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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학(大提學) : 국초에 "대제학"이란 명칭이 예문관, 보문각, 집현전등에 모두 있었는데 태종 때에 예문, 홍문의 양관으로
통합하여 양관 대제학과 성균관 대사성(뒤에 知成均館事)의 직을 한 사람이 겸임토록 하고 유림 사원(詞苑)을 모두 통괄케 하니
이를 문형(文衡)이라 칭하였고, 유림들이 또한 그를 본받게 되니 문형은 학문과 도덕이 뛰어나고 가문에도 하자가 없는 석학
석유(碩儒)만이 오를 수 있는 직위이며, 관,민을 막라 한 학문과 인격자로서의 최고 지위로, 본인이 사임하지 않으면 종신직
이었다. 이에 앞서 김한로(金漢老)가 태종조에서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바 있으나 문형이 아니므로 여기에서 제외되었음.
29世 익희(益熙) (1610∼1656). 47歲, 조선 중기의 문신, 字는 중문(仲文), 호는 창주(滄洲)이고, 아버지는 증영의정 반(槃)이며, 문원공(文元公) 장생(長生)의 손자. 어머니는 증정경부인 연산서씨로 증참판 주(澍)의 딸이다. 30세 만기(萬基) 김만기(1633 ∼ 1687)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 숙종의 장인이다. 자는 영숙(永叔), 호는 서석(瑞石), 아버지는 충정공(忠正公) 익겸(益兼)이며, 어머니는 증 정경부인 해평윤씨로 참판 지(?)의 딸이다. 구운몽을 지은 서포 만중은 그의 아우이다. 송시열의 문인으로 효종 4년(1652년) 생진양시에 장원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을과 3인으로 급제하여 장예원, 승문원 주서, 설서를 역임하고 예조, 병조좌랑과 사헌부지평을 지냈다. 사간원 정언, 홍문관 부수찬, 부교리에 임명되었다. 1659년 효종이 승하한 후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로 논란이 일자 서인으로 윤선도 등을 공격했다. 1660년(현종 4) 수찬이 되었다. 이듬해 응교, 사복 시정, 성균관사성, 의정부 사인, 동부승지를 거쳐 1666년(현종 8) 전라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나 편모를 떠나 멀리 갈 수 없다고 사양하니 대사간이 되고 곧 좌승지로 옮겼다. 이듬해 예조참의에 승진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그 후 광주부윤에 제수되어 선정 을 베풀었다. 1671년(현종 13) 딸이 세자빈이 되었고, 이후 예조참판에 승진, 승문원 제조, 도총부부총관, 관상감 제조를 겸했다 가 병조참판으로 옮겼다. 이듬해 대사성이 되고 곧 부제학으로 전보되었다가 양관대제학, 지성균관사, 동지경연사에 동지의 금부사를 겸임했다. 이듬해 병조판서에 지춘추관사를 겸했고 1674년(현종 16) 예조판서로 옮겨 정헌대부로 승진되고 이듬해 (숙종 2) 국구로서 영돈녕부사,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에 책봉되었고 도총관, 호위대장, 전생서 제조를 겸했다. 1680년 (숙종 7) 분충효의병기협모보사공신 1등에 책록되었고 1686년(숙종 13) 풍정도감(豊呈都監) 도제조를 지냈다. 30세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인조 15∼숙종 18))조선시대 문신, 문학가.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1665년(현종 6) 정시 (庭試)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정언(正言),수찬(修撰)을 역임하였고 71년 암행어사(暗行御史)가 되어 경기, 삼남(三南)의 민정을 살폈으며 75년(숙종 1) 관작이 삭탈되기까지 헌납(獻納), 부수찬(副修撰), 교리(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79년(숙종 5) 다시 등용되어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제학,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장숙의(張淑儀) 일가를 둘러싼 언사(言事)의 사건에 연루 되어 선천(宣川)으로 유배되었다. 88년(숙종 14) 풀려났으나 다시 탄핵받아 남해(南海)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구운몽 (九雲夢)》을 쓴 뒤 병사하였다. 시문에도 뛰어났고, 유복자로 태어나 효성이 지극해 어머니 윤씨를 위로하기 위하여 국문 소설을 많이 썼다고 하는데, 알려진 작품은 《구운몽》과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뿐이다. 《구운몽》은 전문을 한글로 집필한 소설문학의 선구로 꼽힌다. 특히 그 구성에 있어 선계(仙界)와 현실계(現實界)의 이중구성을 택하였고, 불교적인 인생관을 형상화 하였다. 그 외의 작품으로 《서포집(西浦集)》《서포만필(西浦漫筆)》《고시선(古詩選)》이 있다. ~~~~~~~~~~~~~~~~~~~~~~~~~~~~~~~~~~~~~~~~~~~~~~~~~~~~~~~~~~~~~~~~~~~~~~~~~~ 31世 진규(鎭圭) (1658∼1716). 59歲, 조선 중기의 문신. 字는 달보(達甫), 호는 죽천(竹泉), 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만기(萬基)이며, 어머니는 서원부부인(西原府夫人) 청주한씨로 군수 유랑(有良)의 딸이다. ~~~~~~~~~~~~~~~~~~~~~~~~~~~~~~~~~~~~~~~~~~~~~~~~~~~~~~~~~~~~~~~~~~~~~~~~~~~~~~~~~~~~~~~~~ 32世 양택(陽澤) (1712∼1776). 65歲,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사서(士舒) , 호는 건암(健菴)이며, 아버지는 문청공(文淸公) 판서 진규(鎭圭)이며, 어머니는 증정경부인 연일정씨로 소하(昭河)의 딸이다. 문학을 거쳐 강동현감으로 나갔다가 이듬해 홍문관 부수찬이 되자 좌의정 정석오를 논박하는 상소를 올려 임금의 노여움을 받았다. 곧 산청현감으로 좌천되었다가 얼마 안되어 다시 수찬이 되고 시강원 필선이 되었다. 1751년(영조 28) 통정에 승진되어 좌승지가 되었다가 부사로 나갔다. 그 후 대사성(大司成),이조참의, 양관대제학과 병조, 이조판서를 거쳐 1776년 (영조 53) 의정부 영의정에 오르고,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가 되었다. 시호는 문간공(文簡公)이며 1784년(정조 9) 벼슬을 추탈당하였다가 1864년(고종 2) 복관되었으며 문집이 있다. ~~~~~~~~~~~~~~~~~~~~~~~~~~~~~~~~~~~~~~~~~~~~~~~~~~~~~~~~~~~~~~~~~~~~~~~~~~~~~~~~~~~~~~~~~ 36世 상현(尙鉉) (1811∼1890). 80歲. 조선 후기의 문신. 字는 위사(渭師), 호는 경대 (經臺), 문원공(文元公) 장생(長生)의 9대손, 아버지는 증판서 재곤(在崑)이며, 어머니는 증정부인 기계유씨로 경주(擎柱)의 딸이다. ~~~~~~~~~~~~~~~~~~~~~~~~~~~~~~~~~~~~~~~~~~~~~~~~~~~~~~~~~~~~~~~~~~~~~~~~~~ 37세 영수(永壽) 조선 후기의 문신. 字는 복여(福如), 호는 하정(荷亭), 아버지는 증우의정 우현(宇鉉)이며, 어머니는 증정경부인 남양홍씨로 목사 집규(集圭)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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