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尹熔)의 본관은 해남(海南). 호는 청고(靑皐). 윤선도(尹善道)의 후손으로 두서(斗緖)의 손자로 재능을 이어 받아 그림과 문장에 뛰어났으나 안타깝게도 33세로 요절하였습니다. 화조나 초충도 등, 대상의 미세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그렸다는 정약용(丁若鏞)의 화평, 산수화는 가법(家法)으로 정착된 남종화풍(南宗畵風)을 따랐고 풍속화에서는 할아버지의 회화세계를 연상하게 하는「채애도(採艾圖)」등을 남겼습니다.
오우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642년)
내 벗이 몇이나 하니 水石과 松竹이라
東山(동산)의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밝에 또 더 하혀 무엇하리
구름빛이 좋다 하나 검기를 자로 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조코도 그칠 뉘 없기는 물(수)뿐인가 하노라
꽃은 어이하여 피면서 쉬이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아닐 손 바위(石)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 피우고 차거우면 잎지거늘
松(솔)아 너는 어이 눈서리를 모르는가
구천(九泉)의 뿌리 곧은 줄은 글로 하여 아노라
나무도 아닌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곳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러고 사시(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밤중의 광명(光明)이 너만 한 게 또 있으랴
보고도 말이 없으니 내 벗인가 하노라
고산 윤 선도는 그칠 줄 모르는 물의 부단함과 바위의 불변함, 그리고 눈서리를 모르는 솔의 불굴과 대나무의 불욕(不欲)과 달의 불언(不言) 등의 규범을 노래한 것으로 좌절을 안겨 준 현실에 무상을 느끼면서 변하지 않는 자연의 다섯 벗을 찬양하여 읊은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