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역사바로세우기—제3탄]
중국 공산당 추이롼삼림공업엽위원회 조직부 당안-Ⅱ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술(자백)기록용지
성 명 | 현 명 | 김명환 | 나이 | 21 | 성분 | 빈농 | 민족 | 한 | ||
원 명 | - | 성별 | 남 | 출신 | 학생 | 문화 | ||||
중국명 | - | 직업 | 근무처 | |||||||
본적 | 부금현 | 전 근무처 | 쐉야산 탄광 | |||||||
현주소 | 림업국 취업시기 | 1953년 4. 9 학교 소개로 |
주요 자백 사회문제:
토지개혁 때인 7월에 보청현(寶淸縣) 제3지구 동광촌(東光屯)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오전에 체포하여 보청현 구류소에 감금했고, 보청현 만금산(萬金山)으로 끌고 가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그 후 두 달 뒤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죽은 후에야 그가 특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금현(富金縣)에서 내가 5살 때 아편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성이 상씨인 특무(이미 사망)가 보청이 살기 좋다고 해서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보청으로 옮겼다. 하지만 생활이 안 좋아 1년 후에 아버지는 거지생활을 하게 되었고, 나는 다시 시골로 내려갔는데 아버지는 보청에 있으면서 후에 막일을 하였다. 우리는 개척단(開拓團)으로 이사하여 농사를 지었으며 후에는 다시 보청으로 이사하여 농사를 지었다. 우리 가족의 과거와 이사 다닌 것을 근거로 해서 일반 사람들은 아버지가 절대로 특무(간첩)일리 없다고 말했다. 나의 성분에 대하여 말하면 나는 어릴 때부터 숙부와 함께 생활하였고 빈농인 숙부를 따라다녔다. 나의 아버지는 집안일을 하지 않고 주로 숙부에게 의지해 살았다.
1956년 8월 16일
교대(자술)인 (김명환의 도장)
1957년 6월 17일 심사
중공추이롼삼림공업엽위원회 조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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