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민과 보령시민에게 드리는 편지

작성자홍화평|작성시간21.01.03|조회수182 댓글 0

[김좌진 역사 바로세우기 ―제1탄]

 

홍성군민과 보령시민께 알립니다!

코로나19의 확산방지와 감염 예방에 다 같이 힘씁시다!

이렇게 서한을 올리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옵고, 김좌진 장군의 잘못된 역사와 가족사에 대해 그 진상을 바르게 알려드리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자는 취지입니다.

2020년으로 청산리독립전쟁 100주년을 맞이하였기에 홍성군과 충청남도에 김좌진 장군의 가족사를 바로 잡아 지하에 계신 김좌진 장군 내외와 그의 정통 혈통의 명예를 회복하자고 거듭 요청하였으나 해를 넘기고 말았습니다. 김좌진 장군 관련 책을 저술한 작가와 교수들도 문제였지만 그 오류를 김좌진 장군의 고향땅 행정기관이 100년이 되도록 방치•방임•체념한 것 또한 홍성군민과 보령시민 그리고 국민을 기만한 것입니다.

김좌진 장군은 만주 독립운동사에서 불후의 공적을 남김으로써 민족의 영웅으로 불려왔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김두한이 저지른 “장군의 유택 조작”이라는 패륜적 사기가 있었으며, 김을동이 공개한 장군의 가족사진은 명백한 조작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는 김좌진 장군의 공적을 갈취하여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꾀한 사기극이었습니다.

그 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⑴1930년 1월 24일 김좌진 장군이 순국한 이래 오숙근 여사는 귀국하지 못하고 두 아들 창렬, 창규와 손자 명환을 데리고 중국 흑룡강성에서 이리저리 피신과 은둔생활을 하시다가 1947년 큰아들 창렬이 중국 토지개혁심판대에서 일제 주구들에 의해 농기구와 몽둥이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처참한 광경을 현장에서 목격한 창렬의 어머니 오숙근 여사는 졸도하여 몸져누워 회생하지 못하고 두 달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중국 공산당 흑룡강성 보청현 당안에 기록돼 있습니다.

▲김좌진 장군의 가족과 큰아들 김창렬의 죽음과 오숙근 여사의 사망 사실이 기록된 중국 공산당 흑룡강성 당안 원문 번역 인증서.

⑵김을동은 1989년 대전MBC-TV 다큐멘터리 “백야 김좌진”에서 자신이 김좌진의 손녀라며 유일한 증거물로 제시.공개한 사진은 완전조작입니다. 오숙근 여사는 1947년에 중국 흑룡강성 보청현에서 돌아가셨는데 김을동은 본인이 여섯살 때에 사진을 찍었다고 동생 김경민씨 앞에서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김을동이 1945년생이므로 여섯 살이면 1950년이 되는데, 어떻게 3년 전에 돌아가신 오숙근 여사와 사진을 찍을 수 있단 말입니까? 엄청난 사기극입니다. 중국 길림성에 거주하고 있는 김장춘이 명확하게 증언합니다.

1989년 대전MBC-TV 다큐멘터리 "백야 김좌진"에 출연하여 사진을 공개하는 김을동.

 

⑶오숙근 여사가 방물장사로 가장하여 머리에 이고 중국 산시역에서 출발하여 압록강 철교를 건너 홍성까지 장군의 유해를 옮겨 1934년 5월 21일 새벽에 이장했다. 1945년 조선에 광복이 찾아오자 김계월이 낳은 김두한과 나혜국이 낳은 김철한이 묘소의 봉분을 정비하고 묘비까지 세웠다. 고 썼습니다. (지나가는 송아지도 웃고 있네요.)

 

⑷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묘역에 김좌진 장군과 오숙근 여사의 합장은 김두한의 패륜적 사기였습니다. 오숙근 여사는 중국 공산당 당안에 기록된바 1947년에 중국 흑룡강성 보청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김두한은 10년 뒤인 1958년 음력 1월 15일에 오숙근 여사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이미 1934년 음력 4월 9일에 오숙근여사가 장군의 유해를 수습하여 모셔와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 종산에 밀장했다는 장군의 무덤을 다시 파묘하여 현재의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에 합장했다는 것입니다.

홍성군민 그리고 보령시민 여러분!

김좌진 장군의 유해 귀환과

김을동이 공개한 가족사진과

김두한이 저지른 김좌진과 오숙근의 합장 장례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을동이야말로 유령이 아니라면 오숙근 여사와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장군의 모친 이소사 여사님은 또 어떻게 등장한 것일까요? 김두한이 치른 합장장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누구의 시신을 장군의 정실부인이라고 합장했을까요? 이것은 단군왕검 건국 이래 사상 초유의 범죄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런 범죄 유형은 없었습니다.)

오숙근 여사가 귀국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단지 홍성군에서 발간한 책에서만 “조선에 사람을 보내 김좌진의 조강지처인 오숙근 여사를 북만주로 데려왔다.” “장군이 공산당의 흉탄으로 순국하자 다시 고국으로 시어머니와 둘째 딸을 데리고 서울 필동에서 은거하면서 장군의 혈육인 김두한을 찾아 이재희와 결혼시켜 동거하면서 살다가 1934년에 방물장사를 가장하여 장군의 유해를 북만에서 보따리에 모시고 왜경의 눈을 피하여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에 밀장했다가 ―("여기서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오숙근 여사가 귀국하여 김두한과 이재희를 결혼시켜 동거하며 살다가 1934년에 방물장사로 가장하여" 라고 했으므로 김두한은 1934년 이전에 결혼한 것으로 됩니다. 홍성군이라는 행정기관에서 역사를 이렇게 써도 되는 겁니까?)― 1958년 1월15일 오숙근여사도 노환으로 사망함으로써 충남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산51번지에, 장군의 유해는 홍성에서 이장하여 오여사의 장례와 같은 날 합장했다.”라고 썼습니다.

북만주에서 파묘할 때 오숙근 여사를 도왔다는 여덟명의 노인도 근거가 없습니다. 차가운 땅 북만주의 동토는 5월이 되어도 녹지 않습니다. 왜놈 경찰과 군인과 헌병의 경계와 검문은 삼엄했습니다. 1934년이라면 우리 독립군과 동포들을 검거, 체포, 투옥, 학살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김좌진의 가족을 검거하려는 추격과 수배가 만주 전역에서 펼쳐지던 때였습니다. 이 처참한 역사는 만주 반일무장독립군들의 공적이 제대로 밝혀지면 자신들의 친일행각이 드러나게 되는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이 왜곡하고 조작한 것이며, 그 조사와 연구도 차단한 것입니다. 하여 봉오동•청산리 반일무장독립전쟁이 쪽바리들의 의도대로 최진동, 최운산, 서일, 홍범도, 윤자형, 김혁 등의 혁혁한 분들이 뒷전에 밀려 가려있습니다.

 

홍성군민 그리고 보령시민 여러분!

더 이상 민족의 숙적인 친일 주구들한테 기만당하지 마십시오.

가해자와 피해자를 놓고 볼 때 중립에 선 자는 가해자 편입니다. 그 가해자는 일본이고 피해자는 만주 반일무장독립군과 김좌진과 그 유족입니다. 이 나라의 홍성군과 충청남도와 보훈처라는 행정기관이 바로 중립에 서 있습니다. 김좌진의 가족사를 바로잡는 일을 맡아 처리할 해당부서가 없다고 말하는 홍성군의 입장은 곧 중립적이므로 왜놈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들 행정기관이 이처럼 잘못된 역사를 방치하고 방임하고 체념하는 것도 국민을 기만하는 행정이며, 역사 왜곡과 조작에 해당됨을 밝힙니다. 

김좌진 장군은 지하에서 눈을 감지 못하고 있으며, 장군의 부친 김형규는 어느 송장을 내 며느리라고 내 면전에 묻었느냐고 눈을 부릅뜨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홍성군민 그리고 보령시민 여러분!

김좌진의 가족사가 잘못되었다는 증거는 중국 공산당 당안 인증서 제3726, 3727, 3728에 있습니다. 홍성군과 충청남도와 보훈처가 요구하면 공개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들 친일 학자, 교수, 행정기관 공무원들은 바로잡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이 밝혀지면 학자와 교수와 교사들은 거짓역사를 가르쳤음이 드러나 얼굴을 닦아야 할 것이며, 행정기관 공무원은 아무리 모가지가 긴 사슴이라도 그 모가지가 달아날 터이니까요. 김좌진 장군의 가족사를 바로잡는데는 홍성군민과 보령시민과 충남도민의 관심과 성원으로 할 수 있습니다. 

 

충남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에 있는 김좌진의 묘소는

김좌진의 정실 오씨의 시신이 아니고

김두한과 그 친일파들이 조작하고 체념한 패륜적 합장장례 사기이니

그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참배를 중단하십시오.

 

홍성군민과 보령시민 그리고 국민 여러분 여러분!

김두한과 김을동의 사기 행각에 대한

진상규명을

홍성군과

충청남도와

보훈처에

요구하십시오.

김좌진은 만주를 향해 고향을 떠날 때 가산을 정리함으로서 재산을 다 잃었고, 만주에서도 처자식을 돌볼 틈도 없이 일본침략자들과 민족독립을 위하여 목숨 걸고 싸웠습니다. 재산 잃고, 처자식 잃고, 왜군과 싸우다가 괴한의 총탄에 순국하셨습니다. 이런 분의 가족사를 홍성군민과 보령시민이 바로 잡지 아니하면 누가 잡겠습니까? 차가운 만주 땅에서 김좌진의 고향을 바라보며 간고한 삶을 이겨낸 불쌍하고 억울한 김좌진의 정통 혈통 가족을 찾아주십시오.

 

드릴 말씀은 무수합니다만 첫 번째 편지는 이만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1월 3일

김좌진장군역사정립회(주) 사무총장

전재진 배상

 

 

※이 비대면 공개연구토론 목록은 [http://cafe.daum.net/ddangjjj 만주독립군의얼을기리는 집] “김좌진장군역사정립회” 방에서 볼 수 있습니다. 1~12번까지 올리겠습니다. 다음 목록은 “중국 공산당 당안”입니다. 이 카페에 진상과 의견을 올려 주십시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