곳은 천안함 사고현장에서 남쪽으로 120km 떨어진 해상이라고 한다. 지리적으로 말하면, 충청남도 태안군에서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이다. 이 해상은 서해 해상수송로를 지키는 전략요충지다. 한국군은 원래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에서 각종 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해오고 있다.

 

그런데 미국 해군 보도국이 2010년 4월 6일 서해 발로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일부 미국 해군 전력이 인근에서(in the near vicinity) 한국 해군과 합동훈련을 실시하는 중이었고, 수색과 구조를 지원하기 위해 현장으로 급파되었다”는 것이다.

 

백령도와 격렬비열도 사이의 거리는 가깝지 않다.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백령도 앞바다와 대잠수함 훈련이 실시된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은 120km나 떨어졌다. 그런데도 미국 해군 보도국은 왜 백령도 “인근에서” 대잠수함 훈련을 진행 중이었다고 보도하였을까?

 

대잠수함 훈련은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에서 맴도는 식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다.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에서 시작된 훈련은, 백령도 쪽으로 북상하는 이동표적물, 다시 말해서 인민군 잠수함으로 가정한 최무선함을 추적, 격파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남측 언론에 보도된 유사한 사례를 보면, 2004년 10월 10일부터 미국군 주도로 실시한 대잠수함 훈련도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까지 북상하면서 실시되었다. 대잠수함 훈련의 범위가 북방한계선 바로 남쪽 해상까지 북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천안함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 콜럼비아호가 최무선함을 추적하면서 백령도 쪽으로 북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미국 해군 보도국은 백령도 “인근에서” 대잠수함 훈련을 실시하는 중이었다고 보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콜럼비아호는 백령도 앞바다 쪽으로 잠항, 북상하고 있었고, 같은 시각 천안함은 백령도 앞바다에서 대북경계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충돌하였을 개연성을 높여준다.

 

주한미국군사 령부 대변인은 <합동통신> 기자에게 “미한 대잠수함 훈련은 3월 25일 밤 10시에 시작되어 이튿날 밤 9시에 끝났다(The U.S.-South Korean anti-sub exercise began at 10 p.m. March 25 and ended at 9 p.m. the next day)”고 전했다. 대잠수함 훈련을 밤 10시에 시작하였다는 말은 심야훈련 위주로 진행하였다는 뜻이다. 또한 그는 <합동통신> 기자에게 “그 훈련은 천안함에서 일어난 폭발 때문에 종결되었다(The exercise was terminated because of the blast aboard the Cheonan)”고 전했다. 이와 관련하여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2010년 6월 7일 대언론 설명회에서 “사고 다음날인 27일에는 해양 차단작전, 잠수함 차단 격멸훈련 등을 실시하는 등 28일까지 훈련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천안함 사고로 중단됐다”고 말했다. 대잠수함 훈련을 3월 25일 밤 10시부터 3월 28일까지 진행하는 일정을 잡아놓은 것은 한미연합군이 사흘 동안 밤낮으로 계속되는 강도 높은 북침작전연습을 벌이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문병옥 합동조사단 대변인은 “당시 키 리졸브 전체 훈련은 3월 28일까지였지만 26일 훈련은 사고 발생 전인 오후 9시에 이미 종료됐으며 이후 28일까지 예정돼 있던 다른 훈련은 사고가 발생해 중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 3월 26일 밤 9시, 다시 말해서 천안함 사고가 발생하기 22분 전에 대잠수함 훈련이 끝난 뒤, 훈련을 마친 미국 잠수함 콜럼비아호는 어디로 갔을까? 격렬비열도 인근 해상에서 백령도 쪽으로 북상한 최무선함을 추적, 격파하는 훈련이었으므로, 그 훈련을 마친 밤 9시에 콜럼비아호는 당연히 백령도 앞바다에 도착해 있었을 것이다. 세 가지 요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긴장 속에 진행되던 대잠수함 훈련이 밤 9시에 끝났으니, 그 때부터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은 휴식에 들어갔을 것이다. 천안함 사고 당시 자기들이 운동실에 있었다거나 빨래를 하고 있었다거나 외부와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었다는 생존 승조원들의 진술은, 그들이 휴식시간에 방심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콜럼비아호 승조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3월 26일 밤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긴장을 풀고 방심하던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백령도 앞바다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충돌사고가 일어났을 개연성을 크게 높여준다.

 

둘째, 사고해역은 수심이 50m 정도다. 그런 바다에서 콜럼비아호는 당연히 해수면 가까이 올라가서 잠항한다. 잠수함이 해수면 가까이 올라가서 잠항하면 수상함과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셋째, 천안함 함체 밑에 수중음파탐지기(SONAR)가 설치되었는데, 천안함은 왜 콜럼비아호가 접근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까? 진주항 해군조선소 공보실(Pearl Harbor Naval Shipyard Public Affairs)이 2009년 10월 27일에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잠수함 하와이호가 2009년 9월 12일부터 26일까지 함체표면을 보강하는 공사를 받았다고 한다. 잠수함 함체에 특수한 함체 처리 타일(special hull treatment tile)을 덧씌운 것인데, 적함의 수중음파탐지기에서 발사된 음파를 흡수하는 스텔스 기능을 강화한 것이다. 하와이호만이 아니라 콜럼비아호도 스텔스 기능 보강공사를 받았을 것이다. 콜럼비아호가 천안함에 접근할 때, 천안함 수중음파탐지기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까닭은 콜럼비아호 함체가 스텔스 기능 타일로 덮여있었기 때문이다.

 

왜 9시 15분을 9시 45분으로 고쳐놓았을까?

 

천안함 사고발생 시각에 대한 합동조사단의 발표를 믿지 못하게 만든 새로운 정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정보는, 해군작전사령부가 천안함 사고 직후 합동참모본부에 상신한 보고서에 천안함 사고가 밤 9시 15분에 일어났다고 기록해놓은 것이다. 이 사실은 2010년 6월 10일 감사원이 발표한 ‘천안함 침몰사건 대응실태’에서 드러났다.

 

그런데 밤 9시 15분에 천안함이 사고를 당했다는 해군작전사령부의 보고를 받은 합동참모본부는 15분이라는 글자에 볼펜으로 ㄴ자를 그려넣어 9시 45분으로 고쳐놓았다. 이 사실은 국회 천안함 침몰사건 진상조사특위 위원인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2010년 6월 11일 천안함 특위 전체회의에서 폭로한 것이다.

 

합참본부는 해군작전사령부가 보고한 사고발생 시각을 왜 30분이나 늦추려고 가필하였을까? 군법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보고서 조작행위는, 처벌 위험을 감수할 만한 중대한 이유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이 설명될 수 있다.

 

만일 콜럼비아호가 천안함과 충돌했다면, 충돌사고에 대한 보고를 가장 먼저 받은 쪽은 주한미국군사령부였을 것이다.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한국군은 보고체계가 너무 엉망이어서 늑장보고, 왜곡보고로 허둥대고 있었으며, 긴급명령을 내려야 하는 시각에 한국군 합참의장은 저녁회식에서 술을 마시고 만취상태에 있었다. 실제로 합참본부 지휘통제실에 늑장보고가 전해진 시각은 밤 9시 45분이다. 합참본부는 사고발생 시각을 늑장보고를 받은 시각으로 고쳐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군 합참본부는 해군작전사령부로부터 늑장보고를 받기 전에 주한미국군사령부로부터 먼저 통보를 받았다고 보아야 이치에 맞는다. 한국군 합참본부보다 먼저 천안함 사고에 관한 보고를 받은 주한미국군사령부는 한국군 합참본부에 사고발생 사실을 통보해주고 사태수습을 위한 긴급조치를 전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충돌하였다면, 한국군 합참본부는 사고발생 시각을 뒤로 늦추려고 가필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사고발생 시각을 뒤로 늦춰야, 해군과 해경이 사고현장으로 출동하는 시각을 뒤로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해군과 해경이 사고현장에 되도록 늦게 나타나야, 천안함과 충돌한 콜럼비아호가 상황을 서둘러 수습하고 사고현장을 빠져나갈 시간적 여유를 얻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해군 고속정 다섯 척이 사고현장에 나타난 시각은 밤 10시 32분이었고, 해경 501함이 사고현장에 나타난 시각은 밤 10시 38분이었다. 사고가 일어난 때로부터 무려 1시간 10분이 지난 뒤에 사고현장에 나타난, 매우 이례적인 늑장대응이었다. 합동참보본부가 사고발생 시각을 조작한 것과 해군과 해경이 사고현장에 늦게 나타난 것은, 천안함과 충돌한 콜럼비아호가 상황을 서둘러 수습하고 사고현장을 빠져나갈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을까?

 

특이한 현상에 대한 의문은 어떻게 풀리는가?

 

만일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충돌하였다면, 천안함만 절단되어 침몰한 것이 아니라 콜럼비아호도 전망탑이나 상단부 등에 큰 손상을 입었을 것이고, 잠수함에 타고 있던 승조원이 부상당했거나 사망하였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미국은 해저에 가라앉은 잠수함 파편들을 수거하고, 잠수함 승조원 시신을 인양했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이 그러한 행동을 취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정보는 아래와 같다.

 

첫째, 미국은 사고현장 일대를 차단하여 충돌사고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유지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사고현장을 차단하려면 사고발생 위치를 은폐하고, 언론의 취재활동을 다른 곳으로 유인해야 한다. 바다밑에 가라앉은 함미를 급히 다른 곳으로 옮겨놓을 수 없는 조건에서, 그렇게 하려면 물 위에 떠있는 함수를 다른 곳에 끌어다 놓으면 된다. 함수가 사고현장에서 7.35km나 떨어진 먼 곳으로 이동한 뒤에 침몰한 이상한 현상에 대한 의문은, 함수가 조류를 타고 멀리 이동하였다는 군 당국의 황당한 설명으로는 풀리지 않으며, 함수를 다른 곳에 끌어다 놓았다고 보아야 풀린다. 실제로 언론의 취재활동은 3월 27일부터 사흘 동안 함수가 침몰한 엉뚱한 곳에서 벌어졌고, 그 사이에 미국은 함미가 침몰한 사고현장에서 콜럼비아호 파편을 수거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미국은 7함대 전력을 사고현장에 집중 투입하여 잠수함 파편을 수거했어야 한다.

 

① 7함대사령관 홍보실이 2010년 4월 19일에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사고현장 지휘관으로 임명된 7함대 상륙군사령관 해군 소장 리처드 랜돌트(Richard Landolt)는 사고현장에 투입한 상륙함 하퍼스 페리호(USS Harpers Ferry)에 승선하여 사건수습을 총지휘하였다. 해군 소장 피트 구마타오타오(Pete Gumataotao)가 주한미해군사령관으로 있는데도, 상륙군사령관을 현장 지휘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사고현장 지휘권이 7함대 상륙군사령관으로부터 주한미해군사령관으로 넘어간 때는 2010년 4월 17일이다. 만일 미국이 한국군의 천안함 인양작업을 도와주었다면, 주한미해군사령관이 있는데도 상륙군사령관을 별도로 현장 지휘관에 임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콜럼비아호가 충돌사고를 냈기 때문에 그런 특별대책을 취하였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② 7함대사령관 홍보실이 2010년 4월 14일에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7함대사령부가 사고현장에 16,600t급 상륙함 하퍼스 페리호 승조원 419명, 3,282t급 구조함 샐버호(USNS Salvor) 승조원 100명, 미사일순양함 샤일로호(USS Shilo) 승조원 400명, 미사일구축함 커티스 윌버호 승조원 281명, 미사일구축함 래슨호 승조원 320명, 제25해상전투헬기대대(HSC-25) 제6파견대 병력 33명, 제5폭발물처리기동단(EODMU-5) 산하 제501소대 소속 기술병력 12명, 제1잠수구조원기동단(MDSU-1) 소속 잠수병력 16명, 제11상륙대대(AS-11) 일부 병력, 민간잠수사 26명을 투입하였다고 한다. 만일 미국이 한국군의 천안함 인양작업을 도와주었다면, 1,600명이 넘는 방대한 병력과 각종 군사장비들을 사고현장에 집중 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콜럼비아호가 충돌사고를 냈기 때문에 그런 특별대책을 취하였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③ 7함대사령부가 사고현장에 투입한 병력들 가운데 주목해야 할 대상은 제25해상전투헬기대대 병력이다. 7함대사령부 홍보실이 2010년 6월 7일에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헬기조종사들은 사고현장에 25일 동안 머물면서 총 350회 이상 출격하였다고 한다. 사고현장에서 그들이 조종한 헬기는 씨호크(Seahawk)라고 부르는 다목적 군용헬기(MH-60S)다. 바다속에서 잔해를 건져올리는 인양작업에 왜 군용헬기를 그처럼 많이 출격시켰을까? 만일 미국이 한국군의 천안함 잔해 인양작업을 도와주었다면, 군용헬기를 그처럼 집중 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잠수사들이 속속 건져올린 콜럼비아호 잔해들을 오산 공군기지로 계속 실어나르기 위해 군용헬기를 그처럼 집중 투입하였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셋째, 미국은 사고현장에서 콜럼비아호 승조원 시신을 인양하고, 애도행동을 취했어야 한다.

 

① 사고현장에서 구조작업을 하던 한준호 준위가 3월 30일에 순직하였고, 그의 영결식은 4월 3일에 해군장으로 거행되었다. 그런데 7함대사령부 홍보실이 2010년 4월 3일 서해 발로 보도한 사진기사는, 고 한준호 준위 영결식이 거행되던 날 사고현장의 특이한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영결식 당일 오전 10시부터 1분 동안 사고현장에서 모든 미국 전함들이 애도 경적을 일제히 울렸다고 하면서, 현장 지휘관 리처드 랜돌트, 하퍼스 페리호 함장 에드 톰슨(Ed Thompson), 제11상륙대대 함장 마크 웨버(Mark Weber)가 애도 경적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갑판에 나가 바다쪽을 향해 도열하여 거수경례를 하는 현장사진을 게재하였다. 보도기사에는 그런 애도행동이 고 한준호 준위를 위한 것이었다고 씌여있지만, 미국군이 사망하지 않았는데 외국군 사망에 그처럼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② 7함대사령부 홍보실이 2010년 4월 6일에 보도한 현장사진들 가운데는 사고현장에서 다목적 군용헬기(SH-60B)가 들것(litter)을 긴 줄에 매달아 해수면으로 내리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있다. 또한 7함대사령부 홍보실이 4월 14일에 보도한 현장사진들 가운데는 적십자 표식을 한 미국군 의료헬기(UH-60G MEDEVAC)가 하퍼스 페리호 갑판에 착륙하고, 적십자 표식을 한 병사가 갑판에서 대기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있다. 이 사진들은 사망한 콜럼비아호 승조원 시신을 바다에서 인양하여 지휘함으로 수송하는 장면을 찍은 것으로 해석된다.

 

③ 주한미국대사관은 2010년 4월 26일부터 29일까지 닷새 동안 조기를 게양하였다. 그 기간을 천안함 희생자 국가애도기간으로 선포한 이명박 정부는 영결식이 거행된 4월 29일 하루만 각급 관공서에 조기를 게양하였는데, 이례적으로 주한미국대사관은 닷새 동안이나 조기를 내리지 않았다. 미국의 국기 관련 규정(United States Code Title 4 Chapter 1)에 따르면, 다른 나라의 고위관리가 사망하였을 때, 대통령의 지시나 외교관행에 따라 조기를 게양한다. 고 한준호 준위는 고위관리가 아니므로, 위의 규정에 해당되지 않는다. 위의 규정에서 조기를 게양하는 다른 경우는 미국군이 복무 중 사망하였을 때다. 외국군이 사망하였을 때 조기를 게양한다는 조항은 없다. 주한미국대사관이 보여준 매우 이례적인 애도행동은,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의 충돌사고로 미국군이 사망한 경우에만 있을 수 있는 행동이다.

 

미국 해군 보도국이 2010년 5월 4일 하와이 진주항 발로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콜럼비아호는 서태평양에서 여섯 달 동안 수행한 작전을 마치고 2010년 5월 3일 하와이에 있는 모항(home port)인 진주항-히컴 공동기지(Joint Base Pearl Harbor-Hickam)에 복귀하였다고 한다. 그 잠수함이 진주항-히컴 공동기지를 떠난 날이 2009년 11월 3일이었으므로, 예정된 복귀날짜에 맞춰 정확히 여섯 달만에 모항으로 돌아간 것이다. 미국 해군 보도국은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3월 26일부터 모항에 복귀한 5월 3일까지 37일 동안 콜럼비아호가 어디서 무엇을 하였는지 언급하지 않았다. 천안함과 충돌하여 손상을 입은 콜럼비아호를 괌 조선소에서 수리한 뒤에 하와이로 복귀하였음을 숨긴 것이 아닐까?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_2&uid=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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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영진 작성시간 10.06.24 무신 얘긴지....여하튼 언론의 자유는 있으니...
  • 작성자기산심해 작성시간 10.06.24 짜고친 고스톱이여 ~~~
    이은하의 노래 아리송해 ~~~ㅋㅋ
  • 작성자jackie 작성시간 10.06.27 우아~ 길다 개인적으로 아는분의 글이라서인지 믿음이 가는데...
    왜 KAL기 추락사건 생각이~ 옛날부터 미국이 ...
  • 작성자cbs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6.28 잘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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